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 논평

수산물 수입금지가 끝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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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뒤늦게 방사능 수산물 수입을 금지했다. 후쿠시마 주변 여덟 개 현에서 나오는 수산물을 수입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시민과 소비자가 조치를 요구한 것은 벌써 한참이나 되었다. 하지만 빗발치는 여론에 견디다 못해 이제야 금지 조치를 내렸다.

일이 끝난 것 같지는 않다. 정부 조치가 미흡하다는 비판도 여전하다. 농축산물과 사료는 수입에 제한이 없고, 이미 유통되고 있는 수산물도 아무런 조치가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일본은 가공지를 원산지로 표시한단다. 일부 지역만 금지하는 것이 무슨 효과가 있느냐는 비판이 곧이들린다.

그 사이에 소비자들의 불안이 커진 것은 당연하다. 일본산 생선이야 말할 것도 없고 국내산이나 원양을 가릴 것 없이 수산물 소비가 크게 줄었다고 한다. 일본산 화장품, 맥주, 담배까지 일일이 원산지를 확인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 대책이 한심한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통할 리 없는데도 무조건 믿으라는 윽박지르기로 일관하니 말이다. ‘괴담’의 진원지를 찾는다는 소리 앞에는 기가 막힐 따름이다. 급기야 총리까지 나서서 생선 시식 행사를 했다니, 어느 시대 행정이고 대책인지 모르겠다.

다들 더 단호한 대책과 소비자의 안심을 강조한다. 급한 마음이겠지만, 총리와 장관만 아니라, 대통령과 다른 장관, 국회의원도 시식에 나서라고 다그치는 언론까지 있다. 괜한 불안이라고 ‘가르치는’ 목소리도 한둘이 아니다.

통용되는 이론으로만 보면 맞는 소리다. 방사능을 가진 고등어를 매일 한 마리씩 몇 달 먹어도 괜찮단다. 허용기준치로만 보면 그렇다. 엑스레이 한번 찍는 것과 노출량이 같다는 식이다.

‘허용기준치’의 허구는 더 말하지 말자. 방사성 물질이 발암물질인 다음에야 ‘안전한’ 섭취량이라는 것은 없다. 안전기준이 아니라 ‘관리기준’일 따름이라는 전문가들의 주장이 백번 타당하다.

처음부터 따져 핵발전의 위험과 생태적 위기를 말하는 것은 이 글의 목적이 아니다. 참고할 만한 다른 좋은 생각과 글이 많으니 굳이 그럴 필요가 없을 것이다. 안전을 둘러싼 논란을 오늘 생각할 거리로 삼는다.

사실 수산물 방사능을 둘러싼 논쟁 아닌 논쟁은 낯설지 않다. 미국 소고기의 안전성을 둘러싼 논란이 불과 얼마 전 일이다. 내용은 다르지만 근본 틀이 아주 다르다고 하기는 어렵다. 음식물이라는 점, 그 속에 포함된 건강을 위협하는 요인. 그리고 불확실성… 유난히 과학을 강조하는 것도 닮았다.

식품이 아닌 것도 있다. 가습기 살균제의 유해성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건강 문제이자 사회문제다. 이른바 물리화학적 환경 때문에 생기는 손상이나 건강위험에 해당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고압 송전선로의 전자기장과 휴대전화의 전자파, 지나친 엑스레이 촬영 문제도 현재 진행형이다.

논란을 넘어 위험이 비교적 명확하게 알려진 것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 여름마다 문제가 되는 비브리오 패혈증이 적당한 예다. 여러 가지 식품첨가물, 잔류 농약, 유효기간이 지난 식품도 마찬가지다. 꼽자면 두 손이 모자란다.

다들 경우는 다르지만, 순서대로 벌어지는 익숙한 일들은 일반화 할 수 있다. 환경에서 갑자기 위험이 발생하고(또는 인식되고), 사람들은 주로 건강을 위협하는 것으로 문제를 받아들인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언론과 여론이 들끓고, 대체로 사회와 정책 당국은 서로 다르게 반응한다. 위험은 부풀려지고 대중은 근거 없는 불안에 동요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정부는 흔히 ‘과학’ 모델에 의지해 사태를 수습하려고 한다. 과학과 과학자가 동원되고 홍보와 설득에 나서는 것이 익숙한 시나리오다.

