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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소득 주면 건강 좋아져! 왜 이재명을 막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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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프레시안>과 시민건강증진연구소는 ‘서리풀 연구通’에서 격주 목요일, 건강과 관련한 비판적 관점이나 새로운 지향을 보여주는 연구 또 논쟁적 주제를 다룬 연구를 소개합니다. 이를 통해 개인의 문제로 여겨졌던 건강 이슈를 사회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건강의 사회적 담론들을 확산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프레시안 기사 바로가기)


기본 소득과 건강

나라 안팎으로 기본 소득 제도가 뜨거운 이슈다. 기본 소득이란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조건 없이 정기적으로 지급되는 소득으로, 노동 요구나 노동 의사와 무관하게, 자산이나 다른 소득의 심사 없이 보장된다는 점에서 기존의 사회 보장과 차별성을 갖는다.

우리나라에서는 최근 성남시가 ‘청년 배당’이라는 이름으로 이러한 기본 소득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데, 이는 성남시에 일정 기간 거주한 만 19~24세 청년들에게 분기별 25만 원 이내의 소득을 지원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그러나 중앙 정부와 여당은 ‘포퓰리즘’ 정책이라며 강도 높은 비난을 쏟아내고 있고, “지방자치단체 독자 복지는 범죄다”, “패널티를 부과해서라도 무분별한 무상 복지 사업을 방지해야 한다” 고 주장하며, 감행할 경우 지출 금액만큼 지방세 교부금을 깎겠다며 으름장을 놓고 있다.

노인들에게 소득에 관계없이 월 20만 원씩의 기초연금을 지급하겠다고 공약했던 박근혜 정부의 기초 연금은 복지정책이고, 청년 배당은 왜 포퓰리즘 정책이라는 것인지도 의아하지만, 무엇보다 시의회의 동의를 거쳐 시 자체 예산으로 추진하겠다는 복지 정책이 교부세까지 깎아가며 결사 저지해야 할 위법 행위인건지도 이해하기 어렵다.

이와는 달리, 세계 이곳저곳에서는 최근 기본소득제도에 대한 논의와 실험이 적극적으로 시행되고 있는데, 모든 국민에게 월 100여만 원에 이르는 기본 소득을 지급하는 안을 계획 중인 핀란드에 이어 네덜란드에서도 비슷한 정책에 관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또 프랑스에서도 지난 여름 남부 아키텐 주 의회가 일종의 기본 소득 실험 법안을 통과시켰고, 캐나다 온타리오 주의 킹스턴 시 의회도 이달 중순 기본 소득 추천 법안을 통과시켰다. 스위스에서는 2016년 국민 투표를 통해 기본 소득 도입을 결정할 예정이다. (☞관련 기사 : 세계 지구촌에 기본 소득 바람 분다)

기본 소득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우리 사회가 기본 소득을 보장함으로써 다음과 같은 사회적 편익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우선 빈곤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음은 물론이고, 어쩔 수 없이 불안정한 고용에 내몰렸던 많은 청년들이 빈곤의 수렁에 빠지지 않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준비할 수 있도록 든든한 보험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또 빈곤에서 파생되는 많은 문제들, 가령 높은 범죄율이나 청소년들의 학교 중퇴율 등을 줄일 수 있다고 얘기한다.

사실 기본 소득을 둘러싼 논의는 최근 새롭게 등장한 것이 아니며, 꽤 오랜 기간 동안 이론적 논의를 거쳐 왔다. 또 나미비아, 브라질, 캐나다, 미국 등의 이미 여러 국가에서 기본 소득 실험이 진행되면서 그것이 노동 참여나 빈곤 등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실증적 논의도 활발하게 이루어져왔다. 그렇다면 과연 기본 소득은 건강에는 어떠한 영향을 미칠까?

캐나다 매니토바 대학의 E. L. 포겟은 1974년부터 1979년까지 캐나다 마니토바 주에 시범적으로 시행되었던 기본 소득 사업(MINCOME 사업)이 지역 주민의 건강에는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를 분석하였다. (☞관련 자료 : New questions, new data, old interventions: the health effects of a guaranteed annual income)

MINCOME 사업은 당시 마니토바 주의 도시 두 곳, 인구 45만 명 규모의 위니피그(Winnipeg)와 1만2000여 명 규모의 도핀(Dauphin)에서 시행되었으며, 가구 원수와 소득 수준에 따라 차등적으로 일정 금액의 기본 소득이 지급되었다. 당시 시범 사업은 정권이 바뀌면서 별다른 평가 없이 종료가 되었는데, 최근 포겟은 매니토바 지역의 건강 보험 청구 자료를 이용하여 1971년부터 1985년까지 이들의 의료 이용 양상을 대조군(사업은 실시되지 않았지만 비슷한 조건의 다른 지역 주민들)과 비교 분석하였다.

분석 결과, 대상 인구의 입원율이 해당 시범 사업 기간 동안 대조군에 비해 8.5% 감소하였으며, 특히 사고와 상해, 정신 질환으로 인한 의료 이용 감소가 이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의료 이용 감소 추세는 시범 사업이 끝남과 동시에 그쳤지만, 감소한 의료 이용률은 관찰 종료 시점인 1985년까지 유지되었다. 일반적으로 의료 이용은 건강 수준과 반비례하므로 이러한 결과는 기본 소득 사업이 주민들의 건강 수준을 향상시킨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결과가 크게 두 가지 경로를 통해서 나타났을 것이라 해석하는데, 하나는 빈곤층의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서 그들의 건강 수준이 직접적으로 좋아지고 이에 인구 집단의 평균적인 건강 수준도 향상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소득 불평등이 개선되면서 발생한 외부 효과, 혹은 유출 효과(spillover effect)가 지역 사회의 건강 수준을 높였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예를 들어, 빈곤층의 소득 수준이 개선되면 약물 중독이나 음주율이 감소될 것이라 기대할 수 있고, 음주 운전 등으로 인한 사고율 역시 감소될 것이라 예상할 수 있다. 또 기본소득이 없었다면 감내해야했을 여러 가지 불리한 조건들과 위험들을 회피하고 사람들이 보다 장기적인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도록 기여함으로써 사람들의 행복 수준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포겟의 연구에서 드러났듯, 전체 의료 이용 중에서도 정신 질환, 사고 및 상해로 인한 병원 이용의 두드러진 감소는 이러한 가능성을 강하게 뒷받침한다. 그리고 이상의 결과는 소득이 건강 수준에 영향을 미치고, 나아가 소득 불평등이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고 보고한 많은 기존연구들의 결과와도 맥을 같이 한다.

빈곤으로 인해 발생하는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고려할 때 기본 소득을 통해 예상되는 편익이나 비용에 대한 생산적인 논의와 고민을 이어가지 못하고 그저 이념적이고 포퓰리즘 정책인 것으로 매도하기 바쁜 현 정부의 모습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엊그제, 건강 수명 연장과 건강 형평성 제고를 핵심 목표로 한 제4차 국민건강증진종합계획을 발표한 보건복지부는 그와 동시에 청년 배당과 청년 수당 정책을 각각 추진 중인 성남시와 서울시를 대법원에 제소하겠다고 밝혔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행보가 아닐 수 없다. 사회 경제적 조건의 개선 없이는 건강도, 건강 형평성도 결코 달성할 수 없다.

정연 시민건강증진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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