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 논평

2014년 보건예산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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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맘때면 ‘예산 투쟁’이 연례행사처럼 벌어진다. 공무원은 물론이지만, 지역구를 챙겨야 하는 의원님들에게는 가장 바쁜 철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은 그냥 지나가기 일쑤다. 말로만 주인이지 그들끼리 벌이는 게임일 뿐. 게다가 대부분은 이미 정해졌다.

예산 문제를 돌아보게 하는 두 가지 현실.

 

1.

경상남도가 이제 와 진주의료원 폐업 대책이란 것을 내놓았다가 뭇매를 맞고 있다 (프레시안 기사 보기j). 폐업 당시에는 의료급여 1종 수급자의 본인부담금 전액을 예산으로 지원하는 ‘무상 의료’를 시행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이번에 발표한 것은 영 다르다. 의료 1종 수급자에게 건강검진 무료 지원을 확대하겠다는 것이 대안이다. 도가 건강검진 사업에 쓰겠다는 예산 총액은 32억 원.

 

2.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2014년도 예산 총액은 약 358조 수준으로 2013년에 비해 4.6퍼센트 늘었다. 보건복지부 소관 예산은 11.8퍼센트 증가한 가운데에 세부 분야로서는 유독 보건의료 예산만 9.1퍼센트 줄었다 (바로가기).

 

그것도 문제지만, 내용이 더 심각하다. 이 와중에 보건산업과 의료 해외진출 예산은 크게 늘었다. 서울신문 보도를 보면, ‘글로벌 헬스케어 활성화’ 항목에 215억 원이 편성되었는데, 올해 63억에서 239퍼센트 증가한 것이다 (바로가기). 중소병원 해외진출 펀드를 조성한다고 새로 100억 원이 배정된 것도 눈에 띈다.

 

총액이 줄었으니 결국 다른 보건의료 예산을 희생한 결과임에 분명하다. 사회적 관심은 냄비 끓듯 지나갈 뿐, 국가결핵예방은 27억, 국립중앙의료원 운영은 50억 원이 감소했다. 금방 어떻게 할 것 같던 응급의료도 마찬가지다. 응급의료 이송체계지원과 취약지역 응급의료기관 육성 예산도 (시작도 채 하기 전에 마무리를 하는지) 줄어들었다.

 

이상의 두 가지 예산 현실은 지방과 중앙이라는 것만 제외하면 본질에서 큰 차이가 없다. 첫째, 예산만큼 정치적인 것이 없다는 것. 이런 속성은 길게 말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마치 고도로 전문적이고 비정치적인 것처럼 말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보건의료 예산의 빈곤 속에서도 일부 예산이 눈에 띄게 늘어난 정치적 배경을 짐작하는 것은 쉽다. 정권 차원에서 창조경제와 의료 산업 육성에 ‘올인’하는 것에 비하면, 예산은 기대보다(?) 변변치 못하다고 해야 하나.

 

경상남도의 정치성 예산도 다를 바 없다.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쥐꼬리만한 예산으로 생색을 내는 것이야말로 가난한 사람을 대상으로 한 ‘그들’의 정치다. 정부와 통치의 정치적 성격이 그대로 예산에 반영되는 것은 중앙과 지방을 가리지 않는다.

 

둘째, 보건의료 예산은 단지 정치적일 뿐 아니라 이 ‘체제’가 가진 지속적 경향성을 드러낸다. 여기서 체제란 건강과 보건의료의 시장화, 영리화를 지향하는 사회경제체제를 말한다.

 

앞에서 인용한 서울신문 기사를 다시 보자. 정부가 발표한 ‘국가재정운용계획 2013-2017’에는 2017년까지 보건의료 예산이 연평균 3퍼센트씩 줄어드는 것으로 되어 있다. 보건, 복지, 고용 분야 예산 가운데에 거꾸로 가는 것으로는 유일하다. 한 마디로 황당하다.

 

본래부터 형편없는 규모는 그렇다 치자. 국가가 더 이상 건강과 질병 문제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될 형편이란 뜻인가. 하지만, 결핵과 응급의료, 취약지의 분만, 취약계층 사회안전망이 해결되었다는 소리는 들은 적이 없다.

 

담배와 술, 영양 같은 건강의 위험요인 역시 마찬가지다. 불평등은 아예 생각하지 않아도 그렇다. 공공보건의료의 취약성은 그중에서도 더하다. 그런데도 예산 투자는 오히려 깎는다? 국가와 공공의 역할을 아예 없애는 쪽으로 가겠다는 것 말고 다르게 해석할 도리가 없다.

 

경상남도의 예산도 비슷하다. 딴은 진주의료원의 문을 닫은 것부터 그렇다. 건강과 의료는 각자 개인의 책임일 뿐 국가와 공공은 역할을 최소한으로 줄여야 한다는 것이 기조다. 예산 항목의 ‘지원’이란 말부터 국가의 역할이 ‘잔여’와 ‘보완’에 그친다는 것을 뜻한다.

