뱃살왕자의 건강관리 필살기, 믿으십니까?
손 정 인(연구소 영펠로우)
2010년 8월 4일 배포된 보건복지부의 건강관리서비스 책자에는 35살의 뱃살왕자 강건님이 등장한다. 뱃살왕자는 술, 담배, 패스트푸드를 좋아하고 채소, 과일, 운동을 싫어한다. 35세에 벌써 배가 나와 발끝이 보이지 않고 건강측정 결과 혈압, 혈당 수치가 높아 ‘건강주의군’으로 분류되었다. 혼자 건강관리 하다가 실패하고 동료의 권유로 건강관리서비스를 받는다. 열심히 운동하고 술, 담배를 끊고 건강한 식생활을 통해 혈압과 혈당이 정상치로 돌아왔다.
뱃살왕자처럼 건강관리서비스를 받고 ‘건강군’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뱃살왕자의 경험은 믿기엔 좀 애매하다. 뱃살 왕자가 술, 담배, 패스트푸드를 좋아하고 운동부족에 빠진 사회경제적 여건이 있을 것 아닌가? 만약 그냥 그렇게 살았다고 쳐도 건강관리회사의 권유로 회사동료와의 회식을 끊고 직장생활은 무리가 없나? 건강한 식단은 누가 저렇게 만들어 주나? 일과 중에 건강관리서비스 받을 만큼 직장이 좋은가 보네? 등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당신은 왜 건강하지 않습니까?
건강을 결정하는 것은 무엇일까? 좀 딱딱한 용어로 말하면, ‘건강의 결정요인’이 무엇일까? 이는 ‘건강’의 개념에 따라 달라진다. ‘건강’을 단순히 ‘질병 없는 상태’로 본다면 가장 중요한 ‘건강의 결정요인’은 치료 서비스일 것이다. 하지만 1948년 세계보건기구는 벌써 ‘건강’ 개념을 ‘질병 없는’ 상태를 넘어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영역까지 규정하였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도 이 개념은 고리타분할 정도로 상식이 되었다.
그렇다면 ‘건강의 결정요인’은 어떻게 되었을까? 20세기 후반에 상당히 확장되었다. 현재는 유전학을 비롯하여 생물학, 보건의료, 생활습관, 소득, 교육, 노동, 복지체제, 정치체제, 권력분배 등에 이르기까지 그 논의가 다양하고 복잡하다. 성적 비관 학생의 자살, 용산 참사, 삼성반도체 백혈병 환우 사망, 청소노동자의 자살 등 최악의 건강상태를 생각해보면 건강의 결정요인이 매우 복잡한 사회생태학적 구조를 보여준다는 걸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여기서 핵심은 어떤 사회가 구성원의 건강을 책임지고자 한다면, 밝혀진 건강의 결정요인들을 다차원, 다수준의 틀로 구성하고 그 틀을 통해 건강문제를 인식하고 개선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를 염두해 두고 건강관리서비스를 살펴보자.
그렇다면 오늘 살펴볼 건강관리서비스법안이란 어떤 건강의 결정요인과 연결될까? 쉽게 말해 건강하지 못한 이유를 무엇으로 보는 걸까? 바로 담배와 술, 고지방음식을 즐기거나 운동을 하지 않는 생활습관을 원인으로 본다. 사회가 질병 발생을 막고자 치료 서비스 제공에 급급했던 시절에서 벗어나 질병 발생을 미리 예방하는 것에도 노력하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질병 예방에는 건강검진, 예방접종도 포함되지만 담배, 술, 운동 등 생활습관 변화도 중요한 정책수단이라 여기고 채택한 것이다. 물론 경제 수준 향상과 만성질환 증가가 큰 몫을 했고 급속한 고령화 문제도 이를 촉발한 계기였다. 어쨌든 건강의 결정요인은 질병 치료와 같은 좁은 영역을 벗어나 건강한 생활습관이라는 좀 더 넓은 영역으로 확장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생활습관이라는 건강의 결정요인에서 [건강관리서비스법]안이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니다. 1995년 9월 1일 시행된 [국민건강증진법]은 제1조에서 건강생활 실천 여건을 조성하여 국민의 건강증진을 목적으로 규정하고 보건교육, 질병예방, 영양개선, 건강생활 등 국민건강증진사업을 지원하기로 하였다. 그렇다면 [건강관리서비스법]은 [국민건강증진법]과 어떤 점이 다르기에 새로 입법을 하려고 하는가?
