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2014년 7월 30일자 <건강렌즈로 본 사회> (바로가기)
세월호 참사나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폭격, 잇따른 비행기 사고 등으로 나라 안팎이 뒤숭숭하지만 휴가철은 어김없이 돌아왔다. 원래 휴가는 각자 필요한 때에 휴식을 취하면 되는 것인데, 우리나라에는 ‘휴가철’이 따로 존재한다. 나름 독특한 현상이다. 자녀들의 학교·학원 방학, 대규모 사업장의 작업 일정 등에 휴가를 맞추다 보니 빚어지는 일이다. 실제로 국민 셋 가운데 한 명이 이 기간에 ‘해치우듯’ 휴가를 떠난다. 문제는 휴가를 맞아 산이나 바다로 떠난 이들조차, 쉬는 게 쉬는 게 아닌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또 여전히 많은 이들이 공식 휴가마저 가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더 블롬 네덜란드 네이메헌 랏바우트 대학 교수팀이 세계적인 학술지 <스트레스와 건강>에 2012년 발표한 논문은, 휴가가 노동자의 건강 및 삶의 질에 끼친 영향을 꼼꼼하게 분석한 내용이다. 연구팀은 배우자와 함께 휴가를 보낸 노동자 93명을 대상으로 휴가 전, 휴가 기간, 휴가 뒤에 건강 및 삶의 질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측정했다. 건강 상태, 기분, 정신적 피로감, 육체적 피로감, 긴장도, 에너지 수준, 만족도와 행복감 등 8가지 영역을 조사해 ‘휴가 효과’를 분석했다. 또 휴가의 질을 알아보려고 휴가를 어떻게 보냈는지도 함께 조사했다.
그 결과, 예상대로 휴가는 노동자의 건강 및 삶의 질에 긍정적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효과는 휴가 이후까지 지속됐다. 하지만 모든 노동자들에게서 그런 효과가 나타나지는 않았다. 휴가 기간에 배우자와 좋은 대화를 가졌다고 스스로 평가한 사람들이나 휴가 기간에는 일을 생각하지 않았다고 답한, 즉 심리적으로 일과 휴가가 잘 분리된 사람일수록 휴가 뒤에도 휴가의 긍정적 효과가 지속됐다.
휴가가 오히려 노동자의 건강이나 삶의 질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 경우도 있었다. 이런 현상은 휴가 기간에 업무와 관련된 활동을 많이 한 노동자들에게서 나타났다. 이들은 심지어 휴가를 가기 전보다 휴가를 다녀온 뒤 오히려 건강과 삶의 질이 더 나빠진 것으로 조사됐다. 휴가 기간에도 업무를 손에서 놓을 수 없는 노동자였다면 평소에는 얼마나 과중한 업무 스트레스에 시달렸을지 짐작할 수 있다.
국민권익위원회가 발표한 최근 보고서를 보면, 우리나라 노동자 10명 가운데 6명가량은 퇴근 이후에도 업무와 관련된 일을 한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자 3명 가운데 2명은 휴일이나 퇴근 이후에도 업무 지시를 받았다고 한다. 아직도 많은 노동자들에겐 일터를 떠난다고 일이 끝난 게 아니라는 얘기다.
얼마 전 프랑스에서 퇴근 뒤에는 업무와 관련된 전자우편을 발송하지 않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협정을 노동조합과 경영진이 체결해 언론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이 소식은 우리 사회에서도 큰 관심을 끌었다. 퇴근 뒤까지 업무를 하지 않아도 우리나라의 노동시간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과 비교할 때 이미 압도적으로 길다. 노동시간을 줄이는 근본적인 대책이 절실하지만, 최소한 쉴 때만이라도 제대로 쉴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우리에겐 ‘진짜 퇴근’ ‘진짜 휴가’가 필요하다.
박지은 시민건강증진연구소(health.re.kr) 영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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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에 소개된 논문의 서지 정보는 다음과 같습니다.
- de Bloom J, Geurts SA, Kompier MA. Effects of short vacations, vacation activities and experiences on employee health and well-being. Stress Health. 2012;28(4):305-18.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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