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2013.12.20 [건강렌즈로 본 사회] 바로가기
스트레스 때문에 담배를 피운다는 이야기는 주변에서 흔히 들을 수 있다. 어떤 일의 마감이 닥치거나 인간관계 등에서 속상한 일이 생기면 평소보다 더 많이 이른바 ‘줄담배’를 피우는 이들도 있다.
스트레스와 흡연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 당연히 여기지만, 현실의 보건사업에 이를 적용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오히려 흡연자의 무책임과 무지를 탓하면서 비난하거나, ‘건강 제일주의’에 발맞춰 막무가내로 금연을 강요하기도 한다. 사람들이 담배를 손에서 놓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외면하는 것이다.
이번에 소개하는 연구는 담배를 피우게 되는 이유 가운데 스트레스 특히 차별이라는 부당한 처우가 숨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퍼넬 미국 워싱턴대 교수팀은 최근 <미국공중보건학회지>에 미국인 약 8만5천명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퍼넬 교수팀은 설문지를 통해 최근 1년 동안 일을 하면서 혹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중에 차별을 당한 경험이 있는지를 조사했다. 아울러 스트레스와 담배 사용 습관에 대해서도 질문했다. 결과는 매우 분명했다. 흡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다른 요인들의 영향을 고려한 이후에도 차별을 당한 적이 있다고 응답한 사람들이 차별 경험이 없다고 응답한 사람들에 견줘 13~18%가량 담배를 더 많이 피우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대로 더 나은 대우를 받았다고 응답한 사람들은 흡연 확률이 21%나 낮았다.
차별 중에서도 일터에서의 차별 경험이 있는 경우에 흡연 확률이 훨씬 높았다. 연구팀은 근로 현장에서의 차별은 지속적인 영향을 줄 가능성이 크고, 또 생계 문제가 달려 있기 때문에 차별 상황에서 벗어나기가 더욱 어렵다는 점을 지적했다. 또 한 가지 주목할 것은 차별의 부정적 영향이 특정 인종에서만 나타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차별에서 비교적 자유로울 것 같은 백인들에게서도 차별 경험은 흡연과 관련성이 있었다.
차별이란 단순히 사람들을 다르게 대우하는 것이 아니다. 차별은 누군가를 불공정하게 배제하는 것이며, 이런 과정을 통해 또 다른 누군가가 부당한 이득을 얻는 행위이다. 차별의 대상이 된 사람들은 대개 사회적 약자인 경우가 많다.
그렇다 보니 부당한 상황을 적극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사회적 네트워크가 취약한 것이 일반적이다. 결국 이런 문제들을 온전히 개인적으로 감내하려면 스트레스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결국 흡연은 스트레스에서 비롯된 부정적인 행동이나, 어쩌면 취약한 개인이 동원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국내에서도 감정노동이 극심한 콜센터 여성 노동자들의 흡연율이 특별히 높다는 점은 잘 알려져 있다.
담배는 누가 뭐래도 건강에 해롭다. 하지만 건강을 이유로 금연을 강권하기 전에, 무엇이 사람들로 하여금 담배를 피울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지 이해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한국사회처럼 학벌·출신지·성별·정규직/비정규직·인종 차별이 만연한 나라라면 더욱 그렇다. 금연정책이 성공하려면 건강증진법만큼이나 차별금지법이 우리에게 더욱 절실한 이유다.
박지은 시민건강증진연구소(health.re.kr) 영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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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문에 소개된 논문의 서지 정보는 다음과 같습니다.
- Purnell JQ, Peppone LJ, Alcaraz K, McQueen A, Guido JJ, Carroll JK, Shacham E, Morrow GR. Perceived discrimination, psychological distress, and current smoking status: results from the Behavioral Risk Factor Surveillance System Reactions to Race module, 2004-2008. Am J Public Health. 2012 May;102(5):844-51 (바로가기)
2. 참고사이트 및 참고자료
1) 참고사이트
- 국가인권위원회:
- 빈부격차차별시정위원회 (참여정부 때 설립되어 운영되다가 이후 운영 안하고 있음)
2) 참고자료
3) 관련 연구
- Hatzenbuehler ML, Phelan JC, Link BG. Stigma as a fundamental cause of population health inequalities. Am J Public Health. 2013 May;103(5):813-21 ajph.aphapublications.org/doi/pdf/10.2105/AJPH.2012.301069
- Kim SS, Williams DR. Perceived discrimination and self-rated health in South Korea: a nationally representative survey. PLoS One. 2012;7(1):e30501. (바로가기)
- Pascoe EA, Smart Richman L. Perceived discrimination and health: a meta-analytic review. Psychol Bull. 2009 Jul;135(4):531-54. (바로가기)
- <Social Science Medicine> 학술지의 “낙인, 선입견, 차별 그리고 건강” 특집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