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연구통

가난하다는 이유로 집에서 쫓겨나지 않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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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우 (시민건강연구소 회원)

 

사람들은 흔히 가난한 사람들을 곧 자격 없는 사람으로 여긴다. 안전하고 쾌적한 집에서 살 자격, 맛있는 음식을 먹을 자격, 휴식하고 여가를 누릴 자격, 혹은 아이를 낳아 건강하게 기를 자격 같은 것들 말이다. 이러한 생각의 뿌리에는 자립에 대한 환상이 존재한다. 사람이라면 마땅히 오롯이 자신의 능력으로 생활해야 하는데, 가난한 사람은 하는 일 없이 복지 시스템에 빌붙어 삶을 이어 나가고 있다는 환상 말이다. 그리고 그 틈새에서 선택지가 없는 사람들을 착취하고, 그들이 계속 빈곤 상태에 머물도록 만드는 사업들이 자라난다.

 

질이 형편 없이 낮은 주거 서비스를 비싸게 팔아 치우는 최저 주거 공간의 임대업이 대표적이다. 한 가지 예로, 이혜미 기자는 서울에 있는 쪽방과 원룸촌에 사는 사람들과 소유주들을 두루 만나며 임대 사업의 이익 구조 속에서 어떻게 가난한 사람이 경험하는 주거 환경이 악화되고, 가난이 심화되는지 면밀히 밝혔다(이혜미, 2020). 좀 더 포괄적인 증거로, 비용을 제외한 순수익을 따졌을 때 미국의 가난한 동네 임대주가 한 세대당 매달 300달러를 벌어들이는 반면, 부유한 동네 임대주는 250달러를 벌어 역설적으로 가난한 지역의 임대업 수익성이 더 높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관련 논문: 바로가기).

 

가난한 사람들로부터 오히려 높은 수익을 올릴 기회가 있다는 것은, 거꾸로 말해 이들이 과중한 임대료 부담으로 인한 주거 불안정을 경험한다는 의미이다. 다음 달이면 지금 사는 집에서 더 이상 살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이 거대한 불확실성은 삶의 기반을 뒤흔든다. 주거 공간은 경제적 조건, 사회적 네트워크, 안전, 교육의 기회, 보건의료 서비스 접근성 등 삶의 전반에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불확실성 속에서 빈곤은 심화되어 가고, 신체는 낡고 닳는다. 이 모든 상황이 함께 극단으로 치닫을 때 사람들은 임대료를 체납하게 되고, 강제 퇴거가 발생한다. 그리고 퇴거는 빈곤의 결과일 뿐 아니라, 더 깊은 빈곤의 원인이 된다.

 

오늘 소개할 논문은 미국의 두 개 도시(쿡 카운티, 뉴욕)에서 법원의 강제 퇴거 명령이 세입자들의 주거, 일, 그리고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았다(☞논문 바로가기: 미국 도시에서 강제 퇴거와 빈곤). 퇴거가 실제로 ‘더 깊은 빈곤의 원인’인지 확인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앞서 언급했듯, 퇴거가 발생하는 맥락이 복잡하기 때문이다.

 

이 연구에서도 이러한 맥락의 일부를 살펴볼 수 있었다. 두 도시에서 강제 퇴거 소송에 제소된 세입자는 제소 이전에 이미 같은 지역 내 제소되지 않은 세입자에 비해 소득과 고용률이 낮았으며, 신용도 나쁘고 빚도 많았다. 제소된 세입자는 특히 제소 직전 1년간 소득과 고용률이 급격히 떨어졌고, 신용도 나빠졌다. 제소 직전 2년에 걸쳐 병원 방문은 잦아졌는데, 이는 주로 응급실 입원 증가에 의해 나타난 경향이었다. 이러한 변화는 제소된 사람 중 실제 퇴거가 결정된 사람들에서 더 큰 폭으로 나타났다. 즉, 퇴거 소송이 시작되기 앞서 많은 세입자들이 새로운 건강상의 문제와 함께 실직과 소득 감소를 경험했으며, 그 정도는 소송의 결과 실제 퇴거를 당한 사람들에서 더 심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배경 때문에, 퇴거 당한 세입자와 그렇지 않은 세입자의 소송 후 결과를 단순 비교하면 제소 이전 발생한 생활 사건 같은 다른 요인이 달라 생겨난 차이를 강제 퇴거 명령의 효과와 구분하기 어렵다. 연구진은 퇴거 명령이 결정되는 방식을 활용해 이 문제를 해결한다. 미국에서 강제 퇴거 소송 건은 해당 지역의 담당 판사들에게 무작위로 배정되는데, 판사들에 따라 퇴거 명령을 내리는 성향이 다르다. 덕분에 평균적으로 유사한 특성을 가졌지만 운 나쁘게 엄격한 판사에게 배정되어 퇴거 당한 세입자를 운이 좋았던 세입자와 비교하면, 퇴거 명령의 효과만을 구분해 추정할 수 있다.

