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 논평

국립대 병원은 왜 존재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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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병원이 4월 23일부터 파업을 시작했다. 성과급제를 폐지하고 개악한 취업 규칙을 철회하라는 것이 핵심 요구다. 경북대 병원도 곧 파업을 할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역시 성과급 문제가 들어 있고, 또 다른 대형병원을 지으려는 것도 노조의 반대에 부닥쳐 있다.

겉핥기식의 뉴스는 노동계의 총파업과 연관시키느라 바쁘다. 보도와 해석은 새로울 것이 하나도 없다. 노동자들의 이기주의 아니면 진료 차질, 환자 불편을 나무라는 소리는 익숙하다. 경북대 병원 파업을 두고는 지역 의료의 ‘경쟁력’ 훼손을 걱정한다는 한심한 반응도 있다.

 

서울대 병원과 경북대 병원의 파업은 그냥 봐 넘길 일이 아니다. 우선, 병원 직원들의 자기 이해관계가 아니라 성과급제 철폐를 요구한다는 것을 주목하자. 언뜻 듣기에는 성과급이 왜 나쁘냐고 하겠지만, 이 문제는 여러 가지로 심각하다.

여기에는 병원 직원 모두가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는가 없는가가 달려 있다. 노동자의 조건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 결과로 환자의 안전과 치료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하는 것이 첫 번째다. 그래서 우리도 병원 성과급제를 반대한다.

어떤 점이 나쁘고 그건 왜 그런가? 이에 대해서는 며칠 전에 이상윤이 꼼꼼하게 잘 정리해 놓았다(프레시안 기사 바로가기). 병원뿐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성과급제를 이해하기 위해 꼭 한 번 읽어보면 좋겠다.

핵심은 환자에게 손해를 끼칠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점이다. 최종 결과를 돈으로 환산하는 성과라면, 병원이 어떻게 돌아갈까 물으나 마나다. 더 많은 생산(진료), 더 큰 이윤(매출-비용), 더 높은 효율! 무엇이라 말을 꾸며도 매출과 수익을 앞세우는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

영리 기업의 방식으로 병원을 운영하면 그 결과는 재앙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재앙은 직원뿐 아니라 환자에게도 미친다. 병원에서는 서비스 ‘생산’과 ‘소비’(이해를 돕기 위해 이런 말을 쓰는 것을 양해해 주시기 바란다)가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기억하자. 직원의 동기와 행동은 바로 그 자리에서 환자에게 전달된다.

 

우리는 이번 두 병원의 파업을 ‘정치 파업’으로 이해한다. 병원 노동자들의 자기 이해나 노동조건과 무관하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이번만큼 병원의 노동조건과 정치가 긴밀하게 연관된 것, 그리고 정치가 더 중요한 경우를 찾기 어렵다.

파업의 이유와 구조 때문에 그렇다. 애당초 이번 파업의 뿌리는 단위 사업장의 노사관계를 넘어선 데에 있다. 각 병원의 경영진이 아닌, 정부가 파업의 이유를 제공했고 밀어붙였으며 부추겼다. ‘공공기관 정상화’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정부의 압박이 파업의 주된 원인이자 동력이다.

 

자세한 사정은 그동안의 경과를 자세하게 정리한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라포르시안 기사 바로가기). 에두를 것 없이 요약하자. 정부가 요구하는 핵심은 (이 기사가 잘 표현했듯이) 국립대 병원들이 “지출은 줄이고 수익은 늘리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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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만한 이유가 있겠지 하고 생각하지 마시길. 이들 병원의 생산성과 효율을 느끼고 싶은 분들은 지금이라도 응급실이나 외래, 병실을 방문해 보기 바란다. 직원들이 놀고먹는지 무슨 비효율 때문에 돈을 덜 벌고 있는지 꼭 한번 보면 좋겠다.

 

결국 이 정부가 파업에 이른 책임을 져야 한다. ‘공공기관 정상화’라는 것이 워낙 말이 안 된다는 것, 작년 10월에 이미 지적했다 (관련 서리풀 논평, 프레시안 바로가기). 공공부문 ‘개혁’이라고 하지만 수익과 효율을 제외하고는 무슨 가치나 지향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 직접 원인이다.

