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프레시안>과 시민건강증진연구소는 ‘서리풀 연구通’에서 격주 목요일, 건강과 관련한 비판적 관점이나 새로운 지향을 보여주는 연구 또 논쟁적 주제를 다룬 연구를 소개합니다. 이를 통해 개인의 문제로 여겨졌던 건강 이슈를 사회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건강의 사회적 담론들을 확산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프레시안 기사 바로가기)
시민건강증진연구소 연구원 배은영
긴축 정책이 삶과 건강에 미치는 영향
지난 1월 25일 실시된 그리스의 총선 결과에 유럽은 물론 전 세계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2004년 처음 총선에 등장한 급진좌파연합 시리자가 다수당의 지위를 확보하였다는 소식 때문이다.
선거 결과 발표 직후 카메라 앵글에 잡힌 그리스인의 표정은 희망에 들떠 있었다. 무엇이 그리스인으로 하여금 급진좌파 정당이라 불리는 시리자를 선택하도록 했을까. 평생 보수당만을 찍어 온 70대 할머니가 난생 처음 보수당이 아닌 시리자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관련 기사 : Why Greeks voted for Syriza: ‘We have nothing left to lose‘)
시리자의 뒤에는 길고 긴 긴축 정책 끝에 피폐한 그리스인들의 삶이 자리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더 이상 잃을 것이 남아있지 않다는 그들의 절규가 모든 것을 말해주는 듯하다.
그리스와 비슷하면서도 또 다른 상황에 처해 있는 나라가 스페인이다. 물론 스페인의 부채 규모는 그리스에 비해 작은 편이며, 일인당 GDP의 감소율도 그리스만큼 크지 않아, 스페인과 그리스를 같은 선상에서 비교하는 것은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구제 금융으로 시작된 긴축 정책이 민중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측면에서는 스페인을 통해 그리스를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스페인의 긴축 정책은 교육, 보건, 사회 서비스 등의 복지 지출 삭감으로 대표된다. 보건과 사회 서비스에 할당되는 예산은 2012년에 13.7% 삭감, 2013년에는 16.2% 삭감되었으며, 지역에 따라 추가 삭감을 하기도 하였다. 26%라는 사상 최고의 실업률에, 빈곤선 아래로 떨어진 가구가 전체 가구의 22%에 달하는 스페인에서 복지 삭감은 민중의 고통으로 이어졌다.
보건 정책 분야의 국제 학술 잡지 <건강정책(health policy)> 최근호에서 발렌시아 지역의 보건의료 전문가들은 긴축 정책이 정신 건강, 영양, 의료의 질 측면에서 부정적 결과를 가져왔다고 증언하였다. 소위 선진국이라 불리는 나라에 배고픔과 영양 불량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이 있다는 사실이 놀랍게 다가온다.
인력 감축을 단행한 병원에서는 레지던트가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업무까지도 담당하고 있고, 입원이나 수술을 위해 대기해야 하는 시간은 더욱 길어졌다. 환자가 넘쳐나는 응급실에서 83세의 할머니가 사흘 동안 의자 하나를 놓고서 대기해야 했던 사례, 환자 처치에 사용할 기본적 재료와 환자가 마실 물조차 부족했던 사례도 보고되었다.
인터뷰에 응한 보건의료 전문가들은 민영화에 대해서도 대체로 부정적으로 인식하였다. 민간 병원은 이윤을 올리기 위해 아직 더 입원할 필요가 있는 환자를 조기 퇴원시키기도 하고, 환자를 다른 병원으로 의뢰할 필요가 있음에도 그렇게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그들의 얘기이다.
어떤 응답자는 적절한 시기에 다른 병원으로 옮겨주지 않아 다리를 절단해야했던 환자의 사례를 소개하기도 하였다. 민간 병원에 태도는 응답자에 따라 다소 달랐지만, 대부분의 보건의료전문가들은 더 이상의 민영화에 대해서는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였다.
약값에 대한 본인 부담금 인상에 대해서도 인터뷰에 응한 전문가 다수가 이에 반대하였다. 약값을 지불할 형편이 되지 않아 약 먹기를 포기한 환자의 처지가 인터뷰 곳곳에서 소개되었다. 인터뷰에 응한 보건의료 전문가들은 대체로 긴축 정책이 보건의료 체계와 인구 집단의 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인식하였다.
시리자가 총선에서 승리한 후 국내 보수 언론에서는 공공 부채를 줄이기 위해서는 긴축 재정이 불가피하다고도 하고, 무분별한 복지 정책으로 말미암아 현재 그리스의 어려움이 초래되었다며 우리나라도 이대로 가면 그리스처럼 될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하였다. (☞관련 기사 : 이대로 가면 그리스처럼 국가 파산 처한다)
그러나 스페인의 예를 보면 작금의 사태의 원인은 과도한 복지가 아니라 금융 위기에서 비롯되었으며, 사태를 악화시킨 것은 긴축이라는 잘못된 정책 방향, 그리고 부패 정치에 있다. 그리스와 스페인에서 복지 삭감이 민중들의 삶에 미치는 구체적 결과는 결코 남의 나라 일로 가볍게 흘려들을 이야기가 아니다. 복지 삭감이 그리 쉽게 휘두를 수 있는 칼이 아니다.
* 참고 자료
- Cervero-LIcras, F., McKee, M, Legido-Quigley, H., The effects of the financial crisis and austerity measures on the Spanish health care system: A qualitative analysis of health professionals’ perceptions in the region of Valencia. Health Policy 2015;119:100-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