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 논평

2013년을 보내며 – 위기의 징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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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이 올해의 마지막 날이고, 모래는 다시 새해다.

 

이번 논평의 주제는 모두들 예상한 것일지 모른다. 그렇다. 되돌아보기다. 너무 뻔하달 수도 있지만 하는 수 없다. 일부러 그렇게 해서라도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낫지 않을까.

그렇다고 여느 언론의 회고처럼 갖가지를 망라하는 것은 곤란하다. 요즘 들어 대놓고 민낯을 드러낸 사납고 어지러운 권력이 한 해의 기억을 모두 지배하기 때문에 그러기도 어렵다.

한 해 동안 주로 건강과 보건의료를 시비해 온 만큼, 같은 맥락에서 2013년을 정리한다.

 

1.

무엇보다 민주주의의 후퇴를 먼저 지적해야 하겠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후퇴라기보다는 노골적인 공격이라 해야 맞다. 한국 사회를 설명하는 틀이었던 ‘1987년 체제’의 안정성을 의심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모든 사례를 다 늘어놓을 필요는 없다. 몇 가지만으로도 위기의 증거들은 가득하다.

아무래도 제일 앞자리는 권력 기관과 군의 선거 개입과 처리 과정. 쉴 새 없는 터지는 불안정의 다른 징후들 때문에 기억과 망각을 되풀이 했지만, 심판은 현실에서도 역사에서도 아직 완결되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더할 수 없이 중대한 민주주의의 후퇴임이 분명하다. 게다가 짐짓 아무 것도 아닌 일로 여기는 집권 세력의 퇴영적 역사 인식이 아찔하다.

‘종북’ 몰이로 대표되는 외부의 적 만들기라는 광풍. 여전히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온실 구실을 한다는 점에서, 완전히 되살아난 역사의 유물이라 할 만하다. 제법 체화되었다 싶었던 정치적, 시민적 권리조차 정말 가볍게(!) 휴지 조각으로 만들었다.

삼권분립과 대의제 민주주의라는 허울만 흔들리는 것이 아니다. 실질적 민주주의가 심각한 위기 상황에 있는 것이 더 중요하다. 민주주의 제도의 존재 가치 한 가지를 다시 확인하자. 서로 다른 사회경제적 이해관계의 긴장과 갈등은 필연적이다. 하지만, 비폭력적인 수단을 통해 그것을 정치사회 체계로 통합해 내는 것이 핵심 아니던가.

그런 의미에서 이제 ‘깊은’ 민주주의가 (그 허약한) 뿌리까지 뽑힐 참이다. 교직원 노동조합에 대한 공격이 그렇고, 민영화를 반대하는 철도 파업에 대응하는 불퇴전의 ‘군사 작전’이 또한 그렇다.

민주주의의 문화와 일상적 실천이 크게 약화된 것도 가볍게 볼 수 없다. 현실 정치에서 가장 두드러지지만 관료체계와 행정에서의 퇴행도 못지않다. 이른바 주류 언론이 한껏 힘을 보태고 있으니, 그렇지 않아도 약해 빠진 기반은 더욱 위태롭다.

 

2.

복지국가로 가는 길이 어렵고 험난하다는 사실을 거듭 깨우친 한 해였다. 멀리 갈 것 없이 대통령 선거 공약이 쪼그라들고 버려진 과정이 이를 잘 말해 준다.

공약으로 치면, 올해 초만 하더라도 그래도 노력하는 시늉은 하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단지 일 년 만에 공약을 말하는 사람은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렵다. 복지국가는 어느새 시대착오라도 된 듯 어색하다.

겉으로는 재원의 논란을 벗어나지 못했다. 증세를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사회적으로 확인한 것이 성과라면 성과다. 그러나 경제가 복지를 압도하는 힘의 불균형에 어떤 의미 있는 영향도 주지 못했다고 해야 솔직하다.

재원이라는 기술과 실무를 넘어 복지 확대(더 정확하게는 복지 ‘정상화’라고 흉내 내야 한다)의 ‘추진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박근혜 정부의 복지국가 약속을 ‘수동 혁명’에 빗댄 논의도 있었지만, 수동으로는 한 걸음도 쉽지 않다는 것이 명확해졌다.

