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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애먼 혐오가 이주민의 건강을 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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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민 (시민건강연구소 회원)

 

12.3 윤석열 내란 사태 이후 이주민, 특히 화교에 대한 혐오가 드세다. 중국이 한국 정치에 개입하고 있다는 가짜뉴스에 대한 믿음은 사법부에 “판사 이름이 중국인 같으니 화교”라거나 “윤석열 탄핵 집회에 참석한 사람 중 중국인이 있다”라는 발언에서 잘 드러난다. 먹고 살기 팍팍해졌는데 국내 안전과 정세까지 불안정해진 원인이 바로 우리 내부에 침투한 ‘외부 집단’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윤석열을 지지하는 일부 극우세력만의 문제라고 보기 어렵다. 일상적으로 쓰이는 “짱깨”라는 멸칭부터 건강보험 재정수지 적자가 “중국인이 건보를 남용”하기 때문이라는 근거없는 혐오, 그리고 이어지는 ‘외국인 건강보험 무임승차 방지법’ 발의(☞관련 기사: 바로가기) 등은 한국의 뿌리 깊은 민족(혹은 인종)차별적인 정서를 보여준다.

 

실제로 2018년 6월 7일 보건복지부는 외국인 및 재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건강보험제도를 개정하였는데, 그 이유가 “외국인이 필요할 때만 지역가입자로 임의 가입하여 고액의 진료를 받고 악용하는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외국인 건강보험 재정수지는 늘 흑자를 기록했었고, 논란이 되었던 중국인 역시 우리와 똑같이 건강보험료를 납부하다가 나이 들어 중병을 앓게 된 60대 환자였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주민의 건강보험 지역가입자격 취득 시점은 입국 후 3개월에서 6개월로 연장·의무가입화되었고, 세대원 범위도 배우자와 미성년 자녀로 제한하였다. 보험료는 ‘지역과 직장을 포함한 전체 가입자의 평균액’으로 계산되어 이주민의 건보료 부담은 매우 커졌다. 또한 지역보험료를 체납할 경우 완납할 때까지 급여를 받지 못하도록 하는 것에 더해 체류자격 연장 불허라는 징벌적 조치까지 추가했다(☞관련 기사: 바로가기).

 

이러한 제도로 인해 소득이 없는 이주민들도 매달 보험료를 선납부해야 하고, 보험료가 체납되는 순간 보험 적용을 받을 수 없게 됐다. 이는 단순히 치료를 받을 수 있는지 없는지와 같은 의료서비스 접근성만의 문제로 국한될 수 없다. 인종/민족에 따라 건강권을 차별적으로 승인하겠다는 의미고, 더 나아가 한국에서 어떤 인종/민족이냐에 따라 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지가 결정된다는 존재적 승인에 관한 문제인 것이다. 이와 관련해 오늘은 인종/민족에 따른 건강불평등의 근원에 인종차별이 존재하며, 그 인종차별이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 설명한 논문을 소개하고자 한다(☞논문 바로가기: 건강에서의 인종/민족 불평등: 혼란을 넘어 근본 원인에 초점을 맞추기 위한 노력).

 

저자는 이주민이 겪는 인종차별을 크게 1)대인관계적 인종차별, 2)구조적 인종차별, 3)제도적 인종차별로 분류하는데, 이 세 가지 차원이 서로 상호작용하며 이주민에게 사회적 정체성을 부여한다고 설명한다. 특정한 인종/민족 집단을 우리와 다른 존재로 구분하고, 위협적이고 열등한 존재로 생각함으로써 그 집단에 대한 어떤 이미지와 정체성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또한 이 집단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감정은 그들에 대한 태도와 표현으로, 제도의 규칙과 절차로 이어져 불평등을 정당화하고 합리화하며, 이것이 사회적으로 고착될 때 바로 인종차별 사회가 된다. 혹시 당신이 “한국인은 병원비 부담이 커서 진료도 제대로 못 받는데, 외국인이 똑같은 혜택을 누리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인종차별주의자가 맞다.

 

누군가 농담처럼 말하는 “짱깨”, “똥남아”, “중티”라는 단어의 맥락을 보면 경멸과 비하가 내포되어 있다. 일상적인 경멸에서부터 차별, 언어적·신체적 공격 등은 직접적인 표적이 된 사람과 유사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 모두에게 영향을 미친다. 이렇게 일상생활에서 겪는 차별에 대한 경험을 대인관계적 인종차별이라고 하고, 이러한 차별이 만연해진 것을 구조적 인종차별이라 한다. 구조적 인종차별은 대인관계를 통해 작동하며, 일상적으로 인종차별적 상호작용 맥락을 형성한다. 또한 경제적, 물리적, 사회적 자원에 대한 불균등한 분배를 정당화하고 합리화하면서 이들의 지위를 평가절하한다. 이러한 물질적 불평등은 소득, 고용, 주택, 고용 등 모든 경제적 차원에서 나타나며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제도적 인종차별은 제도 내 시스템, 절차 및 관행에서 발생하는 인종차별로, 구조적 형태의 불이익과 대인관계에서 발생하는 인종차별이 집중되고 증폭될 수 있는 맥락을 제공한다. 실제로 앞에서 언급한 외국인 및 재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건강보험제도 개정은 한국에서 살아가는 이주민이 제때 적절한 치료를 받기 어렵게 만들 뿐만 아니라, 인종/민족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정서를 수용함으로써 사회적 자원에 대한 접근의 제한을 정당화시킨다. 저자는 이러한 정책적 맥락이 근본적으로 인종/민족 소수자와 공동체의 사회적 지위를 약화시키고, 인종차별적인 사회적 인식과 정서를 강화하며,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낳는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인종/민족에게 부여된 정체성은 이주민의 삶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친다. 인종차별에 노출되는 영역이 늘어나고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 부정적 효과는 더 커지며, 세대 전반과 전 생애에 걸쳐 누적되어 건강을 해친다. 인종적 괴롭힘/차별 경험, 인종적 괴롭힘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인종/민족에 대한 일반적인 편견 등은 신체적 건강과 정신적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다가오는 3월 21일은 세계 인종차별 철폐의 날이다. 지난 16일 서울역 앞에서 열린 ‘2025 세계 인종차별 철폐의 날 기념대회’에 모인 200여개 이주인권단체는 이 땅에서 이주민이 겪고 있는 차별에 대해 증언하였다. 또한 선언문을 통해 “한국 정부는 이주민의 인격을 존중하고 노동과 건강, 사회보장 모든 면에서 이주민을 차별 없이 대우하라. 정부는 극우세력의 혐오와 차별 선동을 강력히 처벌하고 정치권은 이들과 동조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촉구했다. 차별과 혐오로부터 이주민의 삶과 건강을 안전하게 지켜내는 길은 우리가 속한 공동체 모두의 삶과 건강을 지켜내는 일이기도 하다. 이주민을 우리 사회의 동등한 구성원으로 받아들이는 데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 서지정보

Nazroo, J. (2024). Race/ethnic inequalities in health: moving beyond confusion to focus on fundamental causes. Oxford Open Economics, 3(Supplement_1), i563-i576.


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프레시안>과 시민건강연구소는 ‘서리풀 연구通’에서 매주 목요일, 건강과 관련한 비판적 관점이나 새로운 지향을 보여주는 연구 또는 논쟁적 주제를 다룬 연구를 소개합니다. 이를 통해 개인의 문제로 여겨졌던 건강 이슈를 사회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건강의 사회적 담론들을 확산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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