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 논평

카트리나 10주년, 세월호와 메르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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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8월 29일, 강력한 허리케인인 카트리나가 미국 루이지애나 주의 뉴올리언즈를 휩쓸고 지나갔다. 2015년 8월 29일, 이제 꼭 10년이 지났고 미국 전체가 10주년을 기억하느라 분주하다. 8월 27일에는 오바마 대통령이 직접 현지를 방문해 주민들을 만나고 연설했다. 대통령까지 나설 정도니 이 일이 얼마나 큰 ‘국가적’ 사안인지 짐작할 만하다.

카트리나 10주년에 오바마 대통령까지. 그 바쁜 미국 대통령이 거의 하루 종일 한 가지 행사에 참여했다고는 하지만, 딴 나라 이야기인 것이 맞다. 흔하고 흔한 미국발 뉴스라고 생각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이번 카트리나 만큼은 좀 다른 것이, 몇 년 사이 우리의 현실이 저절로 겹치기 때문일 것이다. 사상자 수는 비교가 되지 않지만 세월호와 메르스는 끊임없이 카트리나를 불러낸다.

그들이 재난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방식에서 우리의 현실과 할 일을 성찰하려 한다. 사소한(?) 것부터 먼저 보자. 백악관이 발표한 오바마 대통령의 일정은 이렇다.

 

  • 12시 20분 현지 도착
  • 12시 45분 주민과 청소년 면담
  • 2시 55분 지역주민센터에서 열린 ‘회복원탁회의’ 참석
  • 3시 55분 원탁회의에서 발언
  • 5시 현지 출발.

 

대통령이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예외 없이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있지만 미국의 방식은 우리와 좀 다른 것 같다. 백악관이 홈 페이지에 올려놓은 사진을 보면 어떤 차이가 있는지 확연하다(바로가기).

대통령이 원탁회의에 참석하는 것과 같은 형식도 놀랍지만, 기념과 행사는 그럴 수 있다고 치자. 국가적 재난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응해 왔는지에 이르면 우리의 현실과 직접 이어진다. 작년과 올해, 세월호와 메르스가 잊을 수 없는 사건이자 현실이라면, 카트리나의 10주년은 교훈이자 우리의 잠재적 미래다.

 

첫 번째로, 우리도 10년을 버텨 기억할 수 있을까를 가장 먼저 떠올린다. 우리 스스로를 낮추는 말 가운데 하나가 쉽게 잊는다는 것이 아닌가. 냄비 끓듯 한다는 비아냥거림도 마냥 부인할 수 없는 것이, 얼마 전의 일도 까마득히 잊는다. 10년은 그만 두고, 최근 2년만 따져 언뜻 꼽아도 사람을 죽고 다치게 만든 사고와 재난이 여럿이다. 태안의 사설 캠프, 경주의 리조트 체육관 붕괴 사고, 장성 요양병원 화재, 가거도의 헬기 추락, 신해철의 의료사고,…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도 대부분 기억이 희미하다. 잊는 것이 아니라고 변호하거나 그럴 수밖에 없는 구조적 요인을 들먹일 생각은 없다. 다만 한 가지, 기억은 일회적 사건에 대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그것은 매일 다시 만들어지고 구성되어야 하는 것으로, 일상과 현실의 개입 없이는 만들어질 수 없다. 오늘 새로운 사건이 없으면 기억도 없다.

이제 막 세월호 후 500일이 지나갔지만, 이를 기억하는 것은 늘 새로운 사건과 경험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진상을 조사하고 평가하며 새로운 대안을 찾는 일상의 장치를 거쳐 기억은 유지되고 새로워진다. 요양병원의 실태가 다시 드러나고 개선에 대한 실천이 없는 한, 아무리 큰 화재도 잊히기 마련이다. 망각에 대항하는 일상의 경험과 ‘투쟁’이 계속되어야 10주년, 20주년을 의미 있게 기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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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교훈은 기억과 기념은 실천, 즉 계획과 실행 그리고 그 성과에 대한 것이라는 점이다. 카트리나 10주년을 기념하는 것은 어느 날 과거를 기억에서 불러내는 것이 아니다. 백악관의 홈 페이지가 강조하는 대로 기억은 10년간 어떤 실천을 했고 어떤 것을 성취했는지 요약하고 ‘평가’하는 일이다.

