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 논평

이제 ‘정당’을 버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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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치는 조금이라도 나아지고 있는 것일까. 선거가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정치의 계절에 이런 질문을 해야 하다니, 한심하고 답답하다. 무력감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이 더 솔직한 표현이다. 출구를 찾을 수 없으니 더 절망스럽다.

거창하게 나라를 걱정해서가 아니다. 한국 정치 발전에 사명감을 느끼는 것은 더구나 아니다. 민주주의니 정당 정치니 하는 것도 접어두자. 그처럼 멀리 가는 것이 아니라 나와 ‘우리’가 걱정이다. 정치가 이 정도여도 내 삶은 괜찮을까? 우리는 좀 더 나은 내일을 꿈꿀 수 있을까? 우리 삶과 일상이 정치에서 벗어날 수 없는 한, 고통스럽게 물어야 하는 질문이다.

 

절망의 직접 이유는 거대 정당(들)의 행태, 그리고 그 수준이다. 비례대표를 줄여놓은 퇴행적 선거 제도는 더 말해봐야 소용도 없으니 그만. 선거를 앞둔 두어 달 동안, 한국 정당은 참모습을 드러냈다. 이전에는 조심하는 분위기라도 있었지만, 이젠 아예 체면도 접은 것이 아닌가 싶다. 민낯을 내놔도 아무 부끄럼이 없다는 것이 더 문제다. 몰염치의 세태.

일일이 모두 말하기도 힘들다. 또, 누구나 아는 것이니 굳이 그럴 필요도 없을 것이다. 막장(이 표현 쓰지 말아야 한다는 것 알지만, 이해하시라) 드라마의 절정에 이른 공천 한 가지만 살펴보자. 몇 가지로 전모를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현재 정당은 조직의 기본 요건도 갖추지 못하고 있다. 혼란이고 난맥이다. 어떤 당은 당원 명부에서 번호를 뽑아 후보자 여론조사를 한다고 했으나, 명부 자체가 엉터리라는 주장이 끊이지 않는다. 당원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고, 명부도 믿을 수 없다는 뜻이다. 다른 당은 아예 당원이 등장하지 않는다.

한국에서 정당원이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 과정이 얼마나 허술한지, 모르는 바가 아니다. 하지만, 당원 명부도 믿을 수 없다는 대목에 이르면 기가 막힌다. 작은 동창회나 계모임보다 못한 조직 아닌가. 장부를 정리할 실력도 안 되는.

중간에 ‘룰’을 바꾸는 것도 마찬가지다. 공천이라면 한국 정당의 존립이 걸린 문제가 아닌가. 경험으로 봐도 하루 이틀 해온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예상하지 못 했던 문제니 하면서 중간에 심판을 바꾸고 규칙을 새로 정한다. 우리 연구소 같은 작은 조직도 그렇게 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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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공천은 전혀 민주적 과정이 아니다. 당원의 뜻이면 그것대로, 일반 유권자의 뜻을 따르겠다면 또 그대로, 충실하게 원칙을 지켜야 한다. ‘숙의민주주의’까지는 못 가도 민주주의 비슷한 흉내라도 내야 하지 않을까.

다수결로 하면 한계가 많다는 주장을 이해한다. 상향식이든 하향식이든 현실의 한계는 무겁고 높다는 것도 안다. 그러나 몰랐던 문제가 아닌 것도 확실하다. 문제가 있다면, 내부 토론을 거치고 당원의 의사를 물어 민주적으로 절차를 정해야 한다.

현실은 혼란 그 자체다. ‘정무적 판단’이나 ‘당의 정체성’이라는 모호한 말로 엄청난 결정이 이루어진다. 특별한 논리도 없다. 무슨 토론과 합의라고 해봐야 ‘그(들)’의 형식적인 겉치레일 뿐이다. 결정에 영향을 받는 당사자야 그렇다 치고, 자의와 판단, 결단의 권한은 누가 누구에게 준 것인가.

공천이든 정당추천제든, 하루아침에 될 일은 아니다. 문제는 대통령이 국회의원 1/3을 추천하던 유신헌법 시기와 정말 그렇게 크게 달라졌느냐는 것이다. 공천이 이런 것이면, 대통령 추천에서 정당 추천으로 바뀌어 봐야 무슨 큰 의미가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민주주의가 발전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불완전한 또는 부분적인 민주주의조차 말할 수 없다면, 우리가 바라는 정치적 삶은 환상일 뿐이다.