건강관리서비스는 어떻게 등장했나?
2010년 5월 17일 변웅전 의원이 대표로 국회의원 10여명과 함께 [건강관리서비스법]안을 발의하였다. 발의 당시 국회 보건복지가족위원회 위원장이었던 변웅전 의원은 법안 발의 후 다른 상임위원회인 ‘국토해양위원회’로 옮겼고 이후 보건복지부가 주도하여 적극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모양새다. 이는 의원입법이 아닌 정부입법임을 짐작케 한다.
사실상 보건복지부는 2년 전부터 건강관리서비스 활성화를 위한 수순을 밟아 왔다. 2008년 4월 22일 ‘건강서비스 활성화 TF’를 발족하여 활동하였고 2009년 6월부터 9월까지 ‘건강관리서비스 TF’를 구성하여 수차례 회의와 해외 출장, 워크숍을 통해 건강관리서비스 제도 도입을 모색하였다.
2010년 5월 17일 [건강관리서비스법]안 국회 발의 이후 6월 21일 대표적 의료민영화 찬성론자인 정상혁 이화여대 교수가 청와대 보건복지비서관에 임명되고 7월 2일 전재희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어느 포럼에서 건강관리서비스의 속도감 있게 추진하라고 밝혀 법안 추진에 탄력이 붙은 상태다. 9월 7일 법제처는 드디어 건강관리서비스법안이 올 정기국회에서 반드시 처리해야 할 법률안 54건에 들어 있다고 밝혔다.
이렇게 보건복지부가 밀어붙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2010년 7월 6일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주최로 열린 성공적 건강관리서비스 도입방안 심포지엄에서 오상윤 보건복지부 건강정책과 사무관은 건강관리서비스제도 도입의 필요성을 보편적·대중적 건강관리 정착, 질병예방 및 국민의료비 절감, 일자리 창출 및 산업 발전으로 밝혔다. 액면 그대로 믿으면 되는 걸까? 그러기 위해 건강관리서비스 제도부터 따져보자.
건강관리서비스 제도란 무엇인가?
“건강관리서비스”란 건강 유지·증진과 질병의 사전예방·악화 방지 등을 목적으로 위해한 생활습관을 개선하고 올바른 건강관리를 유도하는 상담·교육·훈련·실천 프로그램 작성 및 관련 부가서비스라고 규정한다. 쉽게 말해 영양·운동 상담과 건강 모니터링을 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국민건강증진법]과의 충돌도 문제지만, 보건복지부가 한술 더 떠 건강관리서비스와 의료서비스가 명확히 구분된다고 주장하는 것도 문제이다. 전문가들은 현장에서 의료서비스와 건강관리서비스를 구분하는 것이 사실상 가능하지 않다고 한다.
그렇다면 건강관리서비스를 이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건강관리서비스법]안에 따르면 먼저 의료기관에서 건강 측정(비만, 혈압, 혈당, 고지혈증, 흡연력 등 만성질환 예방과 관련된 5~6개 항목 측정)을 해야 한다. 측정 결과를 기반으로 질환군, 건강주의군, 건강군으로 분류한다. 이 중 질환군은 의료기관으로 가서 의료서비스를 이용하고 건강주의군은 건강관리서비스기관으로 가서 건강관리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으로 규정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건강군/건강주의군/환자군이라는 구분 자체가 타당하지 않을 뿐 더러 그 기준을 절대화하는 것도 무리라며 비판한다.
한편 건강관리서비스는 어느 기관에서 제공하는가? [건강관리서비스법]안에 따르면 건강관리서비스 제공기관은 시설·인력 기준을 갖추어 별도 허가를 받는 독립 기관으로 의료기관과 완전히 구분된다. 하지만 문제는 법안에서 제공기관 개설신청자의 자격 조항을 따로 두지 않아 영리 목적의 민간기관의 개설을 막을 방도가 없다. 의료기관은 [의료법]에 저촉되어 엄격한 규제를 받지만 건강관리서비스기관은 별도 허가 요건만 갖추면 누구나 개설가능하다.
