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 논평

만델라를 추모하다 – 건강권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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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영웅’(이라는 소리를 듣는) 만델라가 세상을 떠났다. 모두들 나름 보고 이해하는 대로 그의 생애를 되새기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전혀 어울리지 않는 자들이 제 논에 물대기 식의 생뚱맞은 추념을 남발하는 것은 역겹다.

스스로 용서받아야 하는 자들이 ‘용서와 화해’의 상징으로 그를 불러내는 일이 제일 심하다. 그의 나라에서는 백인들이 용서받기 위해서는 먼저 진실을 고백해야 했다. 그나마 완전한 진실을 고백한 경우에 한정되었다.

약 2만 천 명의 희생자가 증언하고 그 가운데 2천 명은 공청회까지 나선 마당에 ‘화해’의 엄격함은 당연하다. ‘진실과 화해 위원회’는 7,112건의 사면 신청을 받아 (겨우!) 849건을 사면하고 5,392건은 거부했다(위원회의 결정 보기).

만델라란 이름은 다른 무엇보다 ‘인권’을 의미한다. ‘아르파트헤이트’라 불리는 남아공의 야만적 흑백분리 정책, 그리고 그 정권을 끝내는 투쟁의 한 가운데에 그가 있었다.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는 그의 역사적 기여다.

 

평가가 엇갈리는 곳은 대통령으로서의 만델라다. 그는 1994년 대통령에 당선되어 1999년까지 나라와 정부를 이끌었다. 인종차별 정권과 결별한 이후 남아공은 사실상 새 나라를 건설해야 했다. 널리 알려진 대로, 그 과정은 어렵고 힘들었고 성과도 미심쩍다.

그 나라는 그가 세상을 떠난 지금도 극심한 불평등과 가난에 시달린다. 다른 신생 독립국들처럼 독립의 영웅이 독재자가 되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라는 소리도 들린다. 어떤 쪽에서 보나 국가 건설의 길은 단순하지 않다. 그리고 시간이 걸린다. 그의 ‘공’이나 ‘탓’만으로 돌리기 어려운 이유다.

 

만델라의 시대는 이제 끝났다. 그러나 그가 남긴 유산은 당분간 인류 사회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한국 사회도 마찬가지다. 추모도 뜻이긴 하지만, 건강의 영역에서 그가 남긴 발자취를 추적해 보는 것도 같은 맥락에 있다.

우선, 그리고 핵심적인 것으로, 건강권이 확대되고 굳어지는 데에 그의 영향이 컸다는 점을 말해야 하겠다. 그 영향은 한 나라에 멈추지 않고 세계화되었다. 투사로서 그리고 국가 건설기의 정치 지도자로 인권을 빼놓고는 그를 설명할 수 없다. 그가 대통령으로 있던 1996년 제정된 헌법이 이를 가장 잘 나타낸다.

남아공 헌법에 포함된 인권 조항은 자세하고 많다. 그리고 전통적인 정치, 시민적 권리뿐 아니라 경제, 사회적 권리도 포함했다는 점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널리 알려진 말로 바꾸면 ‘사회권’을 헌법에 명시한 몇 안 되는 나라가 바로 남아공이다.

헌법에 규정된 건강의 권리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모든 사람이 보건의료 서비스(생식보건과 응급의료 포함)를 받을 수 있는 권리이고, 둘째는 어린이들이 기초 보건서비스를 제공받을 권리이다. 여기에 더해서, 형무소 수감자를 비롯한 수용인이 국가 부담으로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 포함되었다.

이런 조항들은 헌법에 규정되었다는 것을 빼면 평범해 보일지 모른다 (물론 한국의 헌법과 비교하면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비범하다). 그러나, 사회권에서 뜨거운 논쟁거리인, 국가의 책임을 규정한 부분이 더 중요하다. 바로 헌법 27(1)(B) 절이다.

국가는 권리의 점진적 실현을 위해, 가능한 자원 범위 안에서, 합당한 법률적 수단과 다른 수단을 마련하여야 한다. 이는 단순히 선언적 조항이 아니다. 국가는 책임을 무한정 미룰 수 없으며, 오히려 가능한 한 신속하게 권리 실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뜻이다(인권 논의에서는 보통 ‘림버그 원칙’이라 부른다).

남아공의 정부 기구들은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정책과 사업에 이런 헌법상의 원리가 어떻게 적용되었는지 고려해야 했다. ‘가능한 자원’과 ‘합당한 수단’을 둘러싸고 국가를 상대로 한 소송이 벌어진 것도 이러한 헌법적 기초가 있었기 때문이다 (샌드라 프레드만 지음, 조효제 옮김, <인권의 대전환>, 교양인 펴냄).

당시 정부가 세운 보건정책 목표는 바로 이런 헌법 정신을 반영한 것이다. 1997년 4월 발표된 <보건의료체계 개혁 백서>에 따르면, 당면한 국가 보건목표는 다음 네 가지였다 (백서 바로가기 ).