 

결국 2014년 보건의료 예산은 현존하는 사회경제체제의 반(反)-공공적 경향성과 새 정권의 정치가 야합한 결과물이다. 그렇다면 내년만 문제가 아니란 소리가 된다. 보건의료 예산은 더욱 줄어들 것이고, 그나마 창조경제와 의료산업 진흥이라는 허상을 쫒느라 엉뚱한 곳에 낭비될 것이 뻔하다.

 

셋째, 예산 수립과 결정 과정이 비민주적이라는 것. 연간 400조에 가까우니 국가 예산이 복잡한 것은 당연하다. 전문성이 필요한 것도 부인할 수 없다. 재정위험요인이니 국가보증채무니 하는 말은 비전문가에게는 암호나 비슷하다.

 

그러나 전문성 그 자체보단 ‘전문성의 정치’가 더 큰 문제다. 그럴싸한 명분 때문에 예산은 점점 더 신화가 되고, 그 신화가 다시 예산을 둘러싼 담론을 지배한다. 지표와 수치, 공식으로 표현되는 최종 결론은 일방적이고 어려우며 최종적인 것이다.

 

이러니 보통 사람들이 평가하고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예를 들어 ‘재정 건전성’은 흔히 절대적 가치로 바뀌고, 우리는 자세한 내용도 모른 채 그 틀을 받아들여야 한다. 복지 재정 확대는 나라 말아먹을 소리가 되기 십상이다.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권력화된 예산은, 그만큼 감시와 견제를 벗어나, 또한 신화와는 어울리지 않는 현실의 각축장을 공공연히 제공한다. 또는, 개별화된 이익 추구야말로 국가 재정을 신비화하는 진정한 이유일지도 모른다.

 

4대강 사업과 같은 국가사업부터 의원들이 목을 매는 지역의 숙원과 공약 사업은 벌써부터 잘 아는 것들이다. 건물 신축이나 몇 명의 인력 증원과 같은 작은 예산 따기까지 치면 차라리 복마전이라고 불러야 하지 않을까. 그 일을 하느라 사시사철 연고를 찾고 교류를 빙자하는 ‘꾼’들의 세계. 또 다른 비민주적 권력이다.

 

공식적으로는 재정운용토론회도 있고 의회의 심의과정도 있다. 쓰는 쪽으로도 감사원을 비롯한 수많은 감사가 있다. 그러나 이를 누가 민주와 참여라고 말할까. 의회의 심의는 시간에 쫒기고 전문성도 없어 민원 해결장이 된지 오래다. 각종 토론회나 감사도 보통 사람들의 참여와는 거리가 멀다.

 

급기야 ‘주민참여예산제’가 공식 제도로 만들어져 운영되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이것을 정말 참여라고 말하기는 민망하다. 당초 포르트 알레그레에서 이것이 만들어졌던 정치사회적 환경을 생각하면 당연한 신세다.

 

이상에서 말한 세 가지 특성이 지배하는 보건의료예산. 요약하면, 정치적이고 체제의 경향성을 반영하며 또한 과정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답은 예산의 정치화, 그리고 민주화에서 찾아야 한다.

 

예산을 정치화, 민주화하는 것은 다양한 경로를 통할 수밖에 없다. 우선, 국회와 각급 지방의회를 압박해야 한다. 곧 본격적인 예산 심의가 이루어지겠지만, 예산을 심의하고 정하는 것이야말로 의회의 핵심 기능이다. 지금이라도 정말 필요한 사업과 예산이 무엇인지 새롭게 가다듬어야 한다.

 

또한, 시민이 주도하는 일상적인 예산감시 활동이 필요하다. 시민의 자발적, 독립적 운동이든 의회를 통한 것이든, 계획 수립부터 지출까지 예산을 감시하는 것은 또 다른 중요한 참여 방식이다.

 

이론적으로는 ‘주민 감사’도 가능하지만, 아직은 기반과 역량이 충분치 않다. 의회와 협력하되 또한 견제하는 시민의 감시활동이 당장의 대안이다. 행정부 내에서 예산 사이클이 늘 2월, 3월에 시작하는 것을 기억한다면, ‘일상적’ 감시는 그냥 빈 말이 아니다.

 

주민참여예산제를 활용하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 현재 제도가 주민의 ‘통제’라고 하기에는 터무니없지만 예산을 정치화, 민주화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인 것은 틀림없다. 길게 보면 교육과 훈련의 장이 된다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여기에 특히 지역 차원의 개입이 중요하다는 점을 덧붙여 강조하고 싶다. 셸던 월린의 말대로, 풀뿌리 민주주의야말로 인민의 ‘직접성’이 발동할 수 있는 체제이자 공간이다(<이것을 민주주의라 할 수 있을까>, 우석영 옮김, 후마니타스).

 

예산이 딱 거기에 해당하는 것이 아닐까. 권력을 위임받은 자들의 행동을 억제하는 수단을 달리 찾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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