 

 

국립대 병원은 과연 무슨 일을 해야 정상적으로 기능하는 것인가? 어떤 일을 ‘효율적’으로 더 해야 하는가? (무슨 일을 해서든) 돈을 더 벌어 ‘자력 갱생’하는 것이 국립대 병원이 달성해야 할 목표인지 묻는다.

 

우리는 다시 근본에 이르렀다. 국립대 병원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더 많은 환자 진료? 수익과 효율성? 가장 유명하고 큰 병원? 그렇다면 영리 기업과 다를 것이 무엇이며, 사립, 영리병원, 민간병원과 어떤 차이가 있는가.

 

어떤 사람은 다를 것이 없다고 답할 것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국립대 병원을 없애자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잠간, 판단 기준은 (그리 큰 차이가 없는) 현재의 모습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추구해야 할) 본질적인 존재 이유다. 말을 고치면 이렇다. 국립대 병원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는 있는가 없는가? 있다면 무엇인가?

 

 

우선 언어의 조정. 모든 일상에서 국립대 병원이라는 말은 그리 익숙하지 않다. 그보다는 서울대 병원이나 경북대 병원(또는 경대 병원)이 공통의 생활 경험이다. 고려대 병원이나 영남대 병원과 다를 바 없는 ‘대학병원’이라는 뜻.

 

‘국립’이라는 속 내용은 진작 제거되어 껍데기만 남았다. 아주 가끔 행정이나 수사(꾸밈)로 동원될 뿐, 국립과 공공은 소외나 자기 분열을 표현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시민과 환자, 직원들의 내면에 공공병원이라는 정체성이 있는지도 의심스럽다.

 

사태가 이럴진대 국립대 병원의 사명과 기능이 추상의 수준을 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진료는 어떻고, 연구와 교육은 어떠해야 하는지, 좀처럼 차별성과 고유성을 찾기 어렵다. 수익과 효율을 밀어붙일 수 있는 배경이기도 하다.

 

 

그건 아니다. 거듭 생각해 봐도, 국립대 병원이 해야 할 일, 또 국립대 병원만 할 수 있는 일은 분명하다. 끝 모를 영리화, 상업화의 광풍 속에 있는 한국 의료의 현실에서는 더욱 그렇다. 공공병원으로서의 국립대 병원이 왜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지가 그렇게 어려운 질문인가?

 

이 지경이 된 데에는 일차적으로는 국가의 책임이 크다. 공공의료와 의료의 공공성에 대한 전망을 만들지 못했으니(또는 일부러 회피했으니), 국립대 병원의 사명과 기능을 정립하는 것은 ‘나무에서 물고기를 구하는 일’이다. 당분간은 희망을 갖기 어렵다.

 

국립대 병원과 그 구성원도 일부 책임을 나누어야 한다. 정부의 방침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사정을 이해하지만, 국립대 병원은 한국 사회 어떤 조직보다 많은 권력자원을 가졌다. 국가를 설득하고 압박할 힘을 가졌는데도, 무엇을 지향하고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묻고 실천하는 일에 게을렀다고 볼 수밖에 없다.

 

가장 큰 책임은 시민사회로 돌려야 한다. 정부와 국립대 병원이 스스로 할 수 없다면 제 역할을 하도록 압박하고 개입해야 하나 그러지 못했다. 공공병원이나 의료의 공공성 논의에도 국립대 병원은 우선순위가 낮다. 우리도 함께 반성한다.

 

 

이제라도 모든 당사자가 물어야 하는 것은 같다. 국립대 병원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무엇을 기본 사명과 기능으로 해야 하나? 정책(예를 들어 공공기관 정상화)이나 사업(예를 들어 경영평가, 성과급)이 거기에 부합하는가?

 

그동안 쌓아 놓은 것이 적으니 앞날은 낙관하지 못한다. 그러나 지금부터라도 주춧돌을 놓아야 한다. 서울대 병원과 경북대 병원의 파업 사태가 이를 고민하는 사회적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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