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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의료 전문가의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한 교육 정책의 필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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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슬기 (시민건강연구소 회원)

 

주인-대리인 이론은 대부분의 보건학 교과서에서 보건의료의 특성을 설명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개념이다. 정보의 비대칭이 존재하는 보건의료의 특성상 소비자인 환자는 제공되는 서비스의 종류나 범위를 선택할 때 공급자인 보건의료 전문가에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주인-대리인 이론에서 중요한 것은 대리인인 보건의료 전문가가 자신의 이익이 아닌 주인의 이익을 대변하게 하는 것이다. 만약 보건의료 전문가가 환자의 안녕보다 자신의 이익을 우선시한다면, 환자의 효용에 반하는 과잉진료나 불필요한 의료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보건의료 전문가가 환자를 잘 대변할 수 있을까? 다양한 사회경제적 배경을 가진 환자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이 필수적일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보건의료 전문가가 그 사회의 다양한 인구집단을 대표할 수 있어야 하며, 보건의료 전문가를 양성하는 교육과정부터 학생의 다양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보건의료 전문가 중 가장 대표적 직종인 의사는 인구통계적 대표성을 가지고 있을까? 오늘 소개할 논문은 미국의사협회 학술지인 <JAMA Network Open>에 발표된 것으로, 미국 의과대학(이하 ‘의대’) 입학생들의 사회경제적 구성을 미국의 인구집단과 비교한 연구이다(☞논문 바로가기: 인종, 민족, 성별에 따른 미국 의과대학 입학생들의 사회경제적 다양성, 2017-2019). 기존 연구들이 주로 의대 학생들의 인종, 민족, 성별에 기반한 다양성에 주목했다면, 이 연구는 사회경제적 다양성에 주목하였다.

 

연구진은 미국 의대 입학생의 사회경제적 구성을 파악하기 위해 미국의학대학협회에서 매년 의대 신입생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설문조사를 활용하였다. 2017년부터 2019년까지 설문조사에 참여한 44,903명 중 부모 소득을 보고한 30,373명이 분석에 포함되었다. 비교 집단은 2016년부터 2018년 사이에 미국 인구조사국의 ‘연간 사회경제 보충 자료’에 응답한 가구이다.

 

응답자들은 전체 미국 가구의 가구소득 5분위 경계값을 기준으로 5개 집단으로 분류되었으며, 각 인종과 민족별로 의대 입학생과 일반 인구집단의 가구소득을 비교하였다. 또한 연구진은 ‘대표성 지수(Representation Index, RI)’를 산출하였는데, 이는 해당 집단의 의대 학생 비율과 전체 인구집단의 의대 학생 비율의 비로 정의된다. RI 값이 1을 초과하는 것은 해당 집단이 의대 입학생에 과대 대표된 것을, 1 미만인 것은 과소 대표된 것을 의미한다.

 

분석 결과, 의대 신입생의 50.5%가 소득이 높은 5분위(상위 20%)에 해당되었으며, 24.0%는 소득 상위 5%에 속했다. 이를 인종과 민족별로 살펴보아도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상위 5% 가구는 일반 인구집단에 비해 의대 입학생에서 일관되게 과다 대표되었다(전체  RI=4.8; 아시아인 RI=2.3; 흑인 RI=5.3; 히스패닉 RI=6.6; 백인 RI=4.8). 하위 3분위는 일관되게 과소 대표되었으며, 성별에 따른 변동성은 두드러지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고소득 가구는 의대생 전체와 모든 인종과 민족 집단 내에서 과대 대표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경향은 의사뿐만 아니라 생물통계학, 역학, 국제보건학과 같은 공중보건학 전공자에게서도 동일하게 나타났다(☞논문 바로가기: 미국 공중보건 인력 파이프라인의 다양성(2016-2020): 교육 기관의 역할). 공중보건학은 개인의 건강이 아닌 인구집단의 건강을 다루는 학문으로, 건강 불평등 완화를 위해 건강의 사회적 결정요인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특히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그로 인한 건강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다양한 인구집단에 대한 문화적 민감성을 높일 수 있도록 인력의 다양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연구진들은 미국 공중보건 학교와 프로그램 간 졸업생의 다양성을 비교하기 위해 ‘다양성 지수(Diversity Index, DI)’를 개발하고, 기관의 졸업생 다양성과 관련된 특성을 조사하였다. 자료 분석을 위해 2016~2017년부터 2020~2021년까지 5개 학년 동안의 종단 자료를 사용하였다. DI 지수는 흑인, 히스패닉, 하와이 원주민/태평양 섬주민, 아메리칸 인디언/알래스카 원주민으로 정의되는 ‘소수 민족(Underrepresented minority, URM)’ 졸업생의 비율과 해당 기관이 위치한 주의 20~35세의 URM 비율의 비로 산출되었다.

