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 논평

대학병원 비상경영의 본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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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병원이 10월부터 의사들에게 주던 선택진료 수당을 30퍼센트 깎는다. 의료계 인터넷 언론이 보도한 내용이다(라포르시안 2013년 10월 18일. 바로가기 ). 의료 수익이 줄어서 병원 경영이 악화된 데 따른 대응 조치라고 한다.

서울대병원만 그런 것은 아닌 모양이다. 대학병원들의 끝 모르던 투자 경쟁도 예전 같지 않다. 다른 언론 기사의 몇 가지 표현을 그대로 옮겨보자 (메디컬타임즈 10월 17일. 바로가기). “장기화된 경기 불황과 환자 감소로” 대학병원들이 핵심 사업을 보류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적자를 기록하는 등 병원의 경영 상황이 급격하게 악화되면서 야심차게 준비했던 꿈의 암치료기 도입 사업은 좌초”하게 되었다. 또 다른 병원은 “병원의 캐쉬 카우를 확보하기 위해 건강검진센터를 대폭 확장하기로” 한 계획을 접었다. “지난해 말 사상 최악의 적자를 기록하면서 사업은 전면 중단될 위기에 놓였다”는 것이 언론이 보도한 사정이다.

단편적 소식이라 다 믿기는 어렵다. 모든 대학병원이 다 그런 것도 아닐 것이다. 하지만, 큰 대학병원들의 경영이 전과 같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최근 새로 취임한 서울의 ‘빅5’ 병원 원장이 스스로 병원의 경영난을 실토하고 “병원계 전체가 위기상황”이라고 주장할 정도다.

어찌 보면 예상되었던 일인지도 모른다. 그동안 한국의 큰 병원들은 숨가쁘게 ‘공급 확대’ 경쟁을 펼쳐 왔다. 이른바 빅5 병원들의 병상이 늘어난 속도를 보면 실상이 그대로 드러난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의 2013년판 <의료자원 통계핸드북>을 보자. 서울아산병원의 병상은 2,680개, 연세대세브란스병원은 2,084개에 이른다. 어느새 ‘초대형’ 병원이 되었다. 병상이 늘어난 속도는 더 엄청나다. 2005년에 비해 서울아산병원은 25%, 삼성서울병원은 53%, 서울성모병원은 61% 병상이 늘어났다.

이런 식으로 큰 병원의 병상이 한꺼번에 늘어나는 것은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전쟁이나 재난이 아닌 한 새로 환자가 갑자기 그렇게 늘었을 리 없다. 큰 병원끼리 시장에서 죽기 살기로 경쟁한 결과라는 것이 정확한 해석일 것이다.

큰 병원의 경영이 어렵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경쟁의 산물이다. 경쟁을 위해 단기간에 몸집을 키운 부작용이랄 수밖에 없다. 시설이 늘어나면 환자도 당연히 늘어나겠지만 그것도 정도 문제다. ‘고급’ 건강검진이니 ‘특수’ 클리닉, ‘첨단’ 치료시설을 총동원해도 한계가 있다.

게다가 한국에서 병원의 경쟁은 대학병원끼리만 벌이는 것이 아니다. 하루가 멀다고 무슨 특수 클리닉이니 새로운 디스크 수술법이니 하는 의료광고를 보라. 그야말로 ‘전면전’이 따로 없다.

이것이 끝이 아니라는 것이 진짜 문제다. 경쟁의 격화, 그리고 그로 인한 경영 악화는 ‘사회화’ 된다. 경쟁이 의료의 질을 향상시킨다는 시장 지상주의의 굳은 믿음과는 정반대다. 오히려 부작용은 고스란히 환자의 몫으로 돌아온다.

공공노조 의료연대 서울대병원분회 등 노동·보건의료단체가 17일 발표한 내용이 보여주는 대로다. 병원이 지출을 줄인다고 주사기, 카데터, 장갑 등을 질이 낮은 싸구려로 바꾸었다는 것이다 (프레시안 기사 바로가기). 검사 실적을 5퍼센트 늘리라고 했다는 주장은 더 놀랍다.

병원 측은 부인했다고 하지만, 아무래도 노동조합 쪽의 목소리가 더 미덥다. 비슷한 일이 있었다는 소리는 이미 여러 군데서 들을 수 있었다. 경영 효율이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직원들을 힘들게 했던가. 설사 해당 병원의 말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지금과 같은 형편이면 언제든지 벌어질 수 있는 일이라 해야 한다.

