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 논평

세월호 사고의 재발을 막는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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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아직은 다른 주제를 다루기 어렵다. 채 실종자도 다 찾지 못한 형편이다. 소비까지 줄어들 정도니 보통 사람들의 마음에 난 상처도 크다. 이 마당에 다른 데에 관심을 두기는 차마 내키지 않는다.

 

거듭 다잡는 것이 그나마 이 불행한 사고에서 몇 가지 교훈이라도 찾아내는 일이다. 두 주 전 논평에서 지적했듯이, 벌써부터 이 일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바로가기). 원하든 그렇지 않든, 원인과 책임의 소재, 과제와 지향은 같은 패러다임으로 묶여 있다.

 

구체적으로는 바로 지난 주에 공중보건의 원리에서 도출한 몇 가지 과제를 내놓았다 (바로가기). 집단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 예방이 중요하다는 것, 그리고 다양하고 복잡한 원인을 한께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 요지였다.

 

재난과 큰 사고에 적절하게 대응하는 것은 매우 복잡하고 어려운 과제다. 미국 부시 행정부가 카트리나에 잘못 대응하는 바람에 정치적 지지기반을 잃기 시작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제대로 된 대응체계를 만드는 일은 그만큼 만만치 않다.

 

이 자체가 새로운 도전이고 시험대다. 대통령이 말한 것을 그대로 믿는다면, 이미 새로운 조직을 포함해서 많은 도전에 직면해 있을 것이다. 시시콜콜 세부적인 사항이야 논의가 오죽 많을까, 지금 여기에 보태 말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을 줄로 짐작한다.

 

오히려 걱정스러운 것은 큰 그림을 놓치는 것이다. 관료체계가 작동하면 당연히 세부적이고 기술적인 면에 치우치기 쉽다. 당초의 문제의식과 목표는 어느새 옅어지고 몇 명과 몇 원을 두고 걱정하고 다투게 된다.

 

 

그런 점에서 시민과 대중의 시각에서 챙길 일은 원칙 몇 가지를 다시 확인하는 것이다. 부분적으로 겹치고 때로 상식적이라 하더라도 예사롭게 보아 넘기지 않기를 바란다.

 

사고와 재난에 대비하는 태세는 하나의 종합적이고 일관된 ‘체계’를 필요로 한다. 현재를 특히 체계 구축(또는 재구축)의 시점이라고 할 때, 성패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 기획이다. 다시, 어떤 원칙에 기초하는가는 기획의 기초이자 핵심임을 가볍게 여길 수 없다.

 

첫째, 예방 중심을 다시 강조한다. 눈에 보인 세월호 사건은 구조 과정의 난맥상으로 대표되었지만, 아무리 훌륭한 구조 체계라도 사고가 생기지 않는 것보다는 못하다. 누구라도 한이 될 정도의 아쉬움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 사고를 미리 막을 수 있었다면, 지금 한국 사회는 많이 다르리라.

그렇지만 예방에 많은 투자를 하는 것은 눈에 보이는 효과(가시성)가 떨어진다. 가시성을 중요하게 따지는 것은 관료체계의 오래된 습관이자 병폐다. 게다가 많은 예방 활동은 시대 정신(?)의 반열에 오른 효율 지상의 원리를 충족하기 어렵다.

압도적 경향을 거스르는 유일한 방법은 국정 최고 책임자가 명확한 지침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산출과 성과 목표를 분명히 규정해야 한다. 모호한 표현이나 다의적인 메시지로 얼버무리는 한, 관료는 결코 움직이지 않는다.

 

둘째, 전반적인 사회적 역량 강화가 핵심 목표에 포함되어야 한다. 재난과 사고는 항상 복합적이고 다면적이다. ‘표준화’와는 더욱 거리가 멀다. 아무리 전문적이고 규모가 커도 모든 재난과 사고를 모두 다룰 수 없다.

많은 사고와 재난에서는 ‘누구라도’ 대응 태세의 한 부분이 될 수밖에 없다. 국가안전처를 만들어도 역할 분담과 위임, 분권은 피하기 어렵다. 예방까지 염두에 두면 사회적 ‘협업’의 필요는 더 강해진다.

그렇다면 사고에 대비하는 실력과 역량은 종합적인 것인 동시에 사회적인 것이다. 컨트롤 타워의 역량만으로는 모든 대응을 제대로 할 수 없다. 필요한 모두가 제대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전반적인 ‘체력’을 기르는 것이 더 중요하다.

