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 논평

추위가 삶을 위협하지 못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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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꼴이 어수선한 가운데에 추위까지 기승을 부린다. 일주일 내내 추위가 계속되는 모양이 다가올 본격적인 겨울이 벌써부터 답답하다. 어쩔 수 없는 계절의 변화라지만 ‘순응’ 자체가 인간과 사회의 현상이다.

 

일기예보는 무미건조하고 중립적이지만 추위라는 자연 현상은 사회적 영향을 낳는다. 추위를 견디고 이겨야 하는 ‘사회적’ 삶이 이 겨울을 어떻게 버텨낼 것인가 걱정스럽다.

 

바로 며칠 전 12월 3일, 국제신문의 김미희 기자가 쓴 기사다 (바로가기).

“김 할아버지는 “갑자기 날씨가 추워져서 방안에만 가만히 지낸다”고 말했다. 유일한 난방용품은 전기장판이다. 다른 방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전기장판의 난방비가 가장 저렴하기 때문이다. 박 상담원은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대다수인데 한 달 60여만 원의 한도 내에서 주거비용을 해결해야 한다. 이 때문에 가장 저렴한 방법을 찾은 것”이라고 말했다.”

 

기사만으로도 겨울 추위가 덮친 모습이 선명하다. 이 때 건강은 고통을 드러내는 예민한 잣대가 된다. 정도를 넘는 추위는 고통을 넘어 건강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건강이라는 표현보다는 병이나 죽음이라고 하는 것이 더 맞을 것 같다.

 

모든 사람에게 같은 정도로 그런 것은 아니다. 쉽게 짐작할 수 있듯이 노인과 어린이, 이미 병약한 사람들이 ‘취약집단’이다. 민감한 정도와 저항력이 남다른 것은 당연지사. 이들의 시각에서 보면 추위는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는 ‘위험요인’이 된다.

 

추위는 얼마나 위험한가. 이정원이 2011년 쓴 추위와 사망률의 관계에 대한 논문을 보자 (논문 바로가기). 1992년부터 2007년까지의 기상자료와 사망자료를 이용하여, 기온이 낮아지면 65세 이상 노인의 사망률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분석했다.

 

하루 중 최저 온도가 섭씨 1도 낮아질 때 전체 사망과 호흡기계, 심혈관계 질병으로 인한 사망률이 각각 0.27 퍼센트, 0.52 퍼센트, 0.32 퍼센트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은 수치다. 그러나 모든 노인 인구를 포함했다면 적은 수는 아니다. 그리고 전체 숫자보다는 어떤 사람들이 주로 피해자가 되었을까가 더 중요하다.

 

추위는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는 외부 요인이지만 이것만으로는 직접 결과를 낳지 않는다. 추위를 완충하는 보호막이 약하다는 조건이 보태져야 한다. 추위의 건강 피해가 사회적 현상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첫 번째 조건은 가난이다.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을 줄로 믿는다. 추위의 위험을 피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조건들이 빈곤과 무관하지 않다. 소득에 따라 주거 상태와 보온, 난방, 에너지 사용이 크게 달라진다. 병의원 이용을 비롯해 건강관리에도 문제가 생긴다.

 

둘째로 주거 환경이라는 조건이 영향을 미친다. 사실 주거라는 말만 가지고는 모든 조건을 나타내기 어렵다. 집의 구조, 상태, 관리, 전기나 수도 따위를 모두 포함한 복합적인 뜻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영어로는 주로 ‘하우징’이라고 표현하는데, 한국에서는 산업을 뜻하는 경우가 더 많아서 적당하지 않다.

 

뉴질랜드에서 시도한 대규모 지역사회 연구는 집의 단열만 제대로 해도 얼마나 효과가 큰지 잘 보여 준다 (논문 바로가기). 표준 단열 방법으로 집을 바꾸었더니 건강이 좋아졌고 경제적 효과도 컸다. 천식과 입원이 줄었으며 결석과 결근 역시 감소했다.

 

나아가 이 연구 팀은 ‘건강 친화 주거(Healthy Housing)’라는 개념을 제시하고 있다 (바로가기). 집, 그리고 그와 연관된 삶의 조건이 건강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조건을 좋은 쪽으로 바꾸면 건강 역시 좋아지는 것이 당연하다. 앞서 보았듯이 추위와 주거의 조건 역시 중요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이들이 밝힌 연구결과다.

 

세 번째 조건은 적절한 에너지(연료) 사용이다. 에너지는 당연히 주거와 연관된 것이지만 따로 떼는 것이 좋겠다. 난방과 보온이 건강 피해와 연관되고, 이는 에너지 사용과 직접 관련이 있어서다. 특히 열악한 상황을 나타낼 때에는 ‘에너지 빈곤’이라는 개념을 쓰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영국의 <2001 연료 빈곤 전략> 보고서에서 쓴 기준을 따른다. 거실을 21도 이상, 거실 이외의 방을 18도 이상 유지하기 위해 가구 소득의 10% 이상을 난방비로 사용하는 가구를 연료 빈곤 가구라고 한다 (보고서 바로가기). 제대로 온도를 유지하지 못하거나 너무 많은 비용을 써야 하는 경우를 모두 포함한다.

