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병원이 입길에 오르내린다. 압권은 단연 백남기 농민에 대한 사망진단서 사건이나, 그 황당함, 그리고 참혹함을 되풀이 말하지 않는다. 지금이라도 잘못을 인정하고 일을 바로잡기 바란다.
서울대병원 ‘뉴스’가 한 가지 더 있으니, 지난 27일부터 파업을 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언론이 노동이나 노동조합을 제대로 보도하지 않는 것이 하루 이틀이 아니지만, 이건 좀 심하다(<미디어오늘>의 비판기사 바로가기). 한 신문이 전한 파업 소식을 살펴보자(기사 바로가기).
민주노총 서울대병원 분회는 27일 오전 9시 30분 본관 1층 로비에서 파업 출정식을 열고 이날 오전 5시를 기점으로 성과연봉제 저지 및 의료공공성 사수를 위한 파업에 돌입했다고 선언했다. 이날 병원 본관 로비에서 7시간 30분 동안 진행된 집회에는 조합원 1700여명 중 필수유지인력을 제외한 간호사, 의료기사, 운영기능직 등 400여명이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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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노조는 그간 성과연봉제 저지, 의료공공성 사수, 근로조건 개선 등을 요구하며 병원 측과 협상해 왔다. 하지만 지난달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낸 조정 신청이 결렬되자 파업 찬반 투표를 벌여 88.5% 찬성으로 파업을 가결했다. 노조 관계자는 “성과연봉제를 도입하면 원칙대로 검사하고 양심대로 처치하는 근로자가 돈을 못 버는 저성과자가 된다”고 비판했다.
파업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성과연봉제’ 도입 때문인데, 같은 문제가 여러 곳에 걸려 있다. 서울대병원 이외에도 여러 사업장, 특히 공공부문에 속한 곳들이 같은 이유로 파업을 벌였다. 그나마 뉴스가 다룬 서울과 부산 지하철의 파업도 한 묶음이다.
경과는 명확하다. 정부가 119개 공기업과 준정부기관, 143개 지방공기업에 성과연봉제 지침을 내리고 각 기관이 시행하도록 밀어붙였다. 노사 협상 테이블에 나와 있는 기관장, 병원장, 사장이 무슨 힘이 있겠는가. 기획재정부, 행정자치부, 고용노동부가 나서야 하지만, 각오와 협박을 밝히는 것을 빼고는 묵묵부답이다. 더 큰 배후가 있으니 그럴 터, 정권은 성과연봉제를 도입했다는 (소외되고 물신화된) 성과를 올리기 위해, 오로지 그것을 위해 안간 힘을 쓰고 있다.
정부는 성과급제가 공공부문 ‘개혁’이라 광고하지만, 현재 수준에서 정부가 하는 말은 제대로 근거를 찾기 어렵다. 한 마디로, 무엇을 위한 성과급제인지 설득하지 못한다. 성과급제가 어떻게 효율화, 경쟁력 향상, 일자리 창출, 임금 격차 해소로 연결되는지, ‘변화의 논리’, 그리고 정책 논리가 전혀 없다.
얼마나 터무니없는 제도인지 몇 가지만 꼽아보자(사실 이 ‘상식’을 또 말해야 하는가 생각하면 한심하다). 성과급제를 운용하려면, 다른 것은 몰라도 노동에 참여하는 모든 개인의 성과를 분명하게 구분하고 일일이 ‘측량’할 수 있어야 한다. 그에 앞서 기관과 조직의 성과를 분명하게 ‘정의’해야 한다는 것도 필수 조건이다.
이제 묻자. 서울대병원의 성과는 도대체 무엇인가? 환자 수? 수술건수? 수입 또는 이익? 작년 대비 수입 증가? 사망진단서 사건과 겹쳐 생각하면, 차라리 이런 지표는 어떤가. 정권이나 정부의 지침을 얼마나 잘 따랐는가?
다른 곳도 마찬가지다. 서울지하철이나 코레일, 한국인터넷진흥원, 국민건강보험공단의 기관 성과는 무엇인가. 지난 정권에서 4대강 사업을 주도했던 수자원공사, 이 여름 전기료 문제로 약을 올렸던 한국전력의 성과는 무엇인가 기억하자. 돈인가, 서비스 양 또는 질인가, ‘고객’ 만족도인가, 청렴도인가.
미사여구를 동원해도 결과는 한 가지, 성과를 정의하고 측정하는 데는 돈을 따라갈 것이 없다. 정부도 알고 짐작하고 있으리라. 무엇이라 말하든 공공기관에서도 성과는 결국 돈으로 귀결되리라 장담한다. 최대한 더 벌거나 덜 쓰는 것 말고, 딱 한 가지 추가 고려 사항이 있기는 하다. 말썽이 없을 것.
각 기관의 목적에 맞추어 ‘공익적’ 성과목표를 정하면 된다는 일부의 주장은 이론으로만 가능하다. 검증된 적이 없는, 차라리 불가능한 신기루. 서울대병원이나 다른 국립대병원, 국립중앙의료원, 또는 지방의료원의 ‘성과’가 어떤 지표로 어떻게 평가되었는지 모른다고 하지 못할 것이다.
