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응급의료 시스템의 부재와 현실
강제윤 (사단법인 섬연구소 소장)
2020년 5월 백령도에서는 갓난아이를 둔 20대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응급수술을 받아야 했는데 기상이 악화돼 응급헬기도 뜰 수 없었다. 낮 11시경에 사고가 났지만 밤 10시가 돼서야 해군 고속정을 타고 들어온 인천 가천대 길병원 의료진의 수술을 받았다. 그러나 너무 늦은 수술 탓에 끝내 목숨을 잃고 말았다. 환자는 섬에 살았기 때문에 목숨을 잃은 것이다. 육지에 살았다면 살았을 목숨이다. 아니 응급수술만 조금 더 일찍 받았다면 살았을 목숨이다. 같은 해 10월에도 백령도의 50대 환자가 고열과 목 통증을 호소하며 병원에 찾아갔으나 1시간 만에 숨지는 일이 발생했다. 의료 시설과 의료진 부족 탓이었다. 2025년 2월에도 백령도 인근 소청도에서 뇌출혈로 쓰러진 주민이 골든 타임을 놓쳐 사망했다. 2월 21일 오전 6시 45분께 소청도 주택에서 70대 남성 A씨가 뇌출혈 증세를 보이면서 쓰러졌다는 신고를 받고 소청 출장소에서 행정선을 이용해 A씨를 백령도로 옮긴 뒤 백령병원에서 컴퓨터단층촬영(CT) 검사를 받게 했고 소방헬기로 인천시 남동구 한 병원으로 다시 이송시켰지만 3일 후 사망했다. 이송 과정에서 골든타임을 놓친 까닭이다.
2019년 8월에는 울릉도에서 심정지로 쓰러진 저동초등학교 행정실 직원 A(51)씨가 여객선으로 후송 도중 배 안에서 목숨을 잃었다. 8호 태풍 프란시스코의 북상으로 응급헬기 운항이 어렵게 되자 골든 타임을 놓치고 오후에 출항한 여객선으로 이송 중 배 안에서 사망한 것이다. 2018년에도 뇌출혈로 쓰러진 50대 울릉도 주민도 육지 이송 중 여객선 안에서 사망했다. 2016년 3월에도 울릉도 천부리 비탈진 야산에서 산나물을 채취하던 지역 주민 L(68.여)씨가 굴러서 추락 한뒤 헬기도 긴급후송됐으나 끝내 숨졌다. 모두 골든 타임을 놓쳤기 때문이다. 이처럼 육지 같으면 살았을 응급환자들이 섬에서는 목숨을 잃는 경우가 허다하다.
교통사고 사망 사건 이후 백령도의 한 주민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사고와 관련해 청원 글을 올렸다. “섬 내 자체 응급수술이 가능한 전문의료팀과 다양한 진료과를 배치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청원한 주민은 “섬이라는 이름 때문에 섬 자체 의료복지 등보다 관광상품, 시설, 특산물 등 외부적인 요소로만 변질해 가는 현실”이라며 “서해5도를 포함, 많은 섬들이 저희 섬과 같은 열악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너무도 정확한 지적이었다.
백령도 주민의 지적처럼 육지와 멀리 떨어진 백령도, 흑산도, 추자도, 거문도, 울릉도 등 먼 바다 섬들은 응급 상황에 더욱 속수무책이다. 울릉도에는 유일한 병원급 의료기관으로 울릉의료원이 있다. 그 외는 개인 치과와 한의원, 동물병원이 하나씩 있을 뿐이다. 울릉도에는 주민 9천명과 관광객, 건설노동자, 군인 등 관계 인구까지 포함하면 늘 1만 2-3천명이 상주한다. 그런데 달랑 하나뿐인 병원의 의사들은 대부분 인턴을 겨우 끝낸 견습의사들이다. 병원 전체가 군복무를 대체하는 공중보건의들만으로 운영되고 있는 셈이다. 경험 없고 전문 지식도 없는 견습 의사들 몇명이 1만명 이상의 목숨을 책임지고 있는 실정이다.
울릉의료원에는 직제는 있지만 정형외과와 안과, 이비인후과, 가정의학과는 담당 의사조차 없다. 그러니 다래끼 하나만 나도 육지의 병원에 가야 한다. 응급실도 있지만 경험 없는 견습 의사들뿐이니 응급환자가 발생하면 무조건 헬기나 경비정을 통해 육지로 나가야 한다. 그래서 여전히 제때 응급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하는 환자가 발생하는 것이다. 과거에는 산부인과, 정형외과 의사들도 있어서 응급수술을 받기도 했지만, 지금은 수술 능력 있는 의사들이 없으니 이 또한 무조건 육지로 나가야 한다. 병원이지만 병원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는 무늬만 병원이다.
울릉도의 경우 국립 경북대 병원과 협력 병원 MOU를 체결하고 있으나 의료진 지원 등 실질적인 협력은 거의 없다. 누구도 섬에서 근무하려 들지 않기 때문이다. 울릉군에서도 전문의료진 초빙예산을 마련해서 공모를 해봤지만 지원자가 없어서 실패하고 말았다. 몇 해 전 3명의 전문의 초빙을 위해 연 5억 원의 예산을 세웠지만 지원 의사가 단 한 명도 없었다. 1인당 연봉 1억 7천만 원으로도 초빙이 안될 정도로 의료진의 수급이 어렵다.
