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 논평

기업에 좌우되는 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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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람들에게도 먹을거리는 가장 중요한 관심사 가운데 하나다. 맛집 순례는 수를 헤아릴 수 없고 ‘착한 식당’을 찾는 노력도 눈물겹다. 식품의 안전성도 빠지지 않는다. 후쿠시마의 방사능 걱정 때문에 해산물 소비가 엄청나게 줄었다지 않는가.

좋은 것을 고르고 나쁜 것을 피하느라, 무엇이 건강 백세를 보장하는 것인지 찾느라, 다들 분주하게 노려한다. 그러나 과연 이것으로 충분할까.

좀 지난 책이지만 에릭 슐로서가 쓴 <패스트푸드의 제국>(김은령 옮김, 에코리브르)을 들춰본다. 이 책은 미국 식품생산시스템을 개혁하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당시 맥도날드의 주당 평균 ‘해피밀’ 판매는 1000만개였는데, 1997년 4월 티니 비니 베이비를 세트메뉴마다 증정한 결과 열흘 동안 1억 개의 해피밀을 팔 수 있었다. (중략) 열흘 동안 그 나이 또래의 모든 미국 어린이들이 티니 비니 베이비 해피밀을 거의 네 개씩 사먹었다는 결과가 나온다.” (70-71쪽)

“미국인들은 현재 세계의 산업 국가들 중에서 가장 높은 비만율을 기록하고 있다. 미국 성인의 절반 이상과 어린이의 4분의 1 정도는 비만이나 과다체중 상태에 있다. 이 비율은 패스트푸드의 소비량 증가와 발맞춰 지난 수십 년간 급증해왔다.” (320쪽)

“소들이 먹는 사료, 지나치게 좁은 비육장, 도축장의 형편없는 위생 상태, 지나치게 빠른 라인 속도, 제대로 훈련받지 못한 노동자들, 엄격한 정부 규제의 부재 등 육류오염의 주요 원인에 초점을 맞추는 대신 정육업계와 미국 농무부는 식중독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기술적 문제만을 옹호하는 경향이 있다.” (291쪽)

“농무부 관료들은 식품 안전보다는 규제 완화에 더욱 관심을 갖고 있는 듯 했다. (중략) 레이건 행정부의 첫 번째 농무부 장관은 양돈업 관련 인사이고, 두 번째 농무부 장관은 미국육가공협회 회장 출신이다. 농무부의 식품 마케팅 및 조사 담당관은 전국축산업협회 부회장 출신이다.”(277쪽)

 

<패스트푸드의 제국>도 결국 먹을거리를 다룬다. 안전하고 건강한 식품에 관심을 두는 것도 같다. 그러나 초점은 그 흔한 개인 지침과는 좀 다르다. 개인 소비자가 아니라 생산자에 초점을 맞추었고, 그 중에서도 기업을 중심에 놓았다.

그러고 보면, 기업은 이미 한국인의 식생활도 장악했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우리의 식생활이 기업에 얼마나 크게 의존하는가. 라면이나 식용유 같은 공산품만도 아니다. 축산에다 종자, 유통까지 이르면 기업에 숨 막히게 묶여 있다.

식품 이야기를 제법 길게 했지만, 매일의 생활에 가까워서 동원되었다. 본래 뜻은 기업을 보자는 것이다. 그리고 건강도 기업의 손에서 자유가 아니라는 점을 말하고 싶다.

사실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기업이 얼마나 중요한가는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 경제가 그런 만큼, 사회와 개인의 삶에 깊고 넓게 영향을 미친다. 워낙 비중과 영향이 커서 마치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다고나 할까.

건강도 영향을 받기는 마찬가지다. 병원만 하더라도 기업에 가까운 것들이 여럿이고, 약은 더 말할 것도 없다. 한 걸음 나아가 직간접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들을 보면 기업은 그냥 중요하다고 할 정도를 넘는다.

하지만, 건강과 기업을 연결해서 생각해야 할 경우란 거의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동안 예외적으로 관심을 끌었던 것은 산재를 비롯한 노동자 건강문제였다. 문제를 일으키거나 원인을 제공하는 주체이니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찬찬히 생각해보면 좀 의아스럽긴 하다. 산재 말고도 기업과 관련된 건강 문제가 많이 있을 텐데 싶지만 기업은 이상할 정도로 관심에서 벗어나 있다. 필시 무슨 연유가 있지 않고서야.

담배가 대표적인 예다. 기업이 만들고 거래하는 것 가운데에 건강을 이만큼 위협하는 것이 또 있을까. 그런데도 담배를 만들고 파는 기업은 거의 전면에 드러나지 않는다. 담배와 담배 피우기가 수없이 이야기되는 것에 비하면 관심이랄 것도 없다.

