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용양식: 권정은. (2025). “돌봄 전문가”로 거듭나는 자살위기의 청년 여성들. 비판건강연구, 1(1), 51–56.
“돌봄 전문가”로 거듭나는 자살위기의 청년 여성들
권정은 (조지워싱턴대학교 한국학센터 박사후연구원, 시민건강연구소 2022년 영펠로우)
나뭇잎들이 붉고 노랗게 물들어가는 2022년 10월의 어느 날, 나는 호기심과 긴장감이 뒤섞인 감정으로 경기도의 한 카페에서 연구참여자와의 인터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인터뷰는 20-30대 여성들의 자살생각 및 시도 경험에 관한 연구를 위한 것으로, 이를 위해 나는 2021년부터 2022년 사이에 서울 수도권에서 자살생각 및 시도 경험이 있는 26명의 여성들을 인터뷰하고 있었다. 만나기로 한 참여자는 그 중 한 명인 유나였고, 나는 그녀가 정한 카페에서 그녀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당시 34세였던 유나는 13살 무렵부터 자살 생각과 계획을 했으며, 21살 이후에는 여러 차례 자살을 시도했다. 한 시간 반 동안 이어진 인터뷰 동안 그녀는 카페 안을 계속 두리번거렸고 화장실에 가겠다고 몇 번이나 요청했다. 그녀는 자신이 인터뷰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이 결코 아니라 ADHD 때문이라고 강조하며, 최근 심한 우울증으로 힘들어서 한동안 집 밖으로 나오지 못했지만 이 카페가 밖으로 나올 수 있었던 유일한 장소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그녀를 걱정하는 마음이 들면서 한편으로는 내가 그녀를 도울 수 있거나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은데 마땅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지를 고민하던 차였다. 그때 유나는 자살위기에 대처해 온 자신만의 방식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나는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고, 그 순간 내 오해는 산산이 부서졌다.
“(저만의) 프로토콜이 있어요. 보통 자살 사고(생각)는, 그러니까 강렬한 자살 사고는 (저의 경우에는) 짧으면 15분, 아무리 길어도 1시간을 넘지 않고 너무 길어도 한 3시간 안에서 끝나니까. 그 안에 이제 적절한 개입을 받으면 넘길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자살예방센터에 전화를 한다, 상담을 받고 몇 분 정도 기다린다, 그래도 자살 사고가 여전히 심하면 구급차를 불러, 이런 식의 (제 스스로) 자동적으로 실행되는 프로토콜이 있어요. (…) 그냥 그게 발동이 돼요.”
이 말을 들은 나는 내가 유나를 도와야 한다는 스스로의 생각 혹은 착각에 대해 되돌아보기 시작했다. 내가 비교적 안정되거나 괜찮은 것처럼 보이고 유나는 눈에 띄게 안절부절하지 못하는 모습이었기에, 내 마음 속에는 어떤 암묵적인 도움의 관계가 무의식적으로 형성된 것 같았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나만의 것만은 아니고, 한국 사회 전반에 만연한 정신질환 및 자살에 대한 담론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정신질환은 의학적 치료와 개입이 필요한 질병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자살생각 및 시도는 점점 더 우울증으로 인한 증상으로 여겨지곤 한다. 또한 자살에 대한 사회적 담론은 자살위기에 처한 사람들에게 정신과적 또는 심리적 개입과 주변 사람들의 지지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관점은 자살 위기를 경험하는 사람들을 치료가 필요한 “환자” 혹은 제도적 개입이 필요한 대상으로 바라보게 한다. 자살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전문적인” 정신과 및 심리적 개입이 필요한 수동적인 수혜자 및 대상자로 보는 관점은, 이들이 스스로 개발하는 창의적이고 체계적인 자기돌봄 방식과 능력을 간과하게끔 할 수 있으며 이러한 잠재성들이 드러나지 않도록 할 수 있다.