작은 섬들도 의료 상황이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섬 주민들에게 가장 절실한 기관은 면사무소도 파출소도, 농수협도 아니다. 의료시설이다. 특히 병의원이 없는 작은 섬일수록 보건소는 주민들의 생활에 절대적이다. 옹진군의 작은 섬 소야도 보건진료소는 소야도 사람들의 건강과 생명을 돌보는 소중한 기관이다. 보통 군 보건소 산하에 면 단위마다 보건지소가 있고 보건지소 아래 보건진료소가 있다. 대게 보건지소에서는 의대나 한의대를 갓 졸업한 공중보건의들이 병역 의무를 대신 해서 진료를 한다. 하지만 보건진료소에는 공중보건의 조차 없다. 대신에 임상 경험이 풍부한 간호사들이 특수교육을 이수한 뒤 소장으로 부임해 주민들의 건강을 돌본다.
여러 해 전 소야도 보건진료소장을 만나 섬 의료 상황에 대해 조사 한 적이 있다. 소장은 병원에서 오랫동안 간호사로 일하다가 진료소장으로 채용되어 4년간 전남 흑산면의 외딴 섬에서 근무한 뒤 옹진군 소야도로 부임했다. 소장은 흑산도 등 신안군의 섬들보다 웅진군의 섬들이 의료 여건이 낫다고 말했다. 아무래도 대도시인 인천과의 교통이 편리한 까닭이다. 그래서 환자를 돌보는데 따른 심적 부담도 먼바다 외딴 섬보다 덜하다고 했다. 응급환자의 경우에도 상대적으로 후송이 쉽기 때문이다.
보건진료소에도 정해진 근무 시간이 있지만 의료기관이 하나뿐인 소야도 같은 섬에서는 근무 시간이 따로 없다. 한밤중에라도 환자가 찾아오면 치료해 드려야 한다. 주민 대부분이 노인들인 소야도에서는 성인병과 만성질환, 퇴행성 관절염, 위염, 고협압, 당뇨 등이 가장 흔하고 중요하게 관리해야 할 질병들이다. 보건진료소는 치료보다는 주민들의 건강이 더 이상 악화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 더 큰 임무라 했다. 보건진료소장은 섬의 노인들이 고된 일로부터 좀 더 자유로워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것만이 병을 더 이상 키우지 않는 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통을 호소하면서도 끝내 손에서 일을 놓지 못하는 노인들이 안타깝다고 했다. 일을 하지 않는다고 굶는 것도 아닌데 노인들은 모두가 일을 그만두지 못했다. 습관 때문이기도 하고 불안 때문이기도 하다.
“노인들이 변하지 않는 게 있어요. 놀면 안 된다. 움직일 수 있으면 일해야 한다. 그러면서 일에서 못 벗어나요. 조개를 캐고 굴을 따고 악착같이 돈을 모아요. 일을 안 하면 아프시대요. 좀 쉬시고 자기 몸도 아끼시고, 인천의 자식들한테도 다녀오고 그러시라 해도 말씀을 안 들어요. 그 추운 겨울에도 바닷바람 맞으며 굴을 깨요. 거기다 끼니까지 거르시면서 일하니 안 아플 수가 없죠.”
소장은 노인들이 아픔을 호소하면 진통제를 주지만 그때뿐이다. 쉬지 않고 일을 하면 다시 아프다. “놀면 안돼”, “놀면 뭐해” 하는 사고가 뿌리 깊이 박혀 있어서 바꾸는 것이 쉽지 않다고 했다. 노인들은 그처럼 악착같이 일한 덕분에 자식들 기르고 교육 시키고, 먹고 살만큼 돈도 모았지만, 그로 인해 노는 것은 나쁜 것이라는 강박관념을 덤으로 얻었다. 노인들은 힘들게 일해서 모은 돈을 자신을 위해서는 절대로 쓰는 법이 없다. 손자, 손녀들 용돈을 주거나 더러 자식들 가계에도 보태준다. 그도 아니면 그저 돈 쌓이는 재미로 일을 한다.
“할머니들에게 ‘오늘은 좀 쉬세요’ 하면 ‘응 알았어’ 해놓고 또 일하러 가세요. 쉬면 불안하시데요. 흑산에서는 팔십 넘은 할머니들도 물질을 해요. 할머니들은 숨 꼴깍꼴깍 하시면서도 바닷속에 들어가셔야 편안하시데요. 큰 병이 의심되는 노인분들 한테는 큰 병원 가서 진료를 받아 보시라고 권해요. 그러면 ‘죽으면 그만이지, 이만큼 살았는데 뭘 진료를 받어.’ 그러세요.” 한다고 했다. 소야도의 사례에서 보듯이 노인 인구가 대부분인 섬들의 경우 큰 병보다 과도한 노동으로 생긴 고질병이나 노환이 문제다. 가정의학과 예방의학적 관점에서 지속적인 관리 시스템 마련이 요구된다.