느리고 작은 ‘개혁’은 안 할 수 없을 것이라고들 했다. 그러나 그 개혁조차 앞에서 끌거나 뒤에서 미는 힘이 미약하니 말과 흉내로 그친다. 반(反)복지의 언어와 이데올로기조차 이기기 힘들다.

형식과 수사에서조차 복지가 후퇴한 것은 앞서 말한 퇴행하는 또는 부실한 민주주의와 무관하지 않다. 임시방편의 말을 강제할 실제적인 힘이 없는 것이 곧 지금의 곤궁한 민주주의를 설명한다.

 

3.

시장과 자본의 공세는 더욱 강화되었다. 얼마 사이에 KTX 민영화와 의료 영리화가 불거졌지만, 진주의료원 폐원 사태는 일찌감치 이런 경향을 예고했다. 이와 함께 수많은 규제 완화와 자유무역협정 몰이는 시장에 대한 굳은 ‘신앙’을 상징한다.

그뿐 아니다. 꼭 1년 전쯤 우리 사회의 화두가 되었던 경제 민주화는 가뭇없이 사라졌다. 처음부터 손톱만큼의 믿음도 갖기 어려웠지만, 아예 최소한의 체면치레도 포기한 듯하다.

물론, 사정이 이리 된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복지국가 담론과 마찬가지 사정이 작용한다. 시장과 자본의 전횡을 막을 힘(그리고 그 토대)이 허술하고 약한 것이 이유다. 아무리 말이 좋아도 ‘물리적’ 토대가 없으면 공허하다.

그래서 다시 부실한 민주주의의 문제로 돌아간다. 그 중에서도 아주 일부 계층의 사회경제적 이해관계만 대변하는, 극도로 치우친 권력 지형이 핵심이다. 지난 한 해 동안 진전하기는커녕 오히려 후퇴했다.

 

4.

앞서 말한 세 가지 추세의 원인을 자칫 어떤 한 사람 탓으로 돌리기 쉽다. 물론, 전혀 설득력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권력의 독점과 (모든 영역과 범위에 걸친) 민주주의의 취약성이 체제를 ‘의인화’ 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한국 사회의 지난 일 년을 모두 설명하기는 부족하다. 좀 더 구조적 요인을 보태야 한다. 바로 한국 자본주의가 봉착한 위기와 자본(그리고 그 이익을 대변-대표하는 국가)의 거친 대응.

이유가 무엇이든, 결과적으로 한국 자본주의의 위기 징후는 점점 더 심화되고 있다. 소득은 정체되고 가계 빚은 사상 최고 수준이다. 실질적인 실업과 빈곤의 수준은 공식 통계를 훌쩍 넘는다. 그 결과 당연하게도 더욱 악화되는 모든 종류의 양극화.

사정이 좋아진다고 자신하기 어렵다. 수출과 경기가 좋아진다고 하지만 한 쪽에만 치우친다. 대기업의 ‘나홀로’ 성장은 연관 산업의 부가가치와 일자리로 이어지지 않은지 오래다. 게다가 뚜렷한 성장 ‘동력’을 찾기 어려운 것이 한국 자본주의의 위기를 더하고 있다.

이런 위기에 대한 초조함이 박근혜 정부 일 년을 상당 부분 설명한다고 봐야 한다. 그리고 그 대응의 대부분은 당연히 자본 쪽으로 균형추가 가울어져 있다. 물리적으로나 상징적으로나 다른 힘을 눈치 볼 필요가 없으니 일방통행은 당연하다.

그런 점에서 지난 일 년을 설명하는 추세 – 민주주의의 후퇴, 복지의 위축, 시장주의의 공세 강화 – 는 구조적이고 경향적이다. 앞으로도 상당 기간 비슷한 양상을 보일 것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집권 세력(개인으로나 집단으로나)의 특성을 같이 고려해도 설명은 달라지지 않는다.

 

한 해를 이렇게 뒤돌아 보다 보니 분위기가 조금 어둡다. ‘회고’가 새해의 전망으로 이어지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사람이란 사회적 맥락에 수동적으로 적응하거나 종속되는 일면적 존재가 아니지 않은가. 더구나 위기란 또 다른 기회임에야. 잊지 말자.

 

한 해 동안 서리풀 논평을 애독해 주신 독자 여러분, 어떤 처지와 경우라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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