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 디지털 건강 연구를 위한 시론
정성식 (시민건강연구소 비상임연구원)
I. 서론
보건의료와 일상 건강관리 영역 전반에서 광범위한 디지털화가 진행되고 있다. 전국민 건강·의료 정보가 실시간 디지털 형태로 관계 기관에 축적되고 있고,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은 빠르게 성장하는 추세다. 규제에 막혀 있던 원격의료(비대면진료)는 코로나 팬데믹과 전공의 이탈 사태 등을 계기로 제도화 궤도에 성큼 올라선 상태다. ‘건강정보 고속도로(본인진료기록열람시스템)’ 구축 등 의료정보 열람과 전송을 용이하게 하는 의료마이데이터 사업도 본격화되고 있다. 진단과 치료, 예방에 인공지능(AI) 기술을 접목한 의료기기 개발과 도입도 한창이다. 웨어러블 기기를 통해 자신의 혈압, 혈당, 심박수와 심장리듬 등을 실시간 모니터링하는 것이 새로운 건강관리 관행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건강과 보건의료의 디지털화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인 것처럼 보인다. 어느 순간 ‘디지털’이라는 수식어조차 불필요해지는 때가 올지도 모른다. 개인의 선택권 보장과 편의성 제고, 조기 진단과 예방, 맞춤형 서비스 제공을 통한 건강개선 효과, 그리고
산업으로서 고용 창출과 경제성장에 기여할 것이라는 믿음 등 디지털 헬스에 대한 낙관적 전망을 뒷받침하는 설명은 차고 넘친다. 무엇보다 급속한 고령화와 돌봄·의료 인력 부족이라는 시대적 과제에 대응하려면 디지털 헬스를 통해 기존 시스템과 자원 활용을 효율화해야 한다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우려의 목소리가 없는 건 아니다. 주된 비판은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른 디지털 헬스케어 접근성의 격차, 건강·의료 정보 유출과 상업적 악용 가능성에 관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위험과 문제에 대처해야 한다는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디지털 헬스 발전은 지속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사회적 중론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공통된 인식의 형성은 기술 진보에 대한 강력한 믿음에서 기인한다. 건강·의료의 디지털화를 바람직한 또는 불가피한 시대적 변화로 인정하는 가운데, 이것이 사람들의 건강과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할 수 있도록 요구하고 개입하는 것이 합리적 태도로 간주된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처럼 진행되는 디지털화가 보편적 건강권 보장과 건강불평등 해소라는 ‘이상적’ 결과로 이어질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부족하다는 데 있다.
물론 ‘디지털 취약계층’의 디지털 헬스 접근성과 디지털 리터러시 역량을 강화하고, 이용자와의 협력 속에서 기술을 개발하며, 프라이버시 침해에 대한 제도적 안전장치를 마련하고, ‘디지털 건강 형평성’ 지표를 개발하고 모니터링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제언도 존재한다. 하지만 그 비중이 크지 않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 근본적 차원에서 디지털 헬스의 의미와 위험성을 묻는 비판적 인식과 태도가 미흡한 실정이다. 기술 발전의 과실이 사회의 불평등한 권력관계 속에서 부정의한 결과를 낳았던 지난 인류 역사를 돌아보더라도(애쓰모글루와 존슨, 2023) 디지털 헬스에 관한 근본적 질문의 실종은 우려스러운 일이다. 디지털 헬스를 둘러싼 사회적 질문의 수준과 빈도, 강도 등에 따라 이것이 만들어낼 미래의 모습은 크게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디지털 헬스의 발전·도입은 현재진행형이기에 그동안 보고된 경험적 연구 결과에 국한해 비판적 논의를 전개하는 것은 불충분할 수밖에 없다. 향후 디지털 헬스에 대한 비판적 연구와 논의를 심화하고 확장하기 위해서라도 이와 관련된 학문 분야의 이론들을 자양분으로 삼을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 글에서는 ‘비판 디지털 건강 연구(Critical Digital Health Studies)’의 지형을 간략히 그려보기 위하여 이를 처음 주장한 호주의 건강사회학자 데보라 럽튼(Deborah Lupton)의 논의를 살펴보고자 한다.
Ⅱ. 본론
- 럽튼의 ‘비판 디지털 건강 연구’
그동안 디지털 헬스의 문제점을 다룬 많은 경험적 연구는 원격의료나 모바일 앱, 개인정보 보호 등 특정 주제와 대상에 국한된 것들이었다. 반면 디지털 헬스라는 하나의 사회적 현상을 어떻게 이해할지에 대한 심층적이고 이론적인 접근은 드문 편이다. 이런 상황이기에 여러 학문 분야의 이론들을 차용해 디지털 헬스에 대한 비판적 논의를 전개하고자 한 럽튼의 작업은 주목할 만하다.
그가 디지털 헬스 영역 전체를 포괄하는 하나의 이론 체계를 기획한 것은 아니지만, 다학제적 접근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그가 제안한 ‘비판 디지털 건강 연구’에는 이를 토대로 더 확장되고 심화된 논의가 싹틀 가능성이 잠재되어 있다. 그는 지난 2017년 그동안 자신이 발표한 학술 논문들을 모으고 보완하여 단행본 <디지털 헬스: 비판적, 다학제적 관점>을 출판하였다(Lupton, 2017).
