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절 기념식에서도 경제와 구조개혁을 강조하고 대통령은 바로 중동으로 날아갔다. 4개국 방문의 목적도 단연 경제다. 에너지와 건설 등 전통적 산업에 더해 고부가가치 산업에서 ‘협력’을 모색한다고 한다.
국가를 대표하는 것이니 진심으로 잘 되기를 바란다. 보통 사람들의 삶과 희망에도 영향을 미칠 터이니 왜 남의 일이겠는가. 좋은 결실이 있기를 기대하는 마음이야 다르지 않다.
그렇지만 솔직하게 말해 걱정이다. 그냥 외교적 치장만이 아니라 진정한 ‘협력’이 되어야 할 텐데 그렇게 될까 싶은 것이 가장 크다. 국제 정치에서는 외국에 군대를 보내는 것도 협력이요, 원조도 협력이라 말한다. 이런 걱정이 유난스럽다고 할 수 없다.
실질을 봐도 잘 모르겠다. 충분히 복고적인 ‘제2의 중동 붐’에 ’한강의 기적‘이라니, 경제수석비서관까지 나서서 뜻을 설명했지만 영 미심쩍다. 유가가 전에 없이 떨어졌다는데 하필 산유국들과 어떤 경제를 어떻게 협력하겠다는 것일까?
지난 1월 세계은행이 발표한 자료를 찾아봤다. 2015-2017년 사이에 중동 산유국의 재정 수입 감소를 예측한 것이다. 쿠웨이트가 손실이 제일 커서 국내총생산(GDP)의 21.9%에 해당하는 수입이 줄어든다고 한다. 사우디아라비아는 15.1%, 카타르 8.9%, 아랍 에미리트 10.0%다 (세계은행의 중동·북아프리카경제 분기 보고서).
무슨 숨겨놓은 수가 있는지, 상식으론 이해가 되지 않는다. 유가가 떨어져도 산유국들의 경제가 괜찮고 정부 지출을 줄일 계획도 없다니 (로이터통신 2015년 1월 11일 보도 바로가기), 다들 그걸 믿는지도 모르겠다. 여기나 거기나 전문가들이 오죽 잘 알까 싶다가도, IMF 경제위기와 2008년의 세계금융위기도 예측 못한 사람들이 아닌가, 불안하다.
괜한 시비를 걸 작정이 아니다. 국가 사이에 협력한다는 것, 윤리는 물론 정치와 경제를 제대로 판단하고 있는 것인지 걱정스럽다. 그리 오래 전도 아닌 지난 정부의 자원외교, 그 터무니없는 난맥상을 떠올리지 않을 도리가 없다.
중점 항목에 신성장동력, 그 가운데서도 보건의료가 들어있다고 강조하는 대목 또한 걱정을 보탠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겠지만, 어느 측면으로 보더라도 문제가 많고 복잡하다. 처음부터 길을 잘못 잡은 것이 아닐까,
보건의료가 중점 가운데 하나라는 것은 수행하는 사람들을 봐도 그렇다. 보건복지부 장관이 포함되었고, 경제사절단으로는 3개 병원(관동대 국제성모병원, 서울대학교병원, 연세의료원)의 대표가 같이 간다. 그 사이 대통령의 외국 방문에서 한 번도 없던 일이다.
도대체 무엇을 하려는 것일까. 비교적 상세한 내용을 전한 <동아일보> 기사를 그대로 인용한다 (바로가기).
“‘의료 한류’도 본격화하고 있다. 이번 경제사절단에도 서울대병원,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가톨릭관동대 국제성모병원의 고위 관계자들이 동행한다. 순방 중 신규 병원 위탁 운영권 획득이나 중동 환자의 국내 송출 계약 등이 추진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중동 의사들의 국내 유료 연수 프로그램 확대 가능성도 점쳐진다. 오병희 서울대병원장은 “연수를 받고 본국으로 돌아간 의사들은 한국 의약품이나 기기에 계속 관심을 가지기 때문에 보건의료 산업 진출에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우선 큰 문제, 국제관계와 협력의 원론부터 보자. 전부를 다 본 것은 아니니 확신할 수는 없지만, ‘경제사절’로서의 의료는 완전 일방통행이다. 말은 협력이라고 하지만, 획득, 송출, 진출, 수출이라는 말부터 상호성, 호혜성과는 거리가 멀다.
냉정한 국제 정치경제의 논리와 현실을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가장 근본주의적 경제 논리조차 나라 사이의 관계는 서로 도움이 되는 방식이라야 한다고 주장한다. 온 국민이 달달 외우고 있는 ‘비교 우위’라는 말 자체가 호혜성의 정신을 품고 있지 않는가.
