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 논평

어린이날에 생각하는 어린이 빈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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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있는 주인데다 중국, 일본의 연휴까지 겹쳐 온통 ‘관광주간’ 분위기다. 게다가 이 논평을 내는 날이 공휴일 사이에 끼어 있으니 읽을 분이 얼마나 될지.

그것보다 더 큰 걱정은 또 많은 사람들에게는 몹시 힘든 주간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누군가는 자칫 ‘왕따’가 되고 어떤 가정에는 분란이 생긴다면 그게 무슨 역설인가. 뜻은 어디 가고 겉만 남았다는 것은 새삼스런 비판도 아니니, 올해도 언론과 인터넷의 키워드는 ‘선물’과 ‘행사’ 또는 ‘여행’으로 넘친다.

그래도 모처럼의 날이 모든 이에게 골고루 기회가 되어야 한다는 당위는 여전하다. 번잡한 일상 속에서도 본래의 뜻을 되새기는 것이 필요하다. 많은 국가가 공식 기념일로 정했다면 더구나 그 의미는 (적어도 한 부분은) 사회적인 것이 아닌가. 개인과 가족의 사사로운 일을 넘어 사회적 의미와 책무가 빠질 수 없다. 공적 의미의 기념일을 통해 가정과 가족은 공동체에 연결된다.

그렇게 어린이날의 본뜻을 헤아리는 것은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이날이 갖는 상징과 의례의 힘은 모든 어린이가 행복하고 제대로 자랄 수 있도록 챙겨보고 다짐하자는 데서 나오는 것임에 틀림없다. 사회적으로는 물론 개인에게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우리는 (적어도 사회적 의미에서는) 어린이날이 이런 조건과 환경을 살펴보는 날이라고 생각한다. 신체와 정신의 발달과 성장, 교육, 보호, 보살핌, 참여 등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가, 차별과 불평등은 없는가, 국가와 사회는 책임을 다하고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

어린이에게 필요한 조건과 환경을 요구하는 근거는 명확하다. 모든 어린이가 기본적인 권리를 가지고 이를 충족할 책임은 국가에 있다는 것, 즉 “기본권으로서의 권리”가 토대를 이룬다. 보호, 양육, 교육, 시혜, 재생산, 인적 자원…그 어느 것도 아닌 독립된 인격체로서 가지는 기본권이 출발점이다.

 

올해는 특히 어린이 빈곤에 주목하고자 한다. 인구 구조와 가족 제도가 급변하는 사정은 이미 잘 알려진 것이지만, 한국 자본주의가 전에 없는 질적 변화를 경험하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어린이 빈곤은 과거와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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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빈곤의 집합적 실태는 정부와 산하 연구기관의 조사결과를 참고할 수 있다. 어린이가 있는 가구의 상대적 빈곤율은 2013년 통계청의 <가계동향조사>에서는 9.4%, <2013년 아동종합실태조사>에서는 8.25%였다(2013년 아동종합실태조사 http://bit.ly/1FFE4Ag). 대략 봐도 열 집에 한 집 꼴이다.

가구별로 빈곤율이 다르다는 것이 건조한 통계에 그나마 약간의 생명력을 부여한다. 일반 가구에서는 빈곤율이 3.9%지만 한 부모, 조손 가족에서는 12배나 많은 46.6%에 이른다. 쉽게 예상할 수 있다지만 그 격차가 놀랍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또 다른 분석을 참고하면 이런 빈곤율조차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소득기준의 빈곤율은 소득 계층별 출산율의 변화와 중위소득과 평균소득 증감 격차에 따라 실제 빈곤 규모를 왜곡될 가능성 또한 있기 때문이다”(우리나라 아동빈곤의 특성 http://bit.ly/1zCFo63).

소득을 기준으로 빈곤율을 산출하는 것 자체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더 중요하다. 빈곤율만으로는 빈곤 때문에 박탈을 경험하는 집단들의 실태를 반영하기 어렵고, 실제보다 빈곤아동을 과소 추정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이 보고서의 주장이다.