 

셋째, 다양한 사회경제적 이해관계가 반영될 손톱만 한 여지도 없다. 구조적으로 예정된 것이니 놀랄 일도 아니다. 지역구 국회의원은 정당 불문, 이념 불문, 똑같은 소리를 하지 않는가. 지역개발, 숙원사업을 빼면 남는 것이 없다. 국민의 대표라는데, 누구의 무엇을 대표하는가 묻고 싶다.

이념과 정강이 무용하다는 것도 또 다른 구조다. 어떤 사회경제적 이해를 대변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 여당의 집권을 설계한 사람이 야당 대표가 되는 마당이니, 무엇을 더 말하랴. 그동안 그 당이 내세웠던 보건의료 정책, 건강보장의 지향과는 늘 반대편에 있었던 인사가 대표의 특보가 되는 정당이라니(한 사회단체의 다음 성명을 참고하라. 바로가기). 이 당은 누구의 무엇을 대표하고 대변하려 하는가?

그나마 있던 면피용조차 뒤로 물러나는 기색이 역력하다. 여성이니 청년, 노동까지, 형식만 남았던 대표성조차 없애거나 무력화되었다. 있다고 해봐야 (생물학적으로) 젊은 나이나 이상한 노동단체 간부임을 내세우는, ‘가짜’ 대표성이다. 비례대표가 남았으니 좀 달라질까 싶지만, 큰 기대를 걸기 어렵다. 이런저런 정략과 좀스러운 또는 탐욕스러운 내부 정치가 관철될 것이다(내기를 걸어도 좋다).

 

생각하면, 이것까지 민주주의의 과제라고 하는 것은 차라리 사치다. 앞의 두 가지 요건도 갖추지 못한 마당에 이런 것을 기대하다니, 현실과 너무 멀다. 최장집 교수가 진단하는 민주주의의 상황은 추상적이지만, ‘원론’으로 유효하다.

 

“오늘의 시점에서 한국 민주주의의 가장 큰 특징은 사회경제적 균열 구조와 정치적 형식으로서의 정치적 대표 체계 간의 광범위한 불일치 내지 커다란 괴리라 할 수 있다.” (최장집 외. <어떤 민주주의인가>, 후마니타스 펴냄)

 

이처럼 조직으로서의 기본, 내부 민주주의, 근대 정당의 기본 원리, 그 어느 것도 갖추지 못한 정당을 어떻게 할 것인가. 다시 ‘원론’으로 되돌아갈 것인가. 앞서 인용한 책에 나온 정치학자 박상훈의 주장이 여기에 해당한다.

 

“가난한 민중의 삶의 조건 개선이라는 민주주의가 갖는 규범적 가치와 이념에 대한 기준을 중시한다면, 그간 민주 정부가 진전시켜 온 한국 민주주의의 경로는 근본적으로 방향이 수정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응당 그것은 ‘정당 민주주의’의 경로를 발전시키는 것이다.”

 

조건이 붙어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는 현실 상황을 꽤 낙관하는 모양이다.

 

“이런 것들 때문에 정당으로는 안 된다고 말한다면 사실 정당 민주주의의 미래는 없다. 근본적으로 이런 문제들은 모두 정치의 세계가 본질로 하는 특징들이다.”

 

일부는 동의하지만, 흔쾌하지 않다. 공천 과정에서 드러난 한국 정당의 모습이 정치의 본질일까. 차마 (아직) 정당이라 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아무리 수준이 낮아도, 문제와 한계가 있어도, 그것이 정당이어야 정당 민주주의의 미래를 이야기할 것이 아닌가. 한국 정당의 ‘현재성’을 회의할 수밖에 없다.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정당 민주주의, 나아가 민주주의의 마지막 가능성을 묻는 심정은 참담하다. 질문은 ‘선거 이후’를 묻는 것이기도 하다. 아무래도 근본부터 다시 생각해야 할 것 같다.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게 좋다, 정당 민주주의가 답이다, 이렇게 최종 결과, 성취해야 할 상태만 주장하는 것은 허무하다. 정당 민주주의에 동의하는 경우라도, 동의하지 않으면 더욱더, 다르게 물어야 한다. 밖에서, 포위하면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어느 길을 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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