이 책은 영국 루틀리지 출판사의 ‘Critical Approaches to Health’ 시리즈 일환으로 발행되었다. 편집인은 책 서두에서 ‘비판’이란 “해당 분야의 주제와 작업에 대한 비판을 넘어 권력과 이익에 대한 일반적인 고려, 특히 건강의 다양한 영역에서 접근 방식, 연구 결과, 실천에 의해 누구의 이해관계가 옹호되고 소외되는지를 다루는 것”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이러한 비판적 의제에는 지식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사용되는지에 대한 성찰도 포함된다. 즉, 건강에 대한 비판적 접근은 인식론적·이론적 위치, 방법론과 실천의 문제를 고려하고, 건강이 더 광범위한 사회적 관계와 구조에 어떻게 얽혀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럽튼의 ‘디지털 헬스’ 역시 이러한 의미의 비판적 접근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이 책의 가장 중요한 관점은 디지털 헬스 기술이 ‘사회문화적 인공물’이라는 점, 즉 그 의미와 사용이 암묵적인 가정, 규범, 의미, 가치에 의해 뒷받침된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즉, 디지털 기술을 특정한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역사적 맥락에서 수행되는 다양한 주체들의 의사결정 산물로 간주하는 것이다. 아울러 그는 이 책에서 디지털 기술에 대응하여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건강과 의료의 새로운 형태의 실천, 정체성, 정치가 가진 함의를 강조한다.
그가 생각하는 디지털 헬스에 대한 비판적 관점과 접근은 다음과 같다. 먼저 신기술의 ‘혁명적’ 잠재력에 대한 기술-유토피아적 접근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디지털 기술의 의도하지 않은 결과와 기존 사회문화적 불이익 또는 사회적 주변화를 고착하는 잠재적 가능성을 파악하는 일이어야 한다. 이는 디지털 헬스에 내재된 권력관계의 문제를 다루고, 특정 사회 집단의 이익이 충족될 때 다른 집단의 이익은 어떻게 무시되거나 침해되는지 파악하는 과제를 의미한다. 여기에는 당연히 사회경제적 취약 집단이나 장애 또는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 미칠 영향에 대한 고려가 포함되어야 한다.
그는 디지털 헬스에 대한 비판적 접근에 도움이 되는 다섯 가지 이론으로 ‘정치경제적 접근법’과 ‘사회유물론’, ‘푸코 이론’, ‘체현의 현상학’, ‘감시·개인정보 보호 이론’을 제시한다. 이는 디지털 헬스의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차원을 이해하는 데 기여하는 이론적 접근법들로서, 보건의료 분야에서 디지털 기술의 설계와 사용에 의미를 부여하는 (종종 인식되지 않는) 가정, 담론, 신념, 관행을 설명하는 근거를 제공한다.
- 5가지 이론적 접근
1) 정치경제적 접근 (The political economy approach)
정치경제적 접근은 건강과 보건의료에 대한 비판적 접근에서 가장 영향력 있고 오랜 역사를 지닌 관점으로, 사회 계급과 생산 수단, 자본주의 체계의 관계에 대한 맑스주의 분석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사회적 관계(social relations)’를 권력을 둘러싼 투쟁으로 간주한다. 이 접근에서는 건강과 질병의 사회적 결정요인(사회 계층, 젠더, 인종, 연령 등), 의사 권력의 확립과 유지, 글로벌 대형 제약사나 생명공학 산업과 같은 상업적 행위자들의 영향력에 주목한다.
럽튼은 ‘의료화(medicalization)’와 ‘생의료화(biomedicalisation)’를 이 접근이 필요한 대표 사례로 거론한다. 의료화란 비의료적 문제였던 삶의 영역들이 의학적 개입의 대상이 되어가는 현상으로, 의료화를 통해 서구의학적 관점이 일상생활로 확장되는 과정은 의사 집단의 권력 강화 과정과 일치했다. 이전에 법과 종교가 제공하던 사회 규제의 역할을 의료 전문직이 수행하면서 사회 통제 기관으로서 영향력 갖게 되었고, 사회적·도덕적 문제는 의학적 문제로 재정의되었다.
생의료화란 단지 질병 진단과 예방, 치료에 그치지 않고 신체 능력을 개선, 강화, 향상(enhancement)하는 실천, 현상을 뜻한다. 이를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 생명공학, 유전체학, 디지털 기술 등 각종 첨단 기술과 의학이 결합된다. 이러한 생의료화의 특징은 건강과 웰빙을 개선하기 위해 사람들의 정보를 수집하는 디지털 헬스 기술의 담론과 설계에서 강하게 드러난다.
‘생의학 혁신’은 의료화에 크게 기여하였는데, 줄기세포, 유전자 기술 외에 디지털 헬스 기술도 이러한 혁신의 일부로 볼 수 있다. 생의료 기술은 건강과 질병의 새로운 ‘바이오경제(bioeconomy)’의 일부가 된다. 생의료화는 진단·치료를 위한 기술 의존도의 증가뿐 아니라 기술을 이용한 건강 증진과 질병 예방에 대한 관심의 강화, 개인과 사회집단에 대한 의료 감시의 강화, 그리고 새로운 형태의 의료 지식과 인간 체현의 변화로 이어진다.
의료화 담론과 실천은 건강 악화의 사회적·정치적 원인을 모호하게 만드는 대신 개별 환자의 생활방식 선택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 즉, 열악한 주거환경, 빈곤, 의료접근성 저하 등 질병의 원인이 될 수 있는 사회 조건으로부터 관심을 멀어지게 하는 한편, ‘피해자 비난하기’ 관점에서 (담배를 끊지 못하거나 술을 너무 많이 마시거나 운동을 열심히 하지 않는) 각 개인이 자기 건강을 책임져야 하는 것으로 위치 짓는다. 의료화 실천의 이러한 탈정치화 경향은 자본주의 체제의 이익에 복무한다고 럽튼은 말한다.