‘참값’이나 ‘사실(팩트)’이 무엇인가 또는 외국에 비해 높은가 낮은가 하는 것도 중요하긴 하다. 그러나 우리는 실태와 그 특성조차 명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같은 보고서에 “현재 우리나라 아동빈곤정책은 장기적인 목표가 부족하다”고 적혀 있는 것도 우연이라 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여러 조건이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더욱 걱정스럽다. 우선 경제 전망이 그리 밝지 않다. 소득 불평등이 지속적으로 심화되는 데다 빈곤율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노인 빈곤이 급증하고 어린이 빈곤의 중요한 위험요소인 한 부모나 조손 가족도 빠르게 늘어날 것이다. 어린이 빈곤이 크게 나빠지지만 않아도 다행스럽다 여겨야 할지 모른다.

사실 빈곤은 단순히 물질적 결핍이나 저소득을 뜻하지 않는다. 일찍이 아마티아 센이 지적한 것과 같이 빈곤은 삶의 가치를 성취할 수 있는 ‘능력’이(센이 의미하는 능력은 또한 적극적 자유다) 박탈된 것이다. 어린이 빈곤만큼 능력과 자유의 박탈을 잘 드러내는 것이 또 있을까.

이런 시각에서는 다차원적 박탈이라는 표현으로는 어린이 빈곤을 모두 설명할 수 없다. 주거의 빈곤인가 의료의 빈곤인가, 또는 다차원적 빈곤인가보다 더 중요한 것은 빈곤이 능력과 관련된다는 사실이다. 어린이 빈곤이 성장, 신체와 정신의 건강, 인지 발달, 정서와 사회심리적 발달, 학습과 교육에 모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니, 미래의 전망과 가능성을 생각하면 ‘능력’의 훼손은 당연하다.

능력의 논리와 윤리에 기대면 어린이가 빈곤에서 자유로울 권리는 더욱 당연하다. 그 악명 높은 ‘책임’의 논리로 보더라도 그 기본권을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모든 어린이는 가난하지 않게 살 권리가 있다!

 

여기서 다시, 이런 권리를 충족할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가 하는 질문으로 되돌아온다. 사실 원칙은 간단하고 분명하다. 유엔의 <사회권 규약>이나 <국제아동권리협약>이 명시하고 있듯이 국가가 당연한 일차적 책임 주체이다. 그래서 어린이가 빈곤에서 자유로울 권리를 다시 묻는다. 국가는 과연 책임을 다하고 있는가?

정책은 책임의 일차적 표현이다. <2013년 아동종합실태조사>는 정부가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가를 물었다. 빈곤 가구가 답한 것을 보면, 순서대로 한 부모와 조손 가족 지원 정책, 의료비 지원, 아동수당 정책 등 요구했다(‘골랐다’고 하는 편이 정확하다).

이런 정책들은 당연히 의미가 있지만, 국가가 책임을 다하고 있지 못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특히 우리는 아동수당제도를 신속하게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종류의 인권에 ‘점진적 실현’의 원리가 적용된다고 하지만, 어떤 논리로도 한국 사회가 가진 자원이 부족하다고 하기는 어렵다.

물론,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빈곤은 복합적 문제이며, 어린이 빈곤 역시 전반적 빈곤의 한 가지 발현이다. 어린이 빈곤을 전반적 빈곤 감소와 소득 불평등 완화를 위한 전체 기획 속에 위치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빈곤에서 자유로울 보편적 권리, 그리고 그를 충족하기 위한 국가의 총체적 책임을 다시 확인한다.

 

정치적 의제로 보면 어린이 빈곤은 가장 나중에야 부각된다. 어린이가 가진 권력의 열세에다 빈곤의 문화적 억압이 보태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어린이는 권리의 주체가 아니라 여전히 대상에 머물러 있다.

어린이날이 들어있는 이번 주, 어린이 빈곤이 작은 관심이라도 받을 수 있기를, 그리하여 작은 목소리라도 만들어지기를 바란다. 기초로서의 어린이의 권리를 다시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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