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건강렌즈로 본 사회> 2014년 1월 29일자 (바로가기)
현재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정신건강에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는 국내외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어린 시절 가정환경이 손자·손녀를 돌볼 나이의 노인이 되도록 영향을 미친다면 어떨까? 최근 바르바라 샨 독일 라이프니츠 사회과학연구소 연구원이 <사회과학과 의학지>에 발표한 연구 결과를 보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이 논문은 어린 시절의 가정환경과 학력이 노년기의 정신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분석했다. 연구 대상은 유럽의 ‘건강, 노화와 은퇴에 관한 패널 조사 자료’를 이용해, 50살 이상인 2만716명의 자료를 분석했다. 이들의 현재 정신건강 상태는 우울한 기분, 비관적인 생각, 자살 성향, 과도한 죄책감, 수면 장애, 식욕 감퇴 등 12개의 문항으로 평가했다. 어린 시절의 가정환경으로는 10살 때 집에 있던 책의 분량, 방의 개수, 가장 직업의 전문성 수준 등을 조사했다. 또 집안 내부에 욕조나 화장실이 있는지, 중앙난방식인지 등 주택의 구조적 특성도 조사했는데, 이런 가정환경 지표는 부모의 학력과 경제적 수준을 함께 측정함으로써 가정 전체의 사회경제적 수준을 잘 나타내어 준다는 장점이 있다.
분석 결과에서는 유년기 가정환경이 좋지 않을수록 50살 이상에서 정신건강 상태가 나쁜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정신건강 상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다양한 요인들을 고려해 분석했음은 물론이다. 예를 들어 현재의 경제적 상황, 취업 여부, 장애 여부, 과거 실직 경험, 성별, 나이, 정신적 장애 여부, 배우자 유무 등을 모두 고려해도 무려 40년 전 어릴 적 가정환경이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스스로 선택할 수 없었던 어린 시절의 가정환경이 늙어 죽을 때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는 사실 매우 절망적이다. 다행히, 논문의 저자는 이런 절망적인 결과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을 한 가지 제시하고 있다. 분석 결과를 좀더 살펴보면 학력이 높은 집단에서는 유년기 가정환경과 노년기 정신건강 상태 사이에 관련성이 없었다. 학력이 높을 경우 유년기 가정환경과 관계없이 정신건강 상태가 양호했다. 반면 유년기 가정형편이 좋았더라도 학력이 낮으면 정신건강 수준이 낮았는데, 특히 나이가 들수록 유년기 가정형편이 좋지 않고 학력이 낮은 집단과 비슷한 수준으로 정신건강이 나빠졌다. 즉 학력이 노년기 정신건강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취약한 가정환경에서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평등한 교육 기회를 제공해 학업 성취를 이루도록 돕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가정환경이 그대로 교육 기회의 차이로 이어지도록 내버려두는 것은 당장 현재뿐 아니라 40년이 흐른 뒤에도 건강 불평등이 지속되도록 하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해마다 연말에 예산 부족을 이유로 교육복지 우선지원 사업의 존폐를 논하는 것을 보면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다.
오는 6월에 치러질 지방선거 이야기가 벌써부터 뜨겁다. 이번 선거에서는 어린이들의 평등한 교육 기회를 보장하는 목소리가 힘을 얻기를 고대한다. 늙어 죽을 때까지 어릴 적 집안형편이라는 굴레를 지고 가야 하는 사회는 너무 잔인하지 않은가?
권세원 시민건강증진연구소(health.re.kr) 영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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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문에 소개된 논문의 서지 정보는 다음과 같습니다.
Barbara Schaan. The interaction of family background and personal education on depressive symptoms in later life. Social Science & Medicine. 2014;102:94-102.
2. 참고사이트 및 참고자료
1) 교육복지우선지원사업
2) 전혜정, 김명용(2013) 아동기 사회경제적 위기요인과 노년기 우울: 잠재계층분석을 활용하여. 한국노년학, 33(2):439-460.
3) 서연숙(2011) 중고령자의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른 건강수준 연구. 한국노년학, 31(4):1135-1153.
4) 김진영(2007) 사회경제적 지위와 건강의 관계 – 연령에 따른 변화를 중심으로. 한국사회학, 41(3):127-1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