 

셋째, 사고와 재난에 대비하는 사회적 체계는 민주적 원리에 기초해야 한다. 대응 체계가 전반적인 사회적 역량에 의존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이미 지적했다. 민주적 원리가 아니라면 사회 구성원들로부터 최소한의 협력도 얻기 어렵다.

기술적인 성과를 높이는 데에도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미시적 수준까지 ‘맞춤형’ 대비체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분권적이고 민주적 참여를 촉진해야 한다. 규범과 행동방침을 지키고 체계를 작동시키는 데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 역시 당사자의 참여와 ‘주인됨’이다. 비난의 대상이 되어 있는 관료주의의 병폐를 줄이는 방법도 달리 생각하기 어렵다.

 

넷째, 형평과 정의의 원리가 적용되어야 한다. 재난과 사고는 발생의 처음 단계부터 피해와 대응에 이르기까지 부정의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모든 계층과 사회적 조건 사이에서 골고루 분포하는 법이 없다.

인간이 만드는 재해뿐 아니라 자연재해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카트리나(2005년 9월)와 필리핀의 태풍 하이옌(2013년 11월)은 자연재해의 피해가 사회적 불평등과 부정의를 그대로 반영한 대표적 사례다. 양쪽 모두 피해는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한 지역과 계층에 집중되었다.

예방은 물론 피해에서 회복되는 것도 다를 바 없다. 어떤 상황에서도 재해와 사고에 대비하는 체계는 자원(예를 들어 인력과 예산) 배분의 우선순위를 정해야 하는 부담을 안는다. 형평과 정의, 공정성의 문제가 필연적으로 생긴다.

사고와 재난을 인식하고 포착하는 단계부터 정의의 문제가 제기된다는 것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정의의 원리로 비추어 볼 때, 비행기의 안전이 여객선의 안전보다 더 우선순위가 높을 근거가 없다.

 

마지막으로,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한 대비체계를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을 보탠다. 국가적 수준에서 작동하는 컨트롤 타워도 중요하지만, 재난과 사고의 발생과 대응 모두에서 지역사회가 대상이자 주체가 될 가능성이 커진다.

우선 재난과 사고가 생기는 단계에서 지역사회 ‘중심성’이 더욱 강화되는 추세다. 사고에 취약한 인구가 지역을 중심으로 밀집되는 경향이 그렇다. 슬럼과 쪽방, 노인인구가 대다수인 지역과 시설 등이 대표적 예가 될 것이다.

대응을 위한 체계 역시 지역을 단위로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역의 상황과 필요에 맞추어 체계가 만들어져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또한, 앞서 말한 사회적 협업은 지역사회를 단위로 할 수밖에 없다. 이곳에서 지역사회 중심이라는 원리는 다시 민주적 참여의 원리와 이어진다.

 

이상에서 제기한 원리들이 어떻게 구현될 수 있을까. 환원론적이긴 하지만, 특히 이즈음에는, 국정 최고책임자(대통령)의 지도력이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 같다. 당장은 대통령의 일관된 메시지와 행동, 그리고 시그널이 필요하다. 정치적 권력이 극도로 집중되어 있는 만큼, 국정과 사회 전반에 한 방향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방법이다.

 

그 때문에 벌써부터 정치적 메시지의 중심이 명확하지 않은 것이 걱정스럽다. 안전이 빠지지는 않았어도 시그널은 내수 침체와 소비 부진, 투자 활성화 등과 뒤섞이기 시작했다. 물론, 국정은 종합적이고 결코 쉴 수 없다는 명분을 이해한다. 하지만, 정치적 의지와 우선순위는 필연적으로 불균형하고 때로 독점적이다. 관료와 시장은 메시지와 시그널을 통해 중심의 이동을 귀신같아 알아낸다.

 

한국의 관료조직은 진작부터 시장과 효율의 압도적인 영향력 아래 있다. 단일하고 강력한 시그널로도 ‘개조’하기 어려울진대, 모호하고 혼합된 것으로는 턱도 없다. 정말 안전과 보호를 제일의 국정과제로 생각한다면 지금 의제와 시그널을 더욱 단순하게 가다듬어야 한다. “어떤 경우에도 안전과 생명을 최고의 가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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