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우 (시민건강연구소 회원)
예측되지 않는 불안한 미래는 삶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걱정하게 한다. 경제적으로 풍족하진 않더라도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게, 그리고 돈보다는 가치 있는 길을 걷는 게 옳다고 믿지만, 그 미래의 모습이 쉽게 상상되지 않는다. 돈과 연결된 성공이 아닌 다양한 삶을 시도하더라도, 안정적이고 행복한 미래를 확신할 수 있는 사회는 어떻게 가능할까?
오늘은 능력주의와 건강불평등을 다룬 논문을 소개한다. 이 연구는 청년들이 건강불평등을 이해하는데 능력주의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탐구했으며, 건강 영역을 시작으로 능력주의에 대항하는 다양한 가능성을 보여준다(☞논문 바로가기: 건강불평등과 청년: 청년들이 바라본 ‘엄격한 능력주의’ 속 건강의 사회적 결정요인).
영국에서는 2008년 금융위기, 팬데믹, 지속적인 긴축을 거치면서 기대수명과 건강불평등이 악화되어 왔다. 그리고 연구진은 이러한 배경 속에서 성장하고 고용시장에 진입하는 청년들이, 건강불평등에 대한 독특한 인식을 형성했을 것이라 가정했다. 특히, 신자유주의 담론으로서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엄격한 능력주의’에 초점을 두어 연구를 진행하였다.
청년들은 고학벌, 고소득, 전문직이라는 단일한 ‘성공’ 경로만을 쫓게 되었지만, 이러한 성공을 뒷받침하는 다양한 공공 인프라와 서비스 재정은 삭감되었다. 그리고 불안정하고 어려운 사회경제적 전망 속에서도, 능력주의는 이 획일적 성공에 대한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했다. 즉, 이 불가능한 성공은 청년 개인이 더욱 열심히 노력해서 도달해야 하는 이상이 되어 왔다. 연구진은 건강불평등에 대한 청년들의 이야기를 분석했고, 엄격한 능력주의가 이들에게 미친 영향을 고찰하였다.
청년들은 좋은 건강이 식단, 운동, 태도 등 개인의 노력에 달려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마치 능력주의가 성공에 대한 압박을 만든 것처럼, 건강 증진은 도덕화되어 개인적으로 성취해야 하는 이상으로 인식되었다. 하지만 논의가 사회경제적 환경으로 확장되면서, 건강한 생활 방식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다. 예를 들어, 개인이 거주하는 환경에 따라 건강한 음식에 대한 접근성이 달라지거나, 운동 시설 여부에 따라 건강 증진을 위한 기회가 제한될 수 있음이 지적되었다. 이는 사회경제적 요인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강조하며, 개인 책임화 담론에 대항하는 효과를 나타냈다. 특히, ‘높은 기대수명이 보장되는 지역’과 그렇지 않은 지역이 구분되어 있다는 주장은, 사회경제적 요인의 중요성을 인식했음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동시에, 부유한 지역에 거주하기 위해 필요한 개인의 돈이 강조되면서, 기저에 존재하는 개인 책임화 담론의 효과가 다시 나타났다.
혼재되어 나타나는 개인 책임화 및 대항 담화는 교육과 고용에 대한 논의에서도 계속 드러났다. 교육은 안정적인 직업, 보수, 거주를 보장하는 핵심적인 수단으로 여겨졌고, 청년들은 미래를 보장받기 위해 교육에서의 성공을 강요받고 있었다. 이들은 정해진 진로를 따르지 않거나 낮은 성적을 받은 학생들을 낙오자로 만드는 시스템과 그로 인한 불평등을 비판하면서도, 이를 스스로 극복해야 한다고 인식했다. 한편, 교육에서 고용으로 이어지는 능력주의식 경로와 개인의 노력이 꾸준히 강조되었지만, 불안정한 노동시장과 제한된 기회로 인해 더 이상 이러한 경로를 신뢰할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 연구는 팬데믹 중에 진행되었고, 연구진은 팬데믹 정책을 논의에 포함하였다. 앞서 건강의 사회적 결정요인들이 개인의 책임으로 이해되던 것과 달리, 팬데믹 정책과 논의가 연결되자 개인 책임화에 맞서는 담화가 활발히 형성되었다. 정책 결정에서의 권력 불평등 그리고 이러한 불평등이 개인의 감염 위험과 삶에 미친 영향이 논의되었고, 기존의 권력 구조 및 정치인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다. 또한, 봉쇄(락다운)로 인한 고용 불안, 사람이 아닌 기업 중심의 정책, 취약계층 배제, 팬데믹 대응 노동자의 낮은 보수와 불안정한 고용 상태 등에 대한 문제가 지속해서 제기되었다. 청년들은 건강의 정치적 요인인 거버넌스와 권력 불평등을 이해하고 있었으며, 임금과 권한의 평등화를 촉구했다.
이 연구는 건강의 사회적 결정요인만큼, 사람들의 이해와 해석에 영향을 미치는 담론도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즉, 교육과 고용이 건강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인식하더라도, (대항 담론이 부재한 채로) 능력주의 담론이 이를 지속적으로 개인화하는 한, 이러한 ‘사회적’ 결정요인이 ‘사회적’ 책임으로 이해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러한 연구 결과는 건강불평등과 결정요인에 대한 논의를 넘어, 이를 둘러싼 담론과 사람들의 이해에 적극적으로 도달하려는 노력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한편, 연구진은 능력주의의 영향 뿐 아니라, 개인의 노력 외에는 대안이 부재하기 때문에 개인 책임화가 발생할 가능성을 언급하며 논문을 마무리했다. 개인의 노력과 독립적으로 작동하는, 긴축에 대항하는 튼튼한 사회 보장 제도의 필요성이 여기서 다시 강조된다.
이 연구는 능력주의를 중심으로, 영국 청년들이 건강불평등을 어떻게 인식하는지 탐구했다. 이제 우리도 능력주의를 중심에 두고, 사람들의 이해, 담론, 제도, 그리고 그 기반이 되는 체제를 변화시키는데 건강 영역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상상해볼 때다.
*서지 정보
Fergie, G., Smith, K., Vaczy, C., Mackenzie, M., & Hilton, S. (2024). Health inequalities and contemporary youth: Young people’s accounts of the social determinants of health in an ‘austere meritocracy’. Sociology of Health & Illness, 1–21. https://doi.org/10.1111/1467-9566.13842
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프레시안>과 시민건강연구소는 ‘서리풀 연구通’에서 매주 목요일, 건강과 관련한 비판적 관점이나 새로운 지향을 보여주는 연구 또는 논쟁적 주제를 다룬 연구를 소개합니다. 이를 통해 개인의 문제로 여겨졌던 건강 이슈를 사회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건강의 사회적 담론들을 확산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