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연구통

복지 대상자들의 또다른 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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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건강렌즈로 본 사회> 2014.03.12 (바로가기)

 

정권이 바뀌어도 계속 비슷한 일이 반복되는 느낌이다. 최근 잇따르는 빈곤층의 자살 사건에 대한 대응책으로, 이번에도 정부 부처는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계층을 집중 조사한다고 발표했다. 제도는 잘 마련해 놓았는데 혜택을 받아야 할 사람들이 무지한 것이라는 눈높이와 오만이 읽힌다.

복지와 분배는 일반 국민을 설득해내기 쉽지 않은 정책 주제이다. 거칠게 말하면 내가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이, 능력 없어 보이는 이들에게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경제라도 ‘삐걱’대는 상황이면, 납세자들은 더욱 인색해지기 마련이다. 또 정부는 복지 수급 신청자에게 엄격한 기준을 들이대고, 부정 수급자를 색출해내는 데 힘을 쏟는다.

복지체계와 그 변화의 중심은 사실 정책의 대상인 수급자들이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복지체계는 아무리 잘 포장해도 ‘깐깐히 골라 조금 건네주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다.

뉴욕대의 핸슨 교수팀은 복지체계와 그 변화가 수급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알아보기 위해 2005~2012년 뉴욕시 보건소와 빈민 거주 지역에 머물며 그들의 삶을 살펴본 결과를 논문집 <사회과학과 의학> 최신호에 발표했다. 핸슨 교수팀이 미국 저소득층을 연구 대상으로 삼은 것은 1996년에 있었던 복지제도 개혁 때문이다. 이 개혁은 일하지 않는 사람은 복지 혜택을 받을 자격이 없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새로운 제도가 시행되자 일을 구하기 시작한 가구주는 늘었지만, 장애 등 때문에 일할 능력이 없거나 여전히 소득 보조가 절실한 빈곤 가구는 남아 있었다. 이들에게 남은 생존 방법은 장애 수당을 받는 것이었고, 결국 저소득 계층에서 정신질환으로 장애 판정을 받고 수당을 받는 사람이 늘어났다.

새로운 제도에서 저소득층은 또다른 멍에와 부담을 짊어지게 됐다. 자신에게 장애가 있음을 의학적으로 증명해야 했고, 수당을 받기 위해 먹은 정신과 약물의 부작용에도 시달렸다. 더군다나 정신 질환이 있다는 이유로 일자리를 구할 수도 없었다. 언론 또한 일부 부정 수급자에 대한 기사를 썼고, 정부는 수급 기준을 높이고 신청 절차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학력이 낮은 수급 신청자는 복잡한 절차를 이해하지 못해 장애 수당의 일부를 지급하며 변호사에게 업무를 맡겼고, 이런 업무를 전문적으로 처리해주는 변호사까지 생겨나기에 이르렀다. 복지제도의 개혁은 애초 세웠던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고, 대상자들의 삶은 또다른 막다른 길로 몰렸다.

복지제도에서 시각의 전환을 주장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복지정책이 단지 저소득층에게 몇 푼 나눠준다는 식이라면, 대상자가 아닌 대다수의 지지를 받기 어려워 항상 축소될 위험에 처하기 마련이다. 이 때문에 단지 수급 대상의 폭을 넓히고 지원액을 늘리는 것은 근본대책이 되기 어렵다. 복지가 인간으로서 응당 누려야 하는 권리를 보조해주는 수단인지, 눈치 보고 미안해하면서 받아야 하는 것인지부터 다시 고민해보자. 미안한 이웃이 되지 않으려고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 현실이라면, 지금의 정책은 목적과 설계 모두에서 크게 잘못돼 있다.

박지은 시민건강증진연구소(health.re.kr) 영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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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에 소개된 논문의 서지정보는 다음과 같습니다.

Hansen H, Bourgois P, Drucker E. Pathologizing poverty: New forms of diagnosis, disability, and structural stigma under welfare reform. Soc Sci Med. 2014 Feb;103:76-83 (원문 바로가기)

* 더 읽어볼 거리를 아래와 같이 소개해 드립니다.

<사회과학과 의학 (Social science & medicine)> “구조적 낙인과 인구집단 건강” 특집호 (바로가기)

김태현, 강명세, 이삼식, 최효진, 전창환, 정연택, 김형모, 이현주, 김주환, 조한진, 조소영. 주요국의 사회보장제도: 미국편. 보건사회연구원. 2012 (원문 바로가기)

Michael B. Katz. The Undeserving Poor: From the War on Poverty to the War on Welfare. 1989. New Y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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