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서

[공동성명] 홈리스에 대한 차별과 혐오의 산물, ICT 노숙인 복지 소프트웨어 활용 즉각 중단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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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주최하고 서울특별시가 후원, 정보통신산업진흥원 등 5개 기관이 공동주관한 ‘제12회 SW개발 공모전(피우다 프로젝트)’가 지난 4월부터 7월까지 진행되었다. ‘노숙인 생활개선 및 복지향상을 위한 솔루션 개발’을 주제로 한 이 공모전에 5개 소프트웨어가 제출돼 각각 최우수상(1팀), 우수상(1팀), 장려상(2팀)이 선정되었다(출품작 소개 자료집). 공모전을 운영한 수도권ICT이노베이션스퀘어에 따르면 최우수상과 우수상 수상작은 시범적용 대상작으로 선정돼 8월부터 3개 노숙인시설에서 적용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 공모작은 홈리스의 생활개선과 복지향상을 위해 개발되었다고 믿기 어려울 만큼 홈리스에 대한 낙인적 시각에 기초하며, 매우 심각한 인권 침해적 요소들을 담고 있다. 특히, 해당 소프트웨어들은 시범적용을 넘어 지자체와 여러 노숙인시설에서 상용화를 예정하고 있어 홈리스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확산될 우려가 있다.

 

우선, 해당 소프트웨어들은 홈리스에 대한 깊은 혐오와 낙인, 차별에 기반하고 있다. 우수상 수상작으로 선정된 “들꽃가드닝(Wildflower Gardening)”은 이름에서도 드러나듯, 홈리스를 관리와 통제의 대상으로 간주한다. 생활시설 홈리스의 외출·외박 관리 등을 주 기능으로 하는 이 소프트웨어는 긴급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출타자 “실시간 위치 추적” 기능이 있고, 시설 입소자 현황 모니터링을 위한 “센터 내 모든 노숙인의 상태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대시보드”를 제공한다. 결국, 생활시설 입소 홈리스들은 시설 내·외를 가리지 않고 24시간 내내 시설의 감시와 통제에서 한 시도 자유로울 수 없다. 최우수상 수상작인 ‘노숙인 아웃리치’(찾아가는 상담활동) 지원 프로그램 “R U OK?” 역시 “사진, 위치 정보 등을 저장”하는 기능을 통해 거리 홈리스의 위치 파악을 편리하게 할 수 있다는 점을 자랑한다. 이들 소프트웨어가 상용화될 경우, 홈리스들은 거리와 시설을 가리지 않고 마치 투명 전자발찌를 찬 것처럼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이들은 “복지사들의 업무 부담을 줄일 수”(RUOK) 있고, “외출과 외박을 관리하는 과정에서 많은 시간이 소요”(들꽃가드닝)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며 오로지 노숙인 시설의 편의를 위해 홈리스들을 무한 감시의 울타리에 가두려 하고 있다. 

 

해당 소프트웨어들이 운용될 경우 개인정보보호의 주요 원칙들 또한 위배될 소지가 매우 크다. OECD 「프라이버시의 보호 및 개인정보의 국외이전에 관한 가이드라인」과 그에 기초한 「개인정보 보호법」은 개인정보 보호의 주요 원칙들을 제시하고 있다. OECD 가이드라인의 제1원칙인 ‘수집제한의 원칙’은 정보 주체의 인지나 동의를 통해 정보를 수집하도록 하는데, 최우수상 수상작인 “R U OK?”는 개인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홈리스 역시 “이름을 알 수 없는 노숙인 모음” 기능을 통해 사진, 위치 정보 등으로 특정하여 기록하게 한다. 노숙 현장에서 진행되는 거리 상담의 시공간적 한계를 고려하면, “노숙인 프로필 목록”, “노숙인 즐겨찾기” 등 다양한 기능이 포함된 프로그램을 상담원들이 거리 홈리스들에게 충실히 설명하고, 정보 수집에 동의를 구할 것이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생활시설 역시 실시간 위치 추적과 현황 모니터링 기능 등 입소인 통제 장치라 할 만한 “들꽃가드닝” 운용에 대해 입소(희망)자에게 투명하게 설명할지 의문이다. 더욱이 서울시는 거리 야간 상담원을 일당제로, 자치구들은 6개월 기간제 신분으로 ‘거리 노숙인 상담원’을 운용하고 있어 불안정 고용에서 파생하는 정보관리의 불안에 대한 우려 또한 존재한다.

 

빈민과 홈리스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팽배한 현실에서 많은 홈리스 당사자들은 홈리스 상태에 있(었)다는 본인의 정보가 가족 등 주변에 유출될 수 있다는 막연한 우려만으로도 실명을 공개하거나, 노숙인 지원체계에 등록하거나, 극한의 고통에서도 의료서비스 이용을 거부하곤 한다. 이런 현실에서 위 소프트웨어들이 상용화된다면 복지향상은커녕 상당한 규모의 홈리스들을 지원체계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역효과만 거둘 것이다. 

 

홈리스의 인간다운 삶과 홈리스 상태의 종결은 첨단의 정보통신기술에 기대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적정하고 신속한 주거지원, 지속적인 고용지원, 차별없는 의료지원 등 부실한 노숙인 복지 정책의 개선에 달려 있다. 홈리스를 특정한 불심검문, 공공장소 이용 금지와 퇴거 등 홈리스에 대한 사회적 차별의 폐지가 관건이다. 차별과 침해의 소프트웨어를 공모한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서울시는 사죄하고, 해당 소프트웨어들을 노숙인 복지 영역에서 즉각 퇴출시켜야 할 것이다. 또한 향후 노숙인 등 지원체계 내에 정보통신기술을 도입할 때에는 정보 주체와의 충실한 논의를 통해 이와 같은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신중을 기하기 바란다.

 

2024년 9월 24일

구속노동자후원회, 너머서울, 노동도시연대, 노숙인인권공동실천단, 대한불교조계종사회노동위원회, 더 나은 삶을 위한 정책연합당(주), 동자동사랑방, 민달팽이유니온, 민주노총서울본부, 빈곤사회연대, 빈민해방실천연대(민주노점상전국연합, 전국철거민연합), 사단법인나눔과미래, 서울녹색당, 시민건강연구소, 여성주의생애사연구소, 우리동네노동권찾기,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동조합 사회복지지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진보네트워크센터, 진보당, 천주교예수회 인권연대연구센터, 홈리스행동 (이상 23개 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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