또한, 그는 정치경제적 접근이 필요한 문제로 의사-환자 관계의 권력 불균형 문제를 거론한다. 서구의학 맥락에서 의사는 권위 있는 지식과 권력을 가진 반면 환자, 특히 사회적 지위가 낮고 교육 수준이 낮은 환자일수록 의사의 주장에 이의를 제기하기 어렵고, 그 결과 환자 자율성은 제한되거나 억압되기 일쑤다. 정치경제적 관점에서는 의료 현장의 불평등한 권력관계에 맞서 환자에게 더 많은 권력이 부여되고 ‘탈의료화’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보는데, 이는 1970년대에 (서구에서) 시작된 소비자주의, 환자 권리 강화 운동의 토대가 되었다.
또한, 정치경제적 접근은 신자유주의 비판에 초점을 맞춘다. 이 이데올로기의 영향을 받은 국가들은 긴축 정책을 추진하며 시민의 자율성과 자기책임을 강조하였다. 사회 문제에 대한 개인주의적 해결책에 초점을 맞추는 이러한 전략은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더욱 고착시켰다. 디지털 헬스 기술의 사회적 의미와 영향에 대한 분석에서 정치경제적 접근법을 적용할 때는 권력 격차가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창출하고 심화하는 문제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다양한 사회 집단 간 디지털 헬스 기술 사용의 격차를 분석하는 것이 중요하다. 디지털 헬스 기술이 소수 집단에 대한 사회경제적 불이익과 차별, 낙인을 고착할 수 있는 잠재적 위험성을 밝혀내야 한다.
특히 상업적 이익을 위해 개인의 디지털 데이터가 악용되는 문제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글로벌 지식 경제의 발전은 디지털 기술로 수집된 데이터의 생성과 사용에 의존해 왔다. 데이터가 상업적·연구적·안보적·통치적 목적으로 사용되는 방식은 디지털 데이터 생성과 얽혀 있다. 이때 권력은 주로 디지털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통해 작동하는데,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디지털 데이터와 이를 해석하는 알고리즘은 지식을 구성하고 활용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한편 럽튼은 ‘참여 민주주의’와 ‘공유’ 레토릭에도 불구하고 소셜미디어는 그리 개방적이거나 협력적인 공간이 아니라고 설명한다. 개인정보를 공유하고 다른 사람들과 연결·소통한다는 정신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현재 X)와 같은 소셜미디어의 출현을 뒷받침했고, 사용자에게 온라인 콘텐츠를 쉽게 찾을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구글과 같은 검색 엔진의 초기 목적이었다. 그러나 기업들은 개인정보가 가진 경제적 잠재력을 극대화하고 하였다. 그 결과 디지털 데이터 분석을 위한 수많은 데이터 스크래핑, 마이닝, 프로파일링 업체 등이 생겨났고, 정작 데이터 생성자는 자기 정보에 대한 접근 권한에서 배제되는 경우가 많았다. 무엇보다 페이스북, 구글, 애플,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등 소위 ‘인터넷 제국’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거대 글로벌 권력이 출현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디지털 헬스 데이터는 제약·생명공학 회사, 헬스 앱, 웨어러블 자가추적장치 개발업체와 같은 기업들의 상업화·상품화를 위한 주요 자원이 되고 있다. 디지털 헬스 데이터가 이렇게 상품화되어 상업적 이해관계에 휘둘리는 문제에 대한 정치경제적 분석이 필요한 상황이다.
2) 사회유물론 (Sociomaterialism)
사회유물론은 인간과 ‘비인간 행위자’의 얽힘에 초점을 맞춘다. 이 접근은 ‘행위자-네트워크 이론(actor-network theory, ANT)’을 비롯한 과학기술학과 문화연구, 유물론적 인류학 등에서 주로 이뤄지고 있다. 사회유물론은 사회적 관계와 의미의 구성, 협상에서 ‘물질적 인공물’이 수행하는 역할을 강조한다. 그리고 신체/자아를 육체, 정동, 타인의 신체, 사물, 공간/장소의 역동적 어셈블리지(회집체, assemblages)로 이해하며, 이러한 관계의 상호의존성과 신체성(물질성)에 주목하고 물질적 인공물에 행위자성(agency)을 부여한다. ‘사물(objects)’은 사람뿐 아니라 다른 인공물과의 관계를 포함하여 특정한 관계들의 어셈블리지에 참여하는 것으로 재현된다.
인간과 기술의 관계에 대한 사회유물론적 접근법에서는 사람들이 디지털 기술과 같은 사물을 사용하는 방식과 이를 일상에 통합하는 방식에 주목한다. 또한, 지리적 위치와 사용자의 연령, 성별, 인종, 사회경제적 지위 등 객체와 주체의 관계가 구성되는 맥락과 그 맥락에 관계가 미치는 영향을 연구 대상으로 삼는다. 어셈블리지 개념은 사회유물론 연구에서 물질과 비물질, 인간과 비인간, 육체적인 것과 관념적인 것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구성을 인식하는 방법으로 사용된다. 이 개념은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가 평면적 연결망을 넘어 3차원적 연관성으로 확장되는 공간적 측면을 강조하기도 한다.
사회유물론 관점에서는 기술이 인간의 행동과 체현, 의미를 제정하는 것처럼 인간 행위자 역시 기술의 의미와 용도를 구성하는 데 참여한다고 말한다. 디지털이 일상생활, 사회적 관계, 주체성, 체현 개념의 일부가 되어 새로운 실천과 지식을 창출하는 세상에서 사람과 기술 간 상호작용의 역동적인 특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러한 접근법은 디지털 매체와 기술의 물질성과 정치적 차원을 인정하면서 이것에 대한 비판적 논의를 전개한다.
