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회견문 전문>
의료의 주권은 시민에게 있다는 것을 망각한 정부와 의사협회는 무책임한 갈등을 반복하고 있다. 정부의 의대 정원 발표 이후 갈등은 4개월째 심화 되고 있는 가운데, 시민들은 불편과 불안을 감수하며 인내심을 갖고 지켜보았다.
공공병원인 서울대 병원 의대 교수들이 무기한 집단 휴진 방침을 철회하고 다행히 복귀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일부 빅5 병원들은 집단 휴진 계획을 아직 철회하지 않았고, 전공의들은 여전히 복귀하지 않고 있다. 환자와 그 가족은 피가 마르고 심장이 오그라드는 고통과 불안 속에 하루하루 살고 있다. 의사가 떠난 의료현장을 지키고 있는 보건의료노동자들도 임금체불과 구조조정의 불안에 내몰리고 있다. 우리는 시민의 생명을 수호하고 건강을 책임져야 할 국가의 책무를 방기한 현정부의 무책임과 무능함을 통렬히 비판한다.
이미 우리는 2020년 의대 정원 확대 정책에 대한 의사들의 집단행동을 경험한 바 있고, 사실상 이번 전공의들의 병원 이탈과 의협의 집단 휴진 등은 예상 할 수 있는 현실이었다. 그럼에도 윤석열 정부는 아무 대책도 없이 의사 2천명 증원을 밀어붙였고, 그 피해를 또다시 시민과 환자들이 고스란히 떠안고 있다.
유수한 의료기술을 자랑하는 대한민국에서, 응급실을 돌다가 골든타임을 놓쳐 허망하게 사망하는 환자의 소식을 접하는 것도 이제 익숙해졌다. 한국은 인구 대비 병상수가 OECD 회원국 중 선두를 달리고 있음에도 코로나19 당시, 반복적 병상 위기를 경험했다. 당시 10%도 채 되지 않은 공공병상에서 코로나19 환자의 80%를 떠 안았다. 그 과정에서 공공병원을 이용하던 환자들은 강제로 밀려났다. 생의 마지막을 보내고 있던 말기환자가 입원한 호스피스 병상도 예외는 아니었다.
대법원 공방까지 간 의대 증원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은 결국 기각되었다. 그러나 의정갈등은 더 첨예해졌고 동시에 시민들과 환자들의 불안과 분노는 더욱 커지고 있다. 정부가 내년도 의대 증원을 확정했지만 공공병원 확대 계획 없이 어떤 의사를 어떻게 의사를 늘리겠다는 것인지 아무도 알 수가 없다.
저출생과 고령화, 수도권 집중화로 인해 지역의 재생산 기능이 쇠퇴하고 있으며 이미 비수도권 비도시 지역의 보건의료는 붕괴 위험에 처해 있다. 뿐만 아니라 의료산업의 과도한 집중과 관료적인 의료시스템, 건강보험 지속성 등 공론의 장에서 토론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는데도, 윤석열정부는 단순히 의대 정원만 늘리면 많은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호도하며 시민들의 눈과 귀를 가리고 있다. 우리는 지금, 민간중심의료체계와 20년째 동결한 의대정원의 부작용이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어떻게 위협하는지 뼈저린 경험을 하고 있는 중이다.
사실상 시장화된 의료 현실에서, ‘의료의 주권은 시민에게 있다’는 것을 막연한 당위가 아니라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 그리고 의료공공성을 강화를 중심으로한 의료 개혁을 만들어기 위해 정부와 의사협회가 각자의 입장에 따라 의료체계를 함부로 논의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는 보다 강력한 시민사회의 목소리를 만들어 갈 것이다.
우리는 환자와 시민사회 구성원들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 현재 의정갈등이 극한으로 치닫고 있는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알량한 힘과 권력으로만 밀어붙일 것이 아니라, 시민과 환자들의 생명과 안전을 가장 우선 순위에 둔 가운데 적극적 방안을 마련하는데 집중해야 한다. 중증, 희귀난치, 응급 상황에 놓인 아픈 몸들이 적절한 진료를 받지 못해서 더 이상 절망과 죽음으로 떠밀려 가지 않도록, 정부는 진료 지연 해결을 위해 총력을 다할 것을 촉구한다!
◯ 보건의료는 시민의 건강을 수호하는 활동으로 지역, 빈곤, 장애, 성별, 인종, 국적 등의 차별 없이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제공되어야 하는 필수 사회서비스이다. 따라서 공공성을 기반으로 운영되어야 한다. 한국 의료는 겉포장만 비영리일 뿐, 알맹이는 이윤추구에 골몰하는 혼합진료 등 이윤 중심 의료가 난무하고 있다. 취약한 공공의료를 확충하고 보건의료에 대한 국가의 책임성 강화, 공공의료의 양적·질적 확충, 의료정책 의사결정에서의 개방적이고 민주적 절차를 강화해 나갈 것을 촉구한다.
○ 우리 사회에 필요한 의사인력을 포함한 의료체계에 대한 결정 권한은 시민에게 있다. 환자와 노동자와 시민은 의료서비스의 수혜자임과 동시에 의료정책 결정과 운영에서 주체여야 한다. 더 이상 환자와 시민들이 고통을 받지 않기 위해서는 환자, 노동자, 시민들을 중심으로 한 공공의료 중심의 보건의료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의정 갈등이 아닌 진짜 의료개혁을 논의를 다시 시작할 것을 촉구한다.
○ 이윤을 추구하는 의료체계가 아니라 시민들의 생명과 건강을 책임지는 공공적인 의료체계로 전환을 요구한다. 시민의 건강과 의료에 대한 자율성과 권리를 중심으로 한 의료시스템 구축하는데 공공의사 양성과 지역의사제 도입 등에 정부가 적극 앞장설 것을 촉구한다.
2024년 06월 26일
건강권실현을위한보건의료단체연합(건강권실현을위한행동하는간호사회,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건강사회를위한치과의사회, 노동건강연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참의료실현청년한의사회), 건강세상네트워크, 공공운수노조의료연대본부, 녹색당, 다른몸들, 다른세상을향한연대,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빈곤사회연대, 비정규노동자의집 꿀잠, 사회주의를향한전진, 서울인권영화제, 생명안전 시민넷, 성공회 정의평화사제단, 시민건강연구소, 약사의 미래를 준비하는 모임, 역사문제연구소인권위원회,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참여연대, 천주교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청소년인권연대지음,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한국중증질환연합회(한국암환자권익협의회, 한국췌장암환우회, 한국루게릭연맹회, 한국다발골수종환우회, 한국식도암 환우회, 한국폐암환우회), 한국선천성심장병환우회, 한국여성노동자회,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한국사회적의료기관연합회, 한국PROS환자단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