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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혹한 현실과 노동조건 속의 돌봄노동자를 추동하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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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은 (시민건강연구소 회원)

 

코로나19 팬데믹 발생 이후 비로소 대중의 이목을 모으게 된 돌봄 대란. 돌봄의 중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도 강조되는 상황 속에서도, 돌봄이 주변화, 여성화, 외주화되는 현상은 해소는커녕 오히려 심화되고 있다. 현 정부가 저출생에 대한 방안으로 외국인 가사 도우미 고용을 추진하겠다는 대책을 내놓은 것은, 이주노동자에 대한 인간적 삶의 권리 박탈은 물론이거니와(☞관련 기사: 바로가기) 돌봄에 대한 평가절하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근본적인 사회구조적 문제를 값싸고 빠른 임시방편으로 메꾸어보겠다는 심산이다.

 

이렇듯 돌봄이 평가절하되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돌봄노동자들이 지금-여기의 돌봄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동력은 과연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잔혹한 현실과 불안정한 미래, 악랄한 노동조건 속에서도 돌봄노동을 지속해나가는 돌봄노동자들의 실천에 주목한 연구가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논문 바로가기: 비접촉시대에 돌봄노동자의 삶과 노동의 위태로운 기술로서 정동적 부정의). 이 논문은 특히 인지증이 있는 노인을 돌보는 돌봄노동자(요양보호사, 사회복지사, 방문간호사 등) 14명의 돌봄 경험과 돌봄서사에 주목함으로써, 이들이 하루하루를 버텨나가는 동력을 ‘정동적 부정의(affective injustice)’라는 개념을 사용하여 풀어나간다.

 

먼저 연구자는 돌봄노동자들의 정동적 부정의를 설명하기에 앞서 기존 접근들의 한계를 지적한다. 기존 연구들이 돌봄 윤리와 (부)정의를 강조하는 데에는 효과적이었지만, 돌봄노동자들이 현장에서 몸으로 경험하는 분노, 무기력감, 배신감 등의 부정적인 정동과 함께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대한 관점은 부족했다는 것이다. 오히려 이들의 부정적 정동을 우울증, 불안장애, 직업 스트레스 등의 병리적인 대상으로 환원함으로써 관리되고 통제되어야만 하는 것으로 치부했다고 비판한다. 연구자는 이러한 제한적인 접근에 문제를 제기하며, 돌봄노동자의 정동적 부정의가 어떻게 생산되고 누적되며 추동되는지에 주목한다.

 

그렇다면 연구자가 제시하는 ‘정동적 부정의’는 무엇을 가리키는가? 연구자는 돌봄노동자들이 부정의한 상황을 몸으로 부대끼면서 생성되고 촉발되는 힘과 에너지를 정동적 부정의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이는 ‘돌봄부정의’라는 개념틀이 돌봄을 둘러싼 사회구조적인 불평등을 지적하는 데에 그 목적을 둔다는 것과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정동적 부정의는 돌봄노동자 개인이 현실에서 직접 경험하는 신체적, 정서적 부정의를 포착하는 데에 방점을 둔다. 하지만 개인들이 신체적으로 마주하는 경험들은 단지 일부 개인들만의 특수한 것이 아니다. 이들은 모두 돌봄부정의로부터 유래된 구체적 현실의 경험이기 때문이다.

 

이 연구의 주요 내용과 주장을 제시하기에 앞서, 돌봄노동자들의 상황과 이로 인해 추동되는 힘을 압축적으로 담고 있는 연구 참여자들의 목소리를 몇 가지 소개한다.