‘디지털 데이터 어셈블리지’는 인간과 비인간, 기기, 소프트웨어의 상호작용을 통해 구성된다. 디지털 데이터는 이 어셈블리지의 객체로서 고유한 사회적 세계와 행위자성을 가진다. 디지털 데이터 실천은 그 데이터 생성의 지속적이고 이질적인 특성으로 인해 역동적이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다중 정체성과 주체성을 구성한다. 즉, 개인의 디지털 데이터 어셈블리지는 부분적으로 인간 행동에 대한 정보로 구성될 뿐만 아니라 그 물질화 역시 인간 행동의 산물이며, 미래의 인간 행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와 관련된 사례로 검색 엔진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구글과 같은 검색 엔진은 개인이 수행한 검색 내용과 지리적 위치와 같은 고려 사항을 기반으로 사용자에게 맞춤형 검색을 제공하는 알고리즘을 사용한다. 이러한 검색 엔진과 알고리즘은 여기에 내장된 가정, 질서, 가치에 따라 사람들이 정보에 접근하는 방법을 규정하면서 의미를 만드는 적극적 참여자로 볼 수 있다.
모든 기술은 인간 사용자가 비인간 사물, 장소, 공간에 참여함에 따라 필연적으로 구현된다. 기술의 물질성에 초점을 맞추는 사회유물론적 관점은 의료 과정에서 인간과 비인간이 어떻게 상호작용을 하는지에 초점에 맞춘다. 의료기술의 변화는 신체가 개념화되고, 만져지고, 관리되고, 시각화되는 방식의 변화를 동반한다. 몸의 존재론에 대한 환자의 지식과 실천은 의료 전문가와 다를 수 있다. 또 의료 전문직 간에도 세부 분야에 따라 신체와 질병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볼 수 있다. 신체와 관련된 건강·질병 상태, 증상, 징후 등은 소위 ‘뒤범벅(messy)’이고, 끊임없이 변화되기 때문이다.
3) 푸코 이론 (Foucauldian theory)
푸코 이론은 그동안 디지털 기술 연구와 보건의료에 대한 사회문화적 분석에서 많이 활용됐으며, 디지털 헬스에 대한 비판적 분석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푸코적 관점(Foucauldian perspectives)은 생명정치(biopolitics)와 생명권력, 통치성(governmentality), 신체 감시 문제의 담론적 구성에 초점을 맞춘다.
푸코는 정치경제적 접근이 제시한 것과 다른 의미의 권력관계에 주목한다. 그는 의료 권력을, 환자를 억압하고 통제하는 것으로 간주하기보다는 권력의 ‘생산적’ 속성, 즉 어떻게 자발적인 참여를 끌어내어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지에 초점을 맞췄다. 생명정치와 생명권력에 대한 푸코의 개념은 신체를 관리, 규제하는 담론과 실천을 통해 권력이 행사되는 방식을 강조한다. 과거에는 주권권력의 강제와 폭력이 신체를 규율하기 위해 사용되었지만, 이제는 시민들이 기대와 규범을 따르도록 만들기 위해 더 미묘하고 분산된 형태의 권력이 작동한다고 보는 것이다.
푸코는 ‘임상의학의 탄생’(1975)에서 환자 신체에 대한 의료 전문가의 ‘임상적 시선(clinical gaze)’의 발전과 확장을 설명한다. 그는 정상과 병리를 구별하고 특정한 방식으로 신체를 규율하는 의사 권력을 고찰한다. 의사에 의해 수행되는 신체검사는 임상적 시선을 구성하는데, 여기에는 해부, 청진, 현미경, 엑스레이 등 신체를 가시성의 영역으로 가져오는 기술이 포함된다. 신체는 학교, 직장, 군대, 교도소 등의 영역에서 모니터링, 측정 기술을 통해 다른 형태의 규제 대상이 된다. 의료 데이터는 이러한 지식들과 교차하며 시민을 통치하고 관리하기 위한 새로운 지식을 생성한다.
푸코에게 권력은 소유되는 것이 아니라 ‘관계적’이고 ‘과정적’인 것으로 이해된다. 따라서 의사와 환자 모두 의료를 구성하는 일련의 권력관계에서 연결고리(또는 권력이 통과하는 에이전트)로 작동한다고 볼 수 있다. 즉, 환자-의사 관계는 의사 권력에 의한 일방적 억압보다는 의학적으로 훈련받고 전문성을 가진 의사에게 권한을 양도하기 위한 ‘결탁(colluding)’으로 간주된다. 이때 의료 권력은 ‘생산적’이며, 특정한 담론적 관점에서 신체에 대한 이해와 해석을 생성한다.
한편 푸코는 타인에게 사적인 생각, 감정, 행동을 드러내는 것을 포함한 ‘고백(confession)’의 기독교 모델이 병의원을 포함한 개인 생활의 많은 영역에서 자아의 핵심 기술이 되었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고백은 심리적인 안도감과 면죄감을 주면서, 판단·평가를 위한 진실을 생성하는 수단으로 간주된다. 고백은 자신을 알 수 있도록 스스로 자아를 만드는 실천이기도 하다.
치료적 에토스는 종종 고백의 실천을 동반하는데, 환자는 의사가 정확한 진단과 치료를 처방할 수 있도록 자신의 몸과 삶에 대한 세부 사항을 고백하도록 권장된다. 고백은 말, 글의 수단뿐 아니라 이미지를 통해서도 이뤄진다. 예컨대 소셜미디어에 업로드된 ‘셀카’나 자기 추적(self-tracking)으로 생성된 개인 데이터 그래픽은 타인에게 자아를 드러내는 방법으로 사용된다. 디지털 헬스 기술에 의해 생성된 신체 이미지는 신체의 비밀을 고백하는 행동을 생성하거나 자극하는 인공물로 작동할 수 있다.
