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 논평

가난이 세습되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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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가지 어두운 연구결과가 거의 동시에 발표됐다. 요약하면 가난이 대물림된다는 것이다. 짐작과 크게 다르지 않고, 그러니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그래도 현실을 바로 쳐다보는 것은 고통스럽고 우울하다.

 

먼저, 며칠 사이 여러 언론이 보도한 김연아의 성공회대 박사학위논문. 비정규직 노동자의 자녀는 비정규직으로 직업을 시작할 가능성이 더 높다. 부모가 정규직이면 비정규직일 비율이 69.8%인데 비해, 부모가 비정규직이면 그 비율이 77.8%로 늘어난다 (숫자를 똑같이 틀린 보도가 여럿 있는데, 그냥 받아 쓴 모양이다. 저자에게 직접 확인했으니 이 글의 숫자가 맞다).

여러 언론이 부모가 비정규직이면 “열 명 가운데 7-8명이 비정규직”이라고 썼다. 틀린 것은 아니지만, 초점은 다른 데 있다. 정규직 부모의 자녀도 비정규직이 더 많으니, 약 8% 포인트의 ‘차이’가 더 중요하다. 즉, 단순히 비정규 노동이 아니라 불평등의 문제.

그렇더라도 의미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이런 연구에서 8%의 차이는 결코 사소하다고 할 수 없는 정도의 크기다. 따라서 “비정규직의 대물림” 또는 “직업 지위의 세대 이전”은 부인할 수 없다.

 

지난 13일 <한국교육고용패널 학술대회>에서 발표된 최필선, 민인식의 논문 ‘한국의 세대간 사회계층 이동성에 관한 연구’가 두 번째다. 이 연구는 2004년 중학교 3학년이 10년 뒤 어떻게 되었나를 추적한 결과다.

연구의 메시지는 명확하다. 가구 소득이 높을수록, 또 부모의 교육 수준이 높을수록 자녀의 임금이 높아진다 (보도자료). ‘유리함’이 부모로부터 자녀로 이전되는 것이다. 연구자들은 이 둘 사이에 교육이 있다고 해석했다. 경제적 여유가 있을수록 교육을 더 잘 받았고, 교육은 자녀의 직업과 소득이 유리해지는 데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두 가지 연구의 의미는 크게 다르지 않다. 비정규직이든 소득이든 또는 가난이든, 부모의 그것이 자녀에게 이어지는 것이 초점이다. 세습이고 대물림이며, 계층의 고착을 말한다. 우리가 이를 가끔 ‘사회적 유전’으로 부른다. 어떤 언론은 (관행대로) “개천에서 용 나기”가 어려워졌다는 제목을 붙였다.

이미 말한 것처럼 이런 연구결과나 소식은 새삼스럽지 않다. ‘고도성장기’가 끝난 이후에는 상식이 되었고, 비슷한 연구도 꽤 있었다. 그러니 기시감과 반복의 피로감을 말하는 사람도 많다. “그래 그렇다 치고, 뭐 어쩌라고?”

 

그래도 가난의 대물림에 대해서는 몇 가지 사회적 합의가 있다. 아무리 의견이 달라도 (아주 일부 사람을 빼고는) 이렇게 바꾸자는 동의도 어느 정도는 있다고 해야 한다. 두어 가지만 확인하자.

첫째, 이런 대물림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 시장과 개인화, 경쟁과 능력주의의 이데올로기가 아무리 강해도, 이런 현상이 아예 좋다고 하는 사람은 드물다. 자본주의에서 어쩔 수 없다는 사람이야 꽤 있다. 그들조차 사회경제적 지위의 이동성이 갖는 효용을 인정한다. 자본주의가 자멸할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이런 사태를 줄이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국가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것. 임금이든 세금이든, 또는 교육이든, 가난이 가난을 낳는 일을 줄이기 위해서는 고리를 끊는 공적 개입이 필요하다는데 동의한다.

 

이 정도만 합의가 있어도 당장 바꿔야 할 일이 많다. 그 가운데서도 세금과 복지, 교육이 같이 가야 한다는 데에 많은 사람이 동의할 것이다. 뉴스가 될 때마다 “또 그 소리”라는 냉소 대신, 어떻게 바꿀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이 정도로 마무리해도 해야 할 말과 일이 많다. 그렇지만 이미 말한 익숙함과 관성은 어떻게 할 것인가. 피로감을 털어내기 위해서는 한 걸음 더 들어가고 더 근본을 물을 때다.