 

평균 DI 점수는 0.78로 1보다 낮았다. 이는 기관이 위치한 주의 인종/민족 구성에 비해 URM 학생들이 지속적으로 과소 대표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흑인, 하와이 원주민/태평양 섬주민, 아메리칸 인디언/알래스카 원주민 졸업생의 평균 DI 점수는 1보다 높았지만, 히스패닉 졸업생은 1보다 낮았다. 평균 DI 점수는 2016년 0.7에서 2020년 0.8로 증가하였지만, 여전히 1보다 낮게 나타났다. 또한 학위 수준에 따라 차이가 있어 학사 학위의 DI 점수가 0.98로 가장 높았으며, 학위가 올라갈수록 평균 DI 점수는 낮아졌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떠할까? 보건의료 전문가의 다양성을 높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을까? 아쉽게도 보건의료 전문가를 양성하는 파이프라인에 대한 정확한 현황 자료조차 없는 실정이다.

 

다만 최근 불고 있는 의대 입시 열풍과 관련한 기사로 의대생의 다양성을 간접적으로 짐작해볼 뿐이다. 2019년부터 2022년까지 전국 의대 신입생의 출신 지역을 살펴보면, 신입생의 45.8%가 수도권 출신이었다(☞관련 기사: 바로가기). 정시 전형의 경우 신입생 5명 중 1명이 강남 3구 출신이었으며, 그 비율도 매년 증가하고 있다.

 

이렇게만 의사가 양성된다면 다양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강남 3구나 수도권 출신은 지방에 있는 의대를 졸업한다고 해도, 해당 지역에 남지 않고 수도권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높다. 또한 특권적인 배경을 가진 의사들은 경험이나 관점 측면에서 다양한 환자 집단에 공감하거나 환자 집단의 고유한 필요를 해결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입학생 선발 과정부터 학생의 다양성을 반영할 수 있는 교육 정책이 필요하다. 수능 점수로만 지원자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지원자의 삶의 경험, 개인적 자질이나 잠재력 등을 평가할 수 있는 유연한 입학 기준이 필요하다. 경직된 우리나라 입시 제도에서 당장 적용하기는 어렵겠지만, 정원 외 전형을 보건의료 분야 전공에 확대하는 것은 지금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최근에는 ‘지방대학 및 지역균형인재 육성에 관한 법률’에 근거를 둔 지역인재 전형이 활발하게 시행 중이다. 2023학년도 입시부터 지방대학 의약 계열은 전체 모집인원의 40%(강원 및 제주 20%)를, 간호학과는 30%(강원 및 제주 15%)를 지역인재로 선발해야만 한다. 하지만 지역인재 전형은 여러 가지 다양성 중 ‘지역’만을 고려한 것이다. 더 늦기 전에 보건의료 전문가의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한 교육 정책을 고민할 때이다.

 

* 서지 정보

 

Shahriar, A. A., Puram, V. V., Miller, J. M., et al. (2022). Socioeconomic diversity of the matriculating US medical student body by race, ethnicity, and sex, 2017-2019. JAMA Network Open, 5(3), e222621-e222621.

 

Vichare, A., Park, Y. H., & Plepys, C. M. (2023). Diversity of the US Public Health Workforce Pipeline (2016–2020): Role of Academic Institutions. American journal of public health, 113(9), 1000-1008.


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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