또한, 푸코의 ‘판옵티콘’ 개념은 건강과 질병의 사회적 차원과 디지털 기술에 대한 비판적 관점을 가진 연구자들이 시민들이 국가의 명령을 따르는 방식을 이론화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푸코는 ‘감시와 처벌: 감옥의 탄생’에서 판옵티콘을 현대 사회의 권력 작동을 설명하는 은유적 개념으로 사용하였는데, 권력자에 의해 감시당하는 수감자들이 여기에 대응해 자기감시와 자기규율 전략을 개발한다는 의미도 포함하였다. 푸코에게 판옵티콘은 중앙 감시가 개인의 자발적 자기 관리 기술의 개발과 결합된 새로운 형태의 권력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즉, 사람들은 ‘좋은’ 시민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사회문화적 기대를 수용한 채 스스로 감시하고 관리하며 자기 삶을 최적화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다.
푸코가 제시한 ‘통치성’과 ‘생명정치’ 개념은 사회 질서와 생산성을 유지하기 위해 역학, 의학, 공중보건 등의 지식을 사용하여 인구 집단 수준의 건강관리와 질병 예방 등에 개입하는 현상을 설명한다. 신체 검사·진단에서 발전한 임상적 시선은 환자 이익을 위한 의료적 만남의 일부로 수행되는 신체 감시의 특정한 형태다. 럽튼은 이러한 임상적 시선과 통치성의 요소들이 점차 디지털화되어 신체와 건강과 질병에 대한 새로운 형태의 감시와 지식을 생성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빅데이터와 이를 관리하고 해석하는 알고리즘에 대한 푸코적 접근은 건강과 보건의료 분야에서 디지털 데이터가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이해하도록 돕는다. 디지털 데이터를 수집하고 관리하는 알고리즘은 신체를 분류하고 생산하는 특정 방식, 즉 ‘알고리즘 어셈블리지’에 기여하는데, 이 어셈블리지는 데이터 프로파일을 구성하거나 사람에 대한 추론에 사용되는 과정에서 권력을 행사한다. 디지털 데이터의 알고리즘 조작을 통해 구성된 ‘알고리즘 정체성’은 일상생활의 많은 측면(신용도 평가, 항공기 탑승 시 범죄 가능성 판단 등)에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알고리즘 권력과 정체성은 디지털 헬스 기술이 건강과 보건의료 영역에서 새로운 생명정치 양식, 자아와 체현의 개념과 기술, 인구 통치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개념화될 수 있다.
4) 인간 체현의 현상학 (The phenomenology of human embodiment)
럽튼은 푸코적 접근이 담론과 정치경제 등 구조적 측면에 초점을 맞추는 까닭에 몸의 현상학 또는 ‘생생한’ 신체 경험이 간과되는 한계가 있다고 본다. 사회유물론적 접근에서도 체화된 실천과 객체를 강조하지만, 인간-비인간 만남의 ‘정동적(affective)’, ‘감각적(sensory)’ 차원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디지털 헬스에 대한 이론적 논의에 있어서 감정과 감각을 중요하게 다루는 체현의 현상학적 접근이 필요한 이유다.
현상학에서 ‘체현’은 인간이 몸을 통해 세계와 관계를 맺고, 경험을 구성하는 방식을 설명하는 개념이다. 이는 몸을 단순한 생물학적 대상으로 보지 않고, 세계와의 상호작용에서 중심적 역할을 하는 ‘살아 있는 주체’로 이해하는 관점이다. 체현은 인간의 지각, 행위, 그리고 존재가 모두 몸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점을 강조한다. “우리는 체화된 주체이며 몸과 감각을 통해 세계를 경험한다”(메를로 퐁티)의 말처럼 우리의 경험과 판단은 항상 ‘세계 속 존재(being-in-the-world)’의 일부이며 ‘세계 속 존재’는 항상 상호주관적이다. 감각과 감정은 공간과 장소의 구성요소(타인, 동물, 자연, 건조환경, 기후조건, 기술 등 객체)에 대한 체현된 인식과 경험에 필수적이다. 신체와 자아가 다른 신체, 객체들과 서로 연결되는 과정은 체화된 상호작용과 정동적 반응을 수반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관계적이다. 즉, 체현은 ‘상호관계적’이며 ‘상호신체적’일 수밖에 없다.
현상학적 관점을 통해 의사-환자 관계의 상호의존성, 모호성, 양면성을 발견할 수 있다. 의료 이용이 필요한 상황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매우 취약하다고 느끼는데, 특히 사회경제적 소외 집단이거나 매우 심각한 고통을 겪고 있는 환자라면 의사 권위에 도전하기 어렵거나 도전을 원치 않을 수 있다. 사람들은 아프거나 불안할 때 의사가 자신을 통제하도록 기꺼이 허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상황에 따라 소비자 권리를 내세우는 것과 의사에게 의탁하는 것 사이를 오가는 것이다.
따라서 럽튼은 디지털 헬스 기술에 대한 비판적 분석은 사람들이 감각과 감정을 포함하여 자신의 몸을 이 기술들과 어떻게 관계 맺는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감각 연구는 사회학, 인류학, 역사학, 사회심리학, 문화지리학 분야에서 감각의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차원에 초점을 맞춰 이뤄져 왔는데, 이 연구들은 감각을 통해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은 역사적, 사회적으로 우연적인 문화변용의 산물임을 밝혀냈다. 즉, 다른 문화는 다른 감각의 경험, 관행, 정의, 의미를 가진다는 뜻이다.
