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히 대책은 있어야 하고, 어떻게 하면 같은 일이 또 생기는 것을 막을까 생각해야 한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 무슨 기가 막힌 것이 나올 것 같지 않다. 원인이 간단해야 대책도 그런데, 간단치 않은 문제에 만병통치약이 있을 리 만무하다.
며칠 간 모든 사람을 놀라게 하고 분노하게 만든 군대 폭력 이야기다. 육군 28사단의 윤 일병 사망 사건도 처음에는 여느 군대 폭력인가 싶었다. 하지만 조금씩 실상이 알려지면서 보니 영 차원이 다르다.
폭력의 정도나 방법이 상상하는 정도를 넘었다. 한 마디로 그동안 있었던 그 어느 사건보다 잔혹하고 야만적이다. 가해자들을 살인죄로 기소해야 한다는 요구까지 나올 정도다.
실상과 원인이 모두 다 밝혀지기 전이지만, 이번에도 여러 대책이 백가쟁명으로 어지럽다. 아주 근본적인 것부터 바로 고칠 수 있는 것까지 수를 헤아리기 어렵다. 사건이 사건인데 왜 그렇지 않겠는가. 국방부가 내놓은 것만 하더라도 숫자로는 충분하고도 남는다.
우선 가해자를 ‘일벌백계’하고, 지휘관의 책임을 엄중하게 묻겠다고 한다. 그리고 새로운 듯 또 익숙한 중장기적인 대책들. 민관군 병영문화 혁신, 보호관심 병사 관리시스템 개선, 고충신고와 처리 시스템 개선 등.
이번에는 좀 나아질까. 사건이 사건인 만큼 기대를 걸어야 하지만 그리 미덥지 않다. 물론 아직 단정 짓긴 이르다. 그러나 과거와 비슷한 식이면 시간이 문제지 또 비슷한 일이 되풀이되지 않을까 비관이 앞선다.
그렇게 생각하는 첫째 이유. 지금은 여론의 눈치를 보고 있겠지만 문제 자체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힘들여 찾지 않아도 된다. 군대 내부에 또는 외부에 확신을 가진 사람들은 넘친다.
그 사람들에게 이번 사건은 그야말로 하나의 불기피한 사고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할지 모른다. “군대가 군대답고 군인이 군인다우려면, 이런 저런 일은 당연히 감수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부작용도 마찬가지.”
상명하복과 충성, 일사불란, 기강, 남자다움, 집단의식과 희생… 이런 것들이 군대와 군인의 생명이고, 또 이렇게 되기 위해 어느 정도의 폭력은 어쩔 수 없다는 생각. 군대가 무슨 학교인가 하는 냉소. 문제를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애당초 해결 방법 같은 것도 필요하지 않다. 여론을 관리하는 것 정도가 유일하게 신경 쓸 일.
두 번째는 군대 폭력이 집단적 현상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개인의 다짐과 변화가 곧 집단과 사회의 개선으로 이어질 수 없다. 모두 합하며 수십만의 젊은이가 생활을 같이하고, 아무리 적어도 몇 십 명이 얼굴을 맞대는 사회가 아닌가.
폭력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고, 그 가운데서도 가장 극단적인 인간관계의 표현이다. 그리고 관계의 당사자는 ‘관심 사병’인가 아닌가 단 두 가지로 나누어질 수 없다. 건강이든 인성이든, 또는 폭력 성향이든 있다/없다가 아니라, 어느 정도나 그런가 얼마나 심한가라는 ‘연속선’이다.
인간관계와 그 상호작용이라는 점에서 보면,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고 또한 가해자가 될 수 있다. 그 유명한 스탠퍼드 감옥 실험이나 스탠리 밀그램의 권위 실험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다 (스탠리 밀그램. <권위에 대한 복종>, 정태연 옮김, 에코리브르 펴냄).
집단은 이런 과정 전체를 규율하는 범위이고 틀이며 조건이다. 따라서 집단과 그 집단의 문화를 바꾸지 않으면 폭력은 줄지 않는다. 정도가 심한 몇몇(‘아웃라이어’라는 외국말이 좀 더 실감이 날지도 모르겠다)이 일으킨 예외적인 사건으로 보는 한, 사건이 재발하는 것은 막을 수 없다. 일벌백계도 소용이 닿지 않는다.
그래서 ‘병영문화’를 개선해야 한다는 국방부의 대책은 그 방향만큼은 결코 틀린 것이 아니다. 집단의 문제로 본다면 문화는 빼놓을 수 없는 변화의 대상이다. 다만 ‘문화’라서 그리고 그것의 뿌리가 깊고 넓어서 그 결과는 장담하지 못한다. 근본은 놔두고 말초적인 것만 문화라고 하면 더 절망적이다.
