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경 (시민건강연구소 회원)
직장 내 괴롭힘에 시달리던 20대 간호사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퇴사 후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했고, 일부 괴롭힘은 인정되었지만 사건은 사실상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마무리되었다. 이런 사건이 반복될 때 우리의 관심은 대개 피해자와 가해자에게만 머물기 쉽다. 그러나 직장 내 괴롭힘은 두 사람 사이에서 끝나는 사건이 아니다. 같은 병동에서, 같은 사무실에서, 같은 조직에서 그 장면을 목격한 사람들은 무엇을 경험할까. ‘다음은 내가 될 수도 있다’는 불안은 조직 전체에 퍼지고, 직장은 더 이상 안전한 공간이 아니게 된다.
직장 내 괴롭힘이 피해자에게 우울, 불안,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수면장애, 자살사고 등 심각한 건강 문제를 초래한다는 사실은 이미 수많은 연구를 통해 확인되었다. 그렇다면 괴롭힘을 목격한 사람들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최근 발표된 한 체계적 문헌고찰 연구는 13개국에서 수행된 24편의 연구를 종합해 직장 내 괴롭힘을 직접 경험하지 않더라도, 이를 목격하는 것만으로 건강과 삶에 영향을 받을 수 있는지를 검토했다(☞논문 바로가기: 직장 내 괴롭힘 목격 — 개인의 건강과 웰빙에 대한 체계적 문헌고찰 및 메타분석). 단순히 목격자의 상태를 확인하려 하기보다, 직장 내 괴롭힘을 피해자 혼자, 개인이 겪는 문제가 아니라 조직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환경으로 이해하려는 시도였다.
연구 결과는 분명했다. 직장 내 괴롭힘을 목격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우울과 불안 등 정신건강 문제가 더 많이 보고되었고, 수면 문제도 더 자주 경험했다. 직무 만족도는 낮았으며, 조직을 떠나고 싶다는 마음은 컸다. 목격자의 과거 피해 경험, 피해자와의 관계, 조직의 지원, 그리고 괴롭힘 상황에서 개입했는지 여부에 따라 그 영향의 크기는 달라졌다. 직장에서 괴롭힘을 목격한 경험은, 조직이 얼마나 안전하고 신뢰할 만한 공간인지를 평가하는 과정이며, 개인의 안전과 조직문화가 함께 작동하는 경험이었다.
직접 폭력을 당하지 않았는데도 왜 건강이 나빠질까. 연구진은 몇 가지 심리적 기전을 제시한다. 첫째는 ‘대리 피해(victim by proxy)’다. 동료가 괴롭힘을 당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단순히 남의 일을 지켜보는 경험이 아니다. ‘저 사람이 저렇게 당한다면 다음은 나일 수도 있다’는 위협 신호로 받아들여지고, 이러한 불안은 지속적인 스트레스로 이어진다.
둘째는 사회적 정보처리(social information processing)이다. 사람들은 조직이 자신을 어떻게 대할지를 규정이나 매뉴얼보다 실제 벌어지는 일을 통해 판단한다. 상사가 한 직원을 공개적으로 모욕하고, 동료들이 침묵하며, 조직이 이를 방치하는 모습을 반복해서 경험하면 ‘이곳에서는 사람이 이렇게 대우받는구나’라는 인식이 형성된다. 괴롭힘은 피해자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조직문화와 심리적 안전감에 대한 강력한 신호가 되는 것이다.
셋째는 인지부조화(cognitive dissonance)다. 대부분의 사람은 어려움에 처한 동료를 돕고 싶어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상사의 눈치를 보거나, 자신도 불이익을 받을까 두려워 아무 행동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도와야 한다’는 신념과 ‘도울 수 없었다’는 현실 사이의 간극은 죄책감과 무력감을 낳고, 이러한 감정이 반복되면 우울과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다. 연구에서도 실제로 괴롭힘 상황에 개입하지 못한 목격자에서 정신건강 악화가 더 크게 나타났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제도는 사용자에게 괴롭힘을 예방하고 조사하며 필요한 조치를 취할 책임을 부여하고 있다. 이는 피해자를 구제하기 위한 제도이기도 하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안전한 노동환경을 유지하기 위한 산업안전 제도이기도 하다. 이번 연구는 그 이유를 뒷받침한다. 괴롭힘을 방치하는 조직은 피해자뿐 아니라 이를 지켜보는 동료들의 건강까지 위협한다.
흡연이 흡연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간접흡연을 통해 주변 사람들의 건강까지 위협하기 때문에 공공장소 금연 정책이 시행되듯, 직장 내 괴롭힘 역시 직접 피해뿐 아니라 ‘간접 노출’까지 고려하는 접근이 필요하다. 괴롭힘을 개인 간 갈등이 아닌 조직 전체의 건강을 위협하는 환경적 위험요인으로 바라볼 때, 괴롭힘을 목격한 사람들까지 우리의 관심과 지원의 범위에 포함할 때, 모두가 안심하고 일할 수 있는 일터를 만드는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서지정보
Nielsen, M. B., Einarsen, S. V., Parveen, S., & Rosander, M. (2024). Witnessing workplace bullying—A systematic review and meta-analysis of individual health and well-being outcomes. Aggression and violent behavior, 75, 1019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