또한 건강관리서비스 제도는 무슨 돈으로 충당할까? 놀랍게도 [건강관리서비스법]안에는 전혀 언급되지 않고 있다. 겨우 눈에 띄는 것은 국민기초생활수급자 및 장애인에 대한 필수 건강관리서비스 제공과 건강취약계층 및 저소득층에 대한 바우처 발급 규정 정도다. 결국 일부 취약계층을 제외하면 건강관리서비스 이용료는 100% 본인 부담이다. 왜 건강보험을 적용하지 않을까? 보건복지부의 주장은 그러고는 싶은데 현재 건강보험 재정 상태로는 어렵다고 한다. 또한 중증질환 치료 등 다른 게 더 시급한 문제여서 건강보험을 적용할 수는 없다는 선심까지 쓴다.
건강관리서비스기관의 소유 주체에 대한 규제도 없고 서비스 이용료는 100% 본인부담이라고 하면 이 제도가 제대로 굴러 갈까? 시장에 맡기려는 제도의 존립까지 걱정할 마음은 없지만, 보건복지부가 그렇게 열심히 추진하는 이유는 고민해 볼 만하다.
과연 건강관리서비스 제도 도입이 필요한가?
앞서 [건강관리서비스법]과 [국민건강증진법]은 뭐가 달라서 새로 입법해야 하는지 물었다. 1995년 제정·시행된 [국민건강증진법]에 따라 그간 전국의 보건소에서는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생활터, 생애주기에 따라 포괄적인 건강증진사업을 수행해 왔다. 다시 말해 건강증진은 국가의 책임임을 천명하고 공공이 주체가 되어 인구집단을 대상으로 생활습관을 개선시켜 왔다.
하지만 [건강관리서비스법]은 이와 반대로 생활습관은 순전히 개인 탓으로 돌리고 민간이 주체가 되어 개인별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면 된다는 식이다. 소득, 교육수준, 직업이 불리할수록 건강한 생활을 할 수 없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와 동시에 개인별 맞춤형 서비스를 한다면 상당수 취약계층은 서비스에 접근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건강관리서비스법]안은 건강생활 실천에서 사회적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 아닌가? 결국, [건강관리서비스법]과 [국민건강증진법]안은 근본적으로 다른 가치관과 논리 구조를 가졌다. 따라서 결코 함께할 수 없었을 지도.
한편 앞서 언급한 심포지엄에서 오상윤 사무관은 보편적·대중적 건강관리 정착, 질병예방 및 국민의료비 절감, 일자리 창출 및 산업 발전 때문에 건강관리서비스제도 도입이 필요하다고 했다. 첫째, 보편적·대중적 건강관리 정착 때문에 건강관리서비스 제도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전국 보건소에서 행해지는 건강증진 사업은,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행해지는 맞춤형 건강관리사업은, 국고지원되는 산업체 방문 건강관리사업은, 의료기관에서 제공되는 건강증진과 질병관리 서비스는 도대체 무엇인가? 왜 시장에서 민간건강관리기관이 활성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건강관리 인프라가 정착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인가? 물론 기존 여러 사업들의 성과가 좋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진심으로 전 국민에게 보편적·대중적인 건강관리 인프라를 구축하려면 기존의 사업을 평가하여 보완하고 자원을 더욱 투입하여 개선하는 것이 맞지 않은가?
