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곳에서 세미나와 토론회가 이어지는 것을 보면 메르스 사태가 상대적 안정기에 접어든 것으로 보인다. 마무리가 될 때까지는 꽤 시간이 걸리겠지만 사정이 크게 나빠지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 또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 한다.
벌써부터 많은 진단과 처방이 나오는 데다, 이제는 가히 백가쟁명이 될 가능성도 있다. 일선에서 숨 돌릴 틈조차 없는 당사자들로서는 서둘러 그 다음으로 가는 것이 불만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평가와 대안이 쏟아지는 것을 어찌 막을 것이며, 그 또한 문제 해결에 보탬이 되지 말란 법도 없다. 마무리가 되고 난 다음을 준비하는 데에는 현실의 감각과 긴장감이 필요하다는 것도 다른 한 가지. 원하든 그렇지 않든 이제 다음 단계를 준비를 해야 한다.
어떤 준비를 말하는가? 지난 주 우리의 논평에서 일부를 다루었으나 (바로가기), 필요한 것은 좋은 리더십에 한정되지 않는다. 어떤 단계로 어떻게 진입할 수 있는가에 따라 미래가 크게 달라진다면, 이 과정은 종합적이고 또한 섬세해야 한다.
바로 지난해에 겪은 (사실은 아직도 진행 중인) 또 하나의 사례 때문에 우리는 이런 ‘연속과 전환’의 과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안다. 세월호 참사로 우리 사회가 얼마나 달라졌나,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면 무엇 때문에 그런가, 메르스 ‘대란’이 메르스 ‘이후’로 바뀌는 과정에서 준비하고 찾아야 할 질문과 응답들이다.
첫째, 개인이 아닌 구조
우선, 개인과 사건, 우연과 경험이 아니라 구조가 중심에 있어야 한다. 문제의 진단만 하더라도, 그게 아니면 메르스 확산과 이에 대한 정부의 대응을 제대로 설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 다른 재난을 막기 위한 방법 역시 구조를 손보고 다시 구축하는 것 이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다.
고려해야 할 구조의 범위가 좁은 범위의 민족 국가, 정부, 보건, 과학, 전문가 등의 경계를 넘는다는 것이 새롭고도 중요한 도전이다. 이번 사태가 중동에 다녀온 환자에서 시작되었다는 것 자체가 민족 국가의 경계를 넘는, 세계화라는 구조적 특성을 보여준다. 메르스가 확산에 병원 ‘쇼핑’과 간병 문화가 일조했다는 데에 이론이 없다면, 이 또한 거대하고 복잡한 구조 그 자체거나 구조의 필연적인 산물이다.
그 구조는 거대하고 복잡하며 역사적이다. 따라서 한 가지 처방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마법’ 따위는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또한 가장 근본적인 구조로 접근해 들어가야 하지만 모든 것을 그 한 가지로 환원하지 않는 유연함 또한 필요하다.
둘째, 철저하고 정확한 평가가 필요하다
특히 대안과 개선에 관심을 둔다면 평가의 중요성은 두 번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지금 봐서는 제대로 된 평가를 할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 주로 오류와 한계, 실패를 아프게 비판하는 것이 되기 쉬운데다, 개인이 아니라 구조에 초점을 맞춘다고 생각해 보자.
더구나 정부가 주체가 되는 ‘셀프’ 평가면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평가를 받아야 할 대상이 평가를 하겠다고 나선 세월호 사건이 반면교사다. 정보는 은폐되고 평가는 억압될 것이다. 마땅히 대통령의 직무수행까지 포함해야 하나, 그러자고 하면 결과는 뻔하다. 정치권의 지형과 실력, 당정청의 관계로 볼 때 국회에 기대를 걸기도 어렵다.
그렇다면 다른 어떤 방법이 있을까? 일차적으로는 정부가 진행할 평가에 민간의 전문가와 시민이 참여할 수 있도록 요구해야 한다. 나아가 민주주의와 시민의 참여에 기초한 평가를 따로 조직하는 것이 필요하다. 구체적으로는 ‘메르스 대란 시민평가단’을 만들 것을 제안한다.
셋째, 제대로 책임을 지우고 져야 한다
책임의 시나리오는 누구나 예측할 수 있을 정도로 빤히 보인다. 사태가 마무리되는 대로 보건복지부 장관은 사표를 낼 것이고, 질병관리본부의 고위직 한두 사람도 책임지는 모양을 갖춰야 할지 모른다. 그리고는 “조직의 면모를 일신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면서 대대적인 조직개편과 인사이동.
이렇게 하면 누가 책임을 지긴 지는 것일까. 당사자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지만 이런 식의 ‘도의적’ 책임은 “재수 없이 걸렸다”는 억울함을 유발할 뿐이다. 구조가 원인이고 그 구조를 바꾸는 것이 목표라면 더욱 더 그렇다.
구조에 대한 책임일수록 더 구체적이고 정확하게 규명되어야 한다. 그리고 결국 져야 할 책임은 필연적으로 정치적이다. 카트리나 사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부시 대통령과 공화당 정권은 결국 선거를 통해 심판을 받았다.
넷째, 조직보다 시스템이 먼저다
세월호 이후와 비슷한 길을 간다면, 메르스 또한 제2의 국민안전처 정도로 귀결되지 않을까 싶다. 조직의 독립 여부나 크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겉모습 바꾸기에 치중할 것이라는 뜻이다. 벌써부터 질병관리본부의 확대나 보건부의 분리 등, 조직 개편이 가장 큰 관심사가 아닌가.
물론 그 모든 것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어느 것이라도 전체 시스템을 정비한 이후, 그것을 작동시키기 위한 장치여야 한다. 여기서 전체라 함은 적어도 공공보건정책, 좀 더 크게 잡으면 보건의료 전체를 포괄하는 범위를 뜻한다.
메르스 사태 와중에서 여러 차례 지적된 것이지만, 분리된 폐쇄 시스템으로 접근해서는 감염병 관리와 같은 개방 시스템을 작동시킬 수 없다. 이제 곧 역학조사관을 늘리고 역량을 강화한다고 치자. 의료 인력의 양성, 정부의 공공보건조직과 그 기능, 보건예산, 지자체의 역할과 같은 다른 요소를 같이 생각하지 않으면 기껏해야 반쪽이다.
구조에서 진단과 처방을 찾아야 한다면 더욱 더 시스템에 주목해야 한다. 공공과 민간, 보건과 다른 분야, 개인과 집단, 중앙과 지방을 망라하는 전체 시스템을 같이 변화시켜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다섯째, 지도력을 어떻게 할 것인가
구조와 시스템을 평가하고 바꿔나가는 것은 시간이 많이 걸린다. 수많은 목표와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통합하는 것과 자원을 동원하는 것까지 포함하면 국가적 수준에서 지도력이 발휘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시간 계획을 가지고 단계별로 나누어(단기-중기-장기) 해야 할 일을 제시하며 필요한 정치적, 사회적 자원을 동원해야 한다.
이것도 세월호 사건의 교훈이라면, 지금 같아서는 ‘제도적’으로 그런 지도력을 기대하기 어렵다. 돌아가는 형편으로 볼 때 메르스 이후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따라서 세월호 이상으로 사회적, 도덕적 권위와 그에 기초한 지도력에 기대를 걸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