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 학술지 비판건강연구

[비판건강연구 1권1호] 공공병원 확충 운동의 의의와 새로운 방향 모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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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양식: 권시정. (2025). 공공병원 확충 운동의 의의와 새로운 방향 모색. 비판건강연구, 1(1), 57–63.

공공병원 확충 운동의 의의와 새로운 방향 모색

권시정 (시민건강연구소 박사후연구원, 시민건강연구소 2021년 영펠로우)

 

공공병원 확충 운동이 여러 지역에서 시작되지 어언 20여 년째. 그간 주민 주도로 공공병원이 설립이 완료된 성남을 비롯해, 진주나 대전과 같이 공공병원이 설립이 확정된 지역도 있다. 2024년에는 좋은공공병원만들기운동본부가 발족하며, 공공병원 만들기 운동은 더욱 본격화되고 있다. 그러나 운동의 가시적 성과는 다소 흐릿한 상태이다. 공공병원의 비율이 수십 년째 그대로라는 점, 아직도 공공병원이라는 용어가 주민 사이에서 일상화되어 있지 않다는 점도 지지부진한 상태를 보여주는 한 면이다.

사회운동의 핵심 동기는 사회적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라는 점에서, 이 글은 다음의 두 가지 질문을 던진다. 첫째, 지금까지의 공공병원 확충 운동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공공병원 설립으로 연결이 미미하다는 점에서 이 운동은 ‘실패’라고 봐야 하나? 이 운동이 지니는 사회적 의의는 무엇인가? 둘째, 앞으로 공공병원 확충 운동이 공공성 강화라는 ‘목적’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어떤 전략을 모색해야 하는가?

이 두 가지 질문은 이론적, 실천적 측면에서 모두 중요하다. 우선 이론적 측면에서는, 사회운동의 성과를 단순히 정책 산출물로만 평가하는 기존 접근을 넘어 다양한 측면에서의 평가 기준을 모색할 수 있다. 또한, 실천적 측면에서는 향후 운동의 방향성을 재정립하여, 제한된 시민사회단체의 자원을 보다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전략을 제안할 수 있다.

 

공공병원 확충 운동의 의의 평가

 

이 글은 공공병원 확충 운동이 가시적으로 몇 개의 병원 설립에 성공했느냐를 기준으로 의의를 평가할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한다. 이는 사회운동의 성과에 대한 무엇으로 볼 것인가와 관련 있다. Amenta와 동료들(2010)은 사회운동의 성과는 단순히 목표 실행 여부를 기준으로 판단할 수 없다고 설명한다. 명시된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더라도, 여전히 구성원들이 어떤 집합적 이익(collective goods)를 얻었는지를 기준으로 평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가시적 목표 달성에는 실패했더라도 그 과정에서 습득할 수 있는 시민적 역량과 같은 내재적 가치가 있을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이러한 집합적 이익은 공공병원 설립과 같은 물질적 성과뿐만 아니라, 의료를 공공재로 인식하는 담론의 변화, 공공의료 강화 의제의 정치화와 같은 상징적 차원과 담론적 차원을 포함한다. 단순히 공공병원을 세웠다고 해서 ‘성공’, 예비타당성 조사에 탈락했다고 해서 ‘실패’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사회운동의 성과를 정치적, 정책적 결과에만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광범위한 문화적 차원에도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주장으로도 나타난다(Giugni, 1998).

공공병원 설립은 행정적 측면에서 볼 때 가장 성공적인 경우라 할지라도, 단기간에 달성할 수 없는 속성을 지닌다. 단적인 예로, 필자가 면담과정에서 만난 한 공공병원 내부 관계자는 공공병원을 지을 “땅을 받고 나서” ‘서류 작업’부터 ‘완공’까지 최소 10년이 걸린다고 평가했다. 이러한 속성을 고려했을 때, 단기간에 확인 가능하지 않더라도 비가시적 측면에서의 어떤 성과가 있는지를 평가하는 작업은 특히 중요하다. 그렇다면 공공병원 확충 운동의 비가시적 성과는 무엇일까?

첫 번째 성과는 공공병원이라는 용어와 공공의료 담론의 형성과 확산이다. 공공병원이 무엇을 지칭하는지 그 세부적 내용까지는 일상적 지식으로 자리잡지는 못했으나, 적어도 다수의 주민들이 지역에 ‘공공병원이 필요하다’고 응답하는 상황은, 공공병원이 ‘지금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는 바람직한 수단’으로 이해하는 지식이 확산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지금까지의 공공병원 확충 운동은 “공공병원이라는 말을 배우는 시기” 였던 셈이다(시민건강연구소, 2025).

