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연구통

정밀 의학은 얼마나 정밀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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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프레시안>과 시민건강증진연구소는 ‘서리풀 연구通’에서 격주 목요일, 건강과 관련한 비판적 관점이나 새로운 지향을 보여주는 연구 또 논쟁적 주제를 다룬 연구를 소개합니다. 이를 통해 개인의 문제로 여겨졌던 건강 이슈를 사회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건강의 사회적 담론들을 확산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프레시안 기사 바로가기)


작년(2015년) 정초 미국 백악관의 연두교서 발표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이 총 2억1500만 달러의 예산을 투자하여 정밀 의학(precision medicine) 이니셔티브에 착수할 것임을 공표하였다. 정밀 의학의 발전으로 암이나 당뇨병 등 흔한 질병의 완치를 기대하고, 맞춤형 정보를 기반으로 각 개인과 가족의 건강을 지킬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대책’으로, 한국 정부도 올해 초 ‘정밀 의료 연구 개발 종합 추진 계획’을 수립하였고, 보건복지부 차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정밀 의료 연구 개발 추진위원회’를 구성했다.

미국의 대통령까지 나서서 정밀 의학을 기대하는 바, 정밀 의학은 이미 우리에게 질병 치료와 건강 증진의 미래를 약속하는 유토피아적 이미지이다. 그러나 정밀 의학 예찬자조차, 정밀 의학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하자는 것인지, 무엇이 정밀하다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정작 관심이 없는 경우가 많다. 과연 정밀 의학을 말하기 이전의 의학은 부정확한 비(非)정밀 의학이었을까?

이전에는 맞춤형 의학(personalized medicine)이라는 용어가 더 흔하게 사용되곤 하였다. 그러나 미국국립연구회의(National Research Council)에 따르면, 이 새로운 의학이 지향하는 바는 ‘예방과 치료를 개개인의 고유한 특성에 특화한다’는 ‘맞춤형’의 의미보다는, ‘개인의 생활양식, 환경, 유전 요인에 근거하여 가장 효과적인 예방과 치료적 접근을 선택한다’는 데 초점이 있다. 따라서 ‘맞춤형 의학’보다는 ‘정밀 의학’이라는 용어가 더 적절하다는 것이다. (☞관련 자료 : What is the difference between precision medicine and personalized medicine? What about pharmacogenomics?)

‘인간 게놈 프로젝트’의 책임자였던 프랜시스 콜린스(Francis Collins) 박사의 언급대로, 사실 이러한 전략은 의료에서 이미 오랫동안 수행되어 온 것이다. (☞관련 자료 : A New Initiative on Precision Medicine) 수혈을 위해 혈액형을 맞추어 보는 것, 어떤 치료적 개입이 가장 적절할지에 대한 여러 과 의료진들의 협진 등이 대표적 예다.

그런데도 최근의 정밀 의학적 접근이 기존의 전략과 차별화되는 점은 분명히 존재한다. 정밀 의학은 개인의 생활양식, 환경, 임상, 유전에 관한 방대한 정보를 모두 이용하여, 예방에서 치료에 이르는 모든 단계에 적용하려는 시도이기 때문이다.

최근 의학 저널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신(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에는 정밀 의학을 조금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는 논평이 실렸다. (☞관련 자료 : Uncertainty in the Era of Precision Medicine) 저자인 하버드 대학교의 암 역학자 데이비드 헌터(David Hunter) 박사에 따르면, 정밀 의학에서의 ‘정밀’에서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은 바로 진단, 치료 등 의료의 ‘결과’에 대한 정확도라는 것이다. 그러나 곧 이어, 그 ‘정밀한’ 결과에 수반되는, 기존에는 없었던 ‘정량화된 불확실성’과의 조우를 유의해야 함을 지적한다. 종양 조직을 유전자 진단 제품에 적용하면 다양하고 방대한 유전체 정보를 한 번에 알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정보가 의사와 환자의 항암 치료 선택에 도움을 줄 수 있으려면 앞으로도 갈 길이 멀고, 그 결과도 그리 환상적이지만은 않으리라는 주장이다.

