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교양잡지 “고래가 그랬어” 262호 ‘건강한 건강 수다’>
글_ 정혜승 이모는 아플 걱정, 공부할 걱정 없는 세상을 만들고 싶은 변호사예요.
그림_ 오요우 삼촌
어떤 유명인이 정신과적 질환을 앓고 있었어요. 그는 치료를 위한 약을 처방받으려고 매번 병원에 가지 않았어요. 대신 의사에게 전화로만 상황을 설명하고 평소에 본인을 도와주는 지인이 병원에 방문해 약 처방전을 받아왔어요.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유명인과 의사 선생님은 어려움에 처하고 말았어요.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처방하는 약물 중에는 중독성 있는 것들이 있어요. 잘못 사용하거나 과하게 사용하는 오남용을 할 경우 환자의 건강에 큰 문제가 생길 수 있는 것들도 있어요. 그래서 일부 약물들은 일반적인 약과 구분하여 엄격히 관리되고 있지요. 위 사례같이 환자가 직접 병원을 방문하지 않았는데도 약물이 처방된다면 어떤 문제가 생길 수 있을까요? 그 환자에게 그 약이 꼭 필요했던 것일까? 혹시 불필요한데도 치료 목적이 아닌 오남용을 위해 시스템을 악용하는 것은 아닐까? 이런 점을 우려해볼 수 있어요. 그래서 경찰도 수사에 나선 것이겠지요. 하지만 이모는 위 사례를 보고 다음과 같은 생각도 해보았어요.
유명인은 왜 직접 병원에 가지 않았을까요? 물론 일정이 바빴을 수도 있고 몸과 마음이 힘들어서 가기 어려웠을 수도 있어요. 한편으로는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받는다는 것이 주변에 알려지면, 그 유명인은 잘못한 게 전혀 없는데도 사람들로부터 억측이나 비방에 시달릴 것을 걱정했을지도 몰라요. 정신건강이 상했을 때에도 편견 없이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우리 사회는 아직도 비뚤어진 시각으로 환자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아요.
만약, 환자가 의사 선생님과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며 진료를 받아왔기 때문에 직접 병원에 가지 않고 전화나 영상으로도 현재 상태를 잘 설명하고 상담을 받을 수 있었다면 다른 사람이 처방전을 받아오는 게 문제일까요? 의료법은 환자를 직접 진찰한 의사만이 처방전을 작성하게 하고, 진찰받은 환자가 직접 처방전을 받아오도록 규정하고 있어요. 왜 이렇게 정했을까요? 먼저, 환자를 제대로 진찰해야만 제대로 된 처방이 이루어질 수 있어요. 그리고 환자가 아닌 다른 사람이 처방전을 받아서 약물을 엉뚱한 데 사용하는 것을 막는 조치이기도 해요. 하지만 어떤 환자는 움직이는 것 자체가 힘들어서 대신 처방전을 받아줄 사람이 필요한 경우도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의료법은 예외적인 상황에서 환자의 가족들이나 노인의료복지시설 근무자, 장애인 거주시설 근무자 등이 대신 처방전을 받아도 된다고 규정하고 있어요. 그런데 의료법이 말하는 가족은 가족관계증명서 같은 법적인 문서로 증명할 수 있는 사람들에 한정되어 있어요. 즉, 아무리 환자가 원하더라도 몇십 년을 함께 산 친구나, 누구보다 가깝게 자신을 돌보아주는 지인은 환자 대신 처방전을 받아올 수 없어요. 약물의 오남용을 막고 환자의 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규정이라지만 법률이 너무 고집불통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정신과적 질환을 앓는 환자들 중에는 마음이 너무 힘들어서 집 밖에 나가기조차 힘들어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이런 사람들이 의사 선생님과 대화를 하고 제대로 된 약물치료를 받으려면 병원에 가겠다는 마음의 결심을 하고 힘든 몸을 끌고 병원까지 가야 해요. 병원만 가면 되나요? 미리 예약도 해야 하고 앞 사람 진료가 길어지면 기다리기도 해야 해요. 지금은 코로나19와 의정사태 등을 이유로 잠시 전화로 진료하는 것이 허용되어 있지만(이모가 지난 253호에 썼던 <병원에 가기 어려울 때 진료받을 방법은 없을까요?>를 참고하세요),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만은 전화로 할 수 없게 되어 있거든요.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처방하는 약물이 워낙 위험한 것이 많기 때문에 그렇다고는 하지만, 다른 진료과목보다 정신건강의학과 진료야말로 문 밖에 나서기 힘든 사람들을 위해 의사가 환자에게 먼저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