이처럼 결과는 질 향상과는 정반대의 길을 택한다. 무엇보다, 환자들에게 위험과 해가 돌아갈까 걱정스럽다. 저질의 재료를 쓰면 어떻게 되겠는가. 설마 싶지만, 수익을 올리기 위해 작정하고 검사 실적을 늘린다면? 환자는 도무지 알 수도 없는 상황에서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지금까지는 큰 병원에 해당하는 이야기다. 그러나 한국에서 이런 ‘구조’ 속에 있지 않은 병원은 드물다고 해야 솔직하다. 여기서 구조는 시장 경쟁 → 양적 확대 → 경영 악화 → 경영 ‘효율화’ → 의료의 질 악화로 이어지는 연쇄를 말한다.

그래도 빅5 병원은 사정이 낫다. 어렵다 힘들다 하지만 그들은 무사히 살아남을 것이다. 그럴 만한 자본이 있고 권력을 가졌으며 능력도 있다. 또, 의료란 그런 것이 다른 상품마냥 말하자면 ‘소비자 주권’을 행사하기 힘들다. 무형의 자산인 사람들의 믿음과 기대를 장악하고 있는 것도 크다.

아니나 다를까, 새로운 경쟁은 이미 시작되었다. 빅5 병원 중에는 벌써부터 양적 경쟁을 중단하고 핵심 역량에 집중하겠다는 소리가 나온다. 역시 어느 정도는 예상할 수 있었던 시나리오.

어느 빅5병원은 대놓고 이렇게 말하고 있다. 몸집으로 경쟁하는 시대가 갔으니 몇 개의 센터로 승부를 보겠다. 벌써부터 무섭다. 몇 가지에 집중하고 승부를 보겠다는 병원은 도대체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그래도 이런 큰 병원은 이렇게 해서라도 살아남을 것이다. 그렇지 못한 병원들이 경쟁 속에서, 경영이 나빠지는 속에서, 그래도 시장에서 살아남아야 하니, 도대체 무엇을 하려고 할까. 앞을 짐작할 수 없을 만큼 어둡고 두렵다.

병원들은 이번에도 수가를 올려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수가를 올린다고 이런 냉정한 승부의 세계가 바뀔 수 있을까. 한 마디로, 비관적이다. 더 격렬한 경쟁을 피할 수 없다. 더 많은 병원과 더 많은 장비, 시술이, 그것도 수가가 더 유리한 쪽으로 경쟁에 나설 것이 뻔하다.

하나하나 병원을 놓고 보면, 점점 더 ‘효율’이 올라갈 것이다. 더 적은 비용으로 더 많은 수익을 내는 구조는 한국의 모든 병원이 짊어져야 할 운명과도 같다. 의료는 윤리여야 한다면서 욕할 수 없다. 적어도 한국에서는 살아남기 위해 피할 수 없는 길이다.

개별 행위자의 효율이 전체의 효율과 편익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불행이다. 더 많은 투자와 양적 확대를 통한 경쟁은 필연적으로 사회의 비효율로 귀결된다. 승자 독식과 양극화 심화는 어찌해 볼 도리가 없는 결과다.

사회 전체로 투입은 크게 늘어나면서도 편익은 늘지 않는 딜레마. 전형적인 ‘구성의 오류’다. 비용과 편익이 차별적으로 배분된다는 것이 더 어렵다. 환자와 시민이 경쟁의 비용을 대야 할 뿐 아니라, 또한 부작용과 손해를 감내해야 한다.

의료에서 시장과 경쟁, 질 향상이라는 믿음은 헛되다. 큰 대학병원의 경영위기설을 보면서 이제 시장과 경쟁의 ‘저주’가 시작되었다고 하면 지나친 해석일까. 시장이 갖는 경쟁력의 원천 가운데 하나가 피해를 분산하고 개인화하는 것이다. 저주 속에서도 승승장구하는 승자가 있을 수 있다. 승자가 있다는 것이 반(反)-존재의 증거가 되지는 않는다.

해답을 얻기는 쉽지 않다. 그래도 말해야 한다면, 기본을 다시 생각하고 틀을 다시 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더 많은 경영 악화와 부작용, 그리고 사회적 부담은 피하기 어렵다. 소수의 승리와 대다수의 패배가 엄연하다면, 사회적 효율의 측면에서도 재앙이다.

그래서 보건의료의 ‘탈시장’과 ‘탈상품’ 그리고 ‘(재)공공화’라는 기본 전략은 더욱 유효하다. 물론 당장 가능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수가 인상이든 무엇이든 미시적 조정으론 어림없다. 답은 구조에 있으니, 매일 드러나는 증거를 나침반 삼아 차근차근 나아갈 수밖에 없다.

대학병원의 경영 위기는 한 가지 증거일 뿐이다. 잠수함의 토끼마냥, 현상에서 새로운 미래의 조짐을 부지런히 읽어야 한다. 그리고, 가능하면 좋은 조짐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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