그러나 이런 접근으로 문제를 제대로 해결한 예는 찾기 어렵다. 아무리 대중을 다그쳐 봐야 ‘합리적’으로 반응하는 일은 좀처럼 드물다. 시간이 가고 문제의식이 무뎌지면서 저절로 사라지는 때가 더 많다. 문제는 제대로 해결되지 않는다!

흔히 ‘신뢰’의 문제를 말한다. 부분적으로는 동의한다. 그러나 신뢰와 불신을 개인의 문제로 돌릴 수는 없다. 믿음은 구조, 사람 사이의 상호작용, 그리고 무엇보다 시간이 빚어내는 결과물이다. 신뢰와 불신을 가르는 뿌리가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삶과 세계가 복잡해지면서 건강과 안전을 위협하는 환경요소는 크게 늘어날 것이다. 일이 불거질 때마다 공익광고와 시식에 의존할 것인가. 정부를 믿지 않는 시민의 무지와 맹목을 탓해야 하는가.

제도화된 대응의 원리를 건전하고 튼튼하게 수립하는 것이 첫 번째 과제다. 물론, 정부가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 원리 가운데에 대표적인 것 한두 가지만 말하자. 생명과 안전을 가장 우선하는 것과 ‘사전예방의 원칙’이 그것이다.

환경에서 비롯되는 많은 위험요인은 산업 또는 자본과 밀접하다. 이번의 방사능 수산물도 예외가 아니다. 일본의 수산업은 물론, 한국의 수산업, 핵발전 산업, 유통, 음식점 등과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다.

가습기 살균제와 같은 화학물질은 그 관계가 더 직접적이다. 나아가 담배와 술, 엑스레이, 고주파 같은 것도 무엇을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산업에 큰 영향을 미친다. 고엽제나 유방 성형물처럼 한 순간에 기업이 망할 수도 있다.

산업을 의식하는 것을 이해할 수는 있다. 비브리오 패혈증 말만 나와도 생선을 취급하는 곳에 찬바람이 도는 것이 현실이다. 판단을 해야 하는 행정당국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으리라. 규모가 큰 산업일수록 여러 파급효과를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러나, 아니 그런 만큼, 생명과 안전 우선의 원칙이 산업과 기업보호에 앞서야 한다. 산업과 기업의 활동 역시 사회구성원의 행복한 삶을 목표로 하는 것이다. 산업과 기업이 번성하는 것이 더 중요한 사회적 가치가 될 수는 없다.

사전 예방의 원칙은 더 구체적이다. 모두 아는 대로, 비록 확률이 낮더라도 가장 나쁜 가능성에 대비하자는 원칙으로 이해할 수 있다. 광우병 파동 때문에 제법 알려진 것이 되었지만, 현실은 그것과는 거리가 멀다. 다시 강조한다. 요행이나 확률보다는, 있을 수 있는 모든 나쁜 경우에 대비하는 것이 우선 원리가 되어야 한다.

투명성을 높이고 시민의 참여를 높이는 것이 두 번째 과제다. 환경 위해 때문에 생기는 건강과 안전 문제는 과학에만 의존하기 힘들다. 여러 요인이 관련되어 있고 요인들 사이의 관련성이나 인과관계도 흐릿한 때가 많다. 말하자면 보통은 개방 체계와 ‘불확실성’ 속에서 결정을 내려야 하는 것이다.

그런 만큼, 당사자가 이해하고 참여하는 것이 중요하다. 더 발전한 과학과 엄밀한 근거는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참여라고 해서 다수결로 정하자는 소리도 아니다. 과학의 현 수준과 한계를 인식하고, 충분한 검토와 토론을 통해 결론을 내려야 한다.

이런 원칙들을 토대로 하여 이제라도 국가기본계획이나 원칙이 수립되기를 기대한다. 뼈대가 튼튼해야 여러 개별 정책과 대응이 살아난다. 국가 차원의 원칙을 수립하는 것이 그런 뼈대 역할을 해 줄 것이다.

후쿠시마에서 시작된 재앙이 당장 걱정스럽다. 몇 년이 더 걸리지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지 아무도 모른다. 그 때마다 혼란과 불안을 거듭할 수는 없다. 이 때문에라도, 안심과 건강을 위한 튼튼한 뼈대를 만들어 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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