– 서로 따로 운영되는 보건의료 서비스를 일관된 국가보건체계로 통합할 것

– 보건의료에서의 차이와 불평등을 줄이며, 통합되고 발전된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을 높일 것

– 어머니, 어린이, 여성의 건강을 우선할 것

– 통합된 국가보건체계를 뒷받침하기 위해 민간부문, 비정부 부문, 지역사회 등 모든 파트너와 협력할 것.

보편성과 평등, 취약 계층에 초점이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하지만, 헌법과 국가 정책이 제대로 실천되고 효과를 발휘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세계적으로도 가장 훌륭한 헌법과 건강권 조항이 있었지만, 한 마디로 그 성과는 실망스러웠고 지금도 그렇다.

평균수명을 비롯한 건강지표는 ‘해방’ 이전보다 오히려 나빠졌고, 결핵과 말라리아, 에이즈 같은 전염병들은 더 기승을 부렸다. 짧은 시간 안에 쉽게 극복되지 못할 구조적 요인이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했다. 국가건설 시기의 아픔이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건강권을 실현에 크게 진전이 없었던 이유는 한두 가지로 정리하기 어렵다. 간접적으로는 물적 토대로서의 경제상황과 사회문제가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이런 사정은 우리에게도 이미 잘 알려진 것들이다. 예를 들어, 흑인의 소득과 고용, 경제적 불평등은 단번에 좋아질 수 없다. 또한, 정부 재정의 고갈과 민영화로 물과 전기 요금이 폭등했다. 건강을 ‘사회적 결정 요인’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국가적 후퇴가 당연해 보인다.

어디 구조적 요인만 있겠는가. 정부와 정책의 실패 역시 힘을 보탰을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많은 사회정책이 신자유주의 노선을 따른 것을 원인으로 지목하는 사람도 있다. 정부의 재정 적자(따라서 전체 재정 지출)를 줄이도록 강제한 국제 금융기관의 압력은 우리에게도 낯익은 것이다. 국가의 역할이 줄어들면 민간이 영역을 확장하는 것이 어디에나 같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만델라의 지도력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한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에이즈 정책의 실패가 두드러진다. 남아공에서 에이즈보다 중요한 보건문제는 찾기 힘들다. 그러나 만델라 정부는 충분한 자원과 적절한 정책을 동원하지 못했다 (유기용제를 치료제로 채택하기도 했다).

더 심각한 실수는 에이즈 문제를 위기로 규정하고 정치 의제로 만들지 못했다는 것이다. 만델라 시기까지만 하더라도 에이즈, 그리고 이와 연관된 성의 문제를 공개적으로 거론한다는 것은 금기 사항 중 하나였다. 정치와 선거에서는 더욱 그러했다. 만델라도 에이즈를 이야기하는 것을 가급적 피했던 것이다.

남아공의 국가 건설은 아직도 진행되는 과정 가운데에 있다. 그 과정이 힘에 겨운 것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건강권 실현의 꿈 역시 갈 길이 멀다. 2009년을 기준으로 할 때, 일인당 국민소득은 1만 달러 수준이지만, 평균수명은 채 60세를 채우지 못한다. 건강과 의료의 불평등도 극심하다.

이런 점에서 새로운 국가 건설 시기에 만델라의 역할은 ‘실패’까지는 몰라도 적어도 크게 ‘성공’한 것으로 평가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좀 더 자세한 평가는 국제사회의 몫이자 우리의 미래 역할이기도 하다.

 

복잡한 국제 관계와 사회경제적 역동 속에서 인권의 지향을 현실로 만들어내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만델라가 우리에게 남긴 교훈이다. 그러나 역사적 평가가 무슨 흑자-적자의 장부 맞추기가 아니라면, 인권 그리고 건강권이라는 보편의 유산에 좀 더 주목해야 한다.

건강할 권리는 분명 선험적 차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또한 현실에서 ‘발견’되는 과정을 통해 확장되고 굳어진다 (윌리엄 탤벗 지음, 은우근 옮김, <인권의 발견>, 한길사 펴냄). 만델라는 그 경험을 우리에게 남겼다. 모범으로서의 이 유산은 우리 사회에도 소중한 자산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

 

* 에이즈를 드러내는 데에 소극적이던 만델라는 대통령을 퇴임한 이후에 달라진다. 공개적으로 문제를 드러내고 의제로 만드는 데에 앞장섰다. 2005년 아들이 에이즈 때문에 사망했다고 공개적으로 발표한 것이 대표적 사건이다. 때로 자신의 정치, 사회적 명성을 활용하는 것도 망설이지 않았다. 지금은 전세계적으로 유명해진 “HIV 양성” 문구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대중 앞에서 나서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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