우선, 가난과 비정규직의 대물림을 도구적으로 보는 시각을 경계한다. 흔히 계층과 계급의 고착은 사회적 불안을 가져오고 경제 성장에도 불리하다고 설득한다. 인적 ‘자본’이 중요하다는 주장도 자주 듣는다.

아마도 맞는 말일 것이다. 그러나 가난과 비정규직의 대물림을 끊자는 것은 경제성장을 ‘위해서’가 아니다. 교육이 중요하다는 것은 단지 직업과 노동시장과 임금에 도움이 된다는 뜻을 넘는다. 그 가난과 비정규 노동이 개인의 삶에 무슨 의미를 갖는가, 배움과 지식은 사람을 얼마나 자유롭게 하는가. 대물림이건 아니건 이것이 중요하다.

 

또한 세습과 대물림은 사회정의의 문제다. 소박하게 봐도 내가 책임질 수 없는 결과가 내 삶을 결정하는 것은 부당하다. 우연히 내 부모가 그렇다는 이유로, 내 삶의 가능성과 기획이 철저하게 달라져야 하는 부정의.

타고난 조건, 예를 들어 부모나 출생지, 신체나 정신적 능력에 따라 내 삶의 가능성이 모두 결정되는 사회라면? “팔자 소관”이라고는 할망정, 누구도 공정하고 정의롭다고는 하지 않을 것이다.

 

소득, 비정규, 노동 등등으로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는 것이 익숙함과 피로감을 더하는 또 다른 이유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현실이 되기에는 지나치게 추상적이다. 그리고 무엇이 원인인지 무엇이 결과인지 잘 모르는 것이 많다. 왜 대물림되는가를 더 세밀하게 들여다봐야 한다.

앞서 인용한 두 번째 연구는 교육이 대물림의 중요한 이유라고 했지만, 그런 현실을 부정할 사람이 있을까. 그러나 총론에서 한 걸음 더 나가야 한다. 여러 가능성과 한계에 대한 인식, 그리고 고민을 가지지 않은 사람들이 없을 테니, 간단한 처방이 있다고 주장할 생각은 없다. 더 많은 탐색이 필요하다는 점만 지적한다.

 

여기에다 우리의 다른 관심 한 가지를 추가한다. 질병과 의료비용 지출, 그리고 그 때문에 생기는 가계 파탄이 그것이다. 건강보험이 있다고는 하지만 큰 병에 걸리면 가난의 수렁에 빠지는 것은 한 순간이 아닌가.

최근 발표된 송은철과 신영전의 연구논문 ‘재난적 의료비지출이 빈곤화 및 빈곤 지속에 미치는 영향’이 문제의 일단을 보여준다 (바로가기). 한 가구의 소득에서 의료비 지출이 전체 지출의 10%를 넘는 가구가 20.6%나 되고 40%를 넘는 가구도 4.7%에 이른다.

의료비가 지출의 10%가 넘는 가정은 빈곤으로 떨어질 확률이 18.6%나 되었다. 이런 정도로 의료비를 쓰지 않는 가구가 빈곤선 이하로 떨어질 가능성의 3.2배에 해당하는 수치다.

 

이것 말고도 가난-건강-교육이 얽히는 고리에서 질병이 방아쇠 노릇을 하는 일은 드물지 않다. 단지 의료비 지출뿐 아니라 건강 자체도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 역시 교육과 마찬가지로 자세한 이유와 경로는 모르는 것이 많다. 가난의 대물림이 어떻게 일어나는가, 더 자세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 강조한다.

대물림을 되새겨 보았지만, 사실 근본은 건드리지 못한 셈이다. 교육과 의료 보장이 최소한의 역할을 넘을 수 있을까. 악순환이 점점 더 문제를 심화시키기는 하지만 고리를 끊는다고 바로 모든 것이 해결될 리 없다.

 

모든 대학의 교육비를 무료로 한다고 해서 교육의 불평등, 그리고 이와 연결된 취업과 임금의 불평등을 얼마나 줄일 수 있을까. 가난한 사람이 전혀 비용 부담 없이 중병을 치료받을 수 있다고 한들, 이들이 가난에서 벗어나는 일이 얼마나 더 쉬워질까.

가난과 불평등 자체를 줄이는, 말하자면 근본을 외면할 도리가 없다. 대물림의 악순환을 끊는 것은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더 깊게, 가난, 임금과 건강 격차, 비정규 노동에 도전하는 것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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