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 논평

복지의 공공성 – ‘처벌’과 ‘시장’을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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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집 교사의 폭력 사건으로 온 나라가 또 떠들썩하다. 누가 보더라도 그 어린이집과 교사가 잘못한 일이다. 그런데 예외적인 ‘사고’로 끝낼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정도가 문제일 뿐 다른 데서도 비슷한 일이 또 있을 것이라는 소리가 많다.

 

어떻게 할지 벌써부터 여러 의견이 쏟아져 나왔다. 흐름은 몇 가지로 나뉘는데, 첫 번째 주장은 감독과 처벌을 강화하자고 한다. 문제가 있거나 잘못을 저지른 개인과 시설을 잘 찾아내고 앞으로 그렇게 못하도록 응분의 벌을 주자는 것이다.

CCTV를 더 많이 설치하자는 것이 이런 범주에 딱 맞다. 일벌백계, 퇴출, 엄벌 등으로 표현하는 대책은 모두 비슷하다. 크게 보면 평가와 인증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도 같은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두 번째는 개인의 자격과 훈련, 교육을 더 엄격하게 하자는 것이다. 제대로 훈련과정을 거친 사람이 이 일을 맡게 하고, 인성과 윤리교육을 포함해서 보수교육을 강화하자는 요구가 강하다.

첫째와 둘째 의견은 그럴 만한 자격 있는 사람과 기관을 뽑고 일을 제대로 하도록 바꾸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각각 더 잘하도록 노력하고, 밖에서는 이렇게 하는지 규제하고 감독하자는 것이 뼈대를 이룬다.

 

이와 대비되는 것이 ‘구조’를 손봐야 한다는 세 번째 의견이다. 기관과 기관 종사자의 수준이 높아지고 보육의 질이 좋아지려면 일하는 조건을 바꿔야 한다. 임금과 근무시간 문제가 제일 먼저 나온다. 아예 국공립 보육시설을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어느 쪽이든 잘 살펴서 효과가 있는 대책을 추진해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합리적 근거가 있는 대안이어야 하고 현장의 목소리를 잘 들어야 한다는 데에도 대부분 동의하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으로 충분할까?

 

우리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좀 더 근본적이어야 한다. 사건, 사고와 들끓는 여론, 급한 대책, 그리고 부실한 결과는 우리 사회에서 드물지 않게 벌어지는 악순환의 연쇄다. 어린이집 사건도 같은 경로를 밟게 되지는 않을까 걱정이다.

 

우선 어린이집만 문제가 아니라는 점부터 짚고 가자. 다른 곳에서도 비슷한 문제와 사고가 생길 가능성이 잠복해 있다. 아니 잠복이 아니라 현실이다. 채 한 해도 지나지 않은 장성요양병원의 화재 참사를 벌써 잊을 수는 없다.

자기 판단과 의사 표현이 충분치 않고 약자의 입장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어린이와 같다. 의식이나 인식 능력이 없으면 아예 어떤 반응도 보일 수 없다. 지금 그런 처지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복지 서비스를 받는다.

이런 수요와 대상자가 더 늘어난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급하고 또 답답하다. 노인 인구가 급증하고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치료, 장기요양, 호스피스 서비스를 받는다고 생각해 보라.

어린이집만의 문제가 아니라면, 중요한 것은 사회적으로 또 집합적으로 같이 준비해야 할 기본 방침 또는 틀이다. 기조라 해도 좋고 정신과 철학이라 해도 상관없다. 우리 사회는 앞으로 이런 ‘휴먼 서비스’를 어떻게 할 것인가?

 

지금 우리가 가고 있는 방향은 크게 두 가지 흐름 속에 있다. 하나는 규정과 감독, 처벌에 의존하는 방법으로, ‘관료 모델’이라 이름 붙일 수 있을 것이다. 앞서 언급한 대안의 상당 부분이 여기에 속한다. 이런 방법에서는 인력과 시설은 물론이고 업무와 서비스의 질까지 규정해야 한다. 그리고 문제와 사고가 생길 때마다 더 촘촘해질 수밖에 없다.

다른 하나는 소비자와 시장을 강조하는 것으로, ‘시장 모델’이라고 부를 수 있다. 평가를 잘하고 정보를 제공해서, 좋은 곳이 경쟁 속에서 살아남게 한다고 믿는다. 정부와 공공 부문 대신 시장이 감독과 처벌을 맡았다고나 할까.

