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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은 신체에 어떻게 각인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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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프레시안>과 시민건강증진연구소는 ‘서리풀 연구通’에서 격주 목요일, 건강과 관련한 비판적 관점이나 새로운 지향을 보여주는 연구 또 논쟁적 주제를 다룬 연구를 소개합니다. 이를 통해 개인의 문제로 여겨졌던 건강 이슈를 사회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건강의 사회적 담론들을 확산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프레시안 기사 바로가기)


지난 4일, 한국의 소득 불평등이 세계 2위라는 국회입법조사처의 분석 결과가 보도되었다. (☞관련 기사 : 한국, 전 세계에서 최악의 소득 양극화 국가)

분석 결과에 따르면 2012년 기준 한국의 상위 10% 소득 집중도는 44.9%로, 미국(47.8%) 다음으로 높았다. 1995년 대비 상승폭(15.7%포인트)을 기준으로 하면 싱가포르(11.7%포인트), 미국(7.3%포인트), 일본(6.5%포인트) 등을 앞질러, 불평등이 가장 심화된 국가로 나타났다.

불평등한 사회에서 상위 10%에 집중되는 것은 소득만이 아니다. 가장 높은 사회 경제적 지위를 점유한 집단은 그보다 낮은 지위를 지닌 중간층보다, 중간층은 최하위 집단에 비해, 더 건강하게 오래 사는 불평등의 경사가 존재한다. 학계에서는 이를 ‘건강의 사회 경제적 경사도(social gradient of health)’라 부른다. (☞관련 자료 : Health inequalities among British civil servants: the Whitehall Ⅱ study)

건강의 사회 경제적 경사도는 악성 흑색종과 유방암 등 극히 일부 질병을 제외한 매우 넓은 범위의 건강 결과들을 통해 학인 되었다. 또 국가의 경제적 수준을 막론하고 대부분의 사회에서 그 존재가 입증되었다. (☞관련 자료 : Health and human society) 즉, 건강의 사회 경제적 경사도는 한 사회의 불평등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는 매우 보편적인 사회적 사실이다.

그런데 어떻게 사회적 실재인 ‘불평등한 사회’가 ‘인간의 몸’이라는 생물학적 실재로 투영되어 나타나게 되는 것일까. 이와 관련하여 캐나다의 사회역학자 클라이드 헤르츠만(Clyde Hertzman)이 제시한 ‘생물학적 각인(biological embedding)’ 개념이 유용한 설명 틀로 활용되고 있다. 생물학적 각인이란, 불평등한 사회 내에서 겪는 경험들이 몸속으로 들어와 건강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생물학적 과정들을 변화시키는 것을 형상화한 개념이다. (☞관련 자료 :How experience gets under the skin to create gradients in developmental health)

인간의 생체에 새겨진 불평등의 흔적들을 찾기 위해, DNA 메틸화에서부터 지역 내 사회 경제적 지위의 분포에 이르기까지, 유전자, 세포, 사회의 여러 층위를 관통하는 방대한 범위의 데이터들을 바탕으로 연구가 진행 중이다.(☞관련 자료 : Putting the concept of biological embedding in historical perspective)

그 가운데 하나로, 지난 4월 과학 저널 <네이처(Nature)>의 자매지, <사이언티픽 리포츠(Scientific Reports)>에는 생물학적 각인의 경로로서 염증 체계에 주목한 논문이 게재되었다. (☞관련 자료 : A life course approach to explore the biological embedding of socioeconomic position and social mobility through circulating inflammatory markers)

라파엘레 카스타네(Raphaële Castagné)를 비롯한 17명의 유럽 연구진은 전 생애 기간 동안의 사회 경제적 위치가 인간의 염증 체계 상에 어떻게 각인되어 있는지를 확인하고자 하였다. ‘유럽 암과 영양에 관한 전향적 코호트(☞관련 자료 : European Prospective Investigation into Cancer and Nutrition cohort)’의 이탈리아 표본 집단 268명을 대상으로, 생애 초기, 성인기-전기, 성인기-후기의 사회 경제적 지위와 현재의 염증 상태 간 상관 관계를 평가하였다.

염증 상태는 사이토카인(Cytokine), 케모카인(Chemokine), 성장인자(Growth Factor) 등 총 28개 염증 지표의 혈장 내 농도를 통합하여 구성한 염증 점수(범위 : 0-27점)로 측정하였다. 점수가 높을수록, 염증 부담(암 및 대사성 질환 등 여러 만성 질병 발달의 주 경로로 작용)이 높음을 의미한다. 생애 기간 동안의 사회 경제적 지위는 다음의 3가지 지표로 측정하였다.

생애 초기 : 아버지의 직업 지위(육체직/비육체직).
성인기-전기 : 본인의 교육 수준(낮음/높음).
성인기-후기 : 본인 또는 배우자의 직업 지위 중 높은 것(육체직/비육체직).

연구의 주요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첫째, 생애 초기에 아버지의 직업 지위가 육체직이었던 경우, 비육체직이었던 경우에 비해 염증 점수가 높았다. 이는 성인기의 사회 경제적 지위를 나타내는 ‘본인의 교육 수준’과 ‘본인 또는 배우자의 직업 지위 중 높은 것’, 그리고 성별, 연령, BMI와 흡연 여부 등의 잠재적 교란요인들을 보정하고도 남아있는 차이였다.

둘째, 생애 기간 동안의 사회 경제적 지위 변화와 염증 점수 사이의 관계를 분석한 결과, 낮은 사회 경제적 지위에서 상향 이동을 한 집단(아버지가 육체직→본인 또는 배우자는 비육체직)은 사회 경제적 지위가 지속적으로 높았던 집단(아버지가 비육체직→본인 또는 배우자도 비육체직)에 비해 염증 점수가 높았다.

연구는 낮은 사회 경제적 지위가 높은 염증 부담과 관련됨을 보였다. 특히 성인기의 건강 불평등이 생애 초기의 사회 경제적 불평등으로부터 기인함을 시사하는 결과를 도출했다. 또 자녀의 상향 사회이동에도 불구하고, 부모의 낮은 사회 경제적 지위는 자녀의 높은 염증 부담으로 대물림되었다. (연구진은 상향 사회 이동 자체가 염증 부담을 야기할 수 있다고 설명하며,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덧붙이고 있다.)

이러한 연구 결과를 상위 10%가 전체 소득의 절반을 독식해가는 한국 사회에 적용해보면 끔찍한 미래를 예상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오늘날의 극심한 불평등을 만드는 데 조금도 기여한 바가 없는 아이들이, 이 불평등으로 인해 향후 15년, 20년 후 성인이 되었을 때 높은 염증 부담과 유병률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소득 집중도가 드러낸 현 사회의 불평등은, 그 불평등의 상흔을 간직한 우리 몸이 다시 한 번 증언하게 될 것이다.

이렇듯 불평등은 신체에 각인된다. 각인은 생애 초기부터 시작되며 그 여파가 전 일생을 관통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평등한 사회가 간절하다. 특히 출발선에서부터 평등한 방향으로 사회를 움직이기 위한 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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