주목할 점은 공공병원의 구체적 내용이 아직 명확히 정의되지 않은 빈 기표 상태라는 것이다. 빈 기표는 고정된 의미를 갖지 않기에, 다양한 집단의 서로 다른 요구들을 하나의 담론으로 묶어낼 수 있는 유연성을 제공한다. 실제로 농어촌의 응급의료 부재, 도시 외곽의 산부인과 부족, 노인 돌봄 공백 등 각 지역이 직면한 의료 위기의 양상은 다르지만, 이 모든 문제가 공공병원 확충이라는 하나의 요구로 수렴될 수 있는 것은 이 용어가 아직 구체적으로 고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빈 기표로서의 공공병원은 전국적 연대를 가능하게 하는 담론적 자원이 된다. 이러한 담론 형성은 정책 변화를 위한 기반 구축을 위해 필수적이다.

두 번째 성과는 의료 공공성이라는 사회적 지식 생산을 통해 공공성 강화에 영향을 미치는 정책 환경을 마련했다는 점이다. 공공병원 확충 운동은 ‘지역 의료 붕괴’를 방치할 수 없다는 최소한의 사회적 합의를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 이러한 합의는 공공병원 설립 외에도 의료 공공성이라는 목표를 공유하는 다른 정책들(예: 지역 필수 의사제 시범사업, 공공의대 설립 논의 등)의 의사결정 과정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론할 수 있다. 비록 직접적 인과관계를 실증하기는 어렵지만, 공공병원 확충 운동이 축적한 담론적 자원이 관련 정책 논의의 배경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세 번째 성과는 집합적 연대의 경험을 축적하고, 역량을 강화했다는 점이다. 공공병원 확충 운동 과정에서 주민들은 서명운동, 주민토론회, 주민조례발의 등에 참여하며 ‘의료를 시장에 내맡길 수 없다’ 인식을 학습하는 과정을 거쳤다. 이 경험은 보건의료 영역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오로지 보건의료에만 관심을 갖고 다른 공공성 의제에는 무관심한 시민이란 존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보건의료에 작동하는 시장화 압력은 보건의료 영역에 국한된 현상이 아니라 사회경제체제 전반과 관련된다. 따라서 공공병원 확충 운동을 통해 축적된 시민적 역량은 전체 사회경제체제 전환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공공병원 확충 운동의 새로운 방향 모색

 

“공공병원이라는 말을 배우는 시기”(시민건강연구소, 2025년 12월 15일)를 넘어, 가시적이고 구체적 성과를 달성하는 시기로 넘어가기 위해서 공공병원 확충 운동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이 질문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무엇을 목표로 할 것인가. 둘째, 누구와 할 것인가.

운동의 목표를 설정하기 위해서는 먼저 현재 상황에 대한 진단이 필요하다. 공공병원 확충이 지연되고, 지역의료가 붕괴하게 하는 근본 원인은 무엇인가? 정백근(2025)은 수도권 중심의 자본축적 구조가 의료를 비롯해 비수도권의 자원을 흡수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처럼 시장화된 의료체계가 그 기저의 원인이라고 본다면, 단순히 특정 정치인에게 의지를 가지라고 촉구한다거나, 예비타당성 제도를 기술적으로 개선한다고 해서 공공병원이 설립될 수 있다거나, 공공병원이 설립된다고 해서 문제의 근원이 고쳐질 수 있다고 볼 수 없게 된다.

시장화된 의료체계가 유지되는 한, 공공병원이 설립되더라도 공공성 강화로 이어지기 어렵다는 사실은 현재 공공병원의 목표와 운영 방식이 민간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데서도 짐작할 수 있다. 공공병원도 의료시장에서 생존하기 위해 더 많은 환자를 확보해야 하고, 이는 민간병원과의 경쟁, 심지어는 인근 공공병원과의 경쟁마저도 심화시킬 뿐이다. 의료사협과 같은 ‘대안적’ 의료기관도 마찬가지이다. 의료사협에서 수액주사 할인을 홍보하거나, 공공병원에서 지역민을 대상으로 보톡스, 필러, 성형 할인 이벤트를 여는 사례는 개별 기관의 잘못된 혹은 예외적인 선택이 아니라 시장화된 의료체계 내에서 생존하기 위한 구조적 압력의 결과이다.

따라서 운동의 목표는 공공병원 설립 자체가 아니라, 시장화된 의료체계의 균열과 해체가 되어야 한다. 이는 지역의 구체적 현실에 기반하여 다양한 운동 전략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한 예로, 웅상에서 웅상중앙병원 폐원 이후, 민간병원인 베데스다 복음병원의 구급차 접근을 영구적 조치로 만들어달라는 주민의 요구는 ‘공공병원’ 설립을 직접 요구하는 것과 별개의 것이라 볼 수 없다. 공공병원 설립이 아니더라도, 의료의 상품화에 저항하는 시도는 다양하게 모색될 수 있다. 가령 상품화된 의료비 제도로 알려진 행위별 수가제 대신에 포괄수가제, 인두제, 총액계약제를 요구하는 것이 의료 공공성 강화라는 목적에 정합적인 방안일 수 있다. 주민의 의료 접근성을 높이고 의료의 상품화에 균열을 내는 것이 목표라면 “보건소 기능을 확대하든, 아니면 괜찮은 병원이 있으면 사실상 공립병원처럼 지원하든 고르고 가릴 일이 아니”라는 주장을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김창엽, 2025년 6월 27일).