섬은 대한민국의 의료 사각지대 중에서 가장 심각한 지역이다. 그래서 섬사람들은 육지라면 응급처치만 빨리 했어도 살 수 있는 목숨을 자주 빼앗기곤 한다. 바다라는 장애물이 골든타임을 놓치게 만들기 때문이다. 닥터 헬기가 있긴 하지만 악천후나 야간에는 뜨기도 어렵다. 가거도에 야간에 응급환자를 이송하려 갔던 응급헬기가 착륙도중 추락해 조종사가 사망한 사건도 있었다. 먼바다 섬들은 행정선이나 해경 선박을 이용해 이송되기도 하지만 6-7시간씩 걸리니 이 또한 골든타임을 놓치기 쉽다.
병의원은 물론이고 보건지소나 보건진료소 조차 없는 섬들도 많다. 공보의가 근무하는 제법 큰 섬의 경우도 심각하긴 마찬가지다. 대다수 공보의들도 의대를 갓 졸업하고 온 터라 임상 경험이 부족하거나 전혀 없기도 해 의사로서 역할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 숫자마저도 부족하다.
의료계에서는 의대생 숫자 늘리는 것을 목숨 걸고 반대하지만 정작 섬 같은 의료 소외 지역에는 근무하려 하지 않는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울릉도의 울릉의료원에서 연봉 연봉 1억7천짜리 의사 3명 채용 공고를 냈지만 지원자는 단 1명도 없었다. 상황이 이런데도 의료계에서는 의사증원을 반대만 한다. 의료계에서는 의료 소외지역 의료 문제 해결 방안을 내놓고 반대하는 것이 양심적인 행동이 아닌가 싶다.
노인들이 대다수인 섬 주민들은 간단한 질병조차 섬에서 치료받지 못하니 육지의 병원까지 오가야 한다. 1-2분 진료받기 위해 2-3일씩 시간과 돈을 써야 한다. 그것도 병든 몸을 이끌고. 보건지소나 진료소가 없는 진짜 오지 낙도는 한 달에 한 번씩 오는 병원선에 의지하기도 하지만 이 또한 쉽지 않다. 이런 작은 섬들은 접안이 어려워 제 한 몸 가누기 힘든 노인들이 보트를 타고 바다로 나가 사다리를 기어올라 간단한 문진 후 약 하나 타는 것이 전부다. 병원선 타는 것이 무슨 유격 훈련 같다. 차라리 의료진들이 보트를 타고 섬으로 들어가 방문 진료해 주는 것이 더 나을텐데 말이다. 진단 장비를 쓸일이 있으면 그때 모시고 나와도 된다.
일본의 경우 도서 산간 지역 의료 인프라 확충과 의료 서비스 제공을 위해 2025년까지 총 34조 3000억엔의 예산을 투입했다. 참으로 놀라운 정책이 아닌가? 정부 예산은 이런 곳에 쓰라고 국민들이 세금 내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재정 당국자들은 인구수가 적다는 이유로 섬의 의료, 해상 교통 문제 등 정주여건 개선 예산은 기를 쓰고 반대한다. 하지만 정작 섬 해양의 토건 사업에 연간 수조씩 쓰는 것은 잘도 승인해 준다. 똑같이 인구수 적기는 마찬가지인데 말이다.
그렇다고 섬에 무조건 병원 짓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섬 주민들이 섬에 거주하며 진료받고 치료받을 수 있는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하는데 예산을 아끼지 말자는 이야기다. 호주의 경우처럼 온라인 개인건강정보관리시스템을 구축해 의료 접근성이 떨어지는 섬 주민들 원격 진료의 연속성과 효율성을 높이는 것도 현실적 대안이다.
정부에서는 섬 개발을 위해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지난 30년 동안 도서종합개발 사업으로 3조1천억원의 예산을 투자했고, 향후 10년 동안 4차도서종합개발 사업으로 1조5135억원과 기타 예산 2조7624억원 등 4조가 넘는 예산을 섬에 투자할 예정이다. 거기다 해수부도 어촌 뉴딜 사업으로 어촌, 섬 등에 3조원의 예산을 투자했고 어촌 신활력 사업으로도 또 수천억을 투자했다. 그런데 정작 섬 주민들의 생명과 직결된 응급의료 시스템 구축 같은 데 배정된 예산은 거의 없다. 대부분은 물양장, 선착장, 다리 건설 등 토목사업과 관광 개발 사업들뿐이다. 대체 섬 주민 생명과 직결된 의료 여건 개선에 예산을 쓰지 않는 사업이 진정으로 섬 주민들을 위한 사업이기나 한 것일까? 진정으로 어촌 뉴딜, 어촌 신활력, 지속가능한 섬개발이 되려면 정부가 섬 주민들의 목숨부터 구하는 것이 우선이다. 정부는 섬 개발 예산을 근본적으로 수정해 주민 생명권과 직결된 응급의료 시스템 구축, 정주 여건 개선을 위한 여객선 공영제 등에 투자해야 마땅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