감각 경험은 정동적 스펙트럼을 가로질러 매우 강한 감정을 생성할 수 있다. 예컨대 후각은 어떤 맥락에서는 행복과 편안함을, 다른 맥락에서는 혐오나 불안, 두려움을 끌어내기도 하는데, 이는 후각과 장소, 기억 사이에 강력한 연관성이 있기 때문이고 이 과정에서 감정 역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감정과 감각은 사람들이 디지털 헬스 기술과 상호작용하고 그것을 자기 삶의 세계에 통합하는 과정에서 핵심 요소가 될 것이다.
감정은 공간을 이동하고 다른 신체, 객체와 상호작용을 할 때 신체 내부와 외부 공간 모두에서 발생한다. 즉, 감정은 ‘감정-공간 해석학’이라고 불리는 특정 공간의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공간과 장소에서 인간과 비인간 행위자의 상호작용은 ‘정동적 분위기’, 즉 특정한 물리적 환경에서 특정한 감정을 생성하는데, 이러한 분위기는 물질적이고 다감각적 특성(시각, 접촉, 소리, 냄새, 맛)에 의해 형성된다. 디지털 헬스 기술이 인간 신체(감각 포함)를 모니터링, 재현, 진단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감각은 이 기술을 통해 생성된 디지털 데이터를 해석하고 반응하는 일에도 사용된다. 또 디지털 장치는 감각을 통해 사용자와 소통한다. 이것이 디지털 헬스를 사회적, 물질적, 정동적, 감각적으로 동시에 이해할 필요가 있는 이유다.
감각은 그동안 의료 훈련이나 의사-환자 만남 등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 왔다. 예컨대 진단 행위는 의사가 환자의 신체와 태도를 보고, 만지고, 냄새 맡고, 청진하고, 증상에 대한 설명을 듣는 것과 같은 감각 정보를 사용하여 수행된다. 의사가 제안한 치료법의 효과와 환자의 건강 또는 질병 상태에 대한 평가는 환자와의 체화된 상호작용을 통해 수행되는 직관적 이해를 기반으로 한다. 청진기가 의사의 신체와 함께 기술 어셈블리지로 작동하듯이, 신체(환자와 의사)와 물리적 환경, 기술의 상호작용을 포함한다는 점에서 의료는 일종의 ‘공예(craft)’이기도 하다. 의료 제공자는 체화된 감각과 사용 중인 장치에 의해 생성된 정보에 대한 지속적인 해석에 참여한다. 그는 기술에 의해 전달되는 정보와 상호작용을 하는 순간 그동안 축적된 지식과 감각 반응을 사용해 환자 신체를 평가하고 해석한다.
그런데 현상에 대한 ‘디지털 재현(digital representations)’의 출현은 사람들이 ‘실제’와 ‘가상’, ‘물질’과 ‘무형’의 본질이 무엇인지, 그리고 이 과정에서 감각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질문하게 만들었다. 디지털 기술을 통한 의료훈련용 가상현실 또는 원격의료 장치가 도입되면 의사의 감각을 통해 수행되던 의료 지식은 사라지게 되는데, 이는 의료 지식이 어떻게 획득되고 적용되는지에 대한 중요한 변화를 의미한다. 비록 디지털 헬스에서 일부 감각 참여가 제한되거나 제외되긴 하지만, 새로운 디지털 헬스 기술의 모니터링 속성이 신체, 건강, 질병 상태를 새롭게 감각, 해석, 규정하고 기술과 상호작용을 하여 생활세계에 통합되는 다양한 방식을 제공한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디지털 기기를 만지는 것은 인간-기술 어셈블리지 존재론에서 상당한 변화를 나타내며, 기기에 대한 정동적 참여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감각의 인류학과 디지털 인류학을 결합한 연구가 이뤄지고 있는데, 사람들이 디지털 기술과 상호작용을 할 때 어떻게 ‘터치(특히 손)’를 사용하는지 관찰하는 촉각의 디지털 민족지학이 그러한 예이다. 모바일 기기 사용에 대한 관찰 연구를 통해 사람들이 메시지를 작성하고 앱을 열 때뿐 아니라 친구, 가족과 연결되는 방법으로서 손을 사용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화면을 터치하는 것은 메시지 전달, 콘텐츠 생성과 별개로 그 자체로 사회적 연결과 의사소통의 한 형태인 것이다.
이 접근 방식은 또한 디지털 장치와 디지털 데이터에 관한 미묘한 개념을 제공한다. 디지털 기술은 지리 위치 센서와 매핑 장치를 사용하여 시공간에서 신체의 디지털화된 위치 파악을 가능하게 한다. GPS 센서가 포함된 모바일 기기는 사용자의 물리적 위치를 측정하고 식별할 수 있는 매핑 기술이 탑재된 위치 미디어다. 럽튼은 이것을 확장하면 어셈블리지로서의 ‘신체-기술-코드-데이터-공간’의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때 디지털 데이터 어셈블리지는 분산된 자아와 신체로 볼 수 있다. 사람들의 자아, 체현 개념과 불가분 관계로 얽혀 있으며, 더 많은 데이터가 생성되고 작동함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기 때문이다. 또한, 디지털 헬스 데이터는 자기 삶과 자기 이해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른 형태의 정보와 구별되는 도덕적 지위를 가진다고 볼 수 있다.
럽튼은 우리가 ‘동반자’ 기기들과 어떻게 함께 살아가는지 살펴보는 것처럼, 각 개인의 생생한 디지털 데이터 어셈블리지가 우리와 어떻게 공존하는지에 대해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이제 인간은 디지털 데이터 어셈블리지와 함께 생활하며 진화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데이터는 인간 경험과 신체에 반응하여 구성되고, 인간은 데이터 어셈블리지에 반응하여 존재 방식과 자아 개념을 변화시킨다.
