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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좋은 죽음’은 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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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시정 (시민건강연구소 회원)

 

지난 2일 ‘제2차 호스피스·연명의료 종합계획(2024∼2028년)’이 발표됐다. 계획에 따르면 정부는 “누구나 삶의 존엄한 마무리를 보장받는 사회”를 만든다는 비전 아래 호스피스 전문 기관을 2028년까지 현재 188개소에서 360개소로 약 2배 확충할 계획이다. 또 호스피스 대상 질환도 지금보다 더 확대할 예정이다. 현재는 병의 말기 진단을 받은 상태에서만 연명의료 계획서 작성이 가능하나 연명의료 선택권 확대 차원에서 그 작성 시기를 앞당기는 방안도 함께 검토 중이라고 한다(☞관련 기사: 바로가기).

 

그런데 정부가 말한 “삶의 존엄한 마무리”라는 게 과연 무엇일까? 호스피스 확충, 삶의 자기결정권 확대 등은 존엄한 죽음을 실현하는 데 중요한 요소이지만, 정작 존엄한 죽음이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는 부족한 듯하다. 좋은 죽음을 단순히 신체적 고통이 없는 죽음으로 단순화할 수 있을까? 좋은 죽음이란 누구에게나 동일한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 또한,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것일까?

 

오늘은 최근 국제학술지 <건강과 질병의 사회학>에 출판된 논문으로, 미국의 트랜스젠더 노인들에게 좋은 죽음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이들이 어떤 전략을 활용하여 죽음에 대비하고 있는지 살펴본 연구를 소개하고자 한다(☞논문 바로가기: 최소한도로 만족할 만한 죽음: 트랜스젠더 노인들에게 있어 노화와 생애 말기 준비)

 

저자에 따르면 ‘좋은 죽음’은 일종의 사회적 이데올로기다. 미국 사회에서는 집에서 죽는 것, 효과적인 통증 관리, 사랑하는 사람 곁에서 임종을 맞이하는 것 등이 좋은 죽음으로 여겨진다. 누구나 이러한 죽음을 바라지만, 문제는 이것이 일종의 사회적 특권이라는 데 있다. 사회경제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놓인 사람들일수록 좋은 죽음을 가능하게 하는 생애 말기 자원에 접근할 가능성이 작기 때문이다. 즉, 사회적 불평등은 소외된 커뮤니티에 속한 사람들이 죽음을 인식하고 준비하고 경험하는 방식에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저자는 미국 사회에서 소외된 위치에 놓인 성소수자(LGBTQIA+) 노인들이 좋은 죽음이라는 규범적 이상에 접근하기 어려울 것으로 진단하고, 이들이 상상하는 좋은 죽음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 죽음을 어떻게 대비하고 있는지 파악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47명의 65세 이상 미국 트랜스젠더 노인을 대상으로 2021년 9월부터 2022년 1월까지 반구조화된 심층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구성주의적 근거이론을 활용하여 인터뷰 내용을 분석한 결과, 다음과 같이 크게 두 가지 주제가 도출되었다.

 

첫 번째 주제는 좋은 죽음에 대한 기대를 재평가하는 것이었다. 트랜스젠더 노인들은 의료기관에서의 학대와 방치, 사회적 지지 부족에 대해 우려하고 있었다. 예컨대, 한 참여자는 지속적인 호르몬 치료가 좋은 죽음을 위한 필요조건이라고 생각했지만, 호르몬 치료에 대한 접근이 불확실한 상황이었다. 또한, 응답자 대부분은 성소수자라는 낙인 때문에 가족의 지지가 없거나, 제한적이었다. 트랜스젠더 노인들은 자신이 ‘좋은 죽음’을 맞이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하였고, 현재의 조건 내에서 자신들의 요구에 부합하는 ‘최소한도로 만족할만한 죽음(satisficing death)’이라는 개념을 구성해갔다.

 

두 번째 주제는 이 ‘최소한도로 만족할 만한 죽음’을 위한 전략에 대한 것이었다. 응답자들은 미국에서 여전히 성소수자에 대한 일상적 차별과 폭력이 지속되고 있다고 밝혔다. 한 참여자는 동성 배우자에게 병원에 방문할 권리가 주어지지 않는 경우를 예로 들었다. 응답자의 절반 이상은 ‘사전돌봄계획(ACP: Advance Care Planning)’을 통해 자신의 의료적 결정을 명시하고 법적으로 보호받길 원했다. 또한, 자신의 가치관과 요구를 존중해 줄 수 있는 의료 대리인을 신중하게 선정하고자 했다. 의료 대리인은 당사자가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대신 의료적 결정을 내리게 되므로 자신을 존중해 줄 것이라는 확신이 드는 사람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전략들은 모든 트랜스젠더 노인들에게 적용되지는 못했다. 경제적 취약성이나, 사회적 고립, 정보 부족 등의 여러 구조적 장벽 때문이었다.

 

이상의 연구 결과는 ‘좋은 죽음’이란 누구에게나 가능한 것은 아니며, 이는 현재의 사회구조적 불평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트랜스젠더 노인들의 사례를 통해 확인된 것처럼 좋은 죽음을 맞이하기 위한 전략은 모두에게 활용 가능한 것이 아니었다.

 

고통 없는 죽음뿐 아니라 자기결정권이 보장받는 죽음 또한 ‘좋은 죽음’의 필수 조건일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다른 질문이 필요한 시점이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좋은 죽음’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이것은 누구의 관점에서 좋은 것인가? 모든 사람에게 가능한 죽음인가? 이러한 ‘좋은 죽음’ 담론의 불평등성을 고려한 질문은 생애 말기 돌봄에서 의료적 개입은 어떠한 수준과 형태여야 하는지, 나아가 의료적 개입 이외에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한 논의를 가능하게 해 줄 것이다.

 

한 가지 더 근본적인 질문도 필요하다. 올해 2월 개봉한 <플랜 75>에서는 75세 이상이 되면 국가에 조력사를 신청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이 등장한다. 영화에서 이 정책은 고령화의 심화로 인한 청년층의 부담을 줄이는 장치로 묘사된다. 이처럼 노인을 사회적 부담으로 바라보는 관점에서는 노인 인구를 줄이는 것이 문제의 해결책이 될 것이다. 노인이 ‘사회 문제’로 여겨지는 한, ‘좋은 죽음’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이루어지기 힘들 수밖에 없다. 노인의 ‘좋은 죽음’을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논의하기에 앞서 우리가 지금 노인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함께 돌아볼 필요가 있다.

 

 

*서지 정보

Lampe, N. M. (2023). SATISFICING DEATH: Ageing and end‐of‐life preparation among transgender older Americans. Sociology of Health & Ill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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