 

어린이집을 평가하고 인증하는 것은 부분적이지만 시장 메커니즘을 활용한 것이다. 요양병원을 평가해서 1등급이니 2등급이니 발표하는 것도 취지가 비슷하다 (정부가 쓰는 공식 이름은 ‘적정성’ 평가라고 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병원 평가 바로가기).

현실에서는 관료 모델과 시장 모델이 나란히 또는 혼합되어 쓰인다. 어느 쪽이든 기대할 수 있는 결과가 불완전하다는 것이 문제다. 우선, 감독과 처벌은 최소한의 기초적 수준을 넘기 어렵다. 요구하는 인력을 다 채용해 놓더라도, 겉으로는 방화시설을 잘 갖추어 놓아도, 그것만으로는 좋은 (바람직한) 서비스와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

어린이집 애들에게 애정과 정성을 담아 밥을 먹이는지 CCTV로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또, 병원 직원에게 공감과 진심을 담아 환자를 대하라고 강요할 방법은 없다. 최저 수준과 기본이라도 지키면 좋겠다는 현실을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을 상대하는 서비스를 감독과 처벌에만 의존하기에는 빈틈이 너무 많다.

시장도 취약하긴 마찬가지다. 어린이집 평가를 비판하는 목소리에 일부가 이미 담겨있다. 일회성으로 또 상당 부분 서류에 의존하는 방식으로 무슨 평가를 할 수 있겠느냐는 비판이다. 이미 기술적으로 한계가 많다는 것을 가리킨다.

그보다 ‘소비자’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 더 중요하다. 경제학 용어를 빌리자. 본래 정보의 격차가 있는데, 어린이나 인지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 의식이 없는 환자면 더 말할 것도 없다. 24시간 옆에 보호자가 붙어 있지 않는 한, 보호자가 대신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정보와 평가가 작동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손’의 논리는 무너진다. 소비자니 선택이니 시장과 경쟁이니 하는 것으로 보건 복지를 ‘관리’하는 것은 어림없다. 하물며 어린이와 인지 능력이 없는 사람이 당사자라면.

 

앞으로 준비할 대책은 두 가지 방향을 일부 포함해야 하겠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우리는 사람에 대한 복지 서비스를 ‘탈상품화’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공공부문을 양적, 질적으로 확대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단기적으로는 강고한 상품화 경향을 어떻게 완화시켜 나갈 것인가가 관건이다. 이것으로 모든 것이 해결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어린이와 노인을 돌보는 것이 개인이나 기관의 수익과 이윤에 직결되는 한 바람직한 서비스는 멀어진다.

민간 기관에서도 가능하면 일대일의 수익 구조를 끊고 공공성을 강화시키는 쪽으로 구조를 바꾸어야 한다. 예를 들어 한 사람 한 사람 돈을 받는 것보다는 총액 예산으로 재정을 쓰는 쪽이 공공성의 공간이 더 크다.

공공의 구조가 중요한 이유는 구조가 사람을 바꾸기 때문인 것도 있다. 지금 일하는 사람들의 동기를 바꿀 뿐 아니라 새로 진입하는 사람들도 달라진다. 나아가 ‘소비자’의 관심이나 가치, 해석에도 영향을 미친다.

기대하기는(자동으로 바뀌는 것이 아니므로) 구조의 변화가 새로운 시민과 ‘시민됨’(시민 정신과 시민 윤리)이 만들어지는 계기로 작용했으면 한다. 그래야 오래된 공공 모형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관료주의의 폐해나 돌봄 노동자의 노동조건 같은 것.

 

시민은 보건과 복지 서비스의 배분 그리고 이에 필요한 재정의 배분에 관심을 갖는다. 권리와 함께 책임도 생각하는 공화국의 구성원이 갖출 덕성이다. 이들은 자기 이해뿐 아니라 공동의 이익 그리고 같은 시민으로서 서비스를 생산하고 제공하는 노동자도 고려한다. 비로소 소비자에서 공적 시민으로 바뀌는 것이다.

 

갈 길은 멀다. 그러나 익숙한 모형과 결별하고 새로운 경로를 선택한다고 생각하면 ‘지금’의 의미가 작지 않다. 이번 사건이 충격적일수록 지금을 이해하고 미래를 구상하는 논의가 중요하다. 곧 닥칠 더 큰 딜레마를 어떻게 헤쳐 나갈지, 사회적 틀을 논의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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