하지만 유나의 철저한 자기 분석과 자신만의 “프로토콜”을 만들어낸 모습에 나는 나의 과신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깨달았다. 더 나아가 나는 이러한 인상적인 모습이 유나가 특별히 능숙하기 때문인지, 아니면 자살계획과 시도 등을 경험하는 다른 사람들도 스스로를 돌보는 데 능숙할 수 있는지 궁금해졌다. 곧이어 내가 인터뷰를 한 많은 사람들이 제도적 지원과 개입을 넘어 자신만의 돌봄 방식을 개발해 왔다는 사실(아래에서 간략하게 소개함)을 떠올리면서, 나는 유나를 비롯하여 자살위기를 경험한 여러 사람들을 “돌봄 전문가”로 설명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점차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나는 “돌봄 전문가”라는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자살위기를 경험해 온 이들이 오랫동안 자신의 정신건강 상태에 대응하기 위해 여러 가지의 돌봄의 방식을 탐구하고 실험해왔다는 것을 드러내고자 한다. 이들은 자기돌봄에 능숙할 뿐만 아니라, 의료, 심리 또는 국가 개입에서 일반적으로 권장하는 방식보다 훨씬 더 다양하고 폭넓은 돌봄의 방식을 보여주었다. 또한 스스로에게만 집중하는 자기돌봄을 넘어서 타인과 사회에도 관심을 가지는 확장된 돌봄을 실천하고 있었다. 이 글에서는 이들을 “전문가”로 호명하는 것의 의미와 함께 이들의 독창적인 돌봄 방식 몇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돌봄 전문성을 조명하며 돌봄의 위계 구조를 질문하기
우리가 흔히 일상에서 사용하는 ‘전문가’라는 표현은 어떤 특징들을 지칭하고 있을까? 일반적으로 전문가란 자신의 분야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장기간의 전문 교육을 받은 사람들을 일컫는다. 그 결과로서 그들은 해당 분야에 대한 포괄적인 지식을 습득한다. 하지만 정확한 답을 알지 못할 때라도 전문가들은 관련 자료를 어디에서 찾을지 알거나 찾아내고 그 유용성을 판단하며 상황에 필요한 것을 선택적으로 적용하는 데에 능숙하다. 전문성은 단순히 정규 교육이나 제도화된 교육에서만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시행착오를 포함한 지속적인 경험을 통해서도 얻어진다.
이러한 의미에 비추어보았을 때 인터뷰를 통해 만난 많은 분들은 돌봄 전문가였다. 이들 중 대부분은 10대 초반에 자살생각이나 계획을 하기 시작했고, 그 강도에는 변동이 있기도 했지만 10년 이상 이러한 경험이 지속된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만성적인 어려움은 정신과 치료나 상담, 국가지원 등 제도적 지원뿐 아니라 스스로의 돌봄 방식을 적극적으로 찾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렇지만 스스로에게 도움이 되는 방법을 찾기 전에 이들은 먼저 깊은 자기 성찰과 자기 분석을 해야 했다. 유나가 자신의 자살 충동이 지속되는 시간이나 패턴을 분석했던 것처럼 말이다. 끊임없는 시행착오를 통해 이들은 스스로를 돌보는 데에 필요한 포괄적인 지식을 얻었다. 제도적 지원이 제한적일 때 이들은 대안을 모색했고, 종종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나 심리상담사와 같은, 소위 말하는 “정신건강 전문가”의 약물 치료나 심리치료/상담과 같은 권고가 불충분하다고 느끼거나 의문을 가지기도 했다.
돌봄에 대한 이들의 접근 방식은 정신과적 개입과 심리상담으로 대표되는 제도적 돌봄과는 다른 지점이 있었다. 내가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던진 질문, “오늘 인터뷰하면서 어떠셨나요?”에 대한 이들의 답변에서 이러한 차이를 엿볼 수 있다.
“자살에 관한 인터뷰였는데 이렇게 표현해도 될지 잘 모르겠네요. 사실 정말 재밌었어요. 판단이나 지적을 받지 않고 자살에 대한 솔직한 생각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었던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정신과 의사나 심리상담사들은 주로 회복에 대한 어떤 방향을 갖고 있고 자살생각을 없애야 하는 것으로 보잖아요. 보통 자살은 금기시되는 주제여서 자유롭게 얘기할 수가 없었던 것 같아요. 근데 오늘은 지적받을까 두려워하지 않고 뭐든 말할 수 있었어요.”
