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 논평

전공의 수련 환경의 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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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나 영화가 그리는 많은 의사들은 멋있다. 실력은 물론이고 인간성도 그만이다. 최근 것으로는 2013년 배우 주원이 주인공 역할을 한 드라마 <굿닥터>가 생각난다. 자폐증을 가진 소아과 전공의의 ‘영웅적’ 활약을 그린 것이다.

현실의 의사는 드라마나 영화가 그리는 것과는 많이 다르다. 그 가운데서도 전공의의 생활과 ‘활약’이 특히 차이가 크다. 다큐멘터리가 아닌 다음에야 어차피 꿈과 환상을 좇는 것이라 해도, 현실의 전공의는 그처럼 ‘폼’이 나는 일이 드물다.

 

우선 전공의라는 말부터 자세하게 설명을 해야 하겠지만 여기서는 줄인다. 전보다는 덜 헛갈리니 사정이 나아졌다. 다만 ‘전공’이라는 말은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전공이라는 말이 전문 영역을 나타내는 것은 분명하지만, 이들이 전문의가 되기 위해 훈련을 받는 과정에 있다는 것은 잘 드러내지 않는다. 이런 모호함은 전공의의 이중적 위치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전문성을 갖기 위해 훈련받는 과정에 있으면서 동시에 어느 정도는 역할을 하는 상태. 이들을 고용한 입장(예를 들어 병원장)에서 생각해 보면 쉽다. 그들은 훈련생이면서 동시에 환자 진료에 큰 몫을 하는 직원이다.

이렇게 물을 수 있다. 이들에게 월급을 주어야 하는가, 비용을 받아야 하는가. 물론 실제로는 두 가지 역할을 다 한다고 해야 한다. 그러나 전공의 스스로는 병원에 고용된 직원이라는 생각이 강하고, 고용한 병원 쪽에서는 ‘수련생’이나 ‘수습’이라는 인식이 더 강하다.

이런 이중성 때문에 어느 나라건 전공의의 불만은 폭발성을 내재한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큰 사건으로 처음 기록된 것은 1970년을 전후한 ‘수련의 파동’이다. 당시 신문 기사가 많지만, 2007년 대한의학회가 펴낸 <대한의학회 40년사>에서 요약을 볼 수 있다(24-25쪽).

 

“1971년 6월 16일 오전 국립의료원 인턴 32명 전원은 월급 1만9천원을 50% 인상하고 의무직 수당 1만원을 지급할 것 등을 요구하며 집단사표를 제출한다. 이후 대학병원 인턴과 수련의들이 봉급 인상과 신분 보장을 요구하며 병원을 떠나 이 사건을 ‘1차 수련의 파동’이라고 부른다.”

“국·공립대 인턴·레지던트들은 인턴은 일반공무원 3급을, 레지던트 3급갑 대우를 할 것 공무원에 준하는 신분을 보장해 줄 것, 의무직 수당을 지급해 줄 것 등을 요구했다…정부당국은 병원을 떠난 인턴·레지던트가 복귀하지 않을 경우 사표를 수리하겠다며 강경책으로 맞섰으나…인턴 사표 제출에 동조한 서울대, 경북대, 부산대, 전남대 등 국립대병원 레지던트 4백명은 1971년 7월6일 보수개선 요구를 내걸고 48시간 총파업에 돌입했고, 7월13일에는 사립대 부속병원 및 일반병원의 수련의들도 시한부 동조 파업을 벌여 전국 사태로 번졌다.”

 

당시 전공의의 근무 조건은 아주 열악했다. <나라경제> 2008년 8월호에 안선경 기자가 쓴 기사를 보면, 1972년에 쌀 한 가마 값이 1만원이었다고 한다. 앞의 인용에 포함된 인턴의 월급 1만 9천원이 정확한 수치인지 다시 확인해야 할 정도다.

이들의 집단 행동은 전공의와 전문의 시험 제도를 개선하는 계기가 되었다. 대한의학회가 해석한 역사적 의미다. 그 틀이 지금까지 큰 변화 없이 유지되고 있으니 충분히 역사적 사건이라고 할 만하다.

 

“이 문제는 보건사회부와 문화 교육부뿐만 아니라 국무총리실 심지어는 청와대까지 파급되었고, 이 문제의 해결에는 의협이나 병원협회는 물론 대학이나 분과학회협의회도 무관심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는 전공의수련제도 개선 및 전문의 시험 개선에까지 확대되었다.“ (24쪽)

 

이제 거의 40년 만에 전공의 제도가 다시 갈림길에 선 것으로 보인다. 크게 바뀐 사회와 의료가 몸이라면 전공의 제도라는 옷은 옛날 그대로인 꼴이다. 시시때때로 속과 겉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다. 최근 몇 년간 전공의들의 요구와 불만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며칠 전에도 또 그런 일이 또 벌어졌다. 강원도에 있는 큰 대학병원의 내과 전공의들이 파업을 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라포르시안 기사 바로가기). 핵심 이유는 대한전공의협의회가 낸 보도자료가 적은 대로다.

 

“내과 전공의들의 살인적인 업무량과 열악한 수련 환경을 타개할 비전의 부재로, 더 이상 젊은 의사들의 소신만을 강요할 수 없게 되었다. 이제 내외산소 모든 과가 의사들의 기피과가 된 셈이다.”

