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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대한민국 원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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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규석 [대한민국 원주민] 창비 2008

 

 

김명희 (건강형평성연구센터장)

 

“조롱하지 마라, 비탄하지 마라, 저주하지 마라, 단지 이해하려 하라 (Not to laugh, not to lament, not to curse, but to understand)” 프랑스 사회학자 부르디외가 편저한 [세계의 비참] 첫머리에 쓰인 스피노자의 말이다.

 

절절하지만 선정적이지 않게, 궁상맞지만 마냥 피해자인 것만은 아니게, 그리고 “물질은 부족하지만 마음만은 부유한” 따위의 목가적 낭만주의에 경도되지 않으면서 고통을 있는 그대로 그려내기란 쉽지 않다. 더구나 그러한 빈곤과 고통이 ‘타자(他者)’가 아닌 자신의 사적 경험의 일부일 때,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으면서 통찰력 있게 그리기란 더더욱 어렵다.

 

하지만 최규석은 이런 어려운 과제를 참 잘 해내는 작가인 것 같다. [공룡 둘리에 관한 슬픈 오마주] (이미지프레임 2004), [습지생태보고서] (거북이북스 2005), [울기엔 좀 애매한] (사계절출판사 2010)로 이어지는 그의 작품들은 그림에서나 이야기에서나 독특하다. 냉혹한 진실을 보여주면서 가슴을 후벼 팔 때도 많지만, 그의 시선은 대개 따뜻하면서 서늘하다.

 

이번 소식지에 소개하고 싶은 [대한민국 원주민]은 그야말로 우리사회 원주민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원/주/민…. 현존하지만 회고되는 존재인 그런 사람들…

 

작가 자신의 가족사에 배경을 둔 이야기들은 진정성과 재치 넘치고, 그림은 아름답다. 책머리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 일제 강점기에 씌어진 소설에서 성탄절에 유치원생들이 연극을 하는 대목을 읽고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20세기 후반에 태어난 나조차 텔레비전에서나 친구들의 이야기로만 듣고 보았던 어색한 풍습이 그 까마득한 시절에도 누군가에게는 일상이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내 누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도시에서 자란 그 또래의 사람들은 신기해했다. 어째서, 농활을 가고 노동현장에 투신할 만큼 그러한 이웃들에게 특별한 애착을 가졌던 세대들이 어째서 내 누이들을 신기해하는지 나는 혼란스러웠다. 어쩌면 그들이 본 것은 농민이고 노동자일 뿐 ‘사람’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내 누이들의 외로움이 느껴졌다. 그것은 나의 외로움이고 모든 ‘원주민’들의 외로움일 것이다. 그들이 제 이야기 하나 제대로 내놓지 못한 채 살게 하고 싶지 않았다…”

 

이해를 돕기 위해 이야기하자면, 최규석은 1977년 생이다. 최근에 읽은 [세계시민주의]라는 책의 저자는, 타인에 대한 철저한 무지가 강자만의 특권이라고 했다. 최규석의 작품은 우리 자신, 그리고 우리가 속한 세계 혹은 속하지 않은 세계를 차분히 들여다보라고 이야기한다. 그동안 실존하되 잊혀진 사회적 약자들이 여전히 여기에, 우리와 함께 살고 있음을 일깨워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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