 

한국에서는 에너지 빈곤이라 부르는데, 그 수가 결코 적다고 할 수 없다. 어떤 식으로 계산하든 에너지 빈곤 가구의 비율이 10퍼센트를 넘는 것으로 추산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보고서 바로가기). 기초생활보장의 적용을 받는 가구가 4 퍼센트를 조금 넘을 정도니 그 사이의 차이가 크다.

 

빈곤과 주거 환경, 그리고 에너지… 추위의 위험에서 건강을 보호하는 것이 이들 요소와 주로 관계되는 것이라면, 한 마디로 개인의 범위를 훌쩍 넘는다. 문제의 원인과 처방이 모두 마찬가지다.

 

겨울철 건강 수칙이나 ‘사랑의 연탄 나눔’도 의미가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빈 곳이 크다는 뜻이다. 공공과 국가의 역할이 빈 곳을 채워야 한다. 빈곤과 같은 근본 문제는 그렇다 하더라도, 주거와 에너지 정책에 이런 요구가 반영되지 않으면 안 된다.

 

먼저 주거와 에너지 정책에 빈곤과 불평등을 더 크게 고려하는 것이 필요하다. 요즘 주거 복지나 에너지 복지라는 말이 자주 쓰이지만, 이들 정책은 여전히 경제 정책으로서의 비중이 훨씬 강하다. 산업용 전력 요금체계에서 보듯이 대기업의 이해관계가 더 크게 반영되는 것도 가감 없는 현실이다. 최소한의 균형을 회복해야 한다.

 

다음 과제는 좀 더 구체적이다. 에너지 복지 정책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 이미 있는 에너지 빈곤 대책의 대부분은 공기업이나 민간 사업자를 활용한다. 제도화가 되지 않은 만큼, 안정성의 문제가 두드러진다.

 

국가가 직접 나서도 불안한데, 민간 사업자를 압박하는 형식으로는 결코 안정적이고 지속되는 대책이 나올 수 없다. 재원이나 경영 상태에 따라 언제라도 후퇴할 소지가 있다. 더구나 ‘사회적 책임 경영’이나 봉사로는 전시와 홍보 차원을 벗어나기 어렵다.

 

게다가 대상자 범위가 너무 좁다. 현재는 에너지 빈곤층보다 훨씬 적은 수의 기초생활보장 대상자에 초점을 맞춘다. 넓은 경우라도 차상위층의 범위를 넘기는 좀처럼 어렵다. 지원을 받는 기초생보 대상자도 지출을 줄이느라 제대로 난방을 못한다. 그런데 대상자조차 되지 못한 다음에야.

 

긴급한 때에는 ‘긴급복지 연료비 지원’이라는 제도가 있다. 기초생활보장 대상자가 아닌 사람 가운데에 당장 위급한 사람들을 돕는 방법이다. 그렇지만 차마 ‘지원’이라는 말을 쓰기가 민망하다. 한도가 6만원이고 지원 기간은 원칙적으로 한 달. 그나마 숫자도 얼마 되지 않는다고 한다.

 

당장은 현황을 잘 파악하고 각 대상에 맞는 ‘추가’ 대책을 마련할 것을 요청한다. 주로 지방자치단체가 할 일이겠으나 개인 가구와 시설이 어떤 상태에 있고 어떤 위험이 있는지 알아야 한다. 법과 제도는 아직 허술하다 하더라도 맞춤형의 대비가 필요하다.

 

이번 겨울을 넘긴다는 조건으로는, 주거를 개선하는 사업과 정책이 긴요하다. 저소득층에서 약 300만 원 정도의 집수리 비용을 들여 단열 공사를 지원하면 적게는 10%대, 많게는 30~50%대의 에너지 절감 효과가 있다고 한다 (프레시안 기사 바로가기).

 

뉴질랜드처럼 ‘건강 친화 주거’는 어떤가. 마땅히 가야 할 길이다. 그러나 이 역시 민간과 비정부기구에만 맡겨 놓을 일이 아니다. 주거 복지를 집값 올리기라고 생각하지 않는 다음에야 저소득층과 빈곤층의 주거를 개선하는 것이 중심이 되는 것이 맞다.

 

추위는 자연 환경이다. 이것이 건강 위험이 되는 것은 빈곤, 주거, 에너지는 건강을 결정하는 ‘사회적 요인’ 때문이다. 여기서 사회적이라는 것은 고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사회 정의와 연관된다는 뜻도 포함한다.

 

점점 더 추워질 계정이다. 불의한 사회가 가난한 사람의 건강을 해치고 목숨을 앗는 일이 없기를 간절하게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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