5) 감시와 프라이버시 이론 (Theories of surveillance and privacy)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감시 기술이 점점 더 보편화되고 있는 ‘감시 사회’를 살고 있다. 그동안 많은 연구자가 감시를 자본주의 경제와 근대국가 발전, 사회 질서 유지에 필수적인 규율권력의 한 형태이자 근대성의 핵심 조건으로 설명해 왔다. 권력관계를 포함한 다양한 종류의 사회적 관계와 상호작용이 감시 기술 내에서 그리고 감시를 통해 생성되는데, 이러한 기술은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시민의 생산과 통치의 일부로 간주될 수 있다.
디지털 기술이 사용되는 맥락에서는 ‘데이터 감시(dataveillance)’가 발생한다. 가장 큰 논란이 되는 유형의 감시는 디지털 기술 사용으로 수집된 개인 데이터의 활용 문제이다. 소셜미디어, 검색 엔진 등에 사용자가 접속할 때 수집된 정보가 여기에 포함된다. 또 공적 공간이나 환자의 자가 치료 또는 신체 모니터링 장치에 내장된 모바일 장치와 센서에 의해 생성된 지리 위치 데이터 등도 포함된다. 이미 많이 지적된 것처럼, 감시 기술을 사용하여 수집된 개인정보는 개인을 개별 범주와 계층으로 분류하고 평가하는 데 활용될 우려가 있다. 사람들의 행동을 분석해 ‘감시 지식’을 생성하고, 개인 유형화를 통해 프로필과 위험 범주를 개발하여 포함/배제의 정책과 전략을 구사할 수도 있다.
국가보안기관이나 기업의 수집, 해커 또는 사이버 범죄자에 의한 데이터 감시 등 디지털 데이터 감시의 일부 방식은 비밀스럽고 비자발적이다. 하지만 다른 데이터 감시 방식은 공개적이고 자발적이다. 공공장소의 폐쇄회로 카메라처럼 소수가 다수를 감시하는 방식의 판옵틱 감시와 반대로 다수가 소수를 관찰하는 방식의 ‘시놉틱 감시’가 그러한 예이다. 시놉틱 감시는 다수 플랫폼 구성원들이 공인(유명인)을 관찰하고 평가할 수 있는 소셜미디어에서 이뤄질 수 있는데, 이처럼 디지털 기술은 권력자를 감시하는 ‘수베일런스(sousveillance)’, 즉 ‘아래로부터의 감시’에 사용될 수도 있다.
디지털 기술을 사용한 ‘자가 감시’는 사람들이 더 나은 자기 지식과 자기 최적화를 달성하기 위해 자기 정보를 적극 수집하는 것을 포함한다. 당사자가 자신의 수집된 개인정보를 다른 사람들도 볼 수 있도록 선택할 경우 그는 ‘사회적 감시’에 스스로 참여하게 된다. 이는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일환으로 소셜미디어, 블로그 등에서 서로를 감시하는 것을 가리킨다. 사용자는 자신에 대한 개인정보를 업로드할 때 ‘좋아요’와 댓글을 기대하며, 많은 수의 반응은 사회적 성공과 관계된 지표로 간주된다. 이러한 유형의 상호감시는 사용자의 정체성 표현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가까운 사람을 관찰할 때 발생하는 ‘친밀한 감시(intimate surveillance)’ 또한 사회 감시의 일부일 수 있지만 덜 공개적이고 때로 비밀리에 이뤄질 수 있다. 많은 형태의 친밀한 감시는 사회적 관계를 형성, 유지하며 서로에 대한 친밀감과 지식 형성 수단으로 사용되지만, 자녀 양육이나 노부모 돌봄 과정에서 이뤄지는 친밀한 감시는 때로 강압과 학대 방식으로 악용될 수 있다.
이러한 모든 디지털 데이터 감시 관행은 온라인으로 공유됨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개인 디지털 데이터 어셈블리지를 생성한다. 새로운 방식의 디지털 감시는 분산적이고, 빠르게 변화하는, 새로운 형태의 지식을 생산한다. 개인정보가 기업 데이터베이스에 업로드되는 경우 글로벌 디지털 지식 경제의 일부로 포함되어 원래 의도했던 것 이상으로 상업, 연구, 통치, 관리, 안보, 범죄 수사 등의 용도로 전용될 수 있다.
이러한 디지털 감시 형태는 건강과 의료 분야에서도 동일하게 활용된다. 푸코가 말한 임상적 시선은 원격의료, 디지털 자가 모니터링, 환자 자가관리장치와 앱 기술의 출현과 건강·의료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병원 너머로 확장된다. 건강·의료 정보는 디지털 기술을 사용하여 수집되는 가장 가치 있는 정보 형태 중 하나다. 따라서 건강·의료와 관련된 데이터 감시는 경제적 이익을 위해 사람들의 개인정보를 착취하는 ‘감시 자본주의’의 주요 표적이 된다. 이러한 데이터는 별도의 설문조사나 인터뷰를 하지 않더라도 일상적 행동의 부산물로, 실시간 수집될 수 있다는 점에서 특히 가치가 있다.