본래 목적한 것은 아닐지 몰라도 담배회사는 크게 성공한 것이다. 출발은 기업이어야 마땅하지만, 사람들의 관심은 개인에 집중된다. 개인과 각 사람의 행동을 바꾸는 것이 담배로부터 건강을 지키는 핵심이다. 말하자면 그 익숙한 ‘개인화’ 전략.

그 예가 어디 이뿐이던가. 건강에 나쁜 영향을 미치는 많은 ‘위험요소’가 같은 처지에 있다. 술, 갖가지 식품(탄산음료, 설탕, 소금 등등), 분유, 농약 등이 또한 같다. 넓게 보면 석유나 자동차, 전자기기, 화학약품도 건강에 위험한 요소를 안고 있다. 하지만, 위험으로부터 건강을 지킬 책임은 개인 수준을 넘는 일이 드물다.

꼭 위험만 그런 것도 아니다. 약의 소비는 제약회사라는 기업의 성공과 직결된다. 생명의 윤리와 불평등의 부정의를 주장해도 제약 기업의 논리는 완강하다. 그나마 건강보험이 중간에 없으면 기업이 곧 생명줄을 쥘 판이다. 다시 개인의 책임과 능력이 강조된다.

한국에서는 개인화에 보태서 기업이 곧 경제와 성장, 소득과 일자리라는 집단 무의식이 작동한다. ‘산업보국’이란 명목에 기업 활동이 곧 신성불가침이 되는 것. 재벌 봐주기 재판의 단골 이유가 국가 경제에 기여했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기업 활동은 두세 가지의 다른 차원을 가진다. 우선은 불법과 범죄에 해당하는 것들이 있다. 숨기고 속이는 일이 대표적이다. 이건 무슨 말할 거리도 못된다. 현실에서는 여전히 흔히 보는 일이지만.

두 번째는 당초의 의도는 아니었지만 건강에 나쁜 영향을 주는 경우다. 패스트푸드나 탄산음료 회사가 처음부터 건강을 해치고 비만을 유발할 목표를 세우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의도하지 않았다고, 몰랐다고, 윤리적, 현실적 책임을 피할 수는 없다.

그 다음으로는 좀 더 적극적인 윤리적 책임이 요구되는 것을 들 수 있다. 건강과 직결되는 제약이나 의료기기, 의료기관 등이 여기에 속한다. 자칫 건강에 영향을 줄 수도 있는 식품이나 공산품도 여기에 해당할 것이다. 권리와 공평한 배분이 건강의 윤리이자 정의라면, 관련 기업 역시 이와 무관할 수 없다.

현실에서는 이런 두세 가지 차원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일이 흔하다. 담배회사는 처음에는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인식하지 못했다. 그러나 점차 담배의 폐해가 명확해지자 사실을 숨기고 비틀기 위해 적극 나섰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차원이 겹친 것이다.

그 어떤 것이든 기업 행동의 배후에 이윤 동기가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이건 기업주나 종업원 개인이 어떤 생각과 태도를 가지고 있는가와 크게 관계가 없다. 자본주의 체계에서 기업과 자본이 생존하고 커진다는 것보다 더 큰 동기가 어디 있겠는가. 그 유명한 자본 축적의 원리.

그러니 또다시 개인화 전략으로 기업 행동에 개입한다는 것은 무망하다. 그런 의미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란 유행은 파탄으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기업의 행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은 또 다른 ‘권력’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것은 서로 다른 권력 사이의 균형관계가 중요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어떤 권력이 기업을 긴장시키고 나아가 ‘통제’할 수 있을까. 일차적으로는 국가가 그렇게 할 수 있다. 그러나 국가 또한 기업과의 권력관계에 따라 행동이 크게 달라진다(이 정부 들어 경제 민주화가 어떤 처지에 있는지 보라). 국가와 기업의 결합은 낯설기보다는 오히려 익숙하다. 남은 것은 시민 권력 또는 사회 권력 정도가 아닐까.

그러나 솔직히 시민이나 사회 권력이라고 해서 낙관할 수 없다. 서로 ‘침투’하고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점에서 늘 동요한다. 당연하지만, 시민 권력을 제대로 키우고 제도로 만들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마침, 다음 주 월요일(12월 9일) <건강과 기업>을 주제로 하는 학술행사가 열린다(건강정책학회 바로가기). 한국에서는 처음 만들어진 본격적인 논의 자리다. 건강이란 관점에서 기업과 국가, 사회 권력을 생각하는 계기가 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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