 

오죽하면 파업까지 갔을까 싶지만, 한 병원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 심각하다. 주로 큰 병원을 중심으로 전공의의 역할이 큰 병원일수록 더하다. 전공의의 수가 모자라고 업무량이 지나치게 많으며 제대로 훈련을 받지 못하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겉으로 드러나는 문제는 비교적 간단하고 명확하다. 1970년대 초와 비교해도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문제의 ‘단순성’에 비해 해결의 방법과 그 경로는 복잡하다.

병원이 전공의를 더 늘리면 되지 않느냐고 하기 쉽지만 그리 간단치 않다. 전공의 수를 늘리기 위해 의과대학 졸업생 수를 늘리는 것은 앞뒤가 바뀐 것인데다, 그래 봐야 ‘언 발에 오줌 누기 이상’이 되지 않는다. 병원이 필요로 하는 전공의 수요가 훨씬 더 크고 빨리 늘어나기 때문이다. 과목 사이의 불균형도 점점 더 심해진다.

한국 병원의 경영 구조라는 문제를 건드려야 하는 것이 더 어렵다. 현재 큰 병원의 입원 환자 진료는 전공의에 의존하는 정도가 극심하다. 전공의가 모자라고 근무시간이 지나치게 길면 전공의가 아닌 의사라도 늘려야 하는데 이것이 쉽지 않다. 그런 인력을 잘 구할 수 없다는 것도 있지만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다.

결국 병원 경영의 핵심 구조란 질을 얼마간 희생하더라도 상대적으로 싼 인력을 써야 수입과 지출을 맞출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낮은 진료비 수준(진료수가)이 한 가지 직접 원인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진료수가를 억제하는 이유로 다시 들어가야 한다. 이제부터는 익숙하다. 충분하지 못한 건강보장의 재원, 비효율적인 지출 구조, 지나친 민간 부문의 비중과 경쟁 격화 등, 근본으로 갈수록 여러 문제가 한꺼번에 겹치고 서로 맞물린다.

 

다시 강조하지만, 현재 전공의들의 처지와 수련환경을 결정하는 것은 개별 병원이나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이다. 한국 의료와 병원의 ‘시장적’ 특성과 전공의 훈련의 ‘공공적’ 요구가 갈등과 긴장을 만들어낸다. 전공의들의 불만과 항의는 그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

좋은 의사를 육성하는 것은 공공성에 기초한 사회적 활동이다. 스스로의 직업적 전문성을 높이고 노동의 가치를 키우고자 하는 만큼, 공공성으로만 설명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의사 양성 과정은 의사 자신의 이익을 넘어 환자를 보호하고 더 나은 치료를 하기 위한 노력을 포함하는 것도 분명하다. 결국 전문의 문제의 해결은 이와 같은 공적 요구를 어떻게 제도화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

 

여러 과제 중에서도 전공의 수련의 ‘물리적’ 환경을 개선하는 일이 가장 급하다. 우리는 그 가운데서도 노동시간을 엄격하게 제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환자의 안전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약 30년 전 미국에서 전공의의 연속 근무시간을 제한하기 시작한 것도 일차적으로는 환자의 안전 때문이었다. 1984년 뉴욕 시립병원에서 18세 된 환자가 사망한 것이 도화선 구실을 했다. 당시 이 병원의 전공의는 정신없이 바쁜 나머지 간단한 처치만 한 채 환자를 방치했고, 제대로 진단과 치료를 받지 못했던 환자는 결국 생명을 잃었다 (<타임>의 관련기사 ).

이후 전공의 수련업무를 관장하는 기구들이 전공의들의 당직 근무시간을 제한하기에 이르렀다. 2003년부터 24시간 이상 당직 근무를 계속하는 것을 금지했고 2011년부터 이 시간은 16시간으로 줄었다.

한국의 지금 상황이 바로 규제 이전의 미국과 비슷하다. 2013년 대한의사협회가 조사한 결과로는 전체 전공의의 54퍼센트가 주당 80시간 이상 일한다고 응답했다 (대한의사협회 보고서 바로가기).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집중력과 주의, 그리고 성의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한국의 의사와 정부가 아주 손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동안 전공의들이 계속해서 문제를 제기해 온 덕분이다. 바로 지난 4월부터 전공의 수련시간을 주당 최대 80시간, 연속 근무시간을 36시간으로 제한하도록 규정이 개정되었다.

하지만 역시(!) 제대로 작동한다고 하기 어렵다. 게다가 이런 저런 부작용도 함께 나타난다고 한다. 시간은 줄이는 대신 업무 강도는 훨씬 강화된다든가, 정작 수련에 꼭 필요한 수술이나 중증 환자 진료에서는 빠지는 일도 벌어진다. 정책의 적실성과 효과를 의심할 만하다.

 

이 정도도 쉽지 않음을 절감한다. 구조적인 문제인 만큼 충분히 예상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냥 지나치기에는 현실이 엄중하다. 우리는 다시 전공의의 노동시간(이는 동시에 전공의의 삶의 질과 수련의 질을 결정한다) 제한 규정이 충실히 지켜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근무시간 문제는 출발에 지나지 않는다. 전공의 제도가 사회의 공적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도록 새로운 틀로 전환하는 것이 다음 차례 과제다. 많은 사람이 어려운 현실 여건을 말하는 것처럼 이 과정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1970년대의 수련의 파동이 그랬듯, 작지만 획기적인 조치 하나가 근본 변화의 첫 걸음이 될 수 있다.

전공의 제도가 내게는 해당되지 않는, 그래서 남의 일이라고 치부하기 쉽다. 그러나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한 가지가 남는다. 지금 이 시간에도 환자의 안전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사실. 이 때문에라도 이 제도와 환경을 고치는 논의에 모두가 참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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