같은 저널 같은 호에 실린 파티마 카르도스(Fatima Cardoso) 등의 연구 결과를 보면, 이러한 관점이 매우 현실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관련 자료 : 70-Gene Signature as an Aid to Treatment Decisions in Early-Stage Breast Cancer) 이들은 조기 유방암 환자에게 보조적 항암 치료를 시행할지 여부를 결정할 때, 임상적 위험도(clinical risk) 기준에 더해 유전적 위험도(genomic risk) 기준을 추가로 사용하는 것이 도움을 줄 수 있는지 평가하고자 했다. 임상적 위험도는 이 같은 결정을 할 때 기존에 사용해 온 기준으로 암 병기와 환자의 특성 등 임상 정보를 활용한 것이며, 유전적 위험도는 일종의 정밀 의학적 연구 방법으로 산출된 유전자 검사 결과에 해당한다.

임상적 위험도와 유전적 위험도가 모두 높다면 항암 치료를 시행하고, 모두 낮다면 항암 치료를 시행하지 않아도 되므로 비교적 간단하다. 그러나 두 결과가 일치하지 않을 때, 즉 임상적 위험도는 높은데 유전적 위험도가 낮거나, 임상적 위험도는 낮은데 유전적 위험도가 높은 경우 항암 치료 여부를 결정하기가 곤란할 것이다. 특히 임상적 위험도는 높고 유전적 위험도가 낮은 경우, 기존의 치료 기준인 임상적 위험도가 높음에도 불구하고 유전적 위험도가 낮다는 이유로 항암 치료를 안 해도 되는지가 중요 관심사이다. 항암 치료는 대개 환자에게 높은 독성과 합병증의 고통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2007년부터 2011년까지 유럽 9개 국가의 112개 기관에서 환자를 모집하였다. 모집된 6693명의 환자 중 임상적 위험도는 높으나 유전적 위험도가 낮은 총 1497명을 항암 치료군과 비치료군에 무작위로 배정하여 5년간 추적하였다([그림]).

그 결과, 비치료군에서는 원격 전이 없는 생존율이 94.7%로 충분히 높은 생존율을 보였지만, 치료군의 생존율에 비해서는 1.5%포인트 낮은 수치를 보였다. 저자들은 이를 “1.5%포인트의 낮은 생존율과 항암 치료 독성 사이의 손익 계산을 저울질하여 치료를 선택하도록 돕는 결과”로 해석하고 있다. 이 지점부터는 환자의 나이나 건강 상태, 사회경제적 상황 등이 선택에 영향을 주는 요인으로 작용할 터이다.

 

▲ [그림] 임상적 위험도는 높으나 유전적 위험도가 낮은 그룹의 원격전이 없는 5년 생존율 비교. 붉은색이 치료군, 푸른색이 비치료군을 나타내며 작은 그래프는 큰 그래프를 확대한 것이다.

데이브드 헌터 박사는 이 연구 결과를 놓고 몇 가지 성찰할 점을 지적하였다.

첫째, 정밀 의학의 시대에도 이러한 (전통적인) 대규모 임상시험을 지속적으로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전자 수준의 정보를 전부 파악했다고 해도, 치료 결정을 위한 임상시험과 그 결과의 축적은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계속 필요하다.

둘째, 임상시험 결과의 해석과 적용을 위해서는 연속수인 유전적 위험도를 특정 기준에 의해 높은 군과 낮은 군으로 나누어야 하는데, 이는 간단히 말해 정밀도를 희생하여 해석을 가능케 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결국 다수의 환자를 그룹으로 분석하는 것과 이를 개개인의 환자 치료에 적용하는 것 사이에는 상당한 정도의 긴장이 내재하게 된다.

셋째, 매우 유사한 유전자 검사라도 제품에 따라 유전적 위험도가 높은 군과 낮은 군을 어떻게 나눌지 기준이 모두 다를 수 있는데, 이 기준의 통일 또한 쉽지 않은 장기적 과제라는 것이다. 데이비드 헌터 박사의 지적대로, 적어도 의료 현장에서는 정밀 의학의 적용과 해석 과정이 기존의 전략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또 정밀 의학적 방법으로 얻은 유전자 정보라도, 기존의 지표를 보완할 수는 있어도 그것을 완전히 대체하기는 어렵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오히려 새로운 정보에 수반되는 확률과 가능성, 불확실성을 의미하는 수많은 추정치들을 먼저 염려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데이비드 헌터 박사는 다음과 같이 조언하고 있다.

“우리는 (정밀 의학적 방법으로 얻은) 복잡하고 방대한 양의 정보가 너무 많은 선택지를 제공하여 치료 결정을 더 어렵게 하는 것은 아닌지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 참고할 정보는 많아도 ‘그래서 환자가 어떤 치료를 받아야 하는 것인가’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민혜숙 시민건강증진연구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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