 

강제 퇴거 명령의 효과는 어마어마했다. 운 나쁘게 퇴거 명령을 받은 세입자가 갑작스럽고 급하게 이뤄지는 강제 퇴거를 당할 확률은 운이 조금 더 좋았던 세입자에 비해 43.5% 포인트 더 높았다. 이 경우 세입자는 더 큰 스트레스를 받을 뿐 아니라, 충분한 시간을 두고 대안적인 주거 공간을 찾을 수 없어 더 위험하고 질 낮은 곳으로 이사를 가야 할 수도 있다. 운 좋게 퇴거 명령을 피한 세입자의 29.2%도 제소 1년 후에 이사를 갔지만, 퇴거 명령을 받으면 그 확률이 37.4%로 더 높아졌다. 퇴거 명령은 적절한 주거 공간을 찾지 못할 확률도 높였다. 퇴거 명령을 피하면 제소 1년 후 홈리스 쉼터를 이용할 확률이 0.9%였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 쉼터 이용 확률은 4.3%로 5배 가까이 늘었다.

 

퇴거로 인해 깊어진 주거 불안정은 직업 생활의 어려움으로 이어졌다. 퇴거 당한 세입자는 아슬아슬하게 퇴거를 피한 세입자보다 제소 후 첫 해에는 6% (연 1,292달러), 두 번째 해에는 14% (연 2,452달러) 적은 소득을 얻었다. 퇴거는 일자리를 가질 확률도 지속적으로 낮추어, 퇴거 당한 세입자의 고용률은 (통계적으로 유의미하진 않았지만) 제소 후 2년 동안 꾸준히 1.3% 포인트 정도 낮았다. 이는 경제적 어려움으로 이어져, 제소 1년 후 신용 점수 등을 종합해 측정한 가계의 재정 건전성 지표를 표준편차의 0.11배 가량 낮추었다.

 

퇴거 명령 후의 이러한 변화는 몸과 마음의 건강에 고스란히 투영되었다. 의료 이용 기록을 수집할 수 있었던 뉴욕 시에 한해, 퇴거를 당한 세입자는 운 좋게 퇴거를 피한 세입자에 비해 1년 동안 병원 방문 횟수가 29% 늘었다. 특히 정신 건강 문제로 병원을 방문하는 횟수는 2배 이상 늘어, 전체 병원 방문 횟수의 1/4 가량을 설명했다. 다행히 이러한 변화가 제소 2년 후까지 이어지진 않았다.

 

퇴거 명령의 부정적 영향은 특히 흑인과 여성 세입자에 집중되었다. 퇴거가 주거 불안정을 심화하고, 경제적 어려움을 가중시키며, 건강을 악화시키는 효과는 모두 흑인과 여성 세입자에서 더 크게 나타났다. 강제 퇴거 집행을 위해 법원에 제소 당하는 세입자 상당수가 흑인과 여성이라는 점에서 이 사실은 중요하다. 또한, 이 연구는 판사들이 현재보다 조금 더 관대해지면 제소 당한 세입자들의 삶과 건강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이는 착취적인 임대 산업의 뿌리를 뽑지 못하더라도, 퇴거 명령의 부정적 충격을 분명히 줄일 수 있다.

 

오는 10월 17일은 빈곤 철폐의 날이다. 자격 없다 꼬리표 달린 이들이 권리를 외치는 날이다. 괜찮은 집에서 안정적으로 살 권리는 그 중에서도 기본적이고 핵심적이다. 이미 가난한 사람들이 집에서 쫓겨난 결과 삶의 전방위적 측면에서 더 나쁜 일들이 발생한다는 사실은 이를 잘 보여준다. 이들을 끊임없이 불안정한 주거 환경으로 몰아내는 빈곤 산업의 고리를 끊고, 모두에게 ‘살 권리’를 보장하자.

 

* 서지 문헌

Collinson, R., Humphries, J. E., Mader, N., Reed, D., Tannenbaum, D., & Van Dijk, W. (2024). Eviction and poverty in American cities. The Quarterly Journal of Economics, 139(1), 57-120.

 

* 참고 자료

이혜미. (2020). 착취도시, 서울: 당신이 모르는 도시의 미궁에 대한 탐색. 글항아리.

Desmond, M., & Wilmers, N. (2019). Do the poor pay more for housing? Exploitation, profit, and risk in rental markets. American Journal of Sociology, 124(4), 1090-1124.


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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