여러 인터뷰 참여자들의 답변을 종합한 위의 인용은 제도적 지원 접근법의 한계를 드러낸다. 그러한 접근과 비교했을 때 연구 인터뷰가 재밌게 느껴졌던 이유는 무엇일까? 자살과 관련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주로 다른 사람들이 불편해하거나, 열린 마음으로 듣기보다는 다른 전문가에게 의뢰하도록 유도하는 주제이다. 하지만 의료적, 심리적 개입과는 달리 나는 연구 참여에 있어서 정해진 개입의 방향이나 판단 없이 열린 결론으로 진행되도록 했다. 예를 들면 참여자들은 인터뷰 중에 죽음이나 자살에 대한 의견을 말할 때 판단 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 없이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 이에 반해, 이들의 경험에 따르면 정신의학과 심리학은 이들이 탐구할 수 있는 주제나 방향에 제한이 있었으며 회복으로 가는 상대적으로 좁은 길을 제시했다. 이들이 말하고 행동하는 내용들은 정신건강 상태를 가늠하는 지표가 되었고, 이러한 지표의 기준을 알아차림으로써 점차 적절한 기준에 맞추어 자신의 상태를 드러내는 방법을 배웠다. 즉, 이들의 문제는 탐구의 대상이 되었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전문가에 의해 평가되고 해석되는 대상이었다.
이러한 제한적인 제도적 방식은 “정상적인” 삶의 경로를 따르는 사람들이 대체로 보상을 받는 한국 사회를 닮아있다. 예를 들어, 자녀들은 부모나 어른들의 말을 잘 따라야하고, 학생이라면 좋은 대학에 진학 후 안정된 연봉의 직장을 얻는 데에 집중할 것이 권장된다. 또한 한국 사회에서 중산층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이성애중심적인 관계와 가족을 꾸리는 것이 “표준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내가 만난 연구참여자들이 자살을 생각하게 된 원인은 다름이 아니라 바로, 평생동안 강요된 이러한 규범과 역할, 그리고 정해진 길, “표준”에서 벗어났을 때 경험하는 배제와 낙인 때문이었다.
좁은 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열망과 마찬가지로, 이들의 돌봄 방식 또한 다양하고 실험적이었다. 예를 들면 다인은 자기돌봄의 한 실천으로써 판타지 소설을 쓰고 있었는데, 특히 소설을 통해 차별이 없고 사회경제적 양극화가 사라진 대안적인 사회를 생생하게 상상하면서 치유를 모색했다.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는 지우는 최근 실험용 쥐와 같은 소외되고 착취 당하는 동물들을 그리는 것을 통해 자신을 포함한 약자를 억압하는 사회를 비판했다. 그동안 원가족 안에서 괴로움을 겪어 온 유나와 민지는, 두 사람을 포함한 다섯 명이 자신들만의 “대안가족”을 이루어 함께 살아가며 일상을 나누고 미래에 대한 꿈을 공유하고 있었다. 이들은 약물 치료, 상담 치료, 심리극, 또는 옳고 그른 방향과 같은 정형화된 방법을 강조하는 제도적 돌봄에만 의존하기보다는 다양한 돌봄 방식을 실험해보며 확장해나갔다. 이들은 또한 자신의 개선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 삶의 질을 높이고 정신건강을 향상시킬 수 있는 더 나은 사회를 꿈꾸고 있었다.
“돌봄 전문가”라는 개념은 환자들을 단순히 고통의 피해자나 개입이 필요한 대상으로만 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이들의 고유한 능력과 잠재성, 실험적 문제 해결 방법 등을 인정하는 시각으로 전환시켜 준다. 즉, 이 개념은 자살위기나 어려움에 처한 이들이 스스로 돌봄 전략을 세우고 실행하는 데 있어 전문성을 가진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를 통해 나는 이들이 치료의 대상이나 제도적 개입의 수동적 수혜자로서만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이들은 이미 자신의 돌봄과 삶, 그리고 사회에 대한 관점을 적극적으로 구성해나가는 주체적 행위자였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더 나아가 이 개념은 제도적 개입에서의 제한적인 지원 방향에 의문을 제기한다. 앞서 언급했든 제도적 개입은 사회에 만연한 제한적인 규범과 표준의 틀을 반영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반해 연구참여자들이 고안한 자기돌봄의 방식들은 탐구적이고 유연하여 (자기)돌봄 자체에 대한 통찰을 제시한다. 이들의 이야기는 돌봄이 다양성을 포용하고 우회로를 허용하며 창의적이고 자기 결정적인 길을 선택하도록 지원해야 함을 일깨워준다. 이들을 돌봄 전문가로 호명함으로써 우리는 경직된, 옳고 그른 접근 방식이 아닌 더욱 폭넓고 포용적인 돌봄에 대한 이해를 넓혀갈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