비관하는 세 번째 이유는 바로 이 근본 문화와 연결되어 있다. 사회 현상으로서의 군대 문화는 한국 사회 전체의 사회문화적 환경과 밀접하다. 군대 하나로 어쩔 수 없는 점이 많다는 뜻이다.
들 수 있는 사례는 열 손가락으로도 모자란다. 오늘도 어딘가에서 진행되고 있을 극기훈련. 협동과 단결을 목표로 내세우지만 그걸 누가 믿을까. 몇 년 전에는 한 세계적 기업이 신입사원 연수에서 엄청난 수준의 마스게임을 자랑했던 적이 있다.
언어 폭력은 폭력 축에도 못 낀다. 몇몇 대학에서 벌어지는 단체 체벌. 신입생 환영회마다 불거지는 무슨 무슨 식이라는 폭력적 행사들. 외국 언론까지 조롱하는 기업의 집단적 접대 문화. 과연 군대 폭력과 얼마나 다른 차원일까.
흔히 군대 문화가 사회 다른 분야로 전파되고 확산된 것이라고 한다. 어느 정도 맞는 말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군대 문화 또한 사회에서 준비된 것이고, 그를 자양분 삼아 더 확대되고 악화된다.
군대에 가기 전에도 폭력적 집단주의에 쉽게 노출된다. 대표적인 것이 학교다. 많이 개선되었다고는 하나, 폭력은 여전히 일상이다. 학생 인권이라고 할 것도 없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단체 기합’이라고 입력해서 한번 찾아보시라. 사진과 동영상에 찍힌 생생한 군대문화를 경험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거의 예외 없이 폭력이다.
이 모든 폭력과 유사 폭력에 왜 이유와 명분이 없겠는가. 충성, 협동, 정확함, 효율성, 예의, 규율, 질서, 애국심, 애사심,… 게다가 요즘 애들은 달라서, 혼자 자라서, 무슨 가치가 땅에 떨어져서,..군대 문화는 여전히 강고한 규범이고 가치이자 문화이다.
이유들은 서로 물고 물린다. 어느 쪽이 먼저인지는 모르겠지만, 서로 맞물려 상승작용을 일으키는 것은 분명하다. 결국, 보통의 대책, 지금까지 해왔던 것, 거기다 조금 더 보탠 것으로는 아주 많이 변하기는 어렵겠다는 것이 솔직한 예측이고 전망이다.
이쯤 되면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것은 아득하다. 사회 전체가 인권과 민주주의, 비폭력을 통합적 요소로 받아들이고 내면화해야 한다. 가정, 학교, 직장이 같이 바뀌어야 하고 그것이 확산되어야 가능하다. 끝이 잘 보이지 않을 만큼 어렵고 멀다.
그러니 당장은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렇다고 마냥 냉소와 비관에 빠질 수 없는 것이 또한 현실이다. 이번만큼은 제발 그 어떤 대책이라도(이미 내놓은 것이라도) 좀 효과를 볼 수 있도록, 그게 되도록, (현장과 실무자가 아니라) 군 수뇌부가 바뀌기 바란다.
그리고 우리는 다들 별로 말하지 않는 것 두어 가지를 보탠다. 당장 고쳐야 할 현실이긴 하되, 다른 것보다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하나는 폭력을 범죄나 사건으로 보지 말고, 하나의 건강 문제, 보건 문제로 보자는 것이다. 두 해 전 통영과 제주에서 살인 사건이 생겼을 때, 우리는 폭력을 보건학의 관점에서 다루자고 제안한 바 있다(논평 바로가기 , 프레시안 바로 가기).
특히 범죄자 개인이 아니라 역학자 제프리 로즈가 말하는 ‘인구집단 전략’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런 관점이 군대 폭력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군이 가진 구조와 자원을 모두 활용해서 ‘군대 폭력의 보건학적 진단과 대책’을 마련할 것을 제안한다. 진단 결과에 따라서 보건학적 전략을 ‘제도화’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정신, 심리적 대책을 강화하자는 것이다. 동부전선 총기 사고에도 해당하지만, 집단 수준에서 정신 건강이 중요하다. 일일이 정신 상태를 진단하고 이상자를 찾아 조치하란 뜻이 아니다. 장기간 집단적으로 수용 생활을 하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특별한’ 상황이다. 군사분계선 안의 GOP만 그런 것이 아니라, 어느 후방의 공군 레이더 부대도 마찬가지다.
다시 말하지만, 정신 질환이 아니라 정신 건강을 살펴야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신 보건학적 접근이 필요하다. 좀 오래된 말로는 정신 위생이라고 해도 좋다. 물을 끓여 먹는 개인 수칙보다는 예방주사와 상수도 설치가 근본적 해결방법이 아니던가.
사병들의 정신건강도 마찬가지다. 개인도 개인이지만 환경과 제도에서 정신 건강을 좋게 만들 답을 찾아야 할 것이다. ‘장병의 정신건강 향상을 위한 군 운영체계 개편’을 논의할 것을 제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