(명확하지도 않은) 기관 성과를 개인으로 배분하는 것은 더 어렵다. 요즘 조직에 혼자 하는 일이 어디에 있다고. 분업과 연계, 통합과 조정이 현대 조직의 특성이자 과제라는 것은 상식이다. 협동의 노동을 어떻게 개인별로 쪼개고 성과를 연결한다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다. 서울대병원의 성과를 돈벌이로 정했다 치고, 돈을 남기면 그건 어느 부서, 어느 직종, 어느 병동, 어느 직원의 공인가?
결국, 추상이 된 수치에 의존한, 또는 이상한 관리시스템(예를 들어 전사적 자원관리라는 ERP)을 동원한 말장난에 가깝다. 한국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실천된 적이 없으니 이렇게 말해도 지나친 것이 아니다. 그 누구라도 좋다. 정부, 언론, 교수, 누구라도 공익적(!) 성과목표를 명확히 정의하고 재정 인센티브가 가능할 정도로 개인 성과를 평가한 예가 있으면 알려 달라.
성과급에 기초한 ‘이윤’의 배분이 어떤 무서운 결과를 초래할지는 더 생각하기도 싫다. 돈을 더 벌겠다고, 적자를 줄이겠다고, 기재부 평가에 높은 점수를 받겠다고, 무슨 짓들을 저지를까. 다른 부서나 다른 사람과 (이상하고 불확실한) 성과를 경쟁할 때 노동은, 그리고 노동자는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할까. 아마도 범죄 수준의 ‘극단’까지 내몰릴 것이다(서울대병원 한 간호사가 페이스북에 쓴 ‘걱정’을 연결해 놓는다. 읽을 가치가 충분하다. 글 바로가기)
정부는 성과급제가 작동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모를까? 우리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바로 며칠 전에도 미국 4대 대형 은행인 웰스파고가 큰 금융 사고를 낸 후 성과연봉제를 폐지하겠다고 발표했다(기사 바로가기). 다음과 같은 현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기사 바로가기).
최근 수년간 미국의 마이크로소프트·어도비 시스템·익스피디아, 일본의 맥도날드·미쓰이물산·후지쯔 등 굴지의 기업들이 성과급제를 폐지했다. 우리나라에서도 한국지엠이 사무관리직 대상 연공급제를 부활시켰다. 이들 기업들이 과거로 회귀한 이유가 뭘까. 직원들이 눈에 보이는 성과에 집착하면서, 인재육성·기술향상·고객서비스 같은 기업 전반의 시스템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똑똑한’ 기획재정부가 그래도 고집을 부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기술적으로 가능하지 않은 데도 우기는 일이면, 필시 ‘비(非)정책적’ 동기가 작동한다. 이른바 ‘성과주의’의 정치경제. 몇 가지 짐작할 수 있는 것은 이런 것들이다. 지극히 한국적인 것들도 들어있다.
첫째, 정치적 이해관계와 관료주의의 결합. 정권은 노동 개혁을 상징으로 내걸었고, 관료주의는 앞뒤 가리지 않고 그걸 해내야 한다. 본질적 목표나 사회적 가치 따위는 생각할 겨를이 없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달성하면 그만, 그다음 정권까지 유능한 관료로 인정받을 수 있다. 관료 체제에 뿌리내린 그들의 ‘성과주의’다.
둘째, 성과를 올리는 것이 아니라, 성과를 핑계 삼아 노동의 구조를 바꾸려는 것. 핵심은 비정규직과 근로시간 탄력 운영을 비롯한 모든 노동의 ‘유연화’일 것이다. 누군가는 이런 노동의 세계를 꿈에 그릴 것이고, 성과연봉제는 진입로 노릇을 한다.
셋째, 좀 더 근본적으로는 노동(자)과의 권력관계를 재편하는 것이 목적이 아닌가 싶다. 노동을 돈으로 사는 한, 질을 핑계로 삼은 성과 평가만큼 강한 권력이 있을까. ‘성과퇴출제’까지 가면 목숨을 쥔 것이나 다름없다.
그다음에 벌어질 일은 뻔하지 않은가. 국가와 자본의 성과주의 이데올로기와 그 실천은 결국 노동자의 몸과 정신을 넘어 영혼까지 지배할 가능성이 크다. 경쟁과 성과, 효율, 능력 계발 등은 (대놓고 강요하지 않아도) 노동 자신의 가치로 내재화될 것이다. 아니, 이미 한참 깊이 들어앉았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생각하고도 성과연봉제를 잘하는 일이라고 할 수 없다. 당연히 반대다. 병원과 보건의료기관에 성과연봉제를 도입하는 것은 더욱 안 될 말이다. 환자의 회복, 지역 주민의 건강 향상, 국가 보건사업의 수행을 포기하고, 돈만 벌면 최고란 소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