이러한 운동은 주민과 함께 나아가야 한다. 주민이 보건의료 운동의 핵심 주체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 주장은 규범적 당위가 아니라, 앞서 논의한 운동의 목표와도 연결된다. 시장화된 의료체계의 균열은 특정한 정치인의 정책 결정이나, 기술적 제도로 구현되는 것이 아니라 주민의 ‘체화된 의료이용’ 방식과 문화, 신념, 가치관의 전환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주민의 체화된 의료이용이 바뀌어, 공공병원에 대한 주민의 요구가 전면화되게 해야 한다. 정책결정자는 주민의 요구를 ‘압력’으로 느끼고,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은 여러 연구에서 확인된 바 있다(Heidbreder, 2012). 그렇다면 ‘지역 정치인은 왜 공공병원 설립 의지가 부족한가’라는 질문은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지역 주민들은 지역 정치인에게 공공병원 설립을 압력으로 느낄 만큼 요구하고 있는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왜 주민들은 공공병원을 요구하지 않는가?(시민건강연구소, 2025년 12월 15일).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시장화된 의료체계가 주민들의 일상적 의료 이용 속에서 재생산되는 양상을 살펴보아야 한다.

주민의 일상적 의료 이용은 정치적 잠재성을 내포한 사회적 실천이다. 예를 들어 “지역병원에 갈까, 서울병원에 갈까?”라는 일상적 질문에는 질병의 심각도나 경제적 여건 같은 개인 차원뿐 아니라, 의료보험 제도, 병원 접근성, 의료 질 격차라는 구조적 차원, 서울병원이 갖는 상징적 권력 등이 총체적으로 작용한다. 주목할 점은 주민들이 병원을 선택할 때 민간병원과 공공병원이라는 구분 자체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주민들의 일상적 어휘 사용을 상기해보면, 동네병원, 종합병원, 대학병원, 서울병원과 같은 분류가 일상적 선택의 기준임을 알 수 있다. 시장화된 민간병원 체계가 자연화되어, 공공병원은 선택지에서 배제되거나 ‘가난한 사람들이 가는 곳’으로 인식된다.

그러나 이는 정치적 실천으로 전환될 가능성을 지닌다. “비수도권에 살아서 서울병원에 가기 불편하다”는 개인적 불만은 동네 이웃과의 대화, 또는 시민사회단체 활동가의 서명운동 등을 계기로 “왜 우리 동네에는 좋은 병원이 없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응급실 가려면 한 시간은 가야 한다”, “야간 진료를 받으려면 타 지역까지 차를 타고 가야만 한다”는 고통과 불안이 집합화되면, “왜 우리 지역은 계속 이런 상태인가”, “이 의료체계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라는 문제제기로 발전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이 질문은 “공공병원이 무엇이길래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것인가”, “공공병원과 민간병원은 무엇이 다른가”라는 질문으로까지 나아갈 수 있다. 즉, 보건의료운동에서 주민이 주체가 된다는 것은 이미 존재하는 일상적 성찰의 정치성을 조직화하고, 집합적 행위로 전환시키는 과정이다.

이상의 내용을 종합하면, 공공병원 확충 운동이 실질적 변화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두 가지 전환이 필요하다. 첫째, 목표의 전환이다. 공공병원 설립과 함께 시장화된 의료체계의 균열과 해체를 목표로 삼아야 한다. 둘째, 주체의 전환이다. 주민의 일상적 의료 이용 속에 내재한 정치적 잠재성을 조직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공공병원 확충 운동은 이제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어야 할 시점이다. 그 출발점은 각 지역에서 주민들이 무엇을 고통받고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라고 제안한다. 이러한 시도는 ‘일상적 저항’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김창엽. (2025, 6월. 27일). 지역 필수의료 붕괴, 시간 여유가 없다 [기고]. 한겨레.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204979.html

시민건강연구소. (2025, 12월 15일). 공공병원, 공공보건의료 강화가 잘 되려면? | 주민 중심 접근의 중요성 [동영상].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3s3gyCfAxns

정백근. (2025). 지역보건의료의 조건. 김창엽 외. 지역보건의료 개혁의 정치경제. 한울아카데미

Amenta, E., Caren, N., Chiarello, E., & Su, Y. (2010). The Political Consequences of Social Movements. Annual Review of Sociology, 36(1), 287–307.

Giugni, M. G. (1998). Was It Worth the Effort? The Outcomes and Consequences of Social Movements. Annual Review of Sociology, 24, 371–393.

Heidbreder, B. (2012). Agenda Setting in the States: How Politics and Policy Needs Shape Gubernatorial Agendas. Politics & Policy, 40(2), 296–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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