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혜 (시민건강연구소 회원)
“아이구, 왜 이렇게 늦게 오셨어요!”
오렌지 껍질처럼 울퉁불퉁하고 딱딱해진 유방을 보고 교수님이 환자에게 물었다. 환자는 슬픈 눈으로 병원에 올 시간이 없었다고 답했다. 한눈에 암이 상당히 전이된 상태임을 알 수 있었고, 좋지 않은 예후가 예상됐다. 정기적으로 국가암검진을 받았더라면 지금보다 이른 시기에 유방암을 발견할 수 있었을 텐데, 왜 이 환자는 암이 한참 진행되고 나서야 병원에 찾아온 것일까? 이것은 암 예방수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은 개인의 탓인가?
유방암은 2020년 국제암통계를 기준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발생하는 암이다. 한국 여성에서도 유방암이 발생률 1위를 차지했고, 발생률은 매년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유방암은 다른 암종과 달리 사회경제적으로 풍족한 지역이 발생률이 높고, 낙후된 지역은 발생률이 낮다. 반면에 풍족한 지역이 유방암의 사망률은 낮고, 낙후된 지역의 사망률은 높다. 사회경제적으로 풍족한 지역에서 유방암이 많이 진단되는 이유는 두 가지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다. 첫째, 풍족한 지역에 여성호르몬의 장기간 노출(이른 초경, 늦은 폐경, 경구피임약 복용, 늦은 출산 및 비출산)과 생활습관요인(음주, 비만, 신체활동 부족) 같은 유방암 위험요인을 가진 사람이 많다. 둘째, 유방암 검진에 대한 정보와 의료기관에 대한 접근성이 좋다. 그러나, 사회경제적으로 낙후된 지역에서 유방암 사망률이 높은 이유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적다.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논문은 지역의 사회경제적 특성과 유방암의 “진단 시 병기(stage at diagnosis)”에 주목하여 이를 설명하고자 했다(☞논문 바로가기: 프랑스의 진단 시 병기에 따른 유방암 발생률의 사회경제적, 지리적 격차).
논문의 배경이 되는 프랑스는 한국과 유사하게 2004년부터 국가암검진사업을 통해 50~74세 여성에게 2년마다 유방암 검진을 제공한다. 이러한 제도에도 불구하고 사회경제적으로 낙후된 지역에서 유방암의 발생률은 낮고, 사망률이 높은 이유를 찾아내기 위해 프랑스 서부에 있는 루아르-아틀랑티크(Loire-Atlantique)와 벤디(Vendee) 지역의 2008~2015년 암등록자료와 2011년 프랑스 인구총조사를 바탕으로 산출한 유럽형 지역박탈지수(French European Deprivation Index, F-EDI)를 연계하여 분석했다. 우선 지역을 도시와 농촌으로 나누고 지역박탈지수가 낮은 1~3분위까지는 풍족한 지역, 지역박탈지수가 높은 4~5분위는 박탈된 지역으로 나누어 ➀풍족한 도시지역, ➁풍족한 농촌지역, ➂낙후된 도시지역, ④낙후된 농촌지역으로 구분했다.
분석 결과 유방암 전체 연령표준화발생률(이하 발생률)은 풍족한 도시지역이 인구 10만 명당 164.1명으로 가장 많았고, 낙후된 농촌지역이 138.8명으로 가장 적었다. 유방암의 진단 시 병기에 따라 “초기 유방암”과 “진행된 유방암”으로 구분하여 보면, “초기 유방암”도 풍족한 도시지역이 95.2명으로 가장 많았고, 낙후된 농촌지역이 62.6명으로 가장 적었다. 반면에, “진행된 유방암”은 낙후된 농촌이 76.2명으로 가장 많았고, 풍족한 도시지역이 68.9명으로 가장 적었다(아래 <표> 참고). 각 지역의 검진수검율을 보정하여 발생비를 검토한 결과 낙후된 농촌지역이 풍족한 도시지역에 비해 “초기 유방암” 발생 확률이 26%나 낮았다. 이번 연구에서 “진행된 유방암”을 진단받을 확률은 지역박탈지수에 따라 통계적으로 유의한 차이가 확인되지 않았으나, 후속 연구(☞관련 자료: 바로가기)를 통해 프랑스 6개 지역암등록자료로 확대해서 검토한 결과 지역박탈지수가 높은 낙후된 지역이 풍족한 지역에 비해 “진행된 유방암” 발생 확률이 18% 더 높았다. 이는 낙후된 지역에서 유방암이 조기에 진단되지 않아서 발생률은 낮고, 진단이 늦어지면서 치료 결과가 좋지 않아 사망률이 높은 것을 잘 설명해 준다.
한국은 2002년부터 국가암검진사업을 통해 40~69세 여성에게 2년마다 유방암 검진을 제공하고 있다. 이론적으로 한국 어디에서나 유방암 검진의 기회가 동등하므로 유방암 발생률의 차이는 유방암 위험요인 분포의 차이를 그대로 반영해야 한다. 최근 발표된 2014-2018년 시군구 암발생통계에서 유방암 발생률이 가장 높은 지역은 서울 강남구, 가장 낮은 지역은 강원 평창군이었다. 흔히 암 발생률이 높은 것은 나쁜 결과로 암 발생률이 낮은 것은 좋은 결과로 해석하기 쉽지만, 국가암검진사업에도 불구하고 지역에 따른 검진의 기회가 다르다는 것을 고려하면 결과에 대한 재해석이 필요하다. 특정 지역에 사는 여성들에서 유방암이 더 늦게 진단된다면, 이는 유방암의 위험요인 분포보다는 의료접근성과 관련된 문제일 가능성이 높다. 검진을 주기적으로 받고 싶어도 지역 내 유방암 검진을 받을 수 있는 의료기관이 없다면, 유방암 진단과 치료를 담당할 의료진이 없다면 환자 개인에게 암 예방수칙 실천만 강조할 일이 아니다. 어디 사는지가 암 진단 시기를 결정하지 않도록 지역의 사회경제적 수준과 긴밀히 연결된 의료접근성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지부터 진지하게 논의해야 한다.
*서지 정보
Delacôte, C., et al. (2024). Socioeconomic and geographic disparities of breast cancer incidence according to stage at diagnosis in France. Cancer Causes & Control, 35(2), 241-251.
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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