문제는 기업이 세부 개인정보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투명하게 알기 어렵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생성된 일부 디지털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지만, 자신의 데이터가 다른 행위자와 기관에서 어떻게 사용되는지 모니터링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즉, 해당 데이터 판매 과정에서 이뤄지는 알고리즘 조작은 일종의 ‘블랙박스’와 같이 시야에서 벗어난다. 이러한 문제는 사람들의 건강과 의료 데이터의 프라이버시에 관한 중요한 질문을 제기한다. 일부 정보 윤리 연구자에 따르면, 사람들이 사용하고 상품화하는 다른 많은 형태의 정보나 물건과 달리, 건강·의료 데이터는 개인의 정체성을 내재하는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신체, 건강, 질병 경험에 관한 정보는 외부 객체처럼 ‘소유’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신체나 감정과 같이 그들 자신의 일부로 간주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Ⅲ. 고찰과 결론
럽튼이 제시한 5가지 접근들은 많은 논의가 중첩될 뿐 아니라 그 이론적 층위가 상이하다는 점에서 비판 디지털 건강 연구에 관한 하나의 체계적인 이론적 틀을 구성한다고 보기 어렵다(물론 그 역시 이를 목표한 것은 아니다). 또 생성형 인공지능의 출현과 대중화를 비롯해 책 출간 이후 이루어진 디지털 헬스 분야의 급속한 발전과 진화가 고려되지 않은 한계도 존재한다. 하지만 기술 낙관주의에 가려진 디지털 헬스의 다양한 이면을 여러 이론적 도구를 활용해 분석하고 성찰하고자 한 시도는 10년의 시간이 지난 현 시점에도 여전히 시의성 있는 작업으로 평가할 만하며, 그 미진한 부분을 보완·발전시켜야 하는 과제는 후속 연구세대의 몫일 것이다.
럽튼이 정치경제적 접근을 강조한 점은 특히 비판건강연구 관점에서 높게 평가할 만한 대목이다. 디지털 헬스가 건강불평등을 줄일 수 있으려면 사회정의와 인권의 가치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설계·개발·사용되어야 한다. 문제는 이러한 규범적 목표를 ‘어떻게’ 현실화할 수 있는가이다. 구체적 현실에서 어떤 주체가 어떤 자원과 전략을 활용해 어떤 권력관계 속에서 어떤 과정을 거쳐 이를 구현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바로 디지털 헬스에 대한 정치경제적 접근이 중요한 까닭이다.
정치경제적 접근에서는 디지털 헬스에 영향을 미치는 구조를 비롯해 다양한 행위자들의 이해관계와 동기, 권력 자원과 실천 전략 등을 고려한다. 디지털 헬스 기술을 개발하고 상품을 생산·공급하는 상업적 행위자(기업)와 이를 구매·사용하는 환자/시민, 그리고 법·제도를 통해 산업을 육성 또는 규제하는 국가가 주요 이해관계자이다. 그리고 이러한 전략적 실천 중 하나로서 디지털 헬스를 둘러싸고 작동하는 담론의 권력효과에도 주목해야 하는데, 영국 정부 사례를 분석한 연구(Rich, Miah & Lewis, 2019)와 같이 한국 정부의 디지털 헬스 정책 내 담론을 규명하는 데 있어서도 럽튼의 논의가 유용한 참고가 될 수 있다.
한편 이 책과 다른 연구 출판물을 검토했을 때 럽튼의 디지털 헬스 연구는 전반적으로 사화유물론이나 현상학 등 사회문화적 측면에 좀더 치우친 경향이 있다. 하지만 “사회 집단이 디지털 헬스 기술을 수용하거나 저항하는 방식을 검토할 때 그들이 가지고 있는 건강과 질병의 개념을 고려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럽튼의 지적처럼, 심화된 정치경제적 분석은 사회문화적 이해의 토대에서 가능하다. 디지털 헬스는 의료화·생의료화를 촉진하는 가운데 건강을 개인 책임화하는 ‘건강주의(Healthism)’와 건강을 데이터로 환원하는 디지털 실증주의 등을 고착하는 결과를 낳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디지털 헬스가 건강불평등 완화에 기여하도록 권력관계를 조정하고자 한다면(정치경제적 접근), (디지털화에 따라 변화되는) 건강과 몸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과 태도, 감정 등을 고려하고 개입하는 사회문화적 접근을 동반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럽튼은 디지털 헬스의 긍정적 가능성과 부정적 가능성을 다소 중립적으로 다루는 경향이 있다. 디지털 헬스가 불평등한 의사-환자 관계를 타파하고 의료 민주화를 이끌 것이라는 에릭 토폴 식의 전망을 따르는 건 아니지만, 민주적으로 통제되는 디지털 기술을 통해 불평등을 완화하고 사회변화를 촉진할 수 있는 가능성을 비교적 높게 보고 있는 듯 하다. 이는 디지털 헬스의 출현과 발전을 추동하고 있는 자본주의 체제(Wamsley & Chin-Yee, 2021)에 대한 비판적 고려가 부족한 결과로 보인다. 기술은 맥락에 따라 다양한 목적과 방식으로 개발·사용되는데, 비판기술이론에 따르면 기술의 ‘본질’은 오늘날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있는 자본주의 체제라는 맥락 속에서 결정될 수밖에 없다. 이것이 디지털 헬스가 건강불평등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는 이유이며, 이러한 구조적 맥락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지식과 담론을 생산하는 일이 앞으로 비판 디지털 건강 연구의 핵심 과제가 될 것이다.
참고문헌
대런 애쓰모글루, 사이먼 존슨 (김승진 번역). (2023). 권력과 진보. 생각의힘.
Lupton, D. (2017). Digital health: critical and cross-disciplinary perspectives. Routledge.
Rich, E., Miah, A., & Lewis, S. (2019). Is digital health care more equitable? The framing of health inequalities within England’s digital health policy 2010–2017. Sociology of health & illness, 41, 31-49.
Wamsley, D., & Chin-Yee, B. (2021). COVID-19, digital health technology and the politics of the unprecedented. Big Data & Society, 8(1), 2053951721101944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