 

“또 생계라는 게 돈이 없으면 안 되는 거잖아요. 근데…지금 몇 개월 동안 일이 없었잖아요. (…) 코로나로 죽으나, 굶어서 죽으나 이건 어떤 것이 더 큰 건지 모르겠더라고요. (330쪽)”

 

“보면 진짜 짠해요. 마음이 아파요. 눈물 나요. 그냥 내 부모 같기도 하고 내 자식처럼 그냥 보고 있으면 감정 몰입이 되나 봐요. 사정이 이런데 어떻게 모른 척 할 수 있어요? (347쪽)”

 

“아 옛날에는 간호사복을 입고 갔거든요. 근데 할머니가 어느 땐가 치마 같은 것을 입고 갔었는데 할머니가 눈이 반짝반짝 빛나면서 “예쁘다!” 옷감을 만지세요. (…) 근데 그게 어 “예쁜 아줌마 왔냐?” 되게 좋게 맞이해주니까 괜찮았던 것 같아요. 제가 음악 틀어놓고 한 바퀴씩 돈다던가, 아리랑을 틀어놓고 춤춘다던가, 그런 큰 행동들 보시면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351쪽)”

 

먼저 이 연구에 참여한 돌봄노동자들은 갑작스레 다가온 팬데믹에 “앉아서 대책 없이 당하느니 선제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유리하다는 일상의 탄력성 같은 것으로 (329쪽)” 대응하며, 그동안의 삶 속에서 체화된 몸의 기술을 소환하여 재빠르게 움직였다. 그 과정에서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돌봄 매뉴얼을 겪으며 이들은 분노를 넘어 무기력감과 소진의 정동에 이르렀다. 하지만 점점 강해지는 감염병에 대한 불안감과 강도 높은 노동으로 인한 피로와 소진에도 불구하고, 금전적 상실, 돌봄수요자와의 약속 등 새로운 상황들이 복잡하게 얽히면서 돌봄노동자들은 끈덕진 활력을 획득하기도 했다.

 

특히 이들은 돌봄수요자들과의 관계에서 자신의 상황과 겹쳐지는 모습들을 보며 서로의 취약한 의존성을 공유하기도 했다. 돌봄수요자들은 돌봄노동자 외에 의지할 사람이 없는 노인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돌봄노동자들은 이 모습이 자신들의 사정과 별반 다를 바 없다는 현실에 공감하면서 다양한 강도의 기쁨, 슬픔, 짠함 등의 감정을 몸으로 느끼며 위태로운 돌봄의 실천을 이어나갔다. 또한 버거운 육체노동과 만연한 욕설과 모욕 속에서도 웃음과 해학을 활용함으로써 상호의존적이고 서로의 감정이 연결되는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소외나 슬픔에 갇히기 보다는 함께 느끼고 공유하는 웃음으로 전환함으로써 함께 돌봄이라는 삶의 가치를 확인하고자 한 것이다.

 

돌봄노동자들이 분투하는 일상의 한 단면을 그려내는 것은 결코 현 상황이 용인가능하다거나 이들의 희생과 노동이 계속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사회구조적인 돌봄부정의로 인해 위태로운 상황에 내몰린 돌봄노동자들의 노동조건과 처우는 시급히 개선되어야 한다. 다만 이 연구의 의의는 상대적으로 소홀이 다루어졌던 돌봄노동자들의 정동적 부정의에 귀를 기울임으로써 이들의 삶과 노동이 헛되지 않았음을 존중하고 인정한다는 데에 있다. 가속화되는 돌봄 대란을 버텨내고 있는 이들은 바로 지금-여기의 현장에서 다양한 관계와 정동을 조율하는 돌봄노동자들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이들의 위태로운 기술과 조율에만 의존하는 것을 멈추고 지속가능한 돌봄으로의 변혁을 꾀해야 할 때이다. 그리고 바로 이들의 정동적 부정의가 이러한 변혁을 추동하는 힘으로 작용하도록 만들기 위한 고민과 연구가 필요한 때이다.

 

*서지정보

정종민. (2022). 비접촉시대에 돌봄노동자의 삶과 노동의 위태로운 기술로서 정동적 부정의. 한국문화인류학. 55(3), 321~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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