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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조기검진에 남긴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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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혜 (시민건강연구소 회원)

 

“지진이 아니라 건물이 사람을 죽인다.”

 

팬데믹 시대를 지나면서 인상적으로 읽었던 존 머터의 <재난 불평등> 속 한 구절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인종, 성별, 학력, 소득을 구분해서 접근하지 않았다. 다만 기존에 불평등하게 만들어진 사회구조에 따라 바이러스에 노출되고 감염될 위험과 적절한 시기에 필요한 의료서비스에 접근할 가능성이 달랐다. 다시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온 우리에게 코로나19라는 재난은 이미 지나간 듯 보이지만, 우리 사회 곳곳에 여전히 코로나19가 지나간 흔적이 남아있다. 이 흔적들을 당연한 듯 지나치지 않고 면밀하게 살펴보는 일은 다음 재난 상황에서 불평등한 구조를 따라 만들어질 고통을 줄이고 예방하는 데 중요한 근거로 사용될 것이다. 많은 의료인력과 자원이 코로나19 검사와 치료에 투입되면서 예방과 관련된 의료서비스 제공이 미뤄졌는데, 특히 오늘은 코로나19 시기에 만들어진 불평등한 흔적 중 하나로 조기검진 현황을 살펴보고자 한다.

 

조기검진은 불건강 상태를 조기에 발견하여 적절한 중재를 통해 큰 병으로 발전하는 것을 막는 중요한 이차 예방 방법이다. 암과 심장대사질환(고혈압, 고지혈증, 당뇨)은 조기검진을 통해 효과적인 대응이 가능한 대표적인 질환으로 개인의 사회경제적 지위와 연관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사회경제적 지위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학력이 높을수록 건강과 삶의 질을 높이는 데 필요한 자원과 지식에 대한 접근성이 좋았다. 또 안락한 주거환경에 살면서 양질의 식사를 하고, 건강한 생활 습관을 서로 격려하고 배울 수 있는 좋은 사회적 관계망을 가지고 있었다. 반면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을수록 불안정한 주거환경과 건강에 악영향을 주는 생활 습관을 지닐 가능성이 컸고, 정기적으로 건강검진을 받을 가능성이 작았다. 오늘 소개할 논문에서는 미국 국민건강면접조사(☞관련자료: 바로가기)를 활용하여 인종과 학력 수준에 따른 코로나19 시기의 암과 심장대사질환 조기검진 현황의 차이를 분석했다(☞논문 바로가기: 예방 건강 검진의 불평등에 대한 코로나19 팬데믹의 영향: 미국 인구 건강에 대한 추세 및 영향).

 

이 연구에서는 조기검진의 대상 연령에 해당하는 40세부터 75세 인구 중에서 미국 국민을 대표할 수 있도록 표본 설계를 통해 선정된 응답자 32,685명에게 “최근 1년 이내 심장대사질환(고혈압, 고지혈증, 그리고 당뇨) 및 암검진을 받은 적이 있는가?”라고 물었다. 미국은 기존에 인종과 학력 수준에 따른 조기검진의 불평등이 존재하는 나라이기 때문에, 코로나19 이전 시기인 2019년과 코로나19 시기인 2021년에 조기검진을 받은 비율의 차이가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라 어떻게 다른지 비교했다. 인종은 백인, 히스패닉, 흑인, 동양인, 이 네 가지 범주로 분류했고, 학력 수준은 고등학교 졸업 이하, 고등학교 졸업 및 검정고시, 전문대학교 졸업, 4년제 대학교 졸업 이상으로 구분했다. 암 검진 질문의 경우 여성 응답자에게는 유방암, 자궁경부암, 그리고 대장암 검진을 질문했고, 남성 응답자에게는 대장암과 전립선암 검진에 관해 물었다.

 

코로나19 시기였던 2021년에 조기검진을 받은 사람들의 비율은 코로나19 이전 시기인 2019년에 비해 전체적으로 줄었다. 당뇨병 검진은 여성과 남성 응답자 모두에서 2019년 대비 -18%로 가장 많이 감소했다. 가장 변화가 작았던 항목은 대장암 검진으로 여성에서 1%, 남성에서는 2% 감소했다. 인종 분류에 따른 차이를 살펴보면, 남성 대장암 검진과 여성 당뇨병 검진을 제외한 모든 항목에서 동양인이 가장 큰 감소율을 보였다. 이는 코로나19 기간에 동양인이 다른 인종에 비해 조기검진에 대한 접근성에 가장 큰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그림 1> 참고). 학력 수준에 따른 차이를 살펴보면, 당뇨병 검진에서는 남녀 모두 학력이 낮을수록 조기검진을 받는 비율이 감소했다(<그림 2A> 참고). 그러나 자궁경부암 검진을 포함한 다른 항목에서는 대졸 이상의 고학력자 그룹에서 더 큰 감소율을 보였다(<그림 2B> 참고). 이는 학력이 높을수록 조기검진의 이점을 잘 인식하여 검진 참여율이 높다는 기존의 가설과 다른 결과였다. 위 결과는 코로나19 시기에 조기검진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득보다 감염에 대한 위험을 더 중요하게 인식하는 경우 접근성 문제가 없더라도 자발적으로 검진을 미루는 그룹이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은 국가건강검진사업을 통해서 만 20세 성인이 되면 2년마다 심‧뇌혈관질환 예방과 조기 발견을 위해 고혈압‧당뇨 등에 대한 일반건강검진을 받도록 하고 있다. 40세부터는 한국인 사망원인 1위인 암을 조기 발견하기 위해 특별한 증상이 없어도 발생 빈도가 높은 주요 암 검진을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제도만 본다면 미국과 달리 한국은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른 조기검진의 접근성 차이가 없어야 한다. 하지만, 원하는 일정에 맞춰서 검진을 예약하고 근무 중 시간을 비우는 일의 무게는 각자가 놓인 사회경제적 위치에 따라 다를 것이다. 작년 연말에 발표된 2020년 암발생통계를 보면 인구 고령화에 따라 계속 증가하던 암 발생자 수가 처음으로 감소했다(☞관련자료: 바로가기). 암 발생 자체가 실제로 줄어서 나온 결과라면 기쁜 일이겠지만, 코로나19 기간에 검진을 미루고 검사를 받지 못해서 암 진단을 놓친 결과라면 우려가 되는 일이다. 물론 상업화된 건강검진 구조에 따른 과잉검진 행태는 지양해야겠지만, 사회경제적 약자들에게 불리한 형태로 조기검진의 접근성이 제한되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코로나19가 조기검진에 남긴 흔적이 장기적으로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른 건강불평등을 악화시키지 않으려면 미뤄둔 조기검진의 기간을 연장해주는 보편적인 접근뿐만 아니라 소외된 집단의 필요에 맞춘 비례적인 접근이 함께 고려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서지 정보

Mani, S. S., & Schut, R. A. (2023). The impact of the COVID-19 pandemic on inequalities in preventive health screenings: Trends and implications for U.S. population health. Social Science & Medicine, 328, 116003.

존 C. 머터. (2021). <재난 불평등>. 동녘 출판사.

 


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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