그들은 10주년을 맞아 98%의 주민이 본래의 집으로 돌아갔다는 것, 그리고 학교와 병원, 도로 등을 복구하기 위해 2009년 이후에만 52억 달러를 지원했다는 것을 강조한다. 10주년을 기념하는 백악관의 홈 페이지는 오바마 행정부가 어떤 노력을 했는지 그 내용으로 가득하다(바로가기).

 

세월호와 메르스의 10주년은 이처럼 기억하고 기념할 수 있을까? 그 때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오늘의 역사’로 불러내는 것이 아니라면, 그 10주년은 변화를 만들어내기 위해 평가하고 계획하며 실행하는 것에 달렸다. 10년간 계속되는 그것.

세월호든 메르스든, 10년을 준비하는 평가가 필요하다는 것은 2015년 6월 29일의 <서리풀 논평>에서 이미 말한 대로다. “철저하고 정확한 평가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지만(바로가기), 쉬운 일이 아니라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한다.

 

“지금 봐서는 제대로 된 평가를 할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 주로 오류와 한계, 실패를 아프게 비판하는 것이 되기 쉬운데다, 개인이 아니라 구조에 초점을 맞춘다고 생각해 보자.

더구나 정부가 주체가 되는 ‘셀프’ 평가면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평가를 받아야 할 대상이 평가를 하겠다고 나선 세월호 사건이 반면교사다. 정보는 은폐되고 평가는 억압될 것이다. 마땅히 대통령의 직무수행까지 포함해야 하나, 그러자고 하면 결과는 뻔하다. 정치권의 지형과 실력, 당정청의 관계로 볼 때 국회에 기대를 걸기도 어렵다.

그렇다면 다른 어떤 방법이 있을까? 일차적으로는 정부가 진행할 평가에 민간의 전문가와 시민이 참여할 수 있도록 요구해야 한다. 나아가 민주주의와 시민의 참여에 기초한 평가를 따로 조직하는 것이 필요하다.”

 

여기에 이르면 벌써 계획까지 말하는 것이 현실적인지 모르겠다. 좋은 평가도 마음대로 되지 않지만, 계획과 실행은 국가에 더 크게 의존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태도가 달라지지 않는다면 더욱 어려운 것이 아닌가. 하지만 망각에 대한 ‘투쟁’은 그런 국가를 움직이게 만드는 시민의 행동을 포함한다.

 

먼저, 정부가 생각의 틀을 바꾸도록 요구한다. 정부는 세월호의 경우 계획은 물론이고 후속조치도 끝났다고 판단할 것이다. 메르스 역시 계획이든 후속조치든 곧 마무리된다고 생각할 공산이 크다. 물론 잘못 생각한 것이다. 10주년을 내다보면 평가도 계획도 제대로 시작하지 못했다.

좁게 봐도 좋은 계획을 만들기 어렵다는 것도 큰 도전이다. 우리보다 계획의 여건이 훨씬 나았던 뉴올리언즈에서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뉴올리언즈의 시정부는 재난 후 1년 6개월이 더 지난 2007년 3월에야 종합복구계획을 완성할 수 있었는데(바로가기), 이전에 만들어진 네 가지 계획이 여러 이유로 뒤집혀진 이후였다.

 

무엇이 좋은 계획인가? 서로 사정이 다르므로 요건도 다르지만, 몇 가지 참고할 만한 것도 있다. 명확한 비전과 종합적이고 포괄적인 목표의 수립, 시민의 참여에 기초한 계획 수립, 리더의 역할, 여러 분야와 영역의 협력 등이 그것이다(바로가기). 참여하는 것, 나아가 국가에 영향을 미치는 것, 더 나아가 국가를 ‘통제’하는 것이 필요하다.

 

세월호와 메르스 모두, 우리는 완강한 망각의 추세와 싸우고 있는 중이다. 세월호와 메르스의 10주년을 기념할 수 있을까, 그리고 무엇을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지를 생각한다.

망각 그 자체, 그리고 망각하게 만드는 완강한 힘과의 싸움. 일상에서 사건(들)을 회복하고 그 동력으로 지속적인 평가와 계획을 압박하는 것, 그리고 실천함으로써 다시 사건으로 되돌아오는 것, 대항하는 힘에 기대를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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