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0일 교육부에서 초·중등교육법시행령 개정안을 입법 예고함에 따라 2016년 내년부터 중학교 자유 학기제가 전면 시행된다.
자유 학기제란 “중학교 교육 과정 한 학기 동안 학생들이 중간·기말 고사 등 시험 부담에서 벗어나 꿈과 끼를 찾는 다양한 체험활동을 하도록 교육과정을 유연하게 운영하는 제도”를 말한다. (☞관련 기사 : “2016년 모든 중학교서 실시하는 자유 학기제”)
42개 학교를 지정하여 자유 학기제 연구 학교 운영을 시작했던 2013년부터 이미 찬반 논란은 뜨거웠다. 도입을 찬성하는 측에서는 자유 학기제가 학생들 스스로 자신의 적성과 미래를 탐색하고 설계할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 보았다. 반면에 도입을 반대하는 측에서는 학력 저하에 대한 우려와 함께 현재의 경쟁적인 교육 시스템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성공하기 어렵기 때문에 인프라 구축이 먼저라는 입장을 내세웠다.
그렇다면 아동의 삶의 질이라는 측면에서는 과연 어떨까?
지난 5월 21일, 세이브더칠드런과 서울대학교 사회복지연구소가 공동 주최한 ‘한국 아동의 삶의 질에 관한 국제 심포지엄’에서는 한국을 비롯한 세계 15개 국가 아동의 주관적 행복과 삶의 질을 비교한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다. 이는 세이브더칠드런과 서울대학교 사회복지연구소가 2012년에 개발한 아동행복종합지수를 바탕으로 분석한 것으로, 행복이나 삶의 만족도, 긍정적 정서 등의 다양한 주관적 행복 척도들을 통해 국가별 평균을 비교하였다 (2013년도에도 동일 지표로 해외 8개 국가 및 국내 16개 시·도 간 아동의 삶의 질을 비교 분석한 바 있다).
▲ 아동의 전반적인 삶의 만족도 국가 비교. 노란색은 10세 아동, 초록색은 12세 아동의 전반적인 삶의 만족도를 나타내며, 전체 만족도는 10점 척도로 조사되었다. ⓒ서울대학교 사회복지연구소&세이브더칠드런
연구 결과를 보면, 설문 조사에 참여한 알제리, 네팔, 에스토니아, 스페인, 콜롬비아, 터키, 에티오피아, 한국, 독일, 영국, 이스라엘, 루마니아, 노르웨이, 폴란드, 남아프리카공화국 아동들의 주관적 행복 수준은 국가별로 차이가 있었으며 그 중 한국은 모든 척도에서 일관되게 주관적 행복도가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과 함께 네팔, 에티오피아의 아동들도 상대적으로 낮은 주관적 행복을 보였다.
이러한 차이는 왜 나타나는 것일까? 그리고 무엇이 한국 아동들의 행복도를 낮게 만드는 것일까? 연구에서는 이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아동의 주관적 행복을 자기 자신, 환경, 학습, 여가, 돈, 관계, 선택의 자유, 총 7개 영역으로 구분해 각각의 요인이 주관적 행복에 미치는 영향력을 분석하였다.
분석 결과, 7개 주요 요인들의 효과는 국가별로 조금씩 다르게 나타났으나 주관적 행복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자기 자신(에 대한 만족)’과 ‘선택의 자유’인 것으로 나타났다. 즉, 한국 아동이 가장 낮은 주관적 행복을 보인 이유는 7개 영역 중, ‘자기 자신(에 대한 만족)’과 ‘선택의 자유’에 대해서 낮은 만족도를 보이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아동이 행복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아동이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와 아동이 자신의 삶에 어떠한 선택을 할 수 있는 가에 보다 많은 관심을 쏟을 필요가 있다고 연구자들은 제언하고 있다.
입시 위주의 경쟁적 교육 문화 속에서 끊임없이 남과 비교 당하는 것은 물론이고, 자신의 시간을 스스로 계획하고 결정하여 소비할 권리를 박탈당하고 있는 한국 아동·청소년들의 상황을 생각할 때 어쩌면 이러한 결과는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아동이 행복하고 건강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자유 학기제처럼 선택의 기회를 열어주는 제도가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닐까? 심포지엄 토론자였던 도쿄도립대학 아베 아야 교수는 이에 대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일본은 지난 2002년, 학생들에게 단순 암기보다는 생각하는 힘을 길러줘야 한다는 방침에 따라 개별 교과에 대한 수업 시간은 줄이고 종합 학습 시간은 늘리는 이른바 ‘유도리(여유) 교육’을 도입한 바 있는데, 이는 결국 실패한 교육 정책으로 판명 났다는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아동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었지만, 결국 선택의 기회를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아동은 상위 계층에 한정되었고, 이에 따라 ‘유도리 교육’ 기간 동안 빈곤 아동과 비빈곤 아동간의 격차가 더 크게 벌어져 불평등이 심화되었다는 것이다. 빈곤 아동의 경우 비빈곤 아동에 비해 자아 존중감이 훨씬 낮은 것으로 나타났는데, 유도리 교육 이후 나타난 불평등의 심화가 아동들의 자아 존중감에 더욱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 예상하였다. (☞관련 기사 : “일본 ‘유도리’ 교육 사실상 끝…학력 저하”)
당연한 얘기지만, 어떤 정책을 시행하고 그것을 통해 어떤 효과를 얻고자 한다면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것 뿐 아니라 그것을 가능케 하는 조건들을 함께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선택의 자유’를 확보한다는 취지는 좋지만, 정책을 결정할 때는 불평등을 심화시키지는 않을 것인지, 모든 아동·청소년에게 ‘진짜’ 선택의 자유를 줄 수 있을 것인지 등 조금 더 세심하게 여러 측면을 들여다봐야 한다.
선택의 자유가 사교육에의 자유를 의미하는 상황이 되어, 아이들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한 정책이 오히려 아이들의 상대적 박탈감과 낮은 자아 존중감을 유발하게 된다면 곤란하기 때문이다. 자유 학기제가 아이들에게 ‘진짜’ 선택을 보장하는 것인지 다시 한 번 진지하게 들여다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