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서

[국일고시원 화재 참사 7주기 추모 성명] 참사의 흔적은 사라져도 기억과 반성은 계속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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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1월 9일, 7명의 목숨을 빼앗고 11명을 다치게 한 종로구 국일고시원 화재 참사가 발생한 지 7년이 지났다. 돌아간 이들은 월세 몇 만원을 아끼기 위해 창문조차 없는 ‘먹방’에 살던 기초생활수급자, 일용노동자, 이주민이었다. 그들이 아낀 몇 만원은 결국 목숨값이 되었다. 국일고시원 화재 참사는 하늘을 뚫을 듯한 빌딩 숲 사이, 창문과 스프링클러조차 없는 동굴 같은 방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오래된 사실을 일깨웠다. 화재 직후 국토교통부와 행정안전부, 소방청 등 정부와 서울시는 이와 같은 죽음을 막겠다며 앞다퉈 대책을 발표하였다.

 

나아진 것 없는 고시원의 주거환경

정부는 다중이용업소법을 개정하여 2022년 6월 말까지 모든 고시원에서 간이스프링클러를 설치하도록 하고, 그 비용의 일부를 정부와 지자체가 지원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화재 대책만으로 고시원의 주거환경을 개선할 수는 없다. 정부는 2020년 12월 15일, 건축법 시행령을 개정하여 고시원의 ‘실별 최소 면적, 창문의 설치 및 크기 등의 기준’을 정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이는 ‘건축기준’으로 이미 영업 중인 고시원에는 적용할 수 없어 정작 열악한 고시원에는 무용지물이다. 더욱이 건축기준을 지방정부의 건축조례로 정하도록 해 중앙정부의 책임을 회피하였다. 그나마 고시원 건축기준(다중생활시설 건축기준)이라도 둔 지자체는 전국 17개 광역시도 중 5개에 불과하다. 서울시는 국일고시원 참사 재발을 막겠다며 2021년 ‘서울특별시 주거안전 취약계층 지원에 관한 조례’를 제정하였으나, 이 역시 안전관리에 치우친 한계가 있다. 그나마 조례가 정한 ‘주거안전 관리계획’, ‘표준계약서’ 작성 비치와 같은 주요 조항들은 시행 5년이 되도록 마련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고시원 거주자들은 면적, 채광, 통풍, 위생, 편의시설 등 열악한 구조·환경, 운영자들의 불법 부당한 규칙과 통제, 강제퇴거와 같은 주거권 침해 위협 속에 불안정한 주거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고시원, 쪽방… 주거취약계층에 대한 주거지원 강화해야

고시원, 쪽방, 여관·여인숙 등 비적정 거처에 거주하는 주거취약계층의 주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이들 거처의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대책, 적정 주거로 신속히 이전하도록 하는 대책이 각각 마련되어야 한다. 첫째, 비적정 거처의 주거환경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최저주거기준’이 개정되어야 한다. 2015년 제정된 주거기본법은 최소한의 주거수준의 지표로서 ‘최저주거기준’을 설정하고, 5년마다 타당성을 재검토하게 하고 있다. 그러나 현행 최저주거기준은 2004년 주택법에 근거해 제정(2011년 1회 개정)된 것으로 주택에만 적용된다는 한계가 있다. 또한, 내용에 있어서도 주거의 질을 결정할 ‘구조·성능·환경 기준’이 “양호”, “적절”과 같이 추상적 용어만 나열하고 있어 지표로서의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모든 인간 거처에 적용되며, 주거로서의 적절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고, 강행력 있게 적용되는 최저주거기준이 마련돼야 한다. 또한 고시원과 마찬가지로 좁고 열악한 쪽방의 주거환경 개선을 위해 쪽방 지역 ‘공공주택사업’을 신속히 시행해야 한다. 특히, 발표 이후 아무런 진척도 없는 서울역 인근 동자동 쪽방 일대에 대한 공공주택 지구의 지정이 시급하다. 둘째, 비적정거처에서 적정한 주거로 신속히 이전할 수 있도록 가칭 ‘주거취약계층 주거지원법’이 제정되어야 한다. 비적정 거처 거주자들에게 임대주택을 공급하는 ‘주거취약계층 주거지원사업’은 2004년 시범사업 이후 20년 이상 진행되고 있으나 국토교통부 ‘훈령’이라는 제도적 불안정성, 부족한 물량, 주거의 질과 입지 등 많은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수십만 가구를 지원 대상으로 하는 제도인 만큼 입법을 통해 적절한 위상과 내용을 갖추도록 해야 한다.

 

비극의 순환을 끝내자

국일고시원 건물은 철거되고 있다. 관수동 일대 도시정비형 재개발 정비계획에 따라 국일고시원이 있던 자리엔 용적률 1,199%의 25층짜리 빌딩이 들어설 예정이다. 참사에 대한 제도적 반성이 주춤대는 것과 달리, 개발이익을 탐하는 욕망은 거침없다. 지금도 서울시 내 수많은 고시원 거주자들이 재개발, 용도변경 등의 이유로 아무런 주거대책도 없이 내쫓기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는 이런 현실에는 무감한 반면, 재개발·재건축 임대주택 의무공급 비율을 축소하도록 국토부에 요청하겠다는 등 역진적인 정책에 골몰하고 있다.

 

전체인구 집단 대비 4배를 넘는 홈리스의 사망률은 열악한 주거가 얼마나 큰 해악인지 단적으로 드러낸다. 2025홈리스추모제를 준비하는 우리는 홈리스의 죽음은 모두의 주거권 보장에 실패한 정부와 지자체의 책임임을 명확히 하고자 한다. 고시원과 같은 비적정 거처의 주거환경 개선, 신속한 공공임대주택 제공을 위한 법제 마련을 통해 살림을 위한 주거가 죽음의 입구가 되는 비극의 순환을 끝내자.

 

2025년 11월 8일

2025홈리스추모제공동기획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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