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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인 간호사에게도 노동인권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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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민 (시민건강연구소 회원)

 

병원에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의료인이 간호사임에도 ‘의료계’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이 의사다. 물론 환자의 병을 진단하고 치료 방법을 결정하는 게 의사의 일이고, 우리가 치료를 시작하기 위해 가장 먼저 봐야 하는 의료인이 의사이기에 이러한 의식의 흐름은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그러나 외래 진료 외에 병원에 입원하게 되면 치료에 중심이 되는 의료인은 간호사다. 환자의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혈압, 체온 등을 측정하고, 투약과 주사를 전담하여 약품을 투여하거나 외상 치료를 하면서 매일 환자의 증상들을 관찰하여 기록한다. 이 기록은 다음 교대되는 간호사와 의사에게 전달되어 환자의 진단을 돕는다. 이 외에도 검사나 수술 등을 받을 수 있게 준비하거나 의사의 치료 시술을 보조하고, 환자와 가장 물리적으로 가까운 만큼 필연적으로 이들에 대한 돌봄도 수행하게 된다.

 

이 돌봄은 사실상 의료의 질과 같다. 우리 연구소가 앞선 많은 글에서 짧은 진료 시간과 위계적 진료 시스템을 비판하고, 환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해왔듯이(☞관련 기사: 바로가기1, 바로가기2), 치료 과정에서 환자에게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환자의 불안과 고통을 진지하게 고려하는 것들이 의료의 질을 높인다.

 

그러나 코로나19 이후 발생한 중증 환자의 증가, 의정 갈등으로 인한 의료 공백은 한국의 만성적인 의료 인력 부족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대응은 대다수 간호사에게 돌아갔다(☞관련 기사: 바로가기). 병원 인력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긴 하지만 간호사 1명이 담당하는 환자 수는 지나치게 많다. 한국에는 간호사 1명이 담당할 수 있는 환자 수에 대한 법적 기준이 없다. 의료법에 간호사 배치 산정기준이 있기는 하나 이마저도 2008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2023년 기준 한국의 병원 병상 수는 1,000명당 12.6개로 OECD 평균 4.2개보다 3배 많은 수준인데, 간호사는 5.2명으로 OECD 평균 8.4명보다 적어 간호의 부담이 매우 크다. 생각해 보라. 입원한 환자라면 중증도가 높을 텐데 고작 간호사 몇 명으로 몇십 명의 환자를 보는 게 과연 제대로 된 처치를 한다고 볼 수 있을까?

 

실제로 업무량 과다로 인해 누락된 간호가 생기고, 이 과정에서 간호사들은 엄청난 직무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환자의 안전에 책임지지 못해 의료 사고까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환자의 간병비 부담과 환자의 돌봄 고통을 줄이기 위해 도입된 간호간병통합서비스는 기존의 인력으론 의료의 질을 높이기는커녕, 오히려 숙련된 간호인력의 이탈률을 높인다. 숙련된 인력의 이탈은 환자 안전의 위험과 신규 및 기존 인력의 부담을 높이며 노동환경과 의료 질 저하라는 악순환 고리를 만든다. 오늘 소개하는 논문은 병동 내 부족한 간호인력 구성과 열악한 노동환경이 어떻게 이직 의도로 이어지는지 간호사의 업무 경험을 분석한 글이다(☞논문 바로가기: 병동 근무 경력간호사의 이직의도 경험).

 

연구자들은 상급종합병원 병동에서 3교대로 근무하며 임상 경력이 최소 12개월 이상인 간호사를 대상으로 자료를 수집하였다. 이들은 1인당 담당해야 하는 환자 수가 많아 업무량이 과중되면서 규정된 근무시간을 초과하는 것이 일상화되어 있었다(초과근무 수당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다 보니 근무 내 기본적인 휴식 시간을 보장받지 못하고 일하는 경우도 많았다. 일을 하느라 식사를 거르는 경우는 물론, 일하는 동안 화장실을 가지 못하는 날도 잦았다.

 

이렇게 장시간 노동으로 인한 신체적 피로는 3교대로 인해 더욱 악화되었는데, 인력 부족으로 인해 교대근무 일정이 촘촘하게 배치되면서 근무조의 구분이 뚜렷하지 않아 이들의 근무와 휴식의 균형이 깨지고 있었다. 연차도 원하는 때 이용하지 못하고 교대근무에 따라 강제로 할당되는 경우가 많았고, 이로 인한 불규칙한 수면 패턴과 만성적인 피로는 건강을 위협하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했다.

 

또한 간호 업무 외에도 병원 내 비품 관리, 병원 평가 준비, 연구 참여 등 부가적인 업무가 추가되어 부담이 더욱 가중되었다. 임상 경험이 축적될수록 업무 부담은 증가하는 데 반해 신규 간호사와 경력 간호사의 급여 차이가 크지 않았다. 또 조직적 지원과 보상 체계가 거의 없다는 점도 간호사들이 이직을 고민하게 만드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인력 부족으로 인해 신규 간호사들의 교육도 충분히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었다. 교육 전담 인력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연차가 쌓인 간호사가 기존에 과중된 업무에서 추가로 신규 간호사의 교육까지 해야 하기 때문이다. 경직되고 위계적인 조직 문화 속에서 신규 간호사들은 교육과 업무 수행 과정에서 충분한 지지와 피드백을 받지 못하는 것은 물론, 업무가 공정하게 배분되지 않아 힘든 업무를 떠안는 경향이 강했다.

 

또한 백업할 인력이 없기 때문에 환자 상태와 관련한 실수에 대한 압박과 긴장감, 환자 및 보호자에 대한 지속적인 감정노동은 정서적 탈진을 불러일으켰다. 감정 소진이 심해질수록 심리적 여유가 부족해지면서 환자를 대하는 태도가 기계적으로 변하고, 간호 행위에 대한 의미를 잃어버린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간호사들은 병동이 높은 신체적·정서적 노동 강도를 경험하는 노동환경이라고 인지하고 있었고, 높은 업무책임감에서 비롯되는 심리적 스트레스와 감정 소진을 심각하게 경험하고 있었다. 건강을 회복하기 위한 공간(병동)에서 간호사 건강이 악화되는 현실이 꽤나 아이러니하다. 간호사들 사이에서는 일하다 쓰러지면 병원이라 응급처치는 빠를 것이라는 식의 블랙 유머가 떠돈다. 간호사도 사람이고 노동인권이 있다. 아픈 사람을 챙기기 위해서는 당연히 돌보는 사람 역시 건강해야 하지 않겠는가? 간호사 노동환경의 처우 개선은 간호사의 노동인권 보호 일환일 뿐 아니라 우리가 받는 의료서비스 질 개선과도 같다. 의료 질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당신, 간호인력 배치 기준 개선과 법제화에 관심을 가지고 연대하자.

 

* 서지정보

이원진, 길아람, 방윤이. (2025). 병동 근무 경력간호사의 이직의도 경험. 산업융합연구, 23(6), 107-118.


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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