둘째, 질병 예방 및 국민의료비 절감 때문에 건강관리서비스 제도가 필요하다? 물론 질병 예방 및 국민의료비 절감 때문에 건강한 생활습관을 지니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어떻게 제도를 구축할 것인가는 중요하다. 생활습관이 사회경제적 요인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근거는 아주 많다. 따라서 건강한 생활습관으로 개선하는 것은 개인별 맞춤형 서비스나 의료서비스와 건강관리서비스의 분리 보다는 생활터 · 생애주기별 포괄적 인구집단 서비스가 주가 되고 그것을 통해 자연스레 국민의료비가 지속가능한 상태로 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셋째, 일자리 창출 및 산업 발전 때문에 건강관리서비스 제도가 필요하다? 결국 [국민건강증진법]을 두고 [건강관리서비스법]안을 입법 발의한 것은 건강을 추구하는 보건정책이 아니라 이윤을 추구하는 산업정책 때문이 아닐까? 서비스제공기관의 개설 자격을 명시하지 않은 것도, 재원조달 방식을 규정하지 않은 것도 시장영역에서 영리형 건강관리서비스 제공기관을 증가시켜 u-Health와 IT를 연결시켜 산업을 활성화시키고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전략, 그리고 민간 건강보험을 활성화시키면 건강보험 재정을 증가시키지 않으면서 GDP는 증가시키니 보건복지부는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는 격 아닐까? 이를 뒷받침하는 기사가 있다. 지난 2008년 6월 17일 국내 민간건강관리회사인 A사 이영준 대표이사는 민영건강보험의 보완적 역할을 활성화해야 건강관리서비스 산업이 활성화와 효율화가 가능하다고 하였다. 또한 일자리 관련하여 2008년 9월 18일 청와대의 대통령 주재 2차 투자활성화 및 일자리 확대 위한 민관합동회에서 정부는 미국, 일본에서 예방적 건강관리와 질병관리 등 신규 서비스업이 등장하고 있어 고부가일자리가 창출되고 있다며 건강관리서비스 활성화의 당위성과 민간보험사의 겸업 가능 방안을 검토하라고 한다.
그렇다면 미국과 일본, 호주 등에서는 건강관리서비스는 어떤 상태에 있을까? 미국은 민간건강관리산업이 발달된 국가이지만 국민의료비 절감 측면에서는 형편이 없다. 잘 아시다시피 미국 GDP의 15%를 넘는 비용이 국민의료비에 들어간다. 결국 비용효과적이라 주장하는 건강관리서비스도 어떤 보건체계 속에서 어떠한 건강관리서비스제도로 구현되느냐에 따라 그 성과가 다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일본은 우리로 치면 국민건강보험공단이 건강검진과 건강관리서비스를 관리하는 구조이다. 재원은 물론 건강보험 재정으로 공적 재원이다. 호주는 우리와 달리 국가공영의료체계로써 주치의와 같은 1차의료 의사가 개인의 전반적인 건강생활을 포괄적으로 관리하는 가운데 위험이 발견되면 건강관리기관에게 위탁하는 구조다. 따라서 정부가 산업정책이 아닌 보건정책을 수립하는 것이라면 기존의 보건소 역할, 기존의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역할, 1차 의료의 역할을 잘 정립하여 한국 사회에 적절한 건강증진제도를 수립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건강관리서비스법]안은 의료민영화 정책의 일환이다
앞서 살펴봤듯, [건강관리서비스법]안에서 핵심은 서비스 제공기관으로 영리 목적의 민간기관도 가능하다는 점과 일부 재원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민간영역에서 조달한다는 점이다. 동시에 일부 재원도 기존 공공보건 영역의 예산을 이용하거나 담뱃값을 인상하여 조달할 예정이므로 취약계층에 대한 보장도 장담할 수 없어 보인다. 이는 일부 공공부조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서비스 제공과 재원조달을 시장에 맡기려는 의료민영화 정책과 동일하다. 또한, 발의된 법안대로 제도가 시행되면 건강생활 실천에서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강화시켜 그 결과 건강불평등을 더욱 심화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그리고 [건강관리서비스법]안은 건강에 대한 책임을 사회 보다는 개인 탓으로 돌리고 공공의 책무를 방기한 채 시장에 맡겨 국민의 보건 향상보다는 일자리와 부가가치 창출을 목표로 하는 산업 정책적 기조를 드러냈다고 결론내릴 수 있다. 이런 정책을 지식경제부가 아닌 보건복지부 건강정책국에서 주도하여 입법 발의하는 것이 정당한지 국민의 한 사람으로써 심히 의문스럽다.
* 이 글은 2010년 9월 9일 인터넷 언론 ‘프레시안’에 투고된 글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