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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난 세계, 서로를 돌보는 세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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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괴하고 끔찍했던 12월 3일 밤으로부터의 공포와 불안이 14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로 일단락되었다. 직무정지에 들어간 윤석열은 계엄이 ‘통치 행위’라는 궤변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가겠다”는 모양새다. 하지만 그가 행사했던 비상계엄은 국민주권주의 및 대의민주주의, 법치주의 원칙과 권력분립의 원칙 등 중대한 위헌, 위법행위들을 다수 포함하고 있다(탄핵소추안 전문). 지금까지 밝혀진 윤석열의 내란모의 행적만으로도 그가 헌정질서 수호라는 대통령의 책무를 더 이상 수행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민주공화국의 일원으로서도 대단히 위험한 인물이라는 사실이 잘 드러난다.

 

이번 비상계엄이 촉발한 위기 상황은 국가 공동체의 권력균형에 심대한 파열을 가져왔다. 위헌적인 비상계엄임이 속속 드러나면서 정부의 모든 통치행위는 정당성을 상실하였다. 시장(경제권력)은 압도적인 체제적 영향력과 국가권력과의 친연성에도 불구하고 막대한 손실 발생에 즉각 개입하지 못했다. 그러나 총을 든 군인과 장갑차를 맨몸으로 막아선 국회에 모인 시민들에서 보듯이 이 순간 시민사회는 한국 현대사가 선연히 남겨놓은 두려움과 분노를 넘어 전면적으로 위기 해결에 나섰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광장은 곧 윤석열 정부의 폭정을 질타하고, 탄핵의 타당성을 정립하는 시민회의의 공간이 되었다. 이 자리에서 시민들은 앞으로는 차별과 혐오로 배제되는 사람 없이 모두가 지금보다 더 나은 삶으로 내딛을 수 있어야 한다고 거듭 주장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누군가의 추위와 배고픔, 상처와 고통을 헤아리고 대가없이 서로를 돌보는 뜨거운 경험을 나누었다. 형형색색의 응원봉 불빛 속에서 세대를 아울러 ‘다시 만난 세계’와 ‘임을 위한 행진곡’을 합창함으로써, 내용과 형식에서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역사적 변곡점으로 기록될 집회를 만들어냈다.

 

 

이 모든 현상은 비상계엄이라는 예외적인 위기 상황에서 평등, 호혜성, 지속가능성 등의 윤리적 가치와 연대와 돌봄이라는 시민사회 고유의 속성들이 작동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강력한 물리적 국가폭력의 등장으로 시민들은 일시적으로나마 서로가 동등한 생명체로서 ‘사회적 상호의존성과 상호관계성’ 으로 이어져 있다는 감각을 공유했다. 덕분에 우리는 그 열흘 남짓 동안 한강 작가가 평소 천착해오던 바로 그 질문 – “세계는 왜 이토록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운가? 동시에 세계는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가?” – 를 조금이나마 체험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시민들의 심판이 저 오만하고 무도한 세력들을 이길 것이라는 확신은 실현되었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더 이어져야 하는가? 긴박한 위기 상황이 해소되면서 일상에서 이탈했던 시민들은 제자리를 찾아갈 것이다. 하지만 시민들의 파면 심판을 받아들이지 않는 내란수괴 윤석열은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며 퇴진을 거부했고, 집권여당 역시 내란동조∙퇴진거부세력으로 남아있다. 탄핵결정 다툼은 이제 헌법재판소로 옮겨졌다. 최장 180일이 될 수도 있는 사법의 시간이 저들의 궤변과 폭거를 옹호하는데 허투루 점유되지 않고 지체없이 시민들의 뜻이 관철되도록 탄핵심판 과정을 압박해야 한다.

 

또한 많은 학자들이 지적하듯이, 이번 ‘12.3 내란’ 사태는 민주주의의 규범을 거부하고 폭력을 조장하는 ‘민주주의의 실패’ 국면에서 언제 등장해도 이상하지 않을 일이었다(<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레비츠키와 지블랫). 그렇다면 더더욱 우리는 이 실패를 기득권 양당을 오가며 대통령을 새로 뽑는 대응으로 그치면 안 된다. 인민의 삶을 돌보는 ‘인민에 의한 통치[民主主義]’를 제대로 구현할 민주적 제도의 재구성과 극우적 선동의 토양이 되는 약탈적 사회경제체제의 타파로 더 멀리 나아가야 한다.

 

예상치 못한 시점에 벌어진 국가권력의 공백과 그로 인해 열릴 정치적 공간에 시민사회가 참여할 준비가 되어있는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다. 그러나 ‘광장에 우리가 없었던 적이 없다’는 발언을 기억하는가. 언제나 광장에는 존엄과 권리를 위해 치열하게 투쟁해온 노동자∙농민∙빈민∙여성∙이주민∙장애인∙성소수자가 있었다.

 

그리고 지금 이들 모두와 함께 사회경제적 양극화와 불평등, 기후위기와 전쟁, 돌봄과 생명의 위기를 해결하는 사회대개혁으로 가자는 결의와 활동이 추진되고 있다. 시민건강연구소를 포함하여 1500개 이상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한 <윤석열 즉각 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이 그것이다. ‘언제나’ 여기 있었던 사람들의 절박한 요구들이 더 이상 ‘나중으로’ 미뤄지지 않게 하는 방법을 찾고자 당장 오늘부터 광화문과 전국 각지에서 범국민촛불대행진을 이어간다. 21일(토)에는 전국광역지역 동시다발 촛불을 열고, 내란수괴 윤석열을 조속히 파면할 것을 요구하며 헌법재판소 앞으로 행진할 예정이다. 우리 함께 함성을 이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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