상대방 국가에서 어련히 잘 알아서 할까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그건 전형적인 시장 논리다. 이런 말에 의지할 것인가. “우리가 저녁식사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은 푸줏간 주인, 양조장 주인, 제빵업자의 자비심 때문이 아니다. 그들의 이기심 때문이다.”(아담 스미스)
그렇다 치고, 상대방 국가 국민들이 건강하고 좋은 보건의료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되는 데에 우리의 이기심만으로 충분할까? 아니다. 휴대폰이나 석유, 집 짓고 도로 닦는 것과는 많이 다르다. 지금까지 다른 나라의 역사적 경험으로 볼 때 ‘제국주의’라는 말은 괜히 생긴 것이 아니다.
그러니 똑바로 물어야 한다. 나라 사이의 협력을 통해 우리가 얻을 것(가치)과 상대방이 얻을 것(가치)은 무엇인지? 현재 방식대로 하면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지? 다름 아니라 국제 협력의 윤리이자 품위 있는 국가가 할 도리를 묻는다. 높은 기준도 아닌, 최저선이다.
실무적이고 기술적인 의문도 많다. 우선, 보건의료 산업을 수출하겠다는 목적이 무엇인가 묻는다. 경제적 성과인가, 원조와 같은 국제 정치적 이득인가, 그도 아니면 국내 정치용인가.
경제적 성과는 낙관적으로 보더라도 그리 크지 않다. 지난 여름 서울대학교병원이 아랍 에미리트 왕립병원을 운영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기억하시는지? 정부까지 나서서 의료시스템을 수출했다고 요란하게 홍보했다 (보건복지부 보도자료).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쾌거’라고 할 만한 경제 효과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정부는 “5년간 1조원 규모”라고 모호하게 표현했지만 실속은 딴 문제다. 한 언론 매체는 이렇게 보도했다. “5년간 총 1조원의 운영예산을 분기별로 지급 받을 예정이다. 이중 국내 인력 인건비가 1500억 원이고, 서울대병원은 이와 별도로 5년 동안 400억 원의 위탁 운영 수수료를 받는다.”(바로가기) 그럼 연간 수출액 또는 순수익은 도대체 얼마인가?
일자리를 강조하는 사람도 있다. 앞서 인용한 보도에 의하면 “의사 30명, 간호사 120명 등 총 200여명을 국내에서 현지에 파견할 계획”이라고 한다. 한 기관으로서는 어떨지 모르지만, 정부 부처까지 나서서 추진하는 수출치고는 참 소박한(?) 수준이 아닌가.
중동 환자들의 국내 송출이나 의사 연수도 마찬가지다. 무얼 얼마나 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으나, 경제적 가치는 미미한 수준을 벗어나기 어렵다. 개별 병원이 각자 계획에 따라 노력하는 것 이상으로, 국가사업이나 대통령 아젠다로 가치가 있는지 의심스럽다. 일자리든 수익이든 이 정도를 얻으려고 대통령까지 나서는 것은 아니리라 믿고 싶다.
사정이 이러하고 순방 국가에서 할 일을 홍보용으로만 내세운 것이 아니라면, 남은 가능성은 두 가지다. 하나는 관료주의에서 흔히 나타나는 물신화된 실적주의. 흔히 본질과 가치는 사라지고, 발표한 목표를 달성했는지 실적이 얼마인지 소외된 숫자만 남는다. “수출액 OO 퍼센트 증가” 또는 “대통령 공약 OO 퍼센트 달성”.
보건복지부가 경제 활성화와 수출에 나서야 하는 것도 실적주의의 또 다른 모습이다.
사회 부처까지 나서서 의료산업과 수출의 실적을 보여야 하는 사정은 이해한다. 그러나 목표만 남고 그것의 본래 가치(심지어 경제적인 것이라 하더라도)는 관료체제에 의해 포획된다면? 이런 성과는 믿을 것이 못 된다.
다른 가능성 한 가지는 사실 국내용 정책이라는 것. 의료와 병원 수출을 통해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또한 설득하려는 의도일 수 있다. 수출이 잘 되기 위해서도 국내 기반과 환경을 갖추어야 한다는 논리도 가능하다. 음모론에 가까운 이런 짐작은 괜한 오해이길 진심으로 바란다.
거듭 대통령의 중동 외교가 성공적이길 희망한다. 시작도 하기 전에 준비되어 있을, 수출과 수주가 얼마나 늘었느니, 무슨 큰 계약을 했느니 하는 실적을 성공이라고 믿을 참은 아니다(자원외교를 기억하자).
그보다는, 이해와 ‘소통’을 통해 어떤 가치를 같이 보탤 수 있는지(경제를 포함해서), 그리고 ‘창조적’으로 우리의 대안과 미래를 만드는 것이 이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지혜를 얻을 수 있으면 성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