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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파업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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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와 의사 갈등 속 소외된 공공의료 –

 

김지민(시민건강연구소 회원)

 

의료진 파업은 한 사회의 의료시스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논쟁적 사건이다. 특히 환자들이 겪게 될 잠재적 피해가 크다는 점에서 의료진 파업은 여러 나라에서 금지되거나 고도로 규제되고 있다. 파업이 벌어지면 정부와 의료서비스 제공자, 노조는 시스템의 장·단기적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각자의 이익이나 입장을 절충해야 하는 윤리적 책임이 있다. 하지만, 2024년 4월 현재,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정책에 반대하며 현장을 떠난 한국의 전공의들은 한 달 째 돌아오지 않고 있다. 정부 역시 전향적 태도 변화를 보이지 않는 가운데 답보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전공의는 전문의 감독 아래 일하는 의사로, 정기적으로 환자 상태를 모니터링하고 치료하는 등 환자들과 가장 밀접하게 접촉하는 의료진 중 하나이다. 또한, 한국의 상급 종합병원에서 전체 의사의 약 40% 비중을 차지하는 전공의는 환자 치료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그런데 이들이 의료 현장에서 사라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까? 2016년 잉글랜드에서도 병원 의사 인력의 절반 가량을 차지하는 전공의들이 파업을 벌였다. 오늘은 이 전공의 파업이 환자에게 미친 영향을 분석한 연구를 소개하고자 한다(☞논문 바로가기: 의사 파업이 환자 건강 결과에 미치는 영향: 영국 NHS의 증거를 바탕으로).

 

2016년 잉글랜드의 전공의 파업은 전공의의 기본급을 인상하되 주말·야간노동 수당을 감축한다는 요지의 전공의 계약을 둘러싸고 정부와 의료노조 간 갈등이 빚어지며 발생했다. 협상이 진척되지 않자 잉글랜드의 모든 공공병원에서 2016년 1월부터 4월 사이에 총 다섯 차례의 파업이 발생했으며, 각 파업은 24시간에서 48시간 사이로 이루어졌다. 처음 네 번의 파업에서 전공의들은 응급의료 업무에 그대로 종사하되 사전 예약된 선택진료에 대해서만 파업을 진행했다. 마지막 다섯 번째 파업에서만 응급의료를 포함해 모든 의료노동 행위에서 손을 떼는 전면파업을 실시했다.

 

선행 연구를 살펴보면 의료진 파업이 환자의 건강 결과나 사망률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상반된 결과들이 보고되고 있다. 하지만 연구진은 기존 연구들이 파업 동안 병원 환자의 구성과 중증도 변화 요인을 통제하지 않아 파업의 정확한 영향을 추정하는 데 한계가 있었음을 지적한다. 예를 들어, 파업 동안 중증 환자들이 병원에 방문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환자 전반의 건강 결과는 개선된 것처럼 나타날 수도 있다. 이러한 환자 선택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연구진은 파업 이전과 이후의 기존 인력 구성에 따른 각 병원의 응급환자 치료 결과를 비교하는 방법을 활용했다.

 

주요 연구 결과는 다음 두 가지다. 첫째, 2016년 잉글랜드 전공의 파업의 사례에서는, 파업에 더 많이 노출되었다고 해서 30일 동안 응급 재입원 비율이나 입원 환자 사망률이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더 높아지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공의들이 파업 중에도 응급환자 치료를 계속한 점, 그리고 간호사를 비롯한 다른 의료진의 헌신과 병원의 전략적 대처가 환자 피해를 상당 부분 완화할 수 있었다는 점을 시사한다.

 

둘째, 위의 전반적인 경향과는 달리, 파업의 영향은 인종에 따라 차별적으로 나타났다. 분석 결과, 같은 병원 내에서도 백인 환자보다 흑인 환자에서 파업 노출로 인한 부정적인 영향이 더 컸다. 파업 노출이 10% 증가할 때마다 흑인 환자의 재입원률은 평균 재입원률보다 11.0%씩 증가했다. 그러나 파업 중에도 평균 입원 기간과 치료 횟수 등이 줄어들지 않았다는 점에서, 단순히 흑인 환자에 대한 치료량이 감소한 까닭으로 해석하기는 어려웠다. 연구진은 이 차별적 결과를 야기한 구체적 메커니즘을 밝히지 못한 점을 이 연구의 한계로 제시한다.

 

전체적으로 유의미한 부정적 영향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사회경제적 취약집단이 의사 파업의 부정적 충격을 더 크게 받을 수 있었다는 점은 눈여겨보아야 할 지점이다. 또한, 잉글랜드의 의사 파업은 1~2일 이내로 이루어졌으며, 대부분 응급의료 업무를 지속한 채 선택진료에서만 파업을 진행했고, 그럼에도 협상이 진전되지 않자 마지막 수단으로 전면 파업을 결정했다는 점, 무엇보다 국가가 시민의 건강을 책임지는 국민건강서비스(NHS) 제도가 파업의 부정적 영향을 줄이는 방파제 역할을 수행했다는 점 역시 주목할 만하다.

 

반면, 한국의 상황은 어떨까? 의사들은 정당한 명분 없이 전공의 집단사직이라는 극단적 형태의 파업을 갈등 초기부터 밀고 나가고 있다. 정부 역시 문제 해결을 위한 다양한 방안이나 전략을 고심하기는커녕 고압적인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가장 취약한 사람들의 건강이 가장 먼저 무너져 내리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는 현재의 보건의료 위기를 빌미로 비대면진료 활성화와 같이 의료 산업화와 시장화를 추진하는 모습마저 보이고 있다. 의대 정원을 2천 명 늘린다고 저절로 지역·필수의료 공백이 메워지지 않는다는 사실은 명확하다. 그렇다면 위기의 상황에서도 우리 모두를 보호해줄 공공의료라는 방파제를 어떻게 세워나갈 것인가? 가장 중요한 질문이지만 역설적으로 가장 소외되고 있는 이 질문으로, 우리의 고민과 사회적 대화를 시작해나가야 한다.

 

*서지사항

Stoye, G., & Warner, M. (2023). The effects of doctor strikes on patient outcomes: evidence from the English NHS. Journal of Economic Behavior & Organization, 212, 689-707.


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프레시안>과 시민건강연구소는 ‘서리풀 연구通’에서 매주 목요일, 건강과 관련한 비판적 관점이나 새로운 지향을 보여주는 연구 또는 논쟁적 주제를 다룬 연구를 소개합니다. 이를 통해 개인의 문제로 여겨졌던 